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40

139화.

박시형은 OTK컴퍼니가 호성저축은행에 2천억을 예금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진후는 부실을 폭로해 뱅크런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뒤통수를 쳤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시형은 불같이 분노했다.

호성저축은행은 박시형의 사돈이 경영진으로 있고, 그의 재임기간 내내 수많은 혜택을 받았다.

만약 호성저축은행이 무너지고, 그 과정에서 부실이나 비리가 발견된다면,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박시형은 즉시 강진후의 발언을 유언비어로 규정하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웬만한 부실은 덮을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이미 그럴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났다.

박시형은 차종호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방법을 말해보게.”

“그, 그게 방법이…….”

그라고 해서 왜 방법을 찾아보지 않았겠는가?

이 정도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면, 경영진들은 물론 감독기관들 역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당장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면 호성저축은행은 하루도 못 가 무너진다. 자금을 지원하려면 감사결과를 공개해야 하는데,그것을 공개하는 순간 호성저축은행은 무너진다.

따라서 방법은 없다.

차종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차, 찾아보겠습니다.”

박시형은 그를 내보낸 다음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제까지 수많은 위기를 극복했다. 때로는 거짓과 기만으로 회피했고, 때로는 당당하게 정면 돌파했다.

기업과 언론은 그의 편이었고, 야당은 무능했다.

그가 훌륭한 대통령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지지층에게는 확실한 보답을 해주었다.

기업들에게는 각종 특혜를 베풀었고, 자신을 지지한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사면시켜주었다. 부동산 규제를 풀어 집값을 올려주었고, 여당 지역구에는 최대한 많은 예산을 배정해주었다.

덕분에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국민들이 그를 지지했다.

정부가 세금 10조 원을 낭비했다고 해서 직접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론장악, 낙하산 인사, 선거개입 등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문제다.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불법수사도 자신이 당한 것만 아니면 상관없다.

하지만 내 돈이 날아가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만약 파산이 현실화 되면, 지역주민들은 직접적이고 확실한 금전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지역경제에 위기가 생기면 피해는 더욱 확산된다.

현재 호성저축은행 고객들은 영업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오로지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가당의 핵심 지지층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이유는 당연히 호성저축은행 경영진이 부실을 숨겼고, 그것을 관리 감독해야 할 정부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시형은 다른 이유를 찾았다.

‘강진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을 보면, 적어도 당장 드러날 부실은 아니었다.

잘 숨기고 조심스럽게 관리했다면, 임기 안에 터지는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것을 강진후가 말 한마디로 터트린 것이다.

박시형은 이를 갈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건가?’

* * *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공적인 역할을 하지만, 엄연한 사기업이다.

정부가 압력을 가하고, 기업이 광고를 끊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박시형은 임기 초부터 적절하게 당근과 채찍으로 언론을 다뤘고, 그 덕분에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은 정부의 충실한 나팔수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조중일보는 가장 친정부 성향인 데다가 OTK컴퍼니와는 사적인 악연도 있다.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해 조중일보는 처음부터 금융시장을 교란시켜 이익을 내려는 투기자본과 국민들의 피해를 막으려는 정부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춰서 기사를 썼다.

OTK컴퍼니는 이번 일과 관련해 어떠한 파생상품에도 투자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조중일보는 조세피난처에 있는 기업의 특성상 얼마든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거래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증거가 없다는 것 자체가 증거라는 논리였다.

강진후를 비난하는 기사 옆에는 보란 듯이 호성저축은행의 전면광고가 실렸다.

[믿고 기다려주시는 고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욱 사랑받는 호성저축은행으로 거듭나겠습니다.]

* * *

TV에서는 긴급토론이 편성되었다.

주제는 당연히 호성저축은행 사태였다.

전문가들과 여야 국회의원들이 패널로 나와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그러던 도중 뱅크런 얘기가 나오자 한국가당 김한철 의원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것도 문제지만, 비판적 사고 없이 그런 말을 믿고 따르는 것도 문제예요.뱅크런은 일종의 자기실현적인 예언이거든요. 은행이 망하기 때문에 뱅크런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뱅크런이 일어나기 때문에 은행이 망하는 겁니다. 돈을 빼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는데, 서로 먼저 돈을 빼려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새정치당 윤찬영 의원은 즉시 반박했다.

