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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4

144화 신학기 (1)

144화 신학기 (1)

오필리아는 멀어지는 마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

창문 밖으로 불쑥 고개를 내민 아리엘이 손을 흔들었다. 오필리아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여유롭게 미소 짓는 모습과 달리 오필리아는 한동안 아리엘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그러나 카인 시니야카를 관찰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제가 답을 들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카인 하센베르크에 대해.’

그날, 모르가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카인 하센베르크는 죽었다고. 그러나 의심이 간다면 당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물론 오필리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활용해 아리엘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오필리아가 내린 결론은 카인 시니야카는 하센베르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아이에게서는 언뜻 빌헬름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필리아는 자신이 빌헬름의 핏줄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바스티안은 어떻게 생각하죠?”

“저는 그에게서 빌헬름의 유산을 느꼈습니다.”

바스티안도 빌헬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훗날 빌헬름의 아내가 된 헬레나와 함께, 이들 네 사람은 아르카넘 홀의 가까운 친구 사이였으니까.

“바스티안은 그가 하센베르크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확신은 아닙니다. 다만, 카인 하센베르크가 죽었다는 모르가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바스티안의 말이 맞다.

“조사한 일은 어떻게 됐죠?”

“벨리사라 보호령이 연합 가입을 결정했습니다. 노발리스 보호령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순조롭군요.”

“앙투안에게는 따로 지시해 두었습니다. 그 아이가 카인 시니야카를 관찰할 것입니다.”

“앙투안은 어떻던가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몸과 마음 모두가 강해져야 할 거예요. 앙투안은.”

오필리아의 입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야 ‘왕의 기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

차창 밖을 스치는 경치를 보며 나는 지난 시간을 되새겼다.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 고급스럽고 맛 좋은 음식, 포근한 침대, 그리고 서재까지.

돌아가는 길에도 우리는 한 마차에 함께 탔다. 자리도 그대로였기에 나는 정면으로는 아리엘을, 좌우로는 루나와 세실 사이에 낀 형국이 되었다.

“데미안은 좋겠네? 우리 같은 미녀들 사이에 끼어서?”

이번에도 루나가 짓궂게 웃으며 나를 놀렸다. 교복 치마를 입은 루나는 두 무릎을 꼭 붙이고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나를 조금 설레게 했다. 하지만 나보다는 맞은편의 카인을 의식한 행동이겠지.

카인은 턱에 손을 괸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리엘이 그런 카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서재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카인과 아리엘은 밤마다 서재를 찾았다. 덕분에 나도 서재에서 고위 마법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먼지의 도움으로 비밀 서재에도 들어갔다.

<차원의 마력에 관한 연구>

그 책을 발견하고서야 나는 카인이 이곳에 온 목적이 아리엘과의 밀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그 책을 읽었다. 끝까지는 아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내용도 어려웠으니까.

그 책에는 차원의 돌, 즉 ‘검은 파편’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상상했다. 어쩌면 한때 내 손에 쥐어졌던 검은 파편은 빌헬름 하센베르크가 손에 넣은 ‘차원의 돌’의 일부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에 있지?

“데미안.”

루나가 나를 불렀다.

“응?”

“왜 아까부터 무언가 생각하는 척하면서 내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나는 화들짝 놀랐다.

정말로 나는 카인과 아리엘에게서 눈을 뗀 채, 루나의 다리를 보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나의 시선이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관찰하는 카인과, 손끝으로 입술을 가린 아리엘과, 아까부터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만 보는 앙투안과, 동그랗게 눈을 뜬 채 경직된 세실을 차례로 돌아봤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다리를 본 게 아니야. 치마를 봤어.”

“치마?”

루나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응. 한 달 전에 마차를 탔을 때보다 치마가 짧아 보여서. 아무래도 루나, 너 키가 큰 것 같은데?”

“정말?”

루나의 얼굴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그때, 카인이 동조하며 자신이 보기에도 루나의 키가 커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아리엘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는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러고는 이게 다 플랑브아즈 저택의 훌륭한 음식 덕분이라며, 아리엘에게 겨울방학 때도 꼭 다시 불러달라고 간청했다.

***

아르카넘 홀의 역사 강의실에서 신학기 첫 수업이 시작됐다.

늦여름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은은하게 강의실을 밝혔다. 지루한 역사 수업을 들으며 학생들은 졸음과 무료함을 이겨내고자 애쓰고 있었다.

“벨리사라 보호령의 역사는 반란의 역사이며,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역사 교수 ‘루퍼스 마르셀리우스’가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경고하듯 강조했다.

“벨리사라 보호령, 즉 과거 ‘아르테미스 왕국’이라 불렸던 그곳은 제국에 대항한다는 슬기롭지 못한 시도로 인해 멸망했습니다. 일리오스 아르테미스 왕과, 쿠훌린 아르테미스 왕자는 제국의 정의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나는 옆자리의 루나를 슬쩍 돌아봤다.

아르테미스 왕국에 관한, 그것도 아주 많이 왜곡된 이야기였기에 나는 루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인과 세실도 루나를 흘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르테미스 왕국의 멸망은 제국의 힘을 가늠하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비롯된 결과입니다. 아르테미스 왕족은 자신들의 권력만을 추구했고, 그 결과로 측근이었던 여러 가문이 고통받았습니다.”

