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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외전 1 Last night

고등학교 때처럼 대학교도 설렁설렁 다닐 줄 알았던 경수는 신입생이라는 이유로 이리저리 잘도 불려 다니고 나름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흘러갔다. 물론, 노력만큼 성적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2학기에는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잦았기에, 노을은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저보다 시간이 더 많이 나서 함께 있을 시간이 더 늘어날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의 바람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 나 오늘 포트폴리오 내고 작실에서 잘 것 같아. 전화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오후 07:18)」

「나: ?? 또 술 마시려구ㅇㅅ”ㅇ! (오후 07:30)」

「♥♥♥♥: 야 그래도 진짜 종강한건데 안 마시면 큰일 나ㅠㅠ 우리 과 종강 제일 늦었단 말이야 (오후 07:45)」

그건 경수가 하도 투덜거린 덕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내지 못했다. 종강일을 꼬박 채우고 나서도 그는 자유의 몸이 되지 못했다. 한 학기 결과물을 포트폴리오로 정리해 자료실에 보관까지 해둬야만 진정한 종강이란 경수의 말에, 노을은 어른스러운 애인이 되고자 참고 또 참았다.

1「나: 네 그럼 적당히 마시고 쉬어요. (오후 07:40)」

잠시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었다. 오늘같은 날에 밖에서 자고 오는 건 정말 아니잖아. 노을은 엎어 놓았던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1「나: 아니 그런데 왜 큰일이 나지?ㅋㅋㅋㅋ 죽는 것도 아닌데 왜 큰일 나요? 이건 그냥 궁금해서…. (오후 08:10)」

답장이 오기 전까지 확인 안 해야지. 화면이 보이지 않게 테이블에 휴대폰을 엎어 두었다. 하지만 1분에 몇 번 꼴로 휴대폰을 은근히 들어 보이게 되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1「나: 형 아직도 마셔요? (오후 08:30)」

1「나: ㅠ아직도…? (오후 09:18)」

1「나: 아직도ㅇㅅㅠ???!!!! (오후 09:52)」

1「나: 왜 안 읽어요ㅠㅠ 술이 그렇게 맛있나; 오늘 날씨 되게 추운데 밖에서 잔다구요? 아 왜요;;; 기절하더라도 제 얼굴 보고 자요…. (오후 10:00)」

답이 오지 않는 이상 그의 외박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경수는 오늘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몇 시간만 있으면 새해인데…. 사랑하는 애인이 십 대의 경계에서 벗어나 마침내 스무 살이 되는, 아주 역사적인 순간을 왜 함께해주지 않는 거지? 친구가 그렇게 좋아? 술이 그렇게 좋아? 나보다? 나보다 좋아? 노을은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 노려보다 분노와 섭섭함을 담아 메시지를 입력해 ‘보내기’버튼을 꾹 눌러 전송했다.

1「나: 왜 나 만나러 안 와?ㅠ (오후 10:20)」

역시나 이번에도 금세 읽는 것은 포기해야 할 듯 싶었다. 노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놈의 술 약속….”

전화번호부에 번호가 엄청나게 많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경수는 주변에 사람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서글서글한 성격 덕인지 큰 노력 없이도 주위에 사람이 몰리는 인간 유형이 그였다. 때문에 올해는 이전보다도 얼굴을 보는 빈도가 줄었었다. 제가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만나도 반드시 주말에나 만나고, 평일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섭섭함이 켜켜이 쌓여갔다.

성적 관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랑도 좀 자주 보면 안 되나? 과 친구들이랑은 맨날 얼굴 보면서, 평일 저녁에 날 잠깐 만나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이를 말했다가는 어린 생각을 한다며 핀잔을 들을까 봐 마음속으로 섭섭함을 깊이 묻어버렸다. 한 살 차이가 그 언제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 제가 어리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올해는 정말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보고 싶은 걸 눌러가며 일 년을 겨우 버텼는데, 이제 진짜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제야의 종소리도 나 혼자 쓸쓸하게 듣다 베갯잇을 적시며 잠에 들기를 바라는 거야, 형은?’

짜증나.

솔직히 말하자면 노을은 경수가 사람들에게 좀 더 못되게 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불안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대학 가면 여자 친구 생긴다’는 말이 올해 들은 말 중에 최악으로 손꼽혔다.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대학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굉장히 위험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누구에게도 제가 뒤지지는 않기 때문에 경수가 눈을 돌릴 일은 없을 걸 확신했으나,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노리는 것 같아 초조했다. 노을은 왜 자신이 일 년 빨리 태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다.

「♥♥♥♥: ㄴ으랴」

「♥♥♥♥: 자니…? (오후 11:10)」

경수에게서 도착한 메시지에서 벌써부터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미 들어올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올해 초에 한 번 빼고 이런 적 없었는데, 오늘은 또 얼마나 마신 거야. 노을은 내일 일어나자마자 미안하다고, 내가 뭐 실수한 것 없냐고 쩔쩔매며 전화를 걸어올 경수가 벌써부터 떠올라 입가에 힘없이 미소를 머금었다.

「♥♥♥♥: 자늑ㄴ구나ㅠㅠ (오후 11:11)」

「나: 안 자요!ㅇㅅㅇ (오후 11:11)」

노을은 황급하게 답장을 한 뒤 경수의 답을 기다렸다. 약 2분이 지나서야 그는 여전히 오타가 가득한 답을 보내어왔다.

