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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0

140화 초대

140화 초대

“3등이라. 입학시험 때에 비해 한 등수 내려왔군.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겠어. 이 기회에 더욱 훈련에 매진해야겠다.”

복도에 붙은 게시물을 보며 데르맛 오셀롯이 중얼거렸다.

그의 주변에는 검술학부 1학년생들이 희비가 엇갈린 얼굴로 게시물을 보고 있었다.

“1등과 2등은 역시 세실리아와 루나인가. 좋아. 방학 기간 동안 본가로 돌아가 훈련량을 두 배, 아니 세 배로 늘린다. 잠자는 시간을 두 시간 이내로 줄이면 가능하겠지. 2학기에는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기대해도 좋다!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의 친구들이여!”

데르맛이 큰 소리로 외치자 학생들이 슬금슬금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들 안에는 루나와 세실리아도 있었다.

“피, 피하자 세실리아. 쟤 좀 이상한 애야. 실습 시간에도 자꾸 이상한 질문 하다가 샤를로트 교수님한테 혼나더라니까? 누, 눈 마주치지 말고. 바보가 옮을라.”

아까부터 앙투안은 말없이 데르맛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실리아와 루나를 이기지 못한 것으로도 모자라 데르맛에게까지 밀려 4등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위 학생들이 거리를 벌리자 게시물 앞에는 자연스레 동그란 터가 만들어졌다. 그 안에는 데르맛과 앙투안만이 남았고, 그래서 데르맛은 자신을 응시하는 앙투안을 발견했다.

“오. 앙투안.”

데르맛이 씩 웃으며 앙투안에게 악수를 청했다.

앙투안은 탁, 데르맛의 손을 쳐냈다.

“너의 눈에는 세실리아 크라소타와 루나 크라소타만 보이는 모양이지? 데르맛 오셀롯.”

“오해야 앙투안. 나는 너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아마도 지금의 내 라이벌은 세실리아나 루나가 아닌, 너겠지.”

데르맛의 어투가 친근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앙투안은 그의 말에 분노를 느꼈다.

“잘난척하는 것도 이번 학기까지다, 데르맛 오셀롯. 2학기가 시작되면 너와 나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지.”

“좋아 앙투안! 2학기 때 누가 높은 등수를 획득할지 승부다!”

데르맛이 시원하게 웃으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앙투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데르맛 오셀롯은 전형적인 귀공자였다. 앙투안은 데르맛이 동급생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술 실력과 더불어, 인품에서도. 물론 가끔 이상한 혼잣말을 해서 주위를 당황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또한 앙투안은 데르맛에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앙투안은 더욱 화가 났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로 데르맛을 노려봤다.

“앙투안!”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앙투안의 귀를 울렸다.

동그랗게 모여 있던 인파가 마법처럼 갈라지며 아름다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다.”

“와아. 저 미모.”

“아름다워······.”

무슨 급한 일이 있었는지 아리엘은 여기까지 쉼 없이 달려온 모양이었다. 달뜬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얼굴에는 홍조가 깃들었고,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숨을 고르던 그녀가 앙투안과 데르맛의 대치 상황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이내, 무언가를 명령하듯 앙투안을 응시했다.

앙투안은 움켜쥔 주먹에서 힘을 풀고 데르맛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승부. 받아들이지.”

“좋아 앙투안! 우리는 다가올 2학기의 라이벌이야! 함께 분발하자!”

.

.

.

앙투안과 아리엘은 인파를 벗어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앙투안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리엘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앙투안. 네 평판은 나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

“미안해.”

“데르맛 오셀롯과 악수한 것은 잘했어. 너도 알지? 그의 가문이 제국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앙투안은 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기사가 되기 위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앙투안.”

“물론이야. 아리엘.”

아리엘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앙투안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어? 왜 그렇게 급하게 달려온 거야?”

“핫!”

아리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조금 울 것 같은 얼굴로 앙투안을 돌아봤다.

차갑고 오만한 귀족의 얼굴에서 부드럽고 친절한 친구의 얼굴로, 거기에서 다시 겁먹은 여자아이의 얼굴로 변하는 아리엘을 보며 앙투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떤 얼굴이 진짜 너일까. 아니, 그 모두가 너의 일부일 테지.

“어머니께서 서신을 보내셨어.”

아리엘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인물.

그녀의 어머니인 오필리아 플랑브아즈 공작.

“······어떡하지 앙투안?”

“꾸중들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잖아. 1학기를 마법학부 1등으로 마무리하기도 했고.”

“그, 그게 아니라······.”

그제야 앙투안은 아리엘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아리엘이 고개를 푹 숙이며 앙투안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두 손으로, 공손히.

“······직접 봐.”

앙투안은 소리 없이 웃으며 편지를 손에 들었다.

<사랑스러운 나의 딸,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에게.

