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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6

145. 약혼관계 – 위험

“커어어어… 퓨우우… 커어어어… 퓨우우우우…”

돌아오는 마차 안, 엘슨의 코골이가 규칙적으로 레나와 레오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걸 제외하면 마차는 조용했다. 레나도 입을 열지 않았고, 레오도 침묵을 지켰다.

어머니.

과거의 기억이 없는지라, 레오는 그녀의 묘를 보고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큰아버지와 레나의 반응으로 보아, 그들은 뭔가 아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레나는 어머니의 묘에 절을 한 이후로 말이 없었고, 엘슨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뭔가를 가리려는 듯한 억지웃음이었다.

“퓨우…”

마차 창턱에 팔을 얹고, 턱을 괸 레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엘슨의 코골이에 맞춰 뿜어진 그 한숨은 레나를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고, 레오의 심경은 더 복잡해졌다.

큰아버지는 왜 나를 어머니의 산소로 데려왔을까?

그는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이 나를 그 폐가로 이끌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회차를 여러 번 반복했음에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민서가 첫 회차 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걸 눈치로 알아낸 것이 전부였고, 그 이후로는 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머니는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데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었으니까.

창밖을 내다보던 레오는 차라리 기억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도 없으니.

레오는 괴었던 턱을 풀었다. 고개를 돌리자 레나와 눈이 마주쳤고,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에게 옅은 미소를 돌려주었다.

레나만 행복하면 된다. 나는.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그는 조심스럽게 잡아 오는 레나의 손을 느꼈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을 서로 만지작거리길 잠시, 마차가 다니카 대로에 도착했다.

“후아아암. 쩝쩝… 도착했구나. 오늘은 일하긴 틀렸으니 들어가서 더 자야겠다.”

“도망친 용병들은 어쩌시고요.”

“아 참. 걔네들을 깜박했군. 잡아 오라고 해야지.”

엘슨은 찌뿌둥한 몸을 풀며 첫 번째 골목길로 들어갔다. 곧 온갖 저주와 원망이 새겨진 담벼락이 나타나자 레나가 입을 열었다.

“이 담벼락은 왜 내버려 두고 계신 거예요? 내전이 끝난 지도 한참 지났잖아요.”

“응? 이거? 하하, 바르나울에서는 이런 글귀들을 철거하는 게 금지야. 딱히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뭐랄까… 그냥 그런 분위기가 있어. 그리고,”

– 쿵쿵.

다섯 경첩이 달린 문을 두드리며 엘슨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도 사실 속으로는 다 알아. 자기들이 엉뚱한 사람을 원망하고 있다는 걸. 그냥 욕할 사람이 필요한데, 감히 왕을 욕할 수가 없어서 하는 짓이야. 내가 괜히 용병단의 이름을 덱스터라고 지은 게 아니야. 그래도 괜찮으니까 바꿨지. 뭐, 동생의 유명세에 편승할 생각이 아주 없었다면 거짓말이다만…”

문이 벌컥 열렸다. 유안은 문을 열기가 무섭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잘 해결됐나요?”

“그래. 오히려 레오 덕분에 일감이 하나 늘었구나. 용병들을 더 고용해야겠어. 아, 그리고 아들아. 사무실에 가서 어제 도망친 그 녀석들을 잡아놓으라고 전해주겠니?”

“알겠어요. 그것만 전달하면 되나요?”

“음… 오는 길에 술도 사오려무나. 조카랑 술 한잔 안 하면 섭하지. 술은 마실 줄 알지? 그래. 마실 줄 안다니까, 비싼 거로 사 와라.”

“네. 피곤하실 텐데 주무시고 계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유안은 아버지를 들여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레나는 스쳐 지나가는 그에게 잘 다녀오시라 인사하려는데, 레오가 그녀를 살짝 가로막았다.

그는 대신 인사하겠다는 듯이 ‘손을 가슴에 얹고’ 가볍게 묵례했다.

뭐지?

레나는 의아한 눈으로 레오와 유안을 번갈아 보았다. 당연히 착각이겠지만, 순간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본 것만 같았다.

* * *

“하압!”

레나의 검이 빠르게 내리꽂혔다. 설각사록을 사냥하며 보았던 레오의 검격이 그녀의 손에서 어설프게나마 펼쳐지고 있었다.