「♥♥♥♥: 데박ㅋㅋ 안ㅈ ㅏ?ㅋㅋㅋㅋㅋㅋㅌㅋㅌㅋㅌㅌㅋㅌ~~~」

「♥♥♥♥: 우리 노을이 오ㅔ??ㅋㅌㅌㅋㅋ (오후 11:13)」

「나: 왜 이럴 때만 우리 노을이지…. (오후 11:13)」

「♥♥♥♥: 왜 안쟈???? (오후 11:13)」

「나: 형이나 빨리 자요. 이래놓고 내일 또 전화할 거죠? (오후 11:13)」

1「나: 그러게 들어와서 자면 좋았잖아ㅠㅠ 저 삐지면 백 년 가는 거 알면서 어떻게 풀어주려고 형은ㅠ (오후 11:14)」

1「나: 형? (오후 11:20)」

자냐고 물어본 이유가 궁금해서 오히려 노을이 잠이 다 깨버렸다. 분명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 같았는데. 뭐였을까. 이 시간에 눈까지 흐려 오타를 이렇게나 많이 낼 정도로 취해가지고는. 그리고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곧바로 전화를 받자 숨소리만 들려주던 경수가 갑자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리고 또 몇 초 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형?”

-…….

“여보세요.”

-응, 여보다.

순간 머리가 굳었다. 노을은 작게 벌린 입을 다물고 눈살을 찌푸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형 어디 아파요?”

-안 아파. 그런데… 천노을, 너 왜 안 자? 이 시간인데… 왜?

발음도 멀쩡하고, 목소리 톤도 일정하다. 때문에 이것만 들으면 전혀 취한 사람 같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라면 ‘응, 여보다.’ 따위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노을은 그가 단단히 취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형은요? 왜 안 자요? 술 많이 마셨어요?”

-아니야, 별로 안 마셨어. 너도 알다시피 지금 나 엄청 멀쩡해.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래? 넌 왜 모르지? 너 빼곤 다 알아. …헉, 고양이다.

고양이? 노을은 휴대폰에서 귀를 잠시 떼고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12시 10분 전이었다. 때마침 옆을 지나가는 차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매섭게 불어치는 바람 소리도 들렸다.

“형, 설마 아직도 밖이에요?”

-헉, 어떻게 알았어?

“취한 사람이 이 시간까지 밖을 왜 나다니는 거야…. 추우니까 빨리 자요.”

-알았어, 잘게.

“그런데 내일 되면 전화 건 것도 까먹을 거죠?”

-안 까먹어. 그런데 노을아, 잠시만 나오면 안 돼? …고양이 보러 와. 치즈 색이야.

노을은 그 말에 경수가 학교 근처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만 신으며 급하게 물었다.

“……형 지금 어딘데요?”

-나? 너희 집 근처. 나무랑… 나무 사이에 있어. 고양이 보면서 기다릴게.

“어떤 나무요? ……형? 경수 형!”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황한 노을이 다시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제 애인이 어디 자빠져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을 걸 생각하니 살을 에는 추위도 별거 아니었다. 치킨집 안의 작은 TV에서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한창이었다. 저걸 같이 보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을 냈던 건데, 함께 할 애인이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었다.

노을은 그렇게 근처를 헤매고 다니다, 근린공원 수풀 사이에 들어가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경수를 겨우 찾아냈다. 고양이는 핫팩 위에 올라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었다.

“…경수 형.”

“응?”

그의 이름을 부르자, 경수는 금세 경계가 풀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노을임을 알아채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노을은 자신에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꼭 끌어안는 경수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밖에 얼마나 있던 건지, 뺨이 얼음장 같았다. 경수는 노을의 손에 얼굴을 부비며 헤헤 웃었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에 노을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했다.

“읏, 술 냄새.”

한참 목을 끌어안은 채 술 냄새를 풀풀 풍기던 경수는 곧 고개를 들어 웃으며 물었다.

“노을이 네가 여긴 웬일이야? 형 많이 보고 싶어서 왔어?”

“…형이 저희 집 앞까지 온 건데요?”

“그래?”

“그래요.”

“그럼 내가 널 보고 싶었나 보다. 많이.”

“……진짜?”

“응? 그런가 봐.”

경수는 노을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며 말했다. 지나치게 상냥하고 솔직했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말하지 않으니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보고 싶었다는 말에 그동안 쌓인 섭섭함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뭐야, 거짓말쟁이. 취했을 때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더니, 이렇게나 많이 나는데….

이걸 자신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봤다고 생각하니 뒷골이 당겼다. 노을은 내년부터, …아니 올해부터는 웬만해선 경수를 누군가와 둘만 있게 두는 일은 전혀 없게 할 것을 결심했다.

몸도 잘 가누고 걸음걸이조차 지나치게 반듯한 경수를 집으로 데리고 올라왔다. 경수는 내내 멀쩡하다가 현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돌변했다. 이제야 긴장이 풀린 건지, 신발장에 털썩 주저앉아버리는 것이었다. 당황한 노을이 그를 일으켜보려 몸을 숙였던 그때였다.

“읏! …형?”

“…….”

경수는 노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살갗을 잘근잘근 씹더니 키스 마크를 남기려는 것처럼 세게 빨아들였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눈썹을 꿈틀거리다 이따금씩 아프지 않을 정도로 목덜미를 깨물기도 했다.

노을은 그가 제게 보이는 집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좋아 문제였다. 노을은 목덜미를 잘근거리는 경수의 머리칼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에 감기듯 사부작거리는 머리카락마저 사랑스러웠다.

