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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1

140. 약혼관계 – 일곱 상인

“죄송합니다.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그 일은 조금…”

갓 장년에 들어선 상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양손이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비굴한 자세였으나 그 앞에서 배를 불뚝 내민 귀족은 불쾌감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그의 제안이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해주었는데도 못 알아들었는가? 실망스럽군.”

상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고집스러운 모습에 귀족은 인상을 찌푸렸다.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야. 자우어 자작과도, 오스카 백작가와도 이야기가 끝났어. 물건을 가져다 교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어리석긴. 좋아. 마음대로 하게.”

“죄송합니다. 그 외에 달리 해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이제 바르나울로 돌아갈 것이온데, 나를 우편이라도 있으면…”

“됐어. 아버님께서 보냈다기에 도움이 될 줄 알았건만, 쯧.”

젊은 귀족이 손을 내저었다. 파리 쫓듯 손등으로 내친 바람에 상인은 뒷걸음질 쳐 물러 나왔다.

그리고 달렸다. 영주성을 빠져나온 그는 서둘러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일곱 대의 마차를 세워놓고, 노점을 열어 한창 장사 중이던 여섯 상인은 상단주의 부름에 잠시 일손을 놓았다.

지긋이 나이든 상인이 물었다.

“거절했는가? 뭐라고 하던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빨리 달아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설마 달아나야 할 정도일까… 세금 명목으로 돈이라도 좀 내놓고 가면 무사하지 않을까?”

기름때가 묻은 앞치마를 입은 상인이었다. 그는 일하다 왔는지 수건으로 비계가 묻은 손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사람도 많은데… 너무 걱정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어.”

장사하다 보면 외상으로 물건을 내어주는 경우가 잦았다.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라 물물교환이 기본이었지만, 그마저도 내일 ‘뽑아’ 오겠다거나, 누구한테 자신의 이름을 대면 대신 지불할 거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저흴 내버려 둘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후원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예까지 와서 뭘 해달라는 건지 들어버렸으니… 휘말려 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일곱 상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원래 상단을 이룰 만큼 규모가 있는 상인들이 아니었다. 아스틴 왕국의 수도, 바르나울에서 작은 상점을 꾸리고 장사하던 이들이었는데, 솔깃한 제안이 있었다.

지금 앞에서 미안해하는, 여섯 상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상단주 ‘버논’이 상단을 꾸려 상행을 다녀오자 제안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들이 아는 버논에겐 상단을 ‘다시’ 꾸릴 만한 여력이 없었다.

한데 알고 보니 그는 브리나 자작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마차 일곱 대를 후원받은 것이었다.

어떤 부탁일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곳 브리나 자작령에 가면 알게 될 것이라 했고,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여벌의 말을 사고, 마부를 고용해 상행을 나왔다.

아무래도 상단을 꾸려 돌아다니는 편이 돈이 많이 됐으니까.

하지만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옛날 좋은 시절에 대한 추억 때문이기도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상인이 주위를 환기했다.

“자네 잘못이 아닐세. 그래. 혹시 모를 일이니 빨리 달아나세. 아무리 돈이면 배 속의 아이도 기어 나온다지만, 목숨이 더 귀한 법이야.”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여기에 버논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섯 상인은 모두 그를 아들, 혹은 조카처럼 생각했다.

일곱 상인은 서둘러 노점을 정리했다. 마부들을 닦달해 말을 마차에 매고, 외상으로 내준 물건을 모조리 포기한 채 브리나 자작령을 떠났다.

“이쪽이 아니야. 저쪽으로 가세.”

“네? 저쪽은 산길이에요. 한참 돌아가야 하는 데다가, 눈이 내려서 중간에 마차가 설지도 몰라요.”

나이 많은 상인이 마부에게 거짓말했다.

“혹시 저리로 가면 물건을 팔만한 마을이 나오지 않을까 궁금해서 그러네. 저번에도 보지 않았는가. 내가 가란 데로 가니까 에이브릴 성이 나온 거.”

“…좋아요. 하지만 마차가 멈춰도 우리 잘못은 아니에요.”