한 번 더.

“하압!”

레나는 느릿하게 검을 들어 올린 뒤, 바짝 집중하며 다시 검을 내리그었다. 그녀는 검 한 번을 허투루 휘두르는 법이 없었다.

몇 달간 수백 번을 휘두른 결과, 레나는 이 검격에 담겨있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강박적인 마음가짐. 오로지 검의 궤도에만 온 신경을 쏟아야 하는, 순수하게까지 느껴지는 고집이 여실히 묻어나왔다.

‘레오가 이런 사람이었나?’

이걸 깨달았을 때, 레나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그가 아는 레오는 젊잖지만, 의외로 챙길 것은 다 챙기는, 실리적인 인간이었다.

그런데 최근 레오가 보여준 검술에는 전혀 다른 인간성이 묻어 있어서, 레나 아이나르는 그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레오한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연인의 은밀한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기쁘다.

레나는 고개를 돌렸다. 대여섯 발자국 옆에서는 레오가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훈련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검을 다루기보다는 몸을 만들기 좋은 체술을 반복하고 있다.

‘저게 기본이긴 하지만… 검술 실력은 그만하면 됐다는 걸까?’

궁금해하며, 레나는 잠시 주저앉아 땀을 식혔다. ‘히베루나’라는 아카이아 제국의 전통 체술 동작을 차례차례 펼치는 레오를 구경하다가 벌떡 일어나 그를 덮쳤다.

“얍! 죽어라!”

레나의 주먹이 날아갔다. 왼쪽 겨드랑이 아래, 갈비뼈를 노리고 날아간 그 주먹은 레오의 팔꿈치 가드에 막혔고, 빙긋 웃는 레오의 얼굴이 보였다.

“합!”

레오의 주먹이 정직하게, 레나의 얼굴로 다가왔다.

느릿한 공격.

레나는 그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저건 주의를 끄는 용도고, 곧 가드한 팔로 공격해올 것이다.

레나는 방금 내디딘 오른발을 축으로 빙글 돌았다. 레오에게 등을 기대듯 회전하며 왼팔 팔꿈치로 그의 머리를 찍었지만, 레오라고 가만히 맞아줄 이유는 없었다.

그는 오른걸음 스텝을 밟아 왼쪽으로 돌아 들어오는 레나를 정면에 놓았다. 날아오는 팔꿈치를 고개 숙여 피하곤 땅을 박찼다.

레오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실전이었다면 안면에 무릎을 꽂아 넣어줬겠지만, 레나는 그의 등을 탁탁! 때렸다.

“야! 들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재미없게스리.”

“하하하. 그러게. 이대로 마당 한 바퀴나 돌아볼까?”

“뭐어? 야! 야!”

레오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둘러메진 레나는 “이것 놔! 진짜 이러기야?” 외치며 바둥거려봤지만, 레오는 멈추지 않았다.

“아야야야, 레나. 아퍼.”

“아프면 내려놓든가.”

레나가 더듬더듬, 레오의 귀를 찾아 잡아당겼다. 그는 이내 레나를 내려놓았고, 레나는 핀잔을 늘어놓으려 했는데, 레오가 그녀를 와락- 포옹했다.

토닥토닥, 나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주는 레오의 가슴은 넓고, 포근했다. 하지만,

“흠흠… 저기…”

“꺄앗!”

하인 아저씨가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주인님께서 레나 님과 도련님을 불러오라 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곤 서둘러 자리를 비워주었지만, 레나는 레오를 밀쳐버린 지 오래였다.

“…응큼하긴.”

“하하. 미안해.”

레오가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뜨겁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며 키스를 청했고, 레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 * *

“왔구나. 한 잔 받아라.”

레나와 레오는 우물에서 세수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식탁에는 갖가지 안주와 술잔이 놓여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슨이 술을 채우자 레나와 레오는 값비싼 크리스탈 잔을 공손히 받아들었다.

엘슨의 옆자리에는 유안이 앉았는데, 그는 자신의 술잔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조카랑 조카며느리를 데리고 술을 마시는 날이 올 줄이야. 세월이 무상하면서도 기쁘구나. 그런데 너희들은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 약혼한 지 일 년쯤 됐지?”