“형, 있잖아요. 오늘 1월 1일인 건 알아요?”

“응?”

“그런데 경수 형이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형 찾느라 종소리도 못 듣고…. 형이 조금만 덜 바빴어도 불꽃놀이 보러 갔을 텐데.”

“그래서 뭐. 내가 바쁜데 어쩌라고?”

“그래도 너무 좋다구요….”

노을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부터 뭔 소리야. 분위기 깨지 말고 가만히 있어.”

정말 분위기 깨는 게 누군데. 노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어리광을 부리듯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그리고 경수가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형, 저 이제 진짜 성인인데. 진짜로….”

“안 물어봤어. 가만히 있으랬지, 내가.”

“…….”

원래도 자신은 그리 말을 잘 듣는 애인은 아니었다. 노을은 가만히 있기보다는 경수의 술기운에 발갛게 달아오른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목덜미에서 쇄골로 이어지는 사이에 입술을 가져다 댄 노을은 자국이 남을 정도로 살짝 빨아들였다.

빨간 자욱이 남은 자리를 엄지손가락으로 슬쩍 쓸어본 뒤 고개를 들었다. 둘 이외에 그 누구도 없는 고요한 공간 속, 공중에서 시선이 얽혔다. 경수는 조금 졸려 보이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감았다. 맞닿은 입술이 뜨거웠다.

*

샤워기 헤드에서 적당한 온도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물은 두 사람을 감싸듯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 떨어졌다. 키스하다 말고 멀쩡히 갑자기 욕실로 걸어 들어가길래 씻는 줄 알았는데, 한참 뒤 소리가 없어 들어가 보니 경수가 젖은 옷을 입고 낑낑대고 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헛웃음이 나왔다.

옷을 벗겨주러 다가갔다가 경수가 샤워부스 안으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노을도 덩달아 젖어버렸다. 물에 젖어 축 늘어진 옷가지를 던져버리고 보니 경수가 묘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읏, 혀…엉.”

그는 망설이지도 않고 노을의 하체로 손부터 가져갔다. 노을도 양심적인 편은 아니라 즐겁게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여긴 어떻게… 볼 때마다 색이 이렇게 예쁘냐? 친구들이 핑크색이라고 안 놀려?”

“형만… 놀리, 는 데요… 읏…!”

“나만?”

경수는 묘하게 만족스러운 듯 히죽 웃었다. 알코올 향이 거의 다 씻겨 내려가 원래의 그에게서 나는 체향이 은근했다. 노을은 평소의 경수도 좋았으나, 가끔씩은 술이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도 더 대담하고 솔직한 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경수는 길고 곧게 뻗은 성기를 가볍게 쥐고서 가볍게 흔들었다. 곧 손안의 성기가 부피를 더하자 갑자기 그가 질색을 하며 중얼거렸다.

“이게 지 주제도 모르고 커지네.”

“형이 만져놓고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노을은 얼굴을 붉히며 속삭였다. 경수는 여전히 신기한 듯 두 손으로 그의 것을 만지작거리며 손바닥으로 크기를 재어보았다.

“…신기하다. 지금껏 이게 들어왔다고? 그럼… 적어도 여기까지 왔을 것 같은데.”

“……형!”

손바닥을 펼쳐 제 배에다 그의 것이 들어오는 깊이를 가늠해본 경수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나 어떻게 살아있냐?”

“저야 모르죠. 그것보다 형….”

“하여간 좆도 제 주인 닮아서 정도를 몰라…. 이게 어떻게 고추야? 고추야 미안해.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이건… 다리야, 다리. 앞으로 넌 오족 보행을 하는 거다.”

“오족… 뭔 소리예요, 또…. 전 사람이라 평소에 사족보행을 하진 않아요.”

“말대꾸 하지 마!”

“아, 형 진짜 취했나 봐.”

“나 안 취했어. 아까부터 너 도대체 뭐라는 거야?”

경수는 술기운에 의식의 흐름대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노을은 이상한 말을 하면서 대담하게 손을 놀리는 경수를 내버려 두고, 허리를 은근히 지분거리던 손을 내려 맨살의 엉덩이를 쥐었다. 손안에 착 감기듯 알맞은 크기였다. 감촉마저 좋았다. 봉긋하게 올라붙은 엉덩이를 짓이기듯 움켜쥐다 두 둔덕 사이로 손을 옮기자 경수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흐으, 야….”

조금 당황한 얼굴에 쪽, 입술이 내려앉았다. 잡아 벌리듯 엉덩이를 쥔 손에 힘을 주고, 물에 젖은 손으로는 구멍 근처를 꾹꾹 눌렀다. 그러자 경수의 입에서는 밭은 신음이 터져나갔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그의 것도 어느새 반쯤 서 있었다. 성기 끝에 물방울이 매달려 뚝 떨어지는 모양새가 음심을 돋구었다.

“읏.”

노을은 경수의 손목을 잡고 몸을 돌려 벽을 짚고 서게 했다. 경수는 멍하게 뭘 하냐는 듯 뒤를 돌아보려 했다. 곧 그의 몸에 닿은 것은 미끄러운 액체였다. 그 위에 물줄기가 쏟아지자 향긋한 향이 나는 흰 거품이 일었다.

노을은 샤워기 레버를 돌려 물줄기의 세기를 조금 약하게 한 뒤 손바닥으로 뒷목부터 간지럽게 쓸며 내려왔다.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하얀 거품이 남았다.

