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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2

141화.

뉴스를 보던 한찬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강진후가 이겼군.”

일이 시작된 건 강진후가 호성저축은행의 부실을 지적하면서였다. 처음에는 강진후와 호성저축은행의 싸움이었지만,여기에 대통령, 여당, 언론이 가세했다.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자신들이 옳고 강진후는 틀렸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강진후의 말이 맞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반대편에 선 이들은 전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호성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터트린 것은 신의 한수였다.

은성차는 호성저축은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번 일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정부는 수소차를 미래성장동력으로 지정해 총력을 다 해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지자체와 협의해 충전소 신설과 수소차 지원금을 편성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

집권세력이 정치적 타격을 입은 만큼 수소차 육성 추진동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당장 충전소 부지매입 절차부터 올스톱 되었다.

은성차는 일단 수소차 신차출시는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약속했던 만큼의 지원은 받기 힘들 것이다.

‘설마 이걸 노리고 일을 벌인 건가?’

한찬영은 OTK컴퍼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TS컴퍼니를 통한 배터리 공장건립과는 별개로 OTK컴퍼니는 독자적으로 배터리연구소를 세웠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대 김호민 교수를 포함한 연구진들이 합류했다.

김호민 교수는 배터리업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구 분야가 기초과학에 해당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 당장 필요한 인재는 아니었다. 한국대 종신교수인 만큼 웬만큼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자리를 옮길 리도 없을 테고.

그런데 강진후는 직접 학교로 직접 찾아가 설득해서 연구소장으로 모셔갔다. 김호민 교수가 그만큼 대단한 존재였던 걸까?

한찬영은 엑스캅 입찰 때 만났던 강진후의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지?”

* * *

호성저축은행은 그야말로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었다. 마치 감자줄기처럼 캐도 캐도 끝없이 나왔다.

호성저축은행에서 일하던 금감원 출신 감사 5명은 경영감시는커녕 아예 불법대출과 분식회계에 직접 가담했고,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은 분식회계를 알면서도 적정의견을 남발했다.

대출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졌는지, 심지어는 일선 직원이 명의를 도용하고 서류를 위조해 150억 원의 불법대출을 해준 것도 확인됐다. 조사가 시작되자 직원은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특수목적법인의 사장과 직원들 중 상당수는 임원들이 앉혀놓은 바지사장이었고, 그들이 받은 억대 연봉은 뒤에서 나눠가졌다.

이런 와중에 호성저축은행은 작년에 사상최대의 실적을 냈다며, 거액의 성과급과 배당을 지급했다. 저축은행은 부실로 병들어 가는데, 임원들과 주주들만 돈 잔치를 벌인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그동안 공무원과 정치인들에게 제공한 뇌물과 접대 내역이 담긴 장부가 발견되었다.

관련 증언들을 확보한 검찰은 일단 20명을 구속기소했다.

여기에는 민정주 회장과 민성주 사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직 대통령의 사돈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금융위원회에서는 호성저축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는 한편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대출금을 회수하는 한편 자산매각에 나섰으나, 예금자들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막막했다. 그나마 예금보험공사에서1인당 5천만 원까지 지급해주는 것만이 유일한 보상이었다.

한국가당 국회의원들은 특별법을 만들어서 예금자들 피해를 전부 보상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야당에게 ‘소속 의원들이 불법출금한 돈부터 반납하고 그런 말을 해라’라는 말을 듣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예금자들을 구제해주면, 채권 구매자들은 어떻게 할 건가?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가 나서서 세금으로 갚아 줘야 할 건가?

당장 몇 년 전에 있었던 동영종금 파산 사태 피해자들부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자신들도 배상해달라고 소송을 낼 가능성이 높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저 지역구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해본 말에 불과했다.

* * *

진실을 알리는 것은 언론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다. 그러나 언론은 마지막 순간까지 정부 편에 서서 거짓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다가 정부가 부실을 인정하자, 조중일보는 교묘하게 이번 일에 강진후의 책임도 있다는 식으로 엮었다.