“네. 하지만 결혼은…”

“저희 둘 다 기사가 된 다음에 할 거예요. 그때까지는 미루려고요.”

레오의 말에 레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를 빤히 들여다보는데 엘슨이 말을 받았다.

“기사가 된 다음이라… 파하하하. 자신만만하구나. 하기야, 아직 실력은 못 봤다만, 자작의 기사를 잡을 정도면 레오 너는 이미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겠지. 그럼 입단 시험을 볼 생각이냐?”

레오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 답했다.

“아니요. 마우닌 대회에 출전하려고요.”

아스틴 왕국에서 기사가 될 방법은 귀족가의 기사가 되는 걸 제외하더라도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여느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왕국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치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우닌 대회’라는, 아스틴 왕국에서 매년 초여름에 행해지는 대회에서 입상하는 방법이었다.

본래 이 마우닌 대회는 ‘마우닌-레티이 대회’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제국으로부터 북부를 독립시킨 마우닌 왕과 레티이 여왕의 업적을 기리며, 아스란 왕국의 건국일에 행해지는 것이었는데, 구일 전쟁이 끝나고, 아스란 왕국이 아스틴&아스터 왕국으로 분열되면서 이 대회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두 왕국에서 동일한 대회를 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스틴 왕국에선 마우닌 대회로, 아스터 왕국에서는 레티이 대회로 나누어 개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회라… 별로 좋은 선택 같지는 않구나.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대회를 통해 기사단에 입단하면 좀 고달플 거다. 특히 레나는 더더욱.”

엘슨이 우려 섞인 눈으로 레나를 곁눈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회에서 입상해 기사가 된 이들은 차별받았다.

아무리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왔다지만, 기사가 되기엔 실력 미달인 경우가 왕왕 있어서 입단과 동시에 낙인이 찍히는 것이었다.

이는 기사단의 편제가 두 기사를 사수와 부사수로 묶은 팀을 기본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레나처럼 야만인 부족의 전사 출신이라면, 아예 대놓고 깔보이기 십상이었다. 네까짓 것이 도끼나 쓰지, 검을 들어 뭣하겠느냐는 업신여김이다.

“전 괜찮아요!”

레나가 당차게 외쳤다. ‘레오는 내가 결혼을 미루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 생각하며 호기롭게 말했다.

“실력이 모자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데도 차별하는 게 치사하고 좀스러운 행동이에요. 그걸 지레 겁먹고 피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실력을 증명하면 차차 나아지겠죠.”

“글쎄…”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세상이 그리 쉬운가. 아주 뭣 같은 기사의 종자로 살아본 엘슨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뭐, 각오가 되어 있다니 내가 할 말은 없구나. 너희가 꼭 대회에서 입상하리란 법도 없고 말이야. 파하하하하. 그런데 잠깐만…”

엘슨은 짓궂게 사실을 꼬집어놓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올해 마우닌 대회가 열릴는지 모르겠구나. 전쟁 때문에 어쩌면 안 열릴 수도 있어. 생각해보니 대회 개최 공고를 본 적이 없구나. 마우닌 탄생일까지 한 달쯤밖에 안 남았는데… 이건 내가 한번 알아보마.”

그 이후로는 별다를 것 없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말이 많은 엘슨은 사소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떠들었고, 그의 아들, 유안은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보기보다 주량이 딸리는 엘슨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큰하게 취한 레나도 그만 자러 방에 들어가는가 싶더니

“레오. 같이 잘래? 으음~ 방이 혼자 쓰기엔 좀 넓드라구…”

라며 은근하게 레오의 손을 붙들었다. 잠시 망설이던 레오는

– 딱!

“아야! 왜 때려!”

레나의 이마에 딱밤을 때려 넣었다.

“그냥. 하하하. 잠깐만, 나는 우물에서 몸 좀 씻고 올게.”

“우씨. 꺼져. 못 들어와. 내가 미쳤지. 오기만 했담 봐라.”

레나는 씩씩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레오는 닫힌 문에 손을 대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안에서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각오를 다졌다.

레나. 이번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

빙글, 몸을 돌린 레오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바깥에 있는 우물가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고, 앞에서 아직도 크리스탈 잔을 물끄러미 돌려보고 있는 유안에게 대뜸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브리나 자작보다 더한 위험을 미연에 치워버리기 위함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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