“뭐 하, 흐흣….”

“씻어야죠. 형 지금 취했으니까 제가 씻겨줄게요.”

“나 안 취했… 어어….”

미끄러운 손이 빳빳하게 선 유두를 스쳐 지나갈 땐, 그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었다. 노을은 경수의 엉덩이에 잔뜩 부푼 성기를 문지르며, 손가락으로는 그의 유두를 굴리듯 애무했다. 얇은 피부 아래로 느껴지는 심장박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세차게 느껴졌다.

그리고 느리게 몸을 따라 내려가던 손이 허벅지 사이에 들어갔다. 바디워시를 조금 더 짜 다리 사이를 치덕치덕 문지르자 흰 거품이 모양새 좋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노을의 성기가 까딱 움직였다.

“형, 지금… 다리 붙이고 서볼래요?”

“뭐?”

“안 취했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야, 당연하지!”

경수는 그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시키는 대로 다리를 붙이고 자세를 고쳐 섰다. 열기로 데워진 욕실은 덥고 습했으나 그의 뺨에 닿는 욕실 타일은 차가웠다.

경수는 한순간 또렷해진 정신으로 눈을 깜빡이다 허벅지에 마찰되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노을은 거품으로 미끈한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끼워 넣었다.

“노을아? …읏!”

“으응….”

군살 없는 등 선을 따라 손을 움직이던 노을은 경수의 몸을 고정하듯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였다. 허벅지 안쪽의 피부는 가장 여리고 부드러웠다. 경수는 반사적으로 붙이고 선 다리를 움찔 떨었다. 허벅지 사이 좁은 틈을 억지로 파고들어 성기를 사이에 마찰시켰다. 그새 미끄러운 바디워시가 물에 거의 다 씻겨 내려갔다.

노을은 허리를 쥐고 있던 손을 앞으로 가져가 빳빳하게 선 유두를 손으로 뭉개듯 어루만졌다. 다른 손으로는 음낭을 쥔 채 부드럽게 애무하다 조금 올라와 경수의 성기를 가볍게 쥐었다.

“아, 노을아, 좋…아, 흐….”

“…저도 좋아해요.”

“으응, 나도 너 좋아해….”

경수는 제가 무슨 말을 한 지도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좋아한다고 웅얼거렸다. 보기 드문 그의 솔직한 모습에 노을은 반쯤 정신을 놓아버렸다. 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짝짝, 욕실에 살갗이 맞닿아 나는 질척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뜻하게 내려앉는 물줄기와 하체로 가해지는 미미한 쾌감, 그리고 느껴지는 서로의 온기에 둘은 정신없이 감각에만 탐닉했다.

갈, 갈 것 같아…. 손가락을 곱아 벽을 긁으며 열에 달뜬 신음을 내뱉던 경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를 떨며 노을의 손에 사정했다. 노을은 사정하는 순간까지도 성기에 자극을 가하던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한 것을 노을이 단단히 붙잡아 일으켰다.

“으응….”

그는 경수의 턱을 잡아 고개를 돌려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마찬가지로 열에 달뜬 노을의 얼굴은 경수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자극이었음이 분명했다. 사정 후 줄어들었던 그의 성기가 크기를 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멍을 지분거리던 노을의 손가락이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부드럽게 풀려 있던 입구는 생각보다도 더 뜨거웠다. 노을은 차차 손가락을 늘려가며 경수의 몸에 제 성기를 마찰시켰다. 그리고 사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민한 경수의 것을 계속 자극하며 구멍 사이에 귀두를 뭉근하게 잡아 눌렀다.

“흐으으, 읏….”

곧 손가락이 빠지더니 두꺼운 귀두가 입구를 빠듯하게 늘이며 밀고 들어왔다. 일주일만의 침입이었다. 경수는 허리를 뒤로 뺀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는 경수의 턱을 잡아 가볍게 입을 맞추며 노을이 성기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경수는 몇 번을 해도 적응되지 않는 감각에 신음했다. 심지어 서서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좁은 통로로 천천히 밀려들어 오는 것은 뜨겁고 자극적이었다. 노을은 몸 곳곳을 지분거리며 뒷목에 입을 맞췄다. 경수가 가까스로 뒤의 힘을 풀자, 노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성기의 밑동을 한 번에 안으로 퍽 찔러 넣었다.

“흐윽!”

그러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너진 자세에 기껏 다 들어갔던 성기까지 빠져나갔다. 노을은 벽을 짚은 채 무릎을 꿇은 경수를 따라 자세를 낮추어 그의 뒤에서 무릎을 세워 앉았다.

“자, 잠깐… 읏…!”

“힘들면 이대로 제 위에 앉아요.”

“어떻게 앉… 흐아앗!”

노을은 다시 그의 구멍에 성기를 맞춰 밀어 넣고 경수의 손을 겹쳐 잡아 벽에 누른 채 느리게 허리 짓을 시작했다. 굵은 성기가 부드럽게 빠져나갔다가 안으로 퍽 틀어박히는 동작에 경수는 가슴을 들썩거렸으나, 벽에 짓눌린 채 뒤로는 노을이 철썩 달라붙어 있어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으으, 흣, 좋아….”

“으응… 저도요.”

몸은 옴짝달싹도 못 한 채 뱃속에서 팔딱거리는 성기가 선명하게 느껴질 때마다 경수는 이를 악물었다. 손도 다리도 결박된 채라 경수에게 허락된 움직임은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양심도 없, 읏! 는 새, 끼….”