그는 책임지지 않겠다고 단언했지만, 제 할 일을 했다. 다른 마부들과 의논하더니, 어떤 마차엔 힘이 약한 말 세 마리를, 어떤 마차엔 힘이 센 말 두 마리로 바꿔 달았다.

– 덜커덕.

여분의 말까지 닥닥 긁어모아 매달은 일곱 대의 마차가 힘겹게 산길을 올랐다.

마부는 “이놈의 눈은 언제 그치는 거야.” 불평했으나 상인들은 눈이 더 내려주기를 바랐다. 부디 저 깊은 수레바퀴 자국이 지워지기를…

하지만 얄궂게도 추격이 따라붙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도 쫓아오지 않기에 안심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동안 다들 고마웠네. 난 자네들 같은 사람을 만난 게 내 평생의 행운이라 생각해왔어.”

상인들은 즉시 체념했다. 고작 두 필의 말이 쫓아왔을 뿐이지만, 오래도록 함께하면서도 낯간지러워 꺼내지 못한 고백을 주고받았다.

브리나 자작가의 문양을 단 준기사와 기사가 빠르게 다가왔다. 상인들은 의아해하는 마부에게 각자 “미안하네.” 사과하곤 마차에서 내렸다.

이내 당도한 두 필의 말.

가죽 갑옷을 입은 준기사가 후다닥 말에서 내렸다. 깍지껴 발판을 만들자 경장 차림의 기사가 그의 손바닥을 밟고 말에서 내렸다.

“잔머리를 굴리다니. 네놈들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저희한테 어떤 용무가 있으십니까?”

버논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발뺌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뒤에 선 여섯 상인도 죄인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머릿수는 상인들 측이 더 많았다.

마부들과 고용한 용병 두 명까지 포함하면 무려 열여섯 명이다.

준기사 한 명 정도는 이만한 인원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거든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놈의 방심이든, 천운이든 간에 무언가가 더 필요하겠지만, 사람 한 명은 취약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기사는 달랐다.

엑스퍼트. 몸에 마나가 쌓일 대로 쌓인 초인들이다.

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손아귀 힘만으로 능히 사람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삼층 높이의 건물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내렸다.

거기에 더해 평범한 민간인들로서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무기술을 지녔다.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가 훈련받은 병사가 아닌 이상, 저 기사 한 명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닥쳐라. 감히 어디서 거짓을 고하느냐. 공자님께서는 네놈들을 모두 처형하라 하셨다.”

기사가 싸늘한 표정으로 손가락질하자 버논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째서입니까. 저희는 모두 자유시민입니다. 증명할 서류도 있습니다. 저희가 잘못한 것이 있거든 재판을 받게 해주십시오. 그게 국법입니다.”

“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귀족을 모욕한 자는 즉결 처형하는 게 법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해당 귀족과 기사가 내리는 것이지. 네겐 기사에게 입을 나불거린 죄도 추가하겠다.”

“그, 그런…”

버논의 눈에 절망이 어렸다.

이 기사에게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을 깨달은 그는 무릎을 꿇었다. 수레바퀴 자국이 난 눈길에 엎드려 빌었다.

“저희는 공자님을 모욕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만 죽여주십시오. 다른 분들은 그분을 뵌 적도 없습니다.”

“건방지구나. 네까짓 것이 뭐라고 죽을 사람을 정하느냐. 난 너희 모두를…”

“와! 저기야! 저기 있다! 레오, 네 말이 맞았네. 여기가 진짜 지름길이었던 모양이지?”

그때, 반대편 멀리서 작은 달구지가 다가왔다. 마차의 말들이 히힝! – 하고 울었는데, 이에 화답하듯 달구지를 모는 말 두 마리도 히히힝! 반갑게 울었다.

“아저씨들~! 저희 성공했어요! 그때 같이 봤던 마수 있죠? 그거 잡았어요! 이것 보세요!”

란 아비커가 달구지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휘저었으나 버논은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일행인가?”

“아닙니다. 저희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것 참 눈물겹구나.”

