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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 14화 ⊹

백 년간 부지런한 생활이 몸에 배서 그런가.

도아는 동이 트기 시작할 때쯤 눈을 떴다.

그녀는 텐트 창문을 가린 이중창 단추를 풀어서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둑어둑하긴 했지만, 움직여도 될 정도였다.

도아는 파티션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살그머니 파티션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베리가 벌렁 누운 자세로 자고 있었다.

시옷 자 입 사이로 보이는 송곳니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진짜 귀여워.’

어후.

도아는 가서 쓰다듬어 주고 싶은 욕망을 눌러 참았다.

그 옆을 보니 쿠낙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도아는 베리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차가웠다.

도아는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어제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에 다시 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앉아서 호흡을 시작했다.

매일매일 꾸준히 마나를 몸에 쌓고, 오염을 내보내고, 몸 상태를 점검하는 게 검사의 기본 자세였다.

도아가 아침 명상을 끝내고 눈을 떴을 때 모닥불 위에서 주전자가 끓고 있는 게 보였다.

시선을 돌리니 쿠낙이 옆에 앉아 있었다.

쿠낙이 비딱한 얼굴로 말했다.

“도아 양, 그렇게 명상하고 있다가 누가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할 겁니다.”

“음, 주변의 사람이 쿠낙밖에 없어서요?”

“제가 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요.”

“우와, 그런 나쁜 짓을 하시려고?”

쿠낙이 우아하게 웃었다.

“합니다.”

“나쁜 짓도 하시나요?”

“그럼요.”

도아가 짐짓 순진한 듯,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와아, 어떤 나쁜 짓을 하세요?”

“보여 드릴까요?”

“정말요?”

“네.”

쿠낙이 그녀 쪽으로 몸을 숙였다.

쿠낙의 시선이 느리게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살짝 내려온 앞머리로 가려진 둥근 이마.

희고 부드러운 뺨.

도톰한 입술을 지나서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녀의 눈 안쪽에는 온갖 초록색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여름철 초록색 이파리 사이로 튀는 햇살 같은 금색 점들이 간혹 먼지처럼 반짝거렸다. 에메랄드같이 투명한 녹색이 되었다가 비취처럼 가라앉았다가 다시 여름 숲이 된다.

아주르 나자크.

세계수가 축복한 눈동자.

그녀는 ‘네가 무슨 나쁜 짓을 할 건데?’ 하는 도발을 던진 뒤에 착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새침하게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와 깊이 눈을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오랜만이라, 쿠낙은 이렇게 눈만 마주치고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며 할 수 있는 나쁜 짓 목록을 떠올렸다가 삭제하고 몇 가지만을 남겼다.

갑자기 코를 깨물거나.

뺨을 꼬집거나.

그녀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억울해서…….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는 결국 자신이 그녀에게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표정을 보고, 도아의 눈에 의기양양한 승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것마저 귀엽군, 하는데 그의 시선에 뭔가가 들어왔다.

‘아.’

쿠낙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단정하게 넘겨주고 옷깃을 매만져준 후에, 도아의 주머니에 있는 커피 파이프를 빼앗았다.

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페인 섭취를 막고 대신 아침부터 약초차를 섭취하게 해 드리죠.”

“말도 안 돼요! 모닝 커피도 없이 어떻게 일해요?”

“카페인은 몸에 안 좋으니까요.”

“아, 진짜. 쿠낙!”

도아가 낑낑거리며 손을 뻗어 그에게서 파이프를 도로 빼앗으려고 애썼지만, 그의 키가 훨씬 컸기에 소용없었다.

쿠낙은 그녀에게 컵을 건네고, 찻물을 따라주었다.

“으, 세상에. 이게 뭐죠?”

“오래 끓인 쿠카나무 껍질 차랍니다.”

“아, 세상에 맙소사. 아침에 커피도 못 피우고, 세상에.”

“정신을 맑게 하는 데 좋지요.”

도아는 투덜거리며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몸을 떨었다.

“이 끔찍한 맛으로 아침을 깨우는 거라면 차라리 뭐 다른 걸 먹겠어요.”

“마법사들이 많이 마신다고 하더군요.”

“그럴 리가요. 내가 아는 마법사는 최고의 요리사고, 이런 끔찍한 걸 마시게 할 리가 없어요.”

도아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투덜거리면서도 천천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쿠낙은 그게 우스워 작게 웃었다.

욕하면서도 그녀는 그 앞에서 차를 버릴 수는 없는, 그런 사람인 거다.

“으으.”

도아는 끔찍한 쿠카나무 껍질 차를 바라보았다.

