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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0

139. 약혼관계 – 축제

금의환향이 이럴까.

아이나르 부족에서 축제가 열렸다. 족장은 기뻐하며 채 숙성되지도 않은 술동이까지 꺼내라 명했고, 돌아가며 나가던 사냥도 중단시켰다.

레나 아이나르와 우록 아이나르는 두말할 것 없이 이 축제의 주인공들이었다.

전통에 따라 두 사람은 마수의 사체를 눈썰매에 실어 에이브릴 성을 한 바퀴 돌았다. 마지막엔 공터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 설각사록의 머리를 번쩍 치켜들었는데, 우글우글 몰려든 아이나르 부족원들의 환호성이 성을 날려버릴 듯했다.

“크하하하하! 잘했다! 잘했어!”

단상 위에서 데호르만이 화통하게 웃었다. 레나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는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하지만 옆에서 다른 두 대전사가 탐탁잖게 수군거렸다.

“이 친구, 어제만 해도 우리 때문에 딸이 시련을 치르러 갔다고 그렇게나 잔소리하더니…”

“난 저 친구한테 딸바보 기질이 있는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네. 성년이 된 딸을 저렇게 싸고도는 녀석이 대전사라니. 에잉, 쯧쯧. 무사히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뒷담화하는 두 대전사를 지나쳐 늙은 족장이 레나와 우록의 앞으로 나왔다.

환호성이 더 커진 가운데, 그는 먼저 우록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큰아버지의… 네가 해낼 줄… 고맙… 다리는 괜찮으…?”

옆에 선 레나는 족장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시끄러운 환호성 때문이다.

틈틈이 뒤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손을 흔들던 레나, 이윽고 족장의 고개가 그녀를 향했다.

“고생했다. 시련을 이겨내고 위대한 전사가 되어 돌아왔구나. 흘흘. 아무리 전사에게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지만, 이렇게 어린 대전사는 북부를 다 뒤져도 없을 게야.”

그는 레나의 손도 붙잡았다. 우록과 나란히 세우며 미소지었다.

“우리 손주 며느리였으면 얼마나 좋을꼬… 흘흘흘.”

“헷. 할아범. 죄송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레나가 당당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뒤쪽에서 ‘할아범’이라는 말을 들은 데호르만이 쌍심지를 켰지만 레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젠 나도 대전사다 이거야.

데호르만과 다른 대전사 아저씨들이 유독 예의를 차려서 그렇지 족장과 대전사의 관계는 대등했다.

레나가 허리를 굽혔다. 등이 꼬부라진 족장의 귀에 속삭였다.

“전 레오랑 결혼할 거거든요.”

“흘흘흘. 그거 아쉽구나. 자, 사적인 이야기는 그만하자꾸나.”

족장이 주름진 눈으로 웃더니 그녀를 돌려세웠다. 우록과 레나의 팔목을 붙들고 번쩍 치켜들었다.

– 와아아아아아아!

떠나갈 듯한 환호와 ‘삐익-!’하는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아이나르 부족원이 아닌지라 단상 아래에서 심심하게 서 있던 란, 앤, 레오는 박수를 쳤다.

겨울이 반쯤 흐른 날이었고, {전쟁}이 터지기까지는 아직도 한 달이 넘게 남아 있었다.

* * *

“이제 어쩔 거야?”

술자리에서 앤이 물었다. 대전사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례가 끝나고, 본격적인 축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어쩌긴, 돌아가야지.”

란의 답변이었다. 레오는 옆에서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주위는 다소 시끄러웠다. 겨울인지라 공터에서 잔치판을 벌이기 어려워 아이나르 부족은 가죽을 쟁여두는 창고를 술집으로 꾸몄다.

그래봤자 가죽 뭉치를 의자와 탁자로 삼아, 제공되는 술과 먹거리를 대강 올려놓은 정도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삼삼오오 몰려들어 즐거이 대화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보리스 아이나르’라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는 누구도 믿지 않는 자신의 무용담 – “진짜로 있다니까! 신비로운 사원이.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청련달이 뜬 밤이었지…” – 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앤이 목청을 키워 되물었다.

“돌아가는 거야 당연한 거고. 내 말은 어떻게 돌아갈 계획이냐고. ‘버논’ 아저씨를 찾아갈 거야, 아니면 우리끼리 돌아갈 거야?”

“글쎄? 우리끼리 가는 게 빠르기야 하겠다만…”

언니인 란 아비커는 레오와 나무 술잔을 퉁, 맞부딪쳐 한 모금 삼키곤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걱정하고 있을걸? 같이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음 행선지가 브리나 자작가의 영지라고 했으니까, 별로 안 멀어.”

