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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2

141. 약혼관계 – 까마귀

“크억! 이, 이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

“그럼. 무사하고말고.”

브리나 자작가의 기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의 복부에 꽂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나이가 어리기에 만만히 본 게 화근이었다.

보통 기사는 나이가 많을수록 강했다. 검술을 수련한 기간이 길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에 마나가 쌓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장년, 이때가 기사의 전성기였다.

노화로 근육이 쇠퇴하지도 않았고, 재능에 따라 다르지만 검술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는 시기다.

갓 성년이 된 레오 덱스터, 그는 중년의 기사에게 바짝 다가섰다. 컥컥거리는 놈의 뒷덜미를 붙잡아 속삭이고는 복부에 박힌 검을 뽑아 목에 찔러넣었다.

[ 업적 : 기사 ‘1’명 – 기사를 상대할 때 더 강해집니다. min(1) ]

[ 퀘스트 : 듀얼리스트 973/1000 – {검술}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마, 마를롱 님!”

모두가 레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엔 레나를 돕기 위해, 혹은 상황을 중재하려고 다가온 줄 알았다.

그런데 레오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허리를 굽혀 사죄하려는가 싶더니 불쑥, 검을 뽑았다.

발검술(抜剣術)이다.

본래 양손검으로는 발검술을 펼치기 어렵다. 양손검의 길이 때문에 검집에서 검을 단번에 뽑으려면 어깨까지 늘여야 했고, 그렇게 뽑아 휘둘렀다 해도 자세가 무너진, 검술이라 칭하기도 부끄러운 억지였다.

마를롱이 그런 무게도 실리지 않은 검격에 당할 리 없었다. 그도 순식간에 검을 뽑아 간단히 막았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레오 덱스터는 검이 챙강! 막히기가 무섭게 검 손잡이를 던졌다.

오른손으로 발검했기에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허리와 뒤따라오는 왼손. 그 손으로 날아오는 손잡이를 붙잡아 그대로 찔러넣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오랜 수련이 무색하게도 완전히 허가 찔린 마를롱은 허망하게 생사를 달리했고, 레오는 모두의 놀란 시선을 느끼며 검을 털었다.

새까만 피가 흩어져 눈밭을 수놓았다.

‘확실히 좋은 검술이야…’

검술에 재능이 없는 민서가 숨을 죽이니 레오 덱스터의 재능이 숨통을 틔웠다. {검술.3v : 바르트류(流)}를 단지 따라만 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응용할 수 있었다.

레오는 문득 궁금해졌다.

원래의 내 실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민서에게 덮어씌워지고, 민서가 ‘시스템’이라 칭하는 것의 보정을 받기 이전의 나는 얼마나 강했을까?

‘…레나랑 비슷했겠지. 그동안의 반응을 봐서는… 아니지, 잠깐만.’

레오는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과거를 되짚어보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아버지, 노엘 덱스터는 내 검술 실력이 하루아침에 부쩍 늘어난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고, 저번에도 그랬다.

오히려 검술 실력이 딸렸던 초기에만 아들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는데, 민서가 {검술.3v : 바르트류(流)} 능력을 얻어와 처음으로 대련했을 때는 이렇게 외쳤다.

– “하하하하하! 아들아! 네가 뭘 깨달았구나!”

확실히 이상하다.

그때 보인 실력은 현재의 레나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다. 바르트류의 특징을 살리지 못했음에도 어지간한 기사를 상회하는 실력이었고, 한순간이나마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매일같이 대련하여 아들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아버지. 그가 그렇게 외쳤다는 건… 과거의 내가 어떤 벽에 부닥쳐 있었다는 것이고, 아버지는 그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러면 여태껏 보인 레나의 반응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녀는 매번 내 실력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 말인즉슨…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이전의 내가 레나에게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괴상한 결론에 다다랐다. 과거의 기억이 없는 그로서는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는 의문이기도 했다.

레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레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레오! 무슨 짓이야! 사람을 그렇게 죽이면 어떻게 해! 미쳤어?!”

그녀의 외침에 상념이 깨졌다. 레오는 상인들을 둘러보며 변명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이놈을 살려뒀으면 우리가 죽었을걸? 안 그래요?”

죽음을 각오했던 상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썩 밝지만은 않았는데, 아마도 후환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 그래도 먼저 제압하고 얘기했어야…”

“잠깐! 저놈 달아난다!”

란이 손가락질했다.

레오가 고개를 돌려보니 기사를 따라온 준기사가 슬금슬금 뒷걸음치고 있었다.

“히이익!”