루나는 아무런 표정 없이 교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의외였다. 바락바락 교수에게 대들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르테미스의 가신 가문들은 그렇게 멸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둥 하나였던 ‘벨리사라 가문’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

.

.

“엉터리야! 전부 엉터리라고!”

역사 수업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온 루나는 잔뜩 화가 난 모습이었다.

“은월섬에서 들은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였어! 아르테미스가 권력만을 추구했다니! 제국의 힘을 가늠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니!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왕국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 거잖아!”

다행히 루나의 곁에는 나와 세실만 있었다. 이런 상황을 짐작했는지 카인이 아리엘과 미아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방방 뛰며 화를 내던 루나가 후우, 한숨을 뱉더니 벤치에 앉았다.

“데미안.”

“응?”

루나는 살짝 머뭇거렸다.

“요즘 말이야. 카인과 아리엘이 부쩍 가까워진 것 같지 않니? 플랑브아즈 저택에서도 그랬고······.”

돌연 화제를 바꾸는 루나였다.

카인에 관해서는 이제 크게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까 보니까 앞으로도 함께 도서관에 다닌다는 거 같았어. 하긴, 카인과 나는 학부가 다르니까. 아리엘과는 같은 마법학부니까. 그래서 그런 거겠지?”

루나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에 절반 정도 슬픔이 차올라 있어서, 나는 루나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응. 그럴 거야. 그리고 2학기부터는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페스트’ 준비를 시작하잖아. 그것 때문에 도서관에서 공부할 게 많은 모양이더라고.”

“그치? 마법학부는 검술학부보다 이론이 많이 중요하다고 들었어.”

금세 밝아진 루나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이럴 게 아니라 나도 열심히 훈련해야겠어. 방학 동안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너무 놀고먹기만 해서 배가 볼록해진 거 같아. 물론 키도 컸지만. 헤헤.”

마차에서는 위기를 넘기기 위해 던진 말이었는데, 실제로 루나는 키가 조금 자란 듯했다.

“이대로 쑥쑥 자라면 금세 세실리아보다도 커질 거야. 긴장하는 게 좋아, 세실리아.”

“그럴 일은 없을걸?”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 나는 도끼눈을 뜬 루나를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의 미래를 안다.

루나는 163센티미터.

세실은 169센티미터.

“나, 진짜로 열심히 훈련할 거야.”

세실을 돌아보는 루나의 눈빛이 변했다.

나도 몇 번 본 적 있다. 지난 학기 때 루나는 틈만 나면 발목에 무거운 주머니를 두른 채 모래벌판을 달렸었다.

“이번에는 꼭 세실리아를 이길 거야.”

.

.

.

“무슨 일인가요? 데미안 시니야카.”

교수실의 문을 연 나는 생각지 못한 인물을 마주했다. 이곳은 엘리샤의 교수실인데, 마치 이 방의 주인인 것처럼 에스틸리아 교수가 다리를 꼬고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엘리시아 교수님께 문의드릴 것이 있어서요.”

“엘리시아 교수는 특별 교수입니다. 정식 교수인 저를 무시하고 이곳을 찾은 건가요?”

그녀의 말투는 평소보다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에스틸리아 교수님께 말씀드릴만한 내용이 아니라서.”

“들어보기나 하죠.”

에스틸리아 교수가 손짓했다.

나는 그녀 앞에 마주 앉았다.

“엘리시아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을 수 있는지 여쭈러 왔어요.”

“개인 지도를? 이제 고작 1학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말투와 달리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동자는 흥미로 반짝였다.

“아르카넘 듀얼을 준비하기 위해서인가요?”

“네.”

조금 전 루나의 의지를 보며, 다가올 축제를 계기 삼아 나도 최선을 다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읽은 고위 마법의 책에 관해 엘리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고.

“교수에게 개인 지도를 받는 이는 대개 졸업을 앞둔 4학년들이에요.”

“그래서 특별 교수인 엘리시아 교수님께 부탁을.”

“하지만 1학년에게 개인 지도를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죠.”

에스틸리아 교수가 히죽 웃었다.

“내가 해줄까? 개인 지도.”

그녀의 어투가 완전히 변했다. 표정도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 언젠가 루나와 함께 찾았던 치유실 앞에서처럼.

‘치유실 찾아온 거 아니야? 아, 애정행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거니? 진도는 어디까지 뺄 생각인데? 키스? 진한 애무? 아니면 끝까지?’

“물론 다른 학생들의 불만은 감수해야겠지만 뭐, 너는 이미 많은 동급생에게 미움받고 있잖니? ‘기만자’라고. 게다가 엘리시아 같은 엉터리보다는 나한테 배우는 편이 백만 배는 나을걸?”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대단한 실력자인 것은 맞지만, 엘리샤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러나 무려 에스틸리아 교수의 개인 지도다.

이런 기회는 냉큼 잡아야지.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너희들의 입학 신청을 위해 아르카넘 홀을 찾아왔던 사내 말이야. 아주 덩치가 크고, 새치 가득한 지저분한 머리와 수염을 가진.”

쿠훌린을 본 건가? 그런데 쿠훌린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는 일순 소름이 돋았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빛이 이상하게 번들거렸기 때문이다.

“그 사내를 만나고 싶어.”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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