자매의 대화에 레오가 끼어들었다.

“버논이 누구야?”

“그때 소개를 안 해줬었구나. 우리한테 말 빌려준 사람 있잖아.”

“아아.”

레오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를 잡기 위해 떠날 때, 우리는 상단주에게서 말을 빌렸었다. 그 는 란, 앤과 친분이 깊은지 흔쾌히 말 두 필을 내어주었고, 덕분에 편하게 설각사록을 찾아갔었다.

“에이- 보리스 할아버지. 요즘엔 그런 말 아무도 안 믿어요.”

“뭐얏!? 왜 안 믿어? 이렇게 생생한 증인이 있는데.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게야?”

“할아버지 자주 거짓말하시잖아요. 저번에도 요정인지 뭔지, 웬 날개 달린 소녀를 보셨다고…”

“크허험! 그건 농담이었지. 하지만 이건 진짜야. 난 그 사원에서 하루 묶었어. 제단에는 웬 검이 꽂혀있었지.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싹 다 사라지고 없드라니깐. 검도, 사원도. 장담하는데 그건 ‘라차르’ 님의 전당이었던 게 분명해. 내가 신의 사원을 본 게야. 암. 그렇고말고. 역시 나 같은 위대한 전사는…”

아이고- 시끄러워라.

레오가 귀를 후비는 사이, 앤이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거기서도 출발하고 없지 않을까?”

“그건 어쩔 수 없지. 수소문해서 쫓아가는 수밖에…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아저씨한테 어디서 만나자고 미리 말해둘 걸 그랬다.”

“왜 찾아가야 하는데?”

레오는 {추적술}로 버논이라는 사람과 상단이 현재 동남쪽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야지. 우린 수도에 살아.”

“바르나울? 너희가?”

“왜? 우린 수도에서 살면 안 돼?”

“그런 뜻은 아니야. 난 수도 근방에는 야만인… 미안해. 토착 부족이 없다고 들었거든.”

“맞아. 없어. 그냥… 우리가 그쪽으로 시집갔을 뿐이야.”

레오는 그녀가 말을 아꼈음을 알아차렸다. 더 물어보기 뭣해서 다시 술을 홀짝이는데, 그의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듯 란이 턱을 괴며 물어왔다.

“너, 바르나울에 가고 싶구나?”

“…”

레오는 침묵했다. 스스로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 답해줄 말이 없었다.

란은 붉게 달아오른 목에 차가운 손바닥을 대어 식히면서 지레짐작했다.

“하긴, 너만 한 실력자가 이런 곳에서 썩고 싶지 않겠지. 이제야 하는 말인데, 솔직히 감탄했어. 실력도 대단하지만… 지휘를 잘하던걸? 혹시 넌 귀족이야? 내전 때 가문이 망해서 이 변방까지 내려온 거야? 그런 사람 은근히 많다던데.”

“…내전 이후에 온 건 맞는데, 귀족은 아니야. 우리 집은 대대로 기사 가문이었어.”

“흐응~ 그래서 실력이 그렇게 대단했던 거구만. 기사님이라… 아! 그래서 수도에 가고 싶은 거였네. 이번 대회에 참가하려고. 맞지?”

“대회? 무슨 대…”

그때, 술집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소란이 일었다. 환호성이 터지기에 뒤돌아보니 레나가 들어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레나는 충분히 예의를 차린 뒤, 레오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네. 아, 언니들도 계셨네요. 저도 끼워줘요.”

“어떻게 빠져나왔어?”

“우록한테 다녀온다는 핑계로 도망쳤죠. 아유, 족장 할배랑 대전사 아저씨들은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은지… 레오, 너 어깨는 괜찮아?”

레오 덱스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리를 다친 우록 아이나르와 함께 교회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지라 이젠 불편함이 없었다.

레오는 레나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구석에 쌓인 가죽 뭉치를 하나 더 가져다가 옆에 놓아줬고, 네 사람은 왁자지껄한 술집 분위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대전사가 되어 추앙받으니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부터, 그동안 묻고 싶었는데, 두 사람은 무슨 관계냐는 짓궂은 호구조사까지.

레나는 넙죽넙죽 잘 떠들었다. 여자들의 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이야기가 이어지자 조용히 경청하던 레오는 가끔 얼굴을 붉혔다.

술기운이 돌아 얼굴이 벌게진 레나가 말했다.