아리엘. 네가 아르카넘 홀의 입학시험에서 이룬 성취에 대해 들었을 때 나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올랐단다. 너는 플랑브아즈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또한 나는 네가 이번 학기에 최상위 성적을 거둘 것이라 확신하고 있단다. 이는 단순한 기대가 아닌, 너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느새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구나. 너에게는 잠시나마 학업에서 벗어나 저택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물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플 거로 생각한다. 놀라지 말렴. 그래서 네가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여러 대의 마차를 보냈단다. 그들과 함께 플랑브아즈 저택의 아름다움과 넉넉함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나 또한 마법학부의 우수한 신입생들을 꼭 만나보고 싶구나.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너희들의 도착을 기다리며 더욱 화려하게 빛나고 있으니, 이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아리엘, 현명하고 아름다운 나의 딸. 너를 향한 나의 기대와 사랑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구나. 너는 플랑브아즈 가문의 빛나는 별이며, 너의 모든 선택과 행동이 가문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기를 바란다.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사랑스러운 나의 딸 아리엘라 플랑브아즈를 기다리며, 오필리아 플랑브아즈.>

“······다 읽었어?”

앙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지 깨달았다.

“마, 마법학부의 우수한 신입생이라면 역시 카인을 초대해야겠지? 그, 그런데 카인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지? 거절당하면 어쩌지? 루나와 데미안도 초대해야······, 아 물론 미아도. 하지만 세실리아는······. 아아, 저택에서 하녀들이 쓸데없는 말을 하면 어쩌지? 막 나 어렸을 때 이야기라든지. 너무 왕자님 나오는 동화책만 좋아한다고 카인이 나를 어린아이처럼 생각하면 어쩌지? 양양이를 보면 분명 실망할 텐데. 카인은 내가 하이힐을 신은 모습을 좋아한단 말이야. 아아, 어떡해. 나 어떡하냐고 앙투안······!”

카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고민하던 아리엘은 어느새 저택에 도착한 뒤를 걱정하고 있었다.

앙투안은 잠시 말없이 아리엘을 바라봤다. 그는 아리엘이 카인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앙투안의 마음을 조금 아프게 했다.

“정중하게 부탁하면 받아들이지 않을까. 카인 시니야카는.”

“저, 정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아리엘이 환히 웃었다.

앙투안도 웃었다.

***

나는 이번 학기를 7등으로 마무리했다.

입학시험 때는 9등이었으니 두 단계 등수가 오른 셈이다. 만족한다. 나는 1학기 내내 열심히 공부하고 실습했다. 실은 조심스럽게 상상 중이다. 혹시 나는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수재 정도의 마법 재능을 지닌 것은 아닐까.

1등은 당연하게도 아리엘, 2등은 조금 놀랍게도 카인이었다. 엘리샤도 여러 번 말했지만 카인 녀석은 정말 천재가 맞는 것 같다.

엘리샤, 아니 ‘엘리시아 프림로즈’ 교수는 특별 교수답게 단독 수업을 맡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주로 에스틸리아 교수의 보조 역할을 했는데, 에스틸리아 교수가 키도 작고 훨씬 어려 보여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일이 많았다.

‘당신. 대체 어떻게 특별 교수로 들어온 거죠?’

실수가 잦은 엘리샤에게 에스틸리아 교수는 대놓고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엘리샤는 움켜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분을 삭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학교에서 쫓겨날 것을 염려해서인지 감히 항변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에스틸리아 교수의 마법 실력에 겁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엘리샤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마법을 보며 여러 차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리샤를 오랫동안 봐온 나는 안다. 그녀는 과장된 표정과 말투가 주특기지만, 저건 진심으로 놀란 얼굴이다.

“와아, 이렇게 멋진 마차는 처음 봐!”

여름방학이 시작된 화창한 오후, 루나가 환호성을 질렀다.

나의 눈앞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네 대의 붉은 마차가 서 있었다.

오늘 우리는 플랑브아즈 저택으로 떠난다.

“미아도 함께 가면 좋았을 텐데. 그치 아리엘.”

“응. 나도 아쉬워, 루나.”

미아도 아리엘의 초대를 받았지만 본가에 볼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미아는 플랑브아즈 저택을 방문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아리엘.”

“아, 아니야 카인. 나야말로 수락해 줘서 고마워.”

마차는 6인이 탑승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이런 마차가 무려 네 대다.

그런데 플랑브아즈 저택으로 떠나는 이는 마부를 제외하면 나, 루나, 세실, 카인, 아리엘, 앙투안뿐이었다. 즉, 한 대의 마차로도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이다.

“두 사람씩 나눠서 탈까? 남는 마차에는 짐을 싣기로 하고.”

나는 아리엘의 의중을 알았다. 카인과 단둘이 마차에 오르고 싶은 거겠지.

그러나 나는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았다. 아리엘이 카인에게 빠지게 될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아니 이미 그렇게 된 듯 보이지만 나는 되도록 아리엘이 나와 루나와도 돈독한 우정을 쌓기를 원했다. 가능하다면 세실과도.

“모두 같은 마차를 타는 것은 어때? 다 함께 가면 더 재미있잖아!”

내가 하려던 말을 루나가 선수 쳤다.

아리엘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지만 ‘좋은 생각인 것 같다’는 카인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넓다.”

루나의 말대로, 여섯 명이 탔는데도 실내 공간은 여유로웠다.

여덟 명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다.

“옆에 앉아도 될까? 카인.”

“응. 아리엘.”

아리엘은 카인의 옆자리를 사수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앙투안이 앉았고, 어쩌다 보니 나는 좌우에 루나와 세실을 두고 앉게 되었다.

“어머 데미안. 양옆에 미녀들이 있으니 행복하겠네?”

아리엘이 눈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루나도 짓궂게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데미안은 좋겠네? 우리 같은 미녀들과 함께해서?”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많이 떨렸다.

루나가 처음으로 교복 치마를 입었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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