기사의 입이 삐뚜름히 기울어졌다. 비웃으며, 그는 상황을 주시했다.

“버논 아저씨~! 론 할아버지~! 왜 대답이 없어요? 거기서 뭣들 하는 거예요?”

“언니. 가만히 좀 있어.”

이내 달구지가 당도했다.

달구지에서 내린 란과 앤은 상인들에게 인사하려는데, 그때 덜덜 떨고 있던 마부가 소리쳤다.

“사, 살려주십시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요.”

자매에게 한 말이 아니었는지, 마부는 기사를 향해 넙죽 엎드렸다. 그러자 다른 마부들도, 고용된 두 명의 용병도 아우성쳤다.

“저희는 용병입니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바르나울에 있는 ‘덱스터 용병단’ 소속입니다. 저희는 상단을 호위하는 계약을 맺었을 뿐입니다. 살려주십시오.”

“뭐야?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달구지에 앉아있던 레나가 물었다.

달구지를 몰던 레오는 으쓱, 낸들 알겠냐는 제스쳐를 보이며 말 등에 걸린 쳇대고리를 풀었다.

브리나 자작가의 기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였다. 옆으로 빠져 있으라는 듯한 고갯짓에 마부와 용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는데…

“네놈들은 따로 심문할 것이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라.”

기사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세상의 심문이란 것이 그리 교양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죠? 왜 여기에 기사님이 계시죠?”

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엎드려있는 버논에게 미처 다가가지 못하고 ‘론’이라는 나이든 상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기사님. 이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기 에이브릴 성에서 헤어졌다가 이제야 만났습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원하신다면 제 목숨도 내놓겠습니다. 다른 이들에게까지 죄를 묻지 말아주십…”

“그만. 이젠 웃기지도 않는구나.”

기사가 아버지뻘 되는 노인의 말을 잘랐다.

“네놈들의 목숨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느냐? 베룬, 쳐라.”

“넵!”

“앗! 이게 무슨 짓이야! 아저씨들이 뭔 잘못을 했다고 이래?”

베룬이라 불린 준기사가 검을 뽑았다. 엎어져 있는 버논의 등을 내리치려 하자 란이 양팔을 벌리며 가로막았다.

베룬이 ‘어떻게 할까요?’라는 눈으로 돌아보자 기사가 턱짓했다.

“언니!”

– 째앵!

란의 목으로 날아드는 검을 앤이 가까스로 쳐냈다. 하지만 준기사는 올려쳐진 양손검을 빠르게 수습해 내리그었다.

“앤!”

란이 동생을 밀쳤다.

도끼를 든 앤은 넘어지고, 목표를 잃은 검이 허공을 갈랐다.

베룬은 힐끗, 기사의 안색을 살폈다. 한심하다는 표정에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잠시간의 칼부림이 오갔다.

란과 앤의 실력이 제법이라 준기사라 할지라도 그들의 목숨을 금방 거둘 수 없었고, 보다 못한 레나가 달려와 끼어들었다. 베룬의 검을 쳐내며 외쳤다.

“그만두세요! 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이건 너무하지 않아요?”

“…베룬, 물러서라.”

레나의 검술 수준을 알아본 기사가 나섰다. 베룬이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쓸데없이 시간이 끌리느니 자신이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 생각하며 방관하던 레오 덱스터도 이쯤 되니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끼어들 이유도, 명분도 없다. 란과 앤, 두 사람과 친분이 조금 있다는 것 외에는.

‘이런 것도 {이벤트}라는 걸까? 하지만 왜? 귀족 가문의 기사랑 다퉈서 좋을 것이 없는데…’

민서는 이 상황을 뭐라고 판단했을까? 궁금해하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의문을 털어버렸다.

이 뭣 같은 게임이란 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우릴 또 구렁텅이로 몰고 가려는 거겠지.

‘그렇겐 안 될 거다.’

다짐하며, 레오가 앞으로 나섰다.

햇살에 조금 녹아내린 눈이 발에 질퍽하게 달라붙었지만, 그의 단호한 걸음에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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