부실을 키운 저축은행과 방관한 정부도 문제지만, 그것을 대책 없이 터트린 강진후도 문제라는 논조였다.

기사가 나가자 게시판에는 항의글이 폭주했다.

-ㅋㅋ이 새끼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아직도 국민들이 개돼지로 보이냐?

-서민들 돈 더 빨아먹은 다음 파산했어야 했는데, 일찍 파산해서 잘못이라는 건가요?

-요약하자면 ‘더 해먹을 거 강진후 때문에 못 해먹었으니, 강진후가 잘못했다’는 거지. 역시 믿고 거르는 조중일보.

-여기서 백날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절독이 답입니다.

-이런 신문을 돈 내고 본 내가 ㅂ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부터 우리 집에 넣지 마라.

-신문 넣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조심해라.

비난이 거세지자, 다음날 조중일보는 사과와 함께 정정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방송 3사와 보수언론들은 심각한 이미지 추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 *

하은지는 며칠 동안 제대로 음식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영업한 지역 저축은행이라는 특성상 고객들은 한 다리 건너면 대부분 아는 사이다. 그녀가 후순위채권을 팔았던 고객들도 대부분 오랫동안 알고지낸 이웃들이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팔았다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 발표 직후, 몇몇 고객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자마자 비명과 욕설이 쏟아졌고, 그 뒤로는 무서워서 핸드폰을 꺼놓았다.

하은지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통화가 간신히 연결되었다.

[어, 은지 씨.]

“지, 지점장님.”

하은지는 울음을 터트렸다.

“흐흐흑, 우리 이제 어떡해요? 그분들 불쌍해서 어떡해요? 우리가 팔지만 않았어도…….”

그러자 박준상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니, 좋다고 살 땐 언제고 왜 우리한테 난리야? 까놓고 말해 우리가 뭘 잘못했어? 우리도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잖아. 아, 진짜 미치겠네!]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역시 죄책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은지 씨도 당분간은 집밖으로 나가지 말고 조용히 있어. 괜히 피해자들하고 마주쳐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알았지? 이만 끊는다.]

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하은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두운 방안에 그녀의 흐느낌만이 울려 퍼졌다.

* * *

호성저축은행 본점 앞은 아비규환이었다.

예금자들은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고 통곡했다. 일부 노인들은 오열하다 못해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도 발생했다.

집 살 돈을 잃은 가장, 평생 시장에서 일해 모은 돈을 잃은 할머니, 노후자금을 날린 할아버지 등등.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잠도 안 자며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이다.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동전 하나마저 아껴서 모은 돈이다.

그런데 그 돈을 돌려받을 길이 사라졌다.

믿고 맡기라던 은행은 자신들이 예금한 돈을 흥청망청 썼고, 아무 문제없을 거라 소리치던 정치인들은 야밤에 자신들의 돈만 빼서 도망갔다.

“대통령이고 국회의원이고 이제까지 뭘 한 거야? 이러다가 우리 다 죽게 생겼어!”

“평생 국회의원이고 시장이고 전부 한국가당만 찍었는데!”

“나라가 망해도 무조건 한국가당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는겨?”

“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여?”

“대통령 사돈댁이라 믿고 맡겼는데, 세상천지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째서 우리만 이런 피해를 당해야 하는 건데?”

한 노인은 취재를 하는 조중일보 기자의 멱살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니놈들이 무슨 낯짝으로 여기를 와? 금방 영업재개할 거라며? 강진후가 헛소문 퍼트린 거라며?”

“하, 할아버지. 진정하세요.”

“그동안 니놈들 말만 믿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 꼴을 보니 어떠냐? 이제 속이 후련하냐?”

“…….”

기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중일보가 이제까지 어떤 기사를 내보냈는지 그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피해자들이 노인을 말렸다.

“그만하세요, 할아버지.”

“이놈들아! 차라리 날 죽여라! 컥!”

소리치던 노인은 결국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한 남자가 일어나 소리쳤다.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정치인들이 듣기나 하겠습니까? 이럴 게 아니라 서울로 갑시다! 그래서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직접 만나서 따집시다!”

