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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1

141화 차원의 돌 (1)

141화 차원의 돌 (1)

마차가 플랑브아즈 저택의 정원으로 천천히 진입하자 루나는 창 너머의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와아······!”

푸른 잔디 위로 알록달록한 꽃들이 만발했다. 따스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마법 같은 빛의 물결을 만들었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윽고 마차가 저택 앞에서 멈췄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리엘라 아가씨.”

하녀들의 태도는 정중하고 친절했으며, 미소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그들이 우리 모두에게 꽃다발을 내밀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환대에 놀란 루나와 세실이 부끄러워했다.

“자, 자연스럽게 받으면 돼 세실리아. 이럴 때는 익숙한 척하는 거야. 나, 나를 따라 해. 당당하게.”

루나는 언니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루나가 더 어설퍼 보였다. 로봇 루나.

루나와 세실이 꽃다발의 향기를 맡으며 기뻐했다. 그때, 저택의 문이 열리며 붉은 옷의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그녀의 등장에 하녀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고, 아리엘과 앙투안도 예를 갖춰 머리를 숙였다.

우리도 아리엘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아리엘의 친구분들이군요. 플랑브아즈 가문의 가주, 오필리아 플랑브아즈입니다.”

아리엘과 비슷하지만, 더욱 깊은 품격과 여유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여러분이 아르카넘 홀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아리엘의 서신을 통해 들었습니다.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되어 기쁩니다. 플랑브아즈 저택에서의 시간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기를 바랍니다. 마음껏 휴식하시고, 저택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오필리아 플랑브아즈 공작은 목소리뿐 아니라 외모도 아리엘과 무척 닮았다. 우아하게 흘러내리는 금발, 광채가 깃든 에메랄드빛 눈동자, 붉은 하이힐까지.

게다가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어 아리엘의 어머니라기보다는 언니처럼 보였다. 미래의 아리엘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서 오렴. 아리엘.”

오필리아 공작의 목소리가 더욱 친근하게 변했다. 아리엘이 ‘어머니!’ 하며 달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오필리아 공작이 행복한 얼굴로 아리엘의 등을 어루만졌다.

아름다운 두 여인이 서로를 보며 미소하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조용히 세실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움찔, 어깨를 떤 세실이 고개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눈가가 촉촉하다.

“즐겁게 푹 쉬다가 돌아가자. 세실리아.”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세실이 내 팔에 살짝 머리를 기댔다.

“앙투안. 너에게는 늘 감사한단다. 아리엘을 보살펴 주어 고맙구나.”

앙투안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 긴장한 앙투안은 처음 본다.

오필리아 공작은 우리 모두와 친히 악수하며 환영 인사를 건넸다.

“루나 크라소타와 세실리아 크라소타.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검술학부에서 나란히 1등과 2등을 차지했다고.”

“맞아요! 제가 2등이고 세실리아가 1등이에요!”

루나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은 부끄러운 얼굴로 입술만 옴지락댔다.

오필리아 공작이 이번에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입학시험에서 고위 마법을 발현했다는 데미안 시니야카로군요.”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마지막으로 오필리아 공작이 카인에게 악수를 청했다.

“카인 시니야카. 아리엘이 당신의 이야기를 무척 많이 했답니다. 아니, 서신의 거의 모든 내용이 당신에 대한 것이었죠.”

“어, 어머니!”

“왜 그러니 아리엘? 꼭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 그건 아니지만······!”

카인이 씩 웃으며 오필리아 공작의 손을 맞잡았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리엘은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여인입니다. 빼어난 마법 실력과 더불어 그녀의 친절함과 배려심은 아르카넘 홀의 여러 학생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저의 인생에서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 순간, 오필리아 공작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나는 조금 놀랐다.

내 눈에는 그녀의 귀족적인 가면이 벗겨지며 잠시 맨얼굴이 드러난 것처럼 보였다.

.

.

.

저택의 식당은 화려함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길게 늘어선 식탁 위에는 은빛 촛대와 크리스탈 잔이 햇살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빛났고, 각종 요리가 예술작품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루나는 그 환상적인 광경에 다시금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오필리아 공작이 상석에 앉았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아리엘과 카인이 자리했다. 아리엘의 표정은 몽롱했다. 누가 봐도 아리엘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카인이 오필리아 공작에게 한 말이 반복 재생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슬쩍 루나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루나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야. 그치 세실리아.”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리엘의 안내로 저택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플랑브아즈 가문이 소유한 다양한 예술품을 구경하고, 드넓은 저택 곳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하녀들이 바삐 우리를 쫓아다녔지만, 아리엘이 따라오지 말라고 말한 뒤로는 우리뿐이었다.

“와아, 책이 엄청 많아!”

우리는 서재로 들어왔다.

