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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5

145화 신학기 (2)

145화 신학기 (2)

“멀쩡한 교수실을 두고 굳이 이런 음침한 장소에서 만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숲의 어둠 속에서 등장한 엘리샤를 보며 카인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짐승 꼬마. 이런 곳에서 만나야 진짜 악당 같잖아.”

“성과는 있었나요?”

“방학 기간이 고작 두 달인데 이 넓은 제국에서 어떻게 금세 원하는 것을 찾겠어. 뭐, 너는 그중의 절반은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편히 쉰 것 같지만.”

“불만인가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루나가 플랑브아즈 저택의 음식이 맛있다고 하도 자랑하길래. 과일도 진짜 신선하다면서 막. 너도 알지? 나 과일 좋아하는 거.”

카인은 후우, 한숨을 뱉으며 품에 손을 넣었다.

모르가나의 돌을 꺼내는 줄 알았는지 기겁하던 엘리샤는 카인의 손에 들린 복숭아를 보자마자 들개처럼 입에 물었다.

“맛있어! 이렇게 커다란 복숭아를 품에 숨기고 있었다니!”

순식간에 복숭아를 해치운 엘리샤가 만족한 얼굴로 배를 두드렸다.

“암영의 흔적은 못 찾았지만 심상치 않은 것은 발견했어.”

“심상치 않은 것?”

“내전이 벌어질 것 같아.”

엘리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도 알지? 제국은 황제의 지배력이 강한 동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서부 지역으로 구분된다는 거.”

제국의 땅이 된 지 백 년이 넘은 동부에 비해, 서부는 수십 년에서 짧게는 십여 년 전에 제국으로 합병됐다.

즉, 서부에는 아직 제국이 되기 전의 삶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서부가 반란을 모의한다는 건가요?”

“확실치는 않아. 하지만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특히 벨리사라 보호령과 노발리스 보호령에서.”

벨리사라 보호령.

과거 아르테미스 왕국이었던 곳이다.

“벨리사라 가문에 대해 알고 있나요?”

“나는 잘 몰라. 단장은 아는 게 있을지도. 아니, 스카자하라면 많은 걸 알고 있겠지.”

“낌새는 어떻게 포착했죠? 반란 모의가 사실이라면 그들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을 텐데요.”

엘리샤가 히죽 웃었다.

“이래 봬도 나, 은월보다는 흑월에 가까운 인재야. 이런 첩보 활동이야 내 전문이지. 라이칸도 내 실력에는 혀를 내두른다고.”

“그래서 배신했나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레나르 보호령은 어떻죠?”

레나르 보호령에는 플랑브아즈 가문이 있다.

“그쪽은 별다른 낌새를 찾지 못했어. 아니,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달까.”

“당분간 레나르 보호령과 벨리사라 보호령의 움직임에 집중해 주세요.”

“엥? 이제 개학했는데? 너 설마 잊은 거야? 나 아르카넘 홀의 교수라고.”

“정식 교수가 아닌 특별 교수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없어도 되는 사람.”

“······!”

***

연습실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이곳은 에스틸리아 교수의 개인 연습실이다.

지금부터 나는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개인 지도를 받는다.

“여기는 나의 강력한 마법으로 강화된 아주 특별한 공간이야. 그 어떤 마법도 이 안에서는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지. 마법적 보호가 완벽하게 적용되어 있거든. 지난번에 수업했던 실내 훈련장보다도 더욱.”

그럴 것이다. 실내 훈련장은 학생들이 실습하는 곳이지만 이곳은 에스틸리아 교수가 직접 마법을 발현하며 연구하는 공간이니까.

그건 그렇고 에스틸리아 교수는 왜 쿠훌린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 이성으로서의 호감 같은 것은 아닐 테고. 혹시 쿠훌린이 아르테미스라는 것을 눈치챈 건가? 그래서 입학시험 때도 루나를 지켜보다가 발목 부상을 알아챈 거고?

“거기다가 말이야.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는 새어 나가지 않아. 마력은 물론이고, 목소리를 포함한 그 어떤 소음도.”

에스틸리아 교수가 즐겁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방은 엄청나게 강한 마력의 장막이 몇 겹으로 둘러싸여 있거든. 내가 아주 고심해서 만든 작품이야. 게다가 이렇게 안에서 문을 잠그면 밖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어. 한 마디로 오직 나만이 출입의 통제권을 가진다는 말이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에스틸리아 교수의 얼굴이 불쑥 코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하든,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이야.”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할 거야. 만약 네가 나를 속인다면, 여기서 내가 네게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거든.”

그녀가 말하는 ‘약속’이란,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에 쿠훌린이 아르카넘 홀을 방문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답은?”

“편지를 보낼게요. 하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보장은 할 수 없어요.”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동자가 배시시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그거면 돼. 만약 거절 답신이 오면 나도 네 개인 지도를 그만두면 되니까. 대신 하루라도 빨리 보내야 할 거야. 아니, 오늘 당장. 그래. 엘리시아 교수에게 편지를 맡기는 것도 좋겠어. 그 얼간이는 아르카넘 홀에서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까. 하지만 명색이 아르카넘 홀의 특별 교수이니 누구보다 빠르게 국경을 넘을 수는 있겠지. 교장을 설득하는 일이라면 염려할 것 없어. 내가 적당히 둘러댈 테니까. 뭐, 그 영감탱이는 엘리시아 같은 쭉정이가 자리를 비우는 것 따위에는 관심도 없을 거야. 아마 존재조차 잊었을걸?”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신처를 어디로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당장 떠오른 장소는 흰 새 여관이었는데, 엘리샤가 직접 움직여 준다면 걱정거리를 던 셈이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수상쩍다는 말도 전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쿠훌린이 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쿠훌린은 루나가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아르카넘 홀을 방문하겠다고 했었다.