쿠카나무 껍질이라면 그녀도 약초로 쓰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차로 마신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오염을 정화해 주는 용도로 쓰이는 차였다.

짙은 갈색 찻물을 바라보다가 도아가 슬쩍 쿠낙을 보고 물었다.

“그런데, 쿠낙.”

“네, 도아 양. 말씀하시죠.”

“초록색 눈, 말이에요.”

“네.”

“혹시 저 말고도 있나요?”

도아의 물음에 그는 피식 웃었다.

“초록 눈이 이 세상에 도아 양 한 명이냐고요?”

“어, 아니. 음. 그러니까.”

도아가 뭐라고 해야 할까, 하며 말을 골랐다.

“제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넌 내 딸이니까 초록 눈이지. 하고요. 그러니까, 뭔가. 대대로 초록 눈인 가문이 있나, 싶어서…….”

도아는 세계수의 가지, 신성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말았다.

말 그대로 사부님들이 너무 오래전 사람이라서 그런 이야기는 시기상 맞지 않을 거 같았다.

쿠낙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있습니다.”

“정말요? 어떤 가문이에요?”

“일단, 나르카 왕족이 있습니다.”

풉.

도아는 저도 모르게 차를 뱉었다.

“이런, 도아 양.”

쿠낙이 콜록거리는 도아를 토닥였다.

도아가 입가를 훔치고는 멍하니 쿠낙을 바라보았다.

“왕족이요? 농담이죠?”

“뭐, 나르카 왕족도 세계수의 계보를 따른 가문이라고 주장하니까요.”

도아가 눈을 찡그렸다.

“세계수의 계보요?”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세 가문을 말하는 겁니다. ‘위대한 세 가지’라고 흔히들 칭하죠.”

“!!”

사부가 했던 이야기다.

“그래서요?”

도아가 바싹 그에게로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때는 먼 이야기니, 지금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대부분이 자기들은 세 가지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아.”

도아는 순식간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갑자기 ‘내가 아나스타샤예요.’라고 주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니면 프린스 리, 라든가……. 한국 사람들도 성씨를 따라가면 다 양반 가문이요, 왕족이지. 암.’

도아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럼 그 가문 사람들은 다 초록색 눈이에요?”

“아닙니다. 종종 초록색 눈이 나오지요.”

“아, 그럼 아니에요. 백 퍼센트 초록색 눈이 나오는 가문은 없나요?”

“글쎄요. 그렇다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기는 합니다.”

도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딘데요? 백 퍼센트 나와요?”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상당히 자주 나타나는 가문이죠.”

“나르카 왕족은 아니고요.”

“아닙니다.”

쿠낙이 살짝 미소 짓고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았다.

“그런 가문이라면 모두 셋이 있지요.”

“셋밖에 안 돼요?”

“네. 셋 모두 천 년 이상 된 가문이죠.”

“와…….”

“첫 번째는 후단의 카라스엘 가문입니다. 두 번째는 프롱드의 드블랑 가문이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방랑의 투아지트 가문입니다.”

하나씩 손가락을 꼽고 쿠낙이 말했다.

“셋 모두 어디에 내놔도 어지간한 왕족보다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가문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은 어째서 방랑이에요?”

“말 그대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문이거든요.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한 가문이죠.”

“흐으음…….”

그 가문 사람들 중에 엄마가 있었던 걸까?

‘하지만 난 엄마 이름도 모르는걸. 아니지, 김장미였으니까. 엄마 이름은 분명히 여기 말로 장미라는 뜻이었을 거야.’

도아는 주먹을 꼭 쥐었다.

초록색 눈은 희귀한 거 같으니, 초록 눈에 장미라는 이름이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 아주 옛날 사람이면 어쩌지?’

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꼭 찾지 못해도 좋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메인 퀘스트니까.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자.

‘아직 십 년이나 있는걸.’

도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쿠낙이 물었다.

“남대륙 사람 아니었습니까?”

도아가 픽 웃었다.

“네, 맞아요.”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지나갔다. 도아는 약초차에 혀만 적셔댔다.

쿠낙이 혼잣말을 하듯 물었다.

“어릴 때 만났던 사람이, 그때는 좋아한다는 둥 다시 만날 거라는 둥 이야기하더니 다시 만났을 때는 기억도 못 하고 밤에 다른 남자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된 걸까요?”

도아는 “어…….” 하고 쿠낙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만났으면, 상대도 어렸나요?”

“네.”