원래는 공개하지 않는 곳인데 어머니 몰래 특별히 보여주는 거라며 아리엘이 자랑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저택에서 일하는 이들도 이곳만은 출입 금지라고 덧붙였다. 하녀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보다.

“앙투안.”

아리엘이 앙투안에게 망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앙투안은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서재 밖으로 나갔다.

“이것 봐 세실리아! 동화책이 있어! 엄청 많아! 전부 아리엘이 읽는 건가 봐!”

“아, 아니야! 하녀들이 읽는 거야!”

“응? 아까는 하녀들은 못 들어오는 곳이라며.”

“그, 그건······!”

“전부 다 멋진 왕자님이 나오는 내용이야! 아리엘의 취향인가 봐!”

“아······! 아아······!”

아리엘이 그만 보라며 루나에게 달려갔고, 루나는 까르르 웃으며 도망 다녔다. 두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세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동화책 한 권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괜히 서재를 공개했다는 아리엘의 울먹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법에 관련된 책을 찾아 돌아다녔다. 무려 플랑브아즈 가문의 서재이니 아르카넘 홀의 도서관에는 없는 특별한 책이 있지 않을까.

‘오. 있다.’

내가 발견한 것은 고위 마법에 관한 책이었다. 나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책을 읽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창밖이 어두웠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난 거지?

“고위 마법에 관한 책이야?”

카인이 싱긋 웃으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왜. 관심 있어?”

“관심이야 있지. 나는 마법사니까.”

카인이 마법을 발현하는 듯한 몸짓을 취하며 웃었다.

아르카넘 홀에 다닌 이후로 녀석은 조금 유쾌해졌다.

“그래도 네게 넘길 수는 없어. 아직 다 안 읽었거든.”

“염려 마. 관심은 있지만 내가 지금 찾는 책은 다른 거니까.”

카인의 말에서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 서재에 오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리엘!”

그때, 서재 문을 열며 앙투안이 낮게 외쳤다. 누군가 근처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읽던 책을 제자리에 꽂고 서둘러 서재를 벗어났다.

아쉽다. 끝까지 읽고 싶었는데.

***

늦은 밤, 아리엘은 자신의 침대에 앉아 부드러운 양털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아아······. 오랜만이야 양양아.”

어머니는 어떻게 하이힐만 신으실 수 있는 걸까.

아리엘은 어머니가 하이힐이 아닌 다른 신발을 신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할 수 있어. 어머니도 하셨으니까.”

이제 아리엘은 하이힐을 신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한 학기 내내 신으며 익숙해진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카인이 하이힐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역시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하이힐을 신으면 사내들이 아주 좋아할 거란다. 혹시 아니? 아르카넘 홀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될지.’

그때는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아리엘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사내는 셀 수 없이 많았으니까. 물론 그중에서 아리엘의 마음에 드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카인을 만났다. 아리엘은 카인을 처음 본 순간 운명과도 같은 끌림을 느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금껏 살아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리엘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카인을 머릿속에 그리자 데미안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사내.’

아리엘은 인정했다.

데미안은 신비롭고 매력적인 사내다.

만약 카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데미안과 보다 친밀한 관계가 되었을지도.

“······핫.”

아리엘은 갑자기 부끄러워져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포근한 이불.

익숙한 향기.

‘기분 좋아.’

똑똑,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은 것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간에 저택에서 아리엘의 방문을 두드릴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매우 작은 소리였지만 아리엘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누구지? 아리엘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향해 걸어가 귀를 기울였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 소리였나?

“아리엘.”

그 목소리에 아리엘은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카인이었다. 이렇게 늦은 밤에 그의 방문은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아리엘은 서둘러 하이힐로 갈아신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돈했다.

문을 열자, 카인이 거기 서 있었다. 아리엘은 그의 손을 잡아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밖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달칵, 문이 닫혔고, 그들은 마주 섰다.

“카인, 왜 여기에······?”

아리엘의 목소리가 떨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네가 보고 싶어서 왔어.”

아리엘은 정말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역시 오면 안 되는 거였구나. 미안해 아리엘. 이만 돌아갈게.”

카인이 몸을 돌리자 아리엘은 본능적으로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아리엘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저택 앞에서 카인이 어머니께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리엘은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여인입니다.’

그때, 카인이 아리엘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이름을 속삭였다. 그의 손길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고, 목소리는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다. 아리엘의 가슴이 혼란과 기대감으로 격렬하게 뛰었다.

“카인······. 나, 나는······.”

그 순간, 아리엘의 가슴 속에서 불꽃 같은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리엘도 몰랐다. 다만 카인의 음성과, 눈빛과, 향기와, 그리고 감촉을 느끼며 아리엘은 마치 밤하늘의 모든 별이 자신의 가슴에 쏟아져 내리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아리엘은 카인의 목을 끌어안았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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