“양심이요? 누가 먼저 시작했더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던 경수가 별안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중얼거렸다.

“…난가?”

“네.”

“미안해.”

노을은 어깨를 잘게 떨며 웃었다.

“형, 진짜 취했어.”

“아… 윽!”

경수는 노을이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숨을 잠시 멈췄다. 노을은 가쁜 숨을 내뱉는 연인을 끌어안고 허리를 밀어붙였다.

경수는 분명 제품 안에 있고, 지금 안고 있는데도 자꾸만 갈증이 일었다. 요즘 들어 멀게만 느껴지는 그에게 몸을 밀착한 채, 뒷목 한가운데에도 작은 키스 마크를 남겼다. 스스로 거울을 볼 때 보이지는 않겠지만, 뒤에서 본다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아, 흐으, 무릎… 무릎 아파.”

투명한 눈물을 눈꼬리에 매단 채 경수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딱딱한 바닥 탓에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노을은 경수의 안에 파묻었던 성기를 빼내고 그의 허리를 잡아 돌렸다.

“손잡고 일어나요.”

노을은 그를 일으킨 뒤 한쪽 다리를 잡아들었다. 무릎 사이를 잡아 제 허리에 감게 한 뒤 다시 성기를 삽입했다.

“으윽…!”

“형, 소리 울려요.”

“으, 응…. 어쩌라고…. 너나 입 다물어….”

노을은 희미하게 웃으며 짧게 입을 맞췄다.

“그냥 그렇다고…. 별 뜻은 없었어요. 난 좋아요. 계속 소리 내도.”

“흐으…!”

어느새 익숙해진 듯 고개를 젖혀 신음하며 그가 제 목에 팔을 감았다. 스스로 달라붙어 오는 움직임에 더 꽉 맞붙고만 싶었다. 제 허리에 감은 다리와 경수의 허리를 꽉 붙잡은 채 성기를 안으로 힘껏 박아 넣었다. 따뜻한 내벽에 감싸인 성기로 그가 느끼는 부분을 뭉근하게 비비자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흐으, 잠, 깐만.”

귓가에서 달뜬 신음을 내뱉던 경수는 허공을 허우적거리다 손을 배가 있는 곳으로 가져와 이리저리 더듬었다. 무얼 하나 싶어 허리를 한 번 더 퉁기자, 신음하면서 또 양심을 부르짖었다.

“솔직, 솔직히 너… 양심 없이, 읏… 너무 커. 진짜 여기까지 닿은 것 같아.”

“으으, 윽….”

“아니야? 어때? 누르면…. 아, 씨발….”

제 뱃가죽을 더듬으며 하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노을은 금방 사정해버릴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노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경수는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횡설수설하게 중얼거렸다.

“그니까 다음엔 반 접어서 넣자….”

“……네? 뭐라는 거야…. 그럼 죽어요.”

“안 죽어. 네가 해 봤어?”

“……안 해볼래요….”

“왜 안 해 봐? 흐으… 그럼 난 누구랑 하지?”

“…저랑요. 그런데 접는 건 하기 싫어요.”

“어? 뭘 접는데?”

“…….”

온전한 정신은 아닌지 맥락 없는 말을 하는 건 여전했다. 노을은 황당한 듯 웃다가 그의 등을 끌어안은 채 내부를 성기로 휘저었다. 밀려오는 사정감에 터져 나오는 신음을 굳이 참지 않고 둘은 열락에 젖었다. 노을은 제 허리에 다리를 감고 매달려오는 그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입술이 겹쳐지고 혀가 얽혔다. 노을은 경수가 자신의 입안에 밀어 넣은 혀를 빨면서 그럴 리 없는데 타액마저 달다는 생각을 했다.

접합된 부위에서는 여전히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노을의 머릿속에는 온통 경수 생각밖에 없었다. 눈을 떠도 감아도 온통 그뿐이었다. 문득 형도 그렇겠지 생각하니 아랫배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형, 경수 형, 으, 흑….”

“…하읏, 흑!”

눈앞이 새하얘질 정도로 강렬한 사정이었다. 동시에 경수도 눈을 질끈 감으며 사정에 이르렀다. 노을은 경수의 입술을 잘근거리며 잘게 허리를 쳐올렸다. 몸속 깊이 퍼지는 액체에 경수는 뒤를 움찔거렸다. 노을은 그런 그의 숨소리까지 끌어안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둘은 여운에 젖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졸려요?”

“…조금.”

피로가 몰려오는 듯, 눈을 반쯤 감은 경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노을은 땀과 물로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제게 몸을 기대어오는 것이 자신을 의지한다는 뜻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노을은 슬쩍 웃으며 경수를 끌어안았다.

성기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입구 안쪽에 고였던 정액이 주르륵 떨어져 내리는 것에 경수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를 뒤로 돌린 채 제 것이 들어갔던 입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노을은 그 사이를 손으로 지분거렸다. 언제 벌어졌냐는 듯 굳게 닫힌 입구 사이로 희뿌연 액체가 흘러나와 허벅지를 적셨다.

“…….”

그러고 보니, 이제 형 바쁜 일도 다 끝났다니까 오늘부터는 계속 잡아둬도 괜찮겠네…? 꼭 끌어안고 앉아서 TV로 시시한 드라마나 보다가, 마음이 내키면 입을 맞추고, 밤낮 안 가리고 눈이 마주치면 섹스도 하고, 배가 고프면 얼굴을 마주 보고 밥을 먹고, 계속…. 계속 함께야. 더 이상 형도 바쁘단 핑계, 내게 방해가 되기 싫다는 핑계도 대지 못해.