사람들은 동의했다.

“맞습니다!”

“청와대든 국회든 갑시다!”

“우리 돈을 되찾자!”

피해자들은 서울로 올라와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 *

한국가당에는 비난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당대표 최명환 의원이 불법출금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연류 된 소속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방의원들까지 합치면 명단에 나온 것만 30명이 넘었다.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불법출금한 돈을 반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당사자들 중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 돈 귀하게 생각하는 건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명환 의원은 ‘친정식구들 돈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미 돈을 다 친정으로 보내서 돌려줄 방법도 없다’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고, 김한철 의원은 계속되는 취재요청에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출금한 돈을 돌려줘라 마라 강요하질 않나, 레밍이라고 한마디 한 것 가지고 계속 몰아붙이질 않나.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이러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에요. 레밍이라는 말에 상처 받았으면 레밍 같이 행동하지 마십시오.”

한국가당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바로 징계위원회를 소집해 김한철 의원을 당에서 제명시켰다.

이제까지 이런 위기가 한두 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여론은 가라앉기 마련이고, 선거 때가 되면 국민들은 표를 줄 것이다.

한국가당은 입을 다문 채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 * *

호성저축은행 부실로 촉발된 여파는 금융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그동안 감독기관이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저축은행들 역시 부실을 숨기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은행들은 위기감을 가지고 자체 점검에 들어갔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른 저축은행들도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멀쩡한 저축은행들마저 뱅크런이 일어날 조짐을 보였다.

사람들은 한두 달만 기다리면 만기가 되는 예금도 주저 없이 해지했다.

5천만 원 이하로 나눠서 여러 은행에 분산예치하거나, 아예 현금으로 출금했다. 현금수요가 폭발하며 각 지점에 현금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홈쇼핑에서는 금고가 불티나게 팔렸다. 은행에 맡기는 대신 집에 금고를 두고 돈을 보관하기 위함이었다.

신용은 극도로 경색되고 리보금리가 들썩거렸다.

예금이 빠져나가자 지급준비율과 BIS비율이 하락했다. 저축은행들은 일제히 대출금리를 올리는 한편 신규대출을 축소하고, 대출회수에 들어갔다.

그로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과 중소기업의 몫이었다.

이래나 저래나 돈 없는 사람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금융 불안은 실물경제로 전이될 조짐까지 보였다. 이러다가 은행발 금융위기가 터지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정부에서는 계속해서 안전하다고 소리쳤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정부와 은행을 신뢰하지 못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다른 저축은행들은 대통령 사돈댁인 호성저축은행에 비해 특혜를 받지 못했고, 그 덕분에 부실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사람들의 공포를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택규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친우여, 자네가 나서는 수밖에 없겠는데.”

“…….”

내가 왜?

일반은행들은 맷집이 세서 괜찮고, 저축은행들 중에서는 이미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대여섯 곳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충분히 버틸 만하다. 하지만 불안이 지속되면 멀쩡한 곳마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나라도 한마디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으면 나서야 할 판이다.

난 OTK컴퍼니 빌딩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내외 언론사들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몰려들었다.

“……이상의 저축은행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안전하다고 판단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5천만 원까지는 원리금이 보장되는 만큼 지나친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야 하는 법.

난 기자들에게 열 곳의 저축은행에 각 1억 원씩 예금한 통장을 내밀었다.

“그래서 제 돈으로 예금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언론들은 내 발언을 반박하거나 왜곡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발언을 적극 옹호하며 전면에 기사를 실었다.

?-돈 문제는 강진후 말 듣자.

-그래그래. 강진후가 괜찮다잖냐?

-정부 말은 못 믿어도 강진후 말은 믿자.

-나도 뱅크런 하려다가 강진후 말 듣고 스톱했다.

-강진후가 예금한 저축은행이 어디라구요?

?덕분에 혼란스럽던 금융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대체 내 영향력이 언제부터 이렇게 커진 거야?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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