이젠 아예 뒤돌아서 말을 향해 달리기에 레오가 땅을 박찼다.

“사, 살려주세요. 저, 저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

“나도 살려고 하는 짓이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게임이 마련해 놓았을 비극의 구렁텅이를 메워버리기 위함이다.

레오의 검이 필사적으로 말 등에 기어오른 준기사의 허리를 갈랐다.

뜨거운 피가 말 허리를 타고 흘러내렸고, 따사롭게 내리는 햇살과 함께 눈을 녹였다.

어느덧 겨울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 * *

뽀글뽀글.

하얀 김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온천에 몸을 담근 레나가 코로 거품을 뿜었다. 뜨끈한 수온에 여독이 풀려나갔으나 그녀는 꽁한 표정으로 무릎을 감싸 안았다.

“이얍!”

– 첨벙!

물보라가 튀었다. 란 아비커가 온천에 뛰어든 것이었다.

“후아! 좋구나. 앗!”

그녀는 깜박 잊었다는 듯 재빨리 탄력적인 나신을 일으켜 세우더니 머리끈을 풀러 바깥으로 던졌다.

치렁치렁, 긴 갈색 머리가 늘어져 그녀의 굴곡진 등허리를 가렸다.

앤 아비커는 언니가 바닥에 던져놓은 ‘어머니’의 깃털 장식 머리끈을 주워 자신의 머리끈과 함께 챙겨두곤 온천에 발을 담갔다.

여기는 중간에 들린 마을이었다.

한바탕 소란을 겪은 상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상행을 계속했고, 란과 앤, 레나와 레오는 그들과 함께 수도를 향하고 있었다.

“어때? 와보니까 괜찮지? 따땃한 게 피로가 싹 풀리지 않아?”

“…좋네요.”

레나가 마지못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란이 동실동실 헤엄쳐 레나 곁에 다가와 앉았다.

“아직도 꽁해있어? 너도 참, 어린애는 어린애구나.”

“어린애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곱게 자라가지곤… 너 사람 죽는 거 처음 본거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조금 지나쳤던 것 같아서 그래요. 어쩌면 설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으이그, 고집은. 설득이 안 됐을 거란 거 알면서 그래. 그리고 난 레오가 잘했다고 봐. 힘은 힘으로. 강한 사람이 눈치 볼 필요 없지.”

란의 단호한 말에 레나는 고개를 숙이고 뽀글뽀글, 다시 거품을 일으켰다.

레오가 기사와 준기사를 죽인 직후, 상인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자신을 ‘버논’이라 소개한, 장신구를 파는 상단주는 브리나 자작령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바르나울에서 ‘디에고 브리나 자작’의 부탁을 받았는데, 아스틴 왕국 서남쪽 끝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서 어떤 일을 해주는 대가로 후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브리나 자작령에서 만난 자작의 아들, ‘디우로 브리나’가 한 요청은…

+ + +

“저희에게 밀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밀수요?”

“네. 관문을 통하지 않고요. 자작령은 제롬 신성왕국, 벨리타 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디우로 공자가 말하더군요. 곧 전쟁이 터질 거라, 아주 좋은 기회라고요. 그러면서 신성왕국의 오스카 백작가와도, 벨리타 왕국의 자우어 자작가와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강조했습니다.”

다 같이 마차에 둘러앉은 자리에서 버논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돈이 많이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버려질 게 분명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잘했습니다. 바른 판단을 내린 것 같군요.”

레오는 팔짱을 끼며 수긍했다. 그러곤 생각에 잠겼다. 자우어 자작가는 그가 알고 있는 가문이었다.

지지난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만난 적이 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옷차림에 과장된 예법을 쓰던 자우어 자작가의 수장, ‘브리안 자우어 자작’을.

진회색 눈동자를 음흉하게 굴리고, 이상하리만치 잔주름이 많았던 그는 오르빌에 있는 모든 창관의 주인이기도 했다.

‘설마 그 사람한테도 뭐가 있나? 왜 여기서 그와 엮이는 걸까?’

레오는 초조하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모든 게 다 불안해 보인다.

아마 과대망상이고 우연이겠지만, 자우어 자작의 이름, ‘브리안’이 이곳 아스틴 왕국의 ‘브리나’ 자작가의 명칭과 비슷한 것까지도 의심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브리안 자우어 자작의 뒤에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있음을 나는 안다.

당시 후작은 왕자 레오를 양자로 들이려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귀족들을 소개해줬었다.

그런데 그 담소 자리에서 자우어 자작이 말실수를 했다. ‘국경 접경 지역’을 언급했다가 타티안 후작의 곁눈질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었다.