“그러면, 음……. 어릴 때는 기억이 잘 안 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잊어버렸다고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에게는 소중해도 남에게는 아닐 수도 있고. 기억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물론 쿠낙이 속상한 건 충분히 이해해요. 그럴 수 있죠.”

도아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소중한 기억인데, 나에게만 소중했다 이러면 억울하잖아요.”

도아의 말에 쿠낙은 “하하…….” 웃음을 흘렸다.

“그 사람에게 말하면 어떨까요? 그걸 계기로 기억날지도 모르고…….”

도아의 말에 쿠낙은 빤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됐습니다. 이미 경고받았던 일인데 헛된 희망을 품었구나 싶군요.”

“경고요?”

무슨 경고인가 하고 물으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또, 또아 님, 버써 일어나떠여?(도아 님, 벌써 일어나셨어요?)”

돌아보니 베리였다.

베리는 손에 ‘정화하는 유리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투명하고 맑은 주전자는 안에 들어간 어떤 액체든지 깨끗하고 맑은 물로 바꿔준다.

배앓이를 자주 하는 여행자의 필수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물을 채우러 나온 모양이다.

“응, 좀 일찍 일어났네.”

베리는 당황한 듯 다가와서 말했다.

“쩌, 쩌두 엄떵 이찍 일어나여. 짤 일어나여. 이케이케 께으름아니구.(저, 저도 평소에는 엄청 일찍 일어나요. 잘 일어나요.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게으르다니, 이 시간에 일어나는 사람은 게으른 게 아냐. 우리가 지금 너무 일찍 일어난 거지. 그리고 검사나 마법사들은 다 이래.”

새벽에 명상을 끝내 버리는 게 하루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었다.

도아가 슬그머니 쿠카나무 껍질 차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물 떠 와 줄래? 난 아침 준비를 할 테니까.”

“녜!”

베리가 계곡 쪽으로 달려서 사라졌다.

도아가 그런 베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도시에 가면 옷을 새로 사 줘야겠어요.”

“그랑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 겁니다.”

“왜요?”

“나르카에서는 툴레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아.”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댄버스 부인이 깨끗하게 빨아서 수선해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낡은 게 눈에 보였다.

‘조금만 참아 베리.’

도아는 그랑에 가면 꼭 베리에게 새 옷을 사 주리라, 결심했다.

❖ ❖ ❖

높은 성벽에 깃발이 휘날린다.

“어떠 오데요, 자유도시 그랑이니다!(어서 오세요, 자유도시 그랑입니다!)”

베리가 대나무 바구니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들었다가 배 위에 대는 동작을 하며 정중히 말했다.

자신이 그랑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한 말이었다.

도아는 웃으며 답했다.

“베리의 말대로 엄청 훌륭한 도시네.”

“구렇죠?”

베리는 그동안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이제 털에 윤기가 반지르르 흘렀다.

혹시나 진짜 고양이처럼 그루밍을 하나 했는데,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간에 들른 마을에서 산 빗은 무척 좋아해서 그걸로 몇 시간 동안 제 몸의 털을 빗고는 했다.

‘그것도 그루밍인가?’

혀는 아니지만.

하여간 이제 봄철 데이지처럼 샛노랗고 반짝거리는 치즈테비가 된 베리가 에헤헤 웃었다.

도아가 열심히 교정하고 말을 걸어줘서 발음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쩌두 그랑은 쩌음이에여.(저도 그랑은 처음이에요.)”

그동안 쭉 마을들을 지나오기는 했지만, 역시 그랑은 달랐다.

일단 외벽부터가 웅장했다.

입구 경비병의 무장도 훌륭했다.

훌륭한 데다가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친절하기까지 했다.

물론 도아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

“남대륙에서 오셨나 보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쿠낙을 보고는 경계를 붙여 보였다.

“환영합니다, 샌델 모험가님.”

이렇게 덤덤한 환영은 처음이라서 도아는 ‘오오’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쪽의 명성도 이 도시에서는 별거 아닌가 본데요?”

도아가 놀리듯 말하자 쿠낙이 빙긋 웃었다.

“입구의 경비병에게는 별거 아닌 명성이겠지요.”

그러며 그가 약간 망설이고는 도아를 보고 말했다.

“도아 양, 저랑 다니시면 무척 피곤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도아가 갸웃하는데 갑자기 한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쿠낙 샌델이다!! S급 모험가야!”

“샌델이 돌아왔다!”

“오오오!!”

“이번에는 어떤 퀘스트를 끝내고 돌아오신 겁니까?”

“쿠낙! 여기 한 번 봐 줘요!”

갑자기 사람들이 모자를 흔들거나 손을 흔들며 쿠낙을 주목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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