“앞으로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나와 훈련할 거야. 방식은 간단해. 나는 너를 공격할 거고, 너는 나를 공격하면 되는 거야. 그럼 시작해 볼까?”

“잠시만요. 그전에 여쭤보고 싶은 게.”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습득한 고위 마법의 지식에 관해 물을 것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손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데미안!”

루나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보이는 익숙한 풍경. 치유실이다.

“어떻게 된 거야! 데미안!”

루나가 나를 마구 흔들었다.

하지 마.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환자를 그렇게 흔들면 안 된단다.”

비비안 교수가 나를 구했다.

루나의 옆에는 세실도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치유실에 누워있는 거지?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너는 전신에 화상을 입었어. 다행히 늦지 않게 치유했으니 푹 쉬면 괜찮아질 거란다.”

화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떤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환희에 찬 눈으로 나를 보던 에스틸리아 교수.

활활 타오르던 그녀의 손.

그 안에서 뻗어 나오던 커다랗고, 새빨간······.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비비안 교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에스틸리아 교수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었다. 내가 어떻게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루나와 세실이 무척 걱정하는 얼굴이었기에, 나는 내가 치유실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에스틸리아 교수의 미친 행각은 밝히지 않고.

“에스틸리아 교수님께 개인 지도를? 그거 대단한 거 아니야?”

루나가 휘둥그렇게 눈을 떴다. 루나는 에스틸리아 교수가 얼마나 강력한 마법사인지 알고 있었다.

세실의 얼굴색도 안도의 빛으로 바뀌었다.

“너도 샤를로트 교수님께 개인 지도를 받고 있잖아.”

“그게 무슨 개인 지도야. 맨날 모래벌판만 죽어라 달리는걸. 끄히잉······, 자꾸 허벅지만 두꺼워지는 거 같아.”

“음. 확실히.”

“뭐라곳!”

루나가 다시 내 몸을 마구 흔들었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세실이 루나를 만류하며 나를 구했다.

“데. 데미안. 훈련. 조심히······.”

“응. 걱정 마.”

내 말에 세실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세실리아는 어때? 블레이드 듀얼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으. 응.”

“그거 알아 데미안? 세실리아는 동급생 중에 대련 상대가 없어서 맨날 자크 교수님하고 대련해! 힝······, 부러워. 나도 샤를로트 교수님하고 대련하고 싶은데.”

루나가 비죽 입술을 내밀었다.

“근데 데미안. 카인은 안 왔어?”

“괜히 그 녀석에게 알리지 마, 귀찮으니까. 아마도 아리엘과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겠지.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에스틸리아 교수님이.”

그때, 치유실 문이 열리며 에스틸리아 교수가 나타났다.

“정신이 들었나요? 데미안 시니야카.”

에스틸리아 교수는 평상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몸이 떨렸다.

“훈련 중에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죠. 제가 빠르게 대처한 덕에 위험한 상황은 넘겼으니, 감사하시길.”

예기치 못한 사고? 감사?

저 미친 여자.

일부러 그랬으면서.

“감사드려요! 에스틸리아 교수님!”

속사정도 모르고 루나가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세실도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할 것 없습니다. 저는 그저 교수의 본분을 다한 것뿐이니.”

아니, 조금 전에는 감사하라며!

에스틸리아 교수의 뻔뻔한 모습에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데, 루나 크라소타.”

“네! 교수님!”

에스틸리아 교수가 루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칼을 만졌다.

“머리카락을 염색했나요?”

나는 깜짝 놀랐다. 염색을 알아볼 수도 있는 거였나?

그러나 나보다 더욱 놀란 것은 당사자인 루나였다.

“아! 아니요! 이 색이. 저의. 원래 머리카락. 색이에요!”

아아. 또 세실어인가.

“그런가요? 제가 잘못 본 모양이군요.”

에스틸리아 교수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침대 옆의 협탁에 내려놓았다.

종이와 펜, 그리고 편지봉투였다.

“필요한 일이 있을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잠시 후에 엘리시아 특별 교수가 치유실에 들를 일이 있는 것 같더군요.”

에스틸리아 교수가 루나와 세실을 돌아봤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루나 크라소타. 세실리아 크라소타.”

“네! 에스틸리아 교수님!”

“제가 1학년생을 개인 지도하는 것이 알려지면 시기하는 학생들이 생기겠죠. 안 그래도 데미안 시니야카는 마법학부의 동급생 사이에서 ‘기만자’라고 불리며 미움받고 있습니다. 괜히 더한 미움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 이 사실은 비밀로 해주시길. 아울러 데미안 시니야카가 치유실에 있다는 것도 다른 이에게는 밝히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카인 시니야카와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에게는.”

“네! 교수님!”

“이만 두 사람은 돌아가 보세요. 데미안 시니야카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루나와 세실이 걱정하는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갈게 데미안. 몸조리 잘해.”

“푸. 푹. 쉬어. 데미안.”

에스틸리아 교수와 비비안 교수에게 꾸벅 인사한 두 사람이 치유실을 떠났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나를 보며 웃었다.

“얼른 써. 편지.”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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