“뭐하, 노을….”

노을은 경수의 다리를 다시 잡아 벌렸다. 경수가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윽…!”

겨우 좁아졌던 곳을 다시 잔뜩 넓히며 성기가 푹 파고들었다. 경수는 욕을 짓씹으며 고개를 젖혔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찔 떨면서도 꾸벅꾸벅 조는 경수의 귀에 밀담을 속삭이며 허리를 쳐올렸다.

이어진 한차례의 정사 후, 경수는 후처리를 하는 동안에도 꾸벅꾸벅 졸더니, 제 안에 싸지른 정액을 긁어내느라 열중한 노을을 보며 스쳐 가듯 중얼거렸다.

“…노을아, 너… 되게 예쁘다.”

*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학기 말이라 그런지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는 명목하에 강의가 끝나면 매일같이 술판이 벌어졌다. 시간이 너무 늦을 때면 과방이나 작업실에서 선잠을 자야만 했다. 때문에 거의 일주일 가까이 집에 제대로 들어간 날이 없었다.

어젯밤 경수의 마지막 기억은 과방에서 끊겨있었다. 하지만 불편한 자리에 구겨져 잤다기에는 몸에 닿는 침구가 너무 푹신했다. 경수는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는 몸을 겨우 일으켜보았다. 허리가 조금 뻐근한 느낌도 들었다.

“…….”

눈을 깜빡이다 보니 흐린 시야가 또렷하게 돌아왔다. 여긴 과방이나 작업실이 아니라 천노을 방이었다.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몰라 멍하게 앉아있던 경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바닥에 휴대폰이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는 끙끙거리며 휴대폰을 주워들어 화면을 켜보았다.

통화목록이 온통 천노을과 과 사람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천노을에게 전화를 건 것은 모두 경수였고, 그런 경수를 찾았던 건지 5분 간격으로 과 사람들의 부재중 전화가 도착해있었다.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알코올에 절여졌던 뇌는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끙끙거리며 기억해내려 애써보자, 간간이 끊긴 기억이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왔는데, 왠지 모르게 뻐근한 몸과 살색으로 가득한 기억의 편린을 맞추어 보았을 때 어제 술김에 노을을 덮친 모양이었다.

“…내가 미쳤나.”

그것도 욕실에서. 서서….

“못 살아….”

멋대로 집에 찾아온 것도 모자라 늦은 밤에 천노을을 덮치기까지 했다니. 경수는 최근 사용된 어플 기록 중 메신저가 있는 것을 보고 메신저에도 들어가 보았다. 1월 1일로 넘어가있는 톡방과, 열두시에 딱 맞추어 도착한 몇 개의 새해 축하 메시지들. 과 단톡과 게임 톡에도 메시지가 몇 개 쌓여있었고, 그들의 아래로는 하룻밤 사이 하트가 하나 더 붙은 ‘♥노을이♥’, 그리고 모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ㄱㄷ: 경수 ㅇㄷ? 왜 게임하다 탈주를 하냐ㄷㄷ (오후 11:20)」

기역 디귿이 누구인가 싶어 이전 대화 내역을 보니 과대였다. 이름을 바꿔 놓은 사람은 보지 않아도 천노을일 게 뻔했다. 제 이름을 ‘♥노을이♥’로 바꾸며 함께 바꾼 모양이었다. 그나마 메신저 저장 명만 바꿔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경수는 실소를 터뜨렸다.

「ㄱㄷ: 집에 갔냐? 말이라도 하고 가지….;;; (오후 11:48)」

「나: ㄴㅏ 집아ㅏ니ㅑㅇ~~ 걸어개늦쯍!! (오후 11:52)」

「ㄱㄷ: ??? 걸어가는 중이라고?;;; (오후 11:53)」

「나: 웅ㅋㅋㅋㅋㅋㅌㅌㅋㅋㅋㅌㅋㅋㅋㅋㅌㅌㅋㅋㅌㅌㅋㅋㅋㅋㅋ (오후 11:55)」

「ㄱㄷ: 왜 웃냐? 덜덜ㅋㅋ 안 취한 줄 알았더니 미친놈이었네;;;;;; (오후 11:55)」

「나: 고ㅔㄴ찮아 나 멀쩡래.ㅋ (오후 11:59)」

「ㄱㄷ: 근데 왜 웃는데;;;;; (오후 11:59)」

「나: 종강한 거 기뻐서ㅋㅌㅌㅋ 아임 멀쩡 (오전 12:00)」

“…….”

지금 제가 봐도 하나도 멀쩡해 보이지가 않았다. 경수는 제 술 버릇을 떠올려보았다. 남들이 말해주길 그렇게 심한 꼬장을 부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취했을 때와 취하지 않았을 때의 간극이 그리 심하지 않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가 취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다만 일정량 이상으로 마시면 지나치게 솔직해진다는 게 문제였다.

학기 초, 신입생 여학생에게 치근덕대는 세 학번 위의 선배에게 말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그것도 군대까지 다녀와 새내기에게 치근덕대는 놈이었다. 경수는 심각한 얼굴로 ‘상철이 형은 너무 늙었어. 양심적으로 진짜, 혜영아 진짜 저 형은 아니야….’라고 여학생을 붙잡고 빌 듯이 부탁한 전적이 있어, 경수는 한동안 학과의 양심이라고 불렸다. 그 일을 계기로 선배들과 안면을 튼 것은 물론, 하마터면 학생회까지 들어갈 뻔했다. 그날이 처음 필름이 끊겼던 날이라 물론 경수는 기억하지 못했다.