국경이라…

‘후작이 자우어 자작을 통해 뭔가를 꾸미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머나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느라 레오는 머리가 지끈거렸고, 상단주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경황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휴우. 기사님이시지요? 도와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기사님께서도 빨리 달아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추격해온 기사를 죽였으니 자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레오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신변을 걱정해주는 상단주에게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놈을 죽인 게 아니니까요. 란. 앤.”

“왜? 우릴 왜 불러?”

“미안하지만, 너희들 몫을 내놔야겠다.”

“우리 몫?”

레오가 손을 들어 끌고 온 달구지를 가리켰다. 뚱한 표정으로 마차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있던 레나의 눈에 설각사록의 뼈가 들어왔다.

+ + +

“나도 언니랑 같은 생각이야, 레나. 너무 고지식하게 생각하지 마. 너는 어떤 생각으로 검술을 익혔는지 모르겠지만, 무술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어? 그리고 결과적으로 잘 됐잖아. 설각사록의 뼈를 몽땅 두고 오긴 했지만…”

앤의 말을 들으면서도 레나는 입으로 온천물을 머금었다가 뱉기를 반복했다.

언니들 말이 맞다.

솔직히 그 오만방자한 기사를 설득하긴 힘들었을 거다.

놈을 죽이는 게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고, 레오는 이후의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바로 설각사록의 뼈를 두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을 듣자 상인들은 반색하며 말 두 마리를 잡았다. 달구지를 몰고 온 말들을 죽여 그 살을 설각사록의 뼈에 덕지덕지 바르고, 사방에 피를 뿌렸다.

기사와 준기사의 시신은 란과 앤의 도끼로 난도질당했다. 설각사록의 뼈도 분해해 사방에 흩트렸는데, 이렇게 하면 마치 들짐승들이 뜯어간 줄로 알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리될 것이고.

어쩌면 이 꼼수를 눈치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왕국을 통틀어 천 명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귀한 기사가 고작 상단 하나를 뒤쫓았다가 역으로 살해당했다는 것보단, 재수 없이 마수와 조우해 공멸했다고 믿는 편이 신빙성이 있었다.

“에구구. 뿔 하나만 가져왔으면 좋았을 걸… 애들이 좋아했을 텐데.”

“언니, 애가 있었어요?”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레나가 물었다. 란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럼. 내 나이가 몇인데 애가 없겠어. 아들 하나 낳았지.”

“우와… 몰랐어요. 워낙 젊어 보이셔서… 그럼 앤 언니도?”

“응. 나는 둘 낳았어. 딸이랑 아들. 둘 다 엄청 예쁘다? 수도에 도착하면 한번 우리 집에 놀러와. 며칠 묶어도 좋고.”

“앗! 애들한테 마수 잡은 이야기 해달라고 하려는 거지? 응큼하긴.”

“그럼 어떻게 해. 전리품이 없잖아.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애들이랑 남편 볼 면목이 없는걸.”

“어? 그럼 언니들은 애들이랑 남편분을 두고 여행을 나오신 거예요? 애들이 몇 살인데요?”

“하하하하. 레나, 네가 갓 성년이지? 과장 조금 보태서 거의 너만 해. 우리가 시집을 워낙 일찍 갔거든. 열세 살에 갔던가? 맞아?”

“맞아. 내가 열두 살에 시집갔으니까.”

열두 살이라고? 레나는 눈이 똥그래져서 물었다.

“세상에… 왜요? 왜 그렇게 일찍 결혼하셨어요?”

“으음. 말하자면 조금 기네. 나가서 얘기할까? 난 뜨거워서 더는 못 있겠다. 옴마야? 앤, 얘 몸매 탱탱한 것 좀 봐봐. 젊은 게 좋긴 좋구나.”

란이 레나의 엉덩이를 콕! 찔렀다.

“앗! 만지지 마세요!”

“하하하하하.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도 남자친구랑 합방을 안 했네.”

란과 앤은 깔깔거리며 레나를 놀렸고, 레나는 홍당무가 돼서 몸을 가렸다. ‘못됐어.’ ─ 라고 생각하며 후다닥 옷을 입었다.

그러느라 보지 못했지만, 머리끈을 하려고 긴 머리칼을 뒤로 치켜든 란과 앤의 등에는 큼지막한 문신이 새져져 있었다. 지금처럼 자매가 나란히 서야만 이어져 보이는 문신이다.

붉은 까마귀와 검은 까마귀.

한 마리는 검에, 다른 한 마리는 방패 위에 앉아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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