“뱅크런이 뭐가 잘못입니까? 은행은 대출 이자가 며칠만 밀려도 독촉이니 추심이니 해대면서, 내가 맡긴 돈 내가 찾아가겠다는 걸 왜 고객들 책임으로 돌립니까?”

“지구상에 뱅크런을 버틸 수 있는 은행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은행보고 예금 받은 돈을 한 푼도 대출해주지 말고 금고에 보관만 하라는 겁니까?”

“어떤 은행도 뱅크런을 버티지 못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건실한 은행이라면 뱅크런이 일어났다고 바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금자들이 몰려들어도 은행이 얼마든지 돈을 내줄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뱅크런은 자연히 멈춥니다. 애초에 하루도 못 버티고 영업정지에 들어간 것부터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김한철 의원은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럼 윤찬영 의원님께서는 지금 정부발표가 아니라 강진후 말이 맞다는 겁니까? 아니, 대체 강진후가 뭔데 그럽니까?대학도 안 나온 청년의 말 한마디에 돈 빼려고 은행에 우르르 몰려가는 게, 제가 봤을 때는 뭐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집단 행동하는 설치류 있잖아요.”

토론하는 내내 차분하게 말하던 윤찬영 의원은 처음으로 소리쳤다.

“지금 예금자들이 레밍이라는 겁니까? 그게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할 말이에요?”

김한철 의원은 스스로 말하고도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변명했다.

“아, 아니 예금자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을 선동한 강진후가 문제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진행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부분은 방송 나갈 때 편집 좀 해주세요.”

진행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지금 생방송 토론 중입니다.”

“…….”

* * *

정부가 처음 말한 조사기간은 열흘이었고, 최대한 빨리 중간발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영업정지에도 불구하고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예금자들이 정부와 언론을 믿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주일이 다 돼가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김순례를 포함한 시장상인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대체 언제 영업이 재개된다는 거여?”

“이상하네. 왜 아무 말도 없지?”

“이러다가 진짜 뭔 일 나는 거 아니겠지?”

한 상인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1인당 원리금 5천만 원까지는 무조건 국가에서 책임지고 내준다잖아.”

그러자 다른 상인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누가 그걸 몰러? 그런데 그 이상은 보호가 안 되니까 문제 아니여?”

지역에서 워낙 오래 영업한 저축은행이다 보니, 큰돈을 맡긴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철물점을 하는 박용철은 상인들을 진정시켰다.

“기다려 보세요. 정부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겠죠.”

김순례는 박용철에게 말했다.

“박씨는 대학 나왔다고 했지?”

“예. 할머니.”

김순례는 가지고 있던 통장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럼 이것 한 번 봐봐. 이게 예금과 비슷한 거라고 해서 들었는데, 이거 보상받을 수 있는 거지?”

박용철은 두 개의 통장을 받아 금액을 확인해보았다.

“4300만 원씩 나눠서 들었네요. 예금은 1인당 5천만 원까지 보장되니 걱정 마세요, 할머니.”

그 말에 김순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렇지? 다행이네. 다행이여.”

그런데 통장을 살펴보던 그의 표정이 굳었다.

“자, 잠깐만요. 이거 예금이 아닌 후순위채권인데요.”

김순례는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그게 예금하고 똑같은 거 아닌가?”

박용철은 고개를 들고 상인들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서 후순위채권 사신 분들 계세요?”

상인들 중 십여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금리 많이 준다고 해서 들었는데.”

“예금 들러 가니까, 이거 들라고 권유해서.”

“전에 갔더니 직원이 좋다고 추천하던데.”

대부분 시장에서 수십 년 동안 장사한 노인들이었다. 아마 후순위채권이 뭔지도 모르고 은행직원이 무조건 좋다고 하니 그냥 도장 찍고 가입했을 것이다.

“채권은 만기까지 은행이 멀쩡해야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어요. 그전에 망하면 한 푼도 못 받아요.”

그 말에 상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여? 왜 보상을 못 받아? 예금자보호법인지 뭔지 있다면서?”

박용철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예금자보호법은 예금에만 해당 되지, 채권에는 해당이 안 돼요. 후순위채권은 주식만큼이나 위험한 상품이에요.”

김순례는 멱살잡이라도 하듯 두 손으로 박영철을 붙들었다.

“그, 그럼 내 돈은 어떻게 되는 거여?”

8600만 원이면 남들한테는 얼마 안 되는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시장에서 일한 박용철은 김 할머니가 이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일단 영업을 재개하면 별 문제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마, 만약 은행이 문을 못 열면 어떻게 되는 거여?”