「ㄱㄷ: 아임 멀쩡ㅋㅋㅋ ㅈㄹ하네 전화 좀 받아. 길바닥에 누워있냐? (오후 12:01)」

「ㄱㄷ: 답장 좀?; (오후 12:03)」

「나: 애ㅇ니 ㅈ비에 간다! (오전 12:05)」

‘뭐라고 쓴 거지?’

「ㄱㄷ: ㄷㄷ한국말로 해줘…. (오전 12:15)」

「ㄱㄷ: 아무튼 집이라는 거지?ㅋ (오전 12:30)」

「나: 응, 나 집이야. 방해되니까 전화 한 번만 더 하면 차단할게ㅇㅅㅇ! (오전 12:59)」

‘…이건 안 봐도 천노을이다.’

이 전의 메시지들과 다르게 오타 하나 나 있지 않고, 놈이 자주 쓰는 이모티콘까지 붙어있다. 경수는 어제 욕실에서의 정사 이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당장 노을을 잡아다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ㄱㄷ: ? 미친새ㄲ (오전 01:28)」

「ㄱㄷ: 차단까지야;; ㅇㅋ 쉬셈 (오전 01:30)」

과대와의 채팅은 여기서 끝이었다. 경수는 노을이 멋대로 바꾼 이름 ‘ㄱㄷ’을 다시 ‘과대’로 바꿔둔 뒤 침대에서 일어나 벽을 잡고 비척비척 걸어 방 밖으로 나가보았다.

“천노을….”

어디를 돌아보아도 노을은 집에 없었다. 뻐근한 허리를 부여잡고 신발장 앞에 주저앉아 ‘얘가 어디에 갔어?’하고 생각하던 경수는 고등학생도 방학 중에 학교를 가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뭐, 상담할 게 있었나?”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에 갔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놈이 귀엽게 느껴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실실 웃던 그는 신발장 앞에 붙은 길쭉한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입었던 옷은 어디로 갔는지, 제 것이 아닌 듯 조금 큰 옷을 입은 채 생각보다 멀쩡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미친, 내가 천노을 이 새끼를.”

목덜미가 보이는 티셔츠 사이로 울긋불긋한 키스 마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노을이 오자마자 이게 무어냐고 추궁할 것을 결심했다. 그 결심을 하자마자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신발장 바로 앞에 앉아있는 경수를 보고 노을이 발걸음을 멈칫했다.

“천노을, 너 죽고 싶….”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던 경수는 노을의 목덜미에 커다란 반창고만 몇 개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대신에 말을 돌려버렸다.

“너, 너 어디 갔다 와! 학교?”

“네? 학교 안 나간 지 꽤 됐는데…. 저 잠깐 밖에…. 그런데 형은 왜 나와 있어요? 저 버리고 어디 가려고요?”

“내가 널 왜 버려?”

노을은 활짝 웃으며 신발장에 쪼그려 앉아 경수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렇죠? 그럼 오늘 하루 종일 저랑 있을 거죠?”

“…그래, 뭐.”

경수는 머쓱하게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아까부터 자꾸 제 목을 힐긋힐긋 들여다보는 시선에 노을은 희미하게 웃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어제 형이 먼저 물어뜯었어요.”

노을은 반창고를 손끝으로 뜯어 보여주었다. 제 목에 남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짙고 엉망이었다. 다행히 이빨 자국 같은 것은 없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경수를 보고, 노을은 피는 나지 않았다며 경수를 도닥였다.

“……설마, 내가 그랬다고? 그럼 내 목에 이건 뭔데?”

“그건 제가 한 거 맞는데, 형이 먼저 제 목덜미 물어뜯었어요. …전혀 기억 안 나는 거예요? 그건 그것대로 좀 슬프다.”

“…….”

경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먼저 그랬을 리가 없는데, 저 새끼가 또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천노을이 하도 사기 전적이 많은 데다 그걸 제게 들킨 것만 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에 의심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그것도 전혀 기억 안 나요? 어제 형이 욕실에서 저 덮….”

“그건!”

“그건?”

“……그건 어렴풋이 기억나. 조용히 해….”

경수는 표정을 굳히며 읊조렸다. 노을은 눈을 휘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진짜 여기서 뭐하고 있던 거예요? 저 기다리던 거면 너무….”

“너무, 뭐.”

“너무 좋다구요!”

노을은 경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걸을 때마다 머리가 울려 그냥 아무 데나 주저앉은 거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타이밍이 늦은 것 같았다. 경수는 그냥 노을이 저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경수는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비틀거리며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식탁에 얼굴을 기댄 채 엎드리자 뺨에 닿는 찬 유리 때문에 그나마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노을은 그런 경수에게 물 한 컵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 왜 있어?”

“형이 먼저 전화했잖아요.”

“…내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노을은 입가를 씰룩거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수줍게 말을 꺼냈다.

“그렇게나 제가 보고 싶었어요?”

“……?”

뭐 하는 거지? 노을은 몸을 배배 꼬며 속눈썹을 팔랑거렸다. 무언가 개수작을 부릴 때의 얼굴이었다. 경수는 떨떠름하게 노을을 의심했다.