“지금도 좋지만, 대전사로 만족할 생각은 없어요. 전 꿈이 크다구요. 저는 기사가 될 거예요. 그리고…”

“어? 그 얘기 좀 전에 너 없을 때 잠깐 했던 것 같은데? 맞아. 레오는 마우닌 대회에 나가고 싶다더라. 같이 가는 거야?”

“내가 언제 그런…”

“진짜야? 레오, 너 마우닌 대회에 나갈 생각이 있었어? 전에는 싫다고 했잖아.”

레나가 반색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 기대 어린 눈빛에 레오는 잠깐 말문을 잃었다. 그녀의 눈빛도 눈빛이지만…

‘마우닌 대회가 뭐야? 아까부터.’

그간 레나의 입을 통해 ‘마우닌-레티이 대회’라는 걸 들었던 적은 있다. 데호르만과 내 어머니가 젊었을 적에 출전했다는 대회로, 레나와 파혼하기 위해 거리를 벌리던 중, 제롬 신성왕국의 비도리닌 성에서 들었었다.

아무래도 그걸 줄여 부르는 것 같은데… 그게 기사랑 무슨 상관이지? 그리고, 내가 그 대회에 나가고 싶지 않아 했다고?

“…그냥. 생각이 바뀌었어.”

“웬일이야? 너 그런 거에 있어서는 완전 고집불통이었잖아. 혹시 나 때문에 그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맥락상 동의해주면 레나가 좋아할 것 같아서 레오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고, 레나는 벌건 얼굴로 환히 웃었다.

“고마워. 자존심을 굽혀줘서. 나 열심히 할게. 많이 뒤처졌지만…”

술 냄새.

술에 취한 레나가 몸을 기울여왔다. 바짝 가까워진 얼굴은 뭔가를 바라는 표정이었고, 레나가 작게 혀를 내밀어 입술을 다셨다.

레오는 살짝 내밀어지려는 그녀의 입을 막았다.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란과 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남들 다 보는 데서 뭐 하는 짓이야.”

“…쳇. 겁쟁이 같으니.”

“아이고- 아깝다. 좋은 거 볼 수 있었는데…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갈까? 좀 춥기야 하겠지만 공터에 불을 피워 놨드라구.”

란은 레오에게 눈을 찡긋, 묘한 신호를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네 사람은 이내 자리를 옮겼다.

창고에서 나와 문을 닫는데, 그 사이로 “멀리 얼어붙은 북쪽 바다에는 ‘전쟁섬’이란 곳이 있지. 하루가 멀다고 전투를 벌이는, 진정한 전사들의 땅이야. 소싯적의 난 겁이 없어서 거기도 가 봤는데…”라는 보리스 노인의 실없는 무용담이 새어 나왔다.

“레나다! 우리의 대전사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위하여!”

수백 장의 땔감을 들여 만들어진 커다란 모닥불. 그 주위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던 전사들이 레나를 향해 술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주인공이 나왔으니 다시 힘차게 놀아볼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청년들이 일어나 외쳤다. 나무 둥치를 깎아 만든 큼지막한 네나토(Nenato, 허리 높이의 원통형 타악기) 몇 개를 끌고 오더니 쿵쾅쿵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전사들이 어깨동무하고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모닥불 주위를 돌며 노래를 불렀다.

당연하게도, 주인공인 레나는 순식간에 끌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오! 이것 놔! 나 레오랑 놀 거야!”라며 주정을 부렸으나, 곧 무리의 일부가 되어 덩실덩실, 춤췄다.

“부럽네… 우리 마을도 저랬을까?”

앤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언제나 차분한 그녀였지만 전사들을 바라보는 그녀는 울적한 목소리였다.

“…그랬겠지. 얘, 우리도 저기 가서 춤출까?”

“풋. 우리 나이가 몇인데 저런 곳에 낄려 그래. 주책없이.”

“뭐 어때? 남의 부족이고, 곧 떠날 텐데. 우리도 저런 걸 해 봐야지.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가자!”

란이 동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춤추는 전사들에게 끼어들더니 어설픈 동작으로 춤을 따라 췄다.

아이나르 부족의 청년들은 요란한 깃털 장식을 한, 다소 나이가 많은 그녀들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레오는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에 주저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데, 레나가 달려왔다.

“너도 와!”

“어? 난 부족원이 아니…”

“무슨 상관이야! 내가 이 부족의 대전사님이시고, 넌 내 남편인걸!”

레나는 레오 덱스터를 모닥불로 잡아끌었다. 대전사가 탄생한 기쁜 밤, 하늘에 뜬 달은 그새 푸른색을 잃고 옅게 붉어져 있었으나, 오늘만큼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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