“…….”

그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김순례는 쓰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 *

뉴스돌파는 홈페이지와 유튜버 등에 동영상을 띄웠다.

인터넷 언론사인 만큼 평소였다면 주류언론에 의해 묻혔을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미 온 국민의 눈길이 전부 호성저축은행 사태에 쏠려 있는 상황인지라 접속자수가 폭발했다.

진여준 사장과 조우진 기자는 카메라 앞에서 마치 라디오 진행을 하듯 대화를 나눴다.

진여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명 ‘각하 VS 오타쿠’ 2탄을 특집으로 준비해봤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일이 벌어진 건 OTK컴퍼니 강진후 대표의 발언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며칠 전 검찰에서 피의자 조사까지 받았어요.”

조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부실이 의심된다고만 말했으면 대충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예 대놓고 호성저축은행에서 돈을 빼라고 얘기했으니까요. 만약 부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구속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결과에 따라서는 강진후가 구속되거나, 호성저축은행이 망하거나 둘 중 하나란 말이에요. 저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차라리 강진후가 틀렸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호성저축은행이 파산할 경우 서민들 피해가 너무 커요.”

“그렇죠. 호성저축은행은 현재 저축은행 업계 2위예요. 잘못하면 지역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뉴스를 진행하기에 앞서 제가 지금 호성저축은행에서 판매한 후순위채권 상품설명서를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 보시면 아주 크게 금리가 연 5.6퍼센트라고 써져있어요. 이자는 3개월마다 1.4퍼센트씩 지급된다고 되어있고, 발행금액, 발행일, 만기일, 청약단위 등이 쭉 써져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여기 맨 마지막을 보셔야 돼요.”

진여준은 상품설명서를 카메라 앞으로 내밀었다. 아래쪽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뭐라 적혀 있었다.

“전혀 안 보실 겁니다. 사실 저도 잘 안 보여요. 글자가 1밀리도 안 되서 돋보기를 대고 봐야 간신히 보일 정도니까요. 아무튼 뭐라고 써져있는지 읽어보면 ‘후순위채권은 상환 우선순위가 일반사채보다 낮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본 사채는 예금자보호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으며, 본 사채의 원리금 상환 불이행에 따른 투자위험은 투자자에게 귀속됩니다’라고 되어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조우진이 설명을 해주었다.

“호성저축은행이 파산하더라도 1인당 원리금 5천만 원까지는 돌려받을 수 있어요. 은행이 돈이 없으면 예금보험공사에서 그 돈을 내주도록 되어있거든요. 만약 8천만 원을 예금했다면, 3천만 원은 날려도 5천만 원을 돌려준다는 얘기예요.그런데 후순위채권은 그런 게 없습니다. 은행이 망하면 그냥 끝장이에요. 사실상 단 한 푼도 돌려받기 힘들어요.”

“그런데 이 개새끼들이…… 아니, 호성저축은행 직원들이 문 닫기 전날까지도 창구에서 이걸 고객들한테 팔아치웠어요.그나마 금융지식이 있어서 후순위채권이 뭔지 알고 샀다면 이해하겠는데, 이걸 산 사람들이 대부분 고령층이에요. 그분들은 그냥 이게 예금과 비슷한 건 줄 알아요.”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 및 투자위험성 등을 충분히 안내해줘야 돼요. 이건 불완전판매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후순위채권도 문제인데, 지금 진짜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어요. 본격적인 얘기를 진행하기에 앞서서 일단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처음 강진후의 발언이 나간 건 저녁 7시쯤이에요. 이때는 이미 은행이 문을 닫은 시간입니다. 놀란 고객들은 돈을 빼기 위해 인터넷뱅킹에 접속했는데 접속자가 폭주하며 10분도 안 돼 사이트고 앱이고 다 다운됐어요. 그리고 다시는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도록 호성저축은행에서 접속을 차단시켰다고 봐야죠.”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고객들은 은행으로 직접 달려갔는데, 개점한 지 얼마 안 돼 문을 닫고 영업정지에 들어갔구요.”

“일반고객들은 거의 돈을 찾지 못했어요.”

진여준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여기서부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강진후 발언이 나가고 나서 다음날 아침까지,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저희가 지금 대단히 충격적인 정보를 하나 입수했습니다. 들으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