“제가 그렇게 예쁘면 평소에도 좀 말해주면 좋잖아요.”

“뭐라는 거야? 네 어디가 예쁘다고? 하나도 안 예뻐.”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도 노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에 휴대폰을 꺼내어 조금 조작하더니, 측면의 버튼을 눌러 음량을 키웠다.

-아이고, 우리 노을이. 이리 와 봐. 그렇지, 그렇지.

“……?”

경수는 고개를 들어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형, 지금 되게 아저씨 같아요. 이거 놔 봐요! 머리 말려야….

-아저씨? 야! 너 나랑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 네가 2월이고 난 4월이니까… 노을아, 그게 얼마나 차이 나는 거지? 2년인가? …나 셈이 안 되는데 넌 알겠어?

-형 바보.

-뭐, 씨발!

노을이 웃음을 참는 듯 입술을 말아 무는 것이 보였다. 경수는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꼈다.

-그런데 제 얼굴은 왜 만지는 거예요?

-아, 예쁘다. 왜 어두운 데서 봐도 이렇게 예쁘냐, 넌.

-알아요. 오늘만 벌써 백 번째 듣는 말인데.

-뭐? 네가 뭘 알아?

-사실 몰라요. 그래서… 어디가 어떻게 예쁜데요?

-그걸 말을 해야 알아? …흐으, 넣지…. 아니, 으응….

-전 말을 안 하면 모르죠.

이게 뭐야! 경수는 전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대화가 이어질수록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 꺼!”

“쉿.”

노을은 경수의 입 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좀 더 들어볼 것을 강요했다.

-읏, 피곤한 새끼….

-그럼 제 어디가 제일 예쁜데요?

-음, 자지?

아, 씨발. 경수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일단 거기 빼고.

-눈도 반짝반짝 예쁘…고, 눈썹도 짙고, 하아…. 귀여, ……아흐윽!

-아, 미안해요. 계속해요.

-계속, 응… 그리고, 그리고…. …코도 곧게 뻗어서 예쁘고, …목소리도 예뻐….

-그리고요? 또?

-하, 으으, 겨우 씻었는데 왜… 또.

-또 내 어디가 좋아요?

-너 진짜, 흑, 바라는 거 많다.

씨발, 하나만 할 것이지 왜 녹음하면서 이상한 짓까지 하고 지랄이야! 경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수치심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입술, 입술도 예쁘고… 응! 귀가 말랑말랑해서 좋아.

-또?

-흑, 또… 손가락도 하얗고 예뻐.

-이거요?

-아, 아으, 노을…아, 흑!

멀쩡한 정신으로 어제의 자신이 내는 신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경수는 속으로 온갖 이상한 노래를 중얼거리며 상념을 분산시켰다.

-또 어디가 좋아요?

-그마안…. 네 성격 빼곤 다 예뻐, 노을아.

-……잠깐만, 성격은 왜 빼는데요?

-흐윽! 야, 갑자기 빼면…!

-제 성격은 왜 빼요!

-몰라서 물어? 너 성격 진짜 이상해!

-제가 뭘….

-괜찮아, 그래도 예쁘니까 내가 데리고 살아줄게. 뭐어, 성격만 예쁜 것보단 낫잖아. 그리고 난 성격 버린 너도 좋으니까 마저 하… 뭐야. 지금 녹음해?

-앗.

-당장 안 꺼!

녹음된 음성은 여기서 끝이었다. 경수는 제 입으로 저딴 말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전부 진심이었고, 제정신으로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라 더 타격이 컸다.

“형이 어제 저한테 예쁘다는 말만 몇 번을 한 줄 알아요? 처음부터 녹음하지 못한 게 좀 아쉬워요.”

“…….”

“지금도 저 예뻐요?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경수는 새어 나오는 웃음과 함께 행복함을 숨기지 못하는 노을을 보며 숨을 죽였다. 기회를 노리고 놈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팔을 뻗자, 노을이 재빨리 그 손을 피해 휴대폰을 사수했다. 화면을 잘못 눌렀는지, 아까 전의 음성이 다시 한번 재생되기 시작했다. 좆같은 신음소리. 저거 나 아니야. 경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제발 지워. 끔찍해. 그거 나 아냐…. 제발….”

“그래요? 형 아니니까 상관없겠네요?”

“…사실 그거 나야, 그러니까… 지워줘.”

“형 목소리를 제가 왜 지워요?”

“어쩌라는 거야, 이 씨발놈아!”

“네, 저도 좋아해요.”

동문서답을 하며 해사하게 웃는 미소에 화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경수는 씩씩거리다, 애교를 부리듯 제 손에 얼굴을 가져다 대는 노을에 실소를 터뜨렸다. 놈은 자신과는 달리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드러내 보였다. 그런 그가 사랑스럽지 않다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경수도 슬쩍 웃어버리고 말았다.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gwihwanhaessneunde ibdae jeonnal-ida I returned, but it was the day before enlistment.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
Score 3.3
Status: Ongoing Native Language: Korean

Kim Minjun, who was a normal high school senior in South Korea, was suddenly summoned to another world and became a dark magician.

Minjun, who persevered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with the single-minded goal of returning home, saved this other world with his dark magic.

Casting aside a life as a hero and guaranteed riches, he returned to Earth.

Just when he was about to fully enjoy his life, a problem arose. A dungeon break occurred, and monsters began pouring out. Not only did this threaten the peaceful Earth life that Minjun had just returned to… But on his very first day back, he was also ordered to enlist in the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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