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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6

146화 지난 듀얼의 우승자 (1)

146화 지난 듀얼의 우승자 (1)

나는 요즘 생각에 잠길 시간이 많다.

“정신이 드니? 데미안.”

거의 매일,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당해 치유실로 실려 오기 때문이다.

“왼쪽 어깨와 팔이 통째로 얼어붙었었어. 빠르게 치유하지 않았으면 절단해야 했을지도 모른단다. 에스틸리아가, 아니, 에스틸리아 교수가 화속성 마법으로 적당히 녹여둔 덕분이기도 하고.”

나는 최근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비비안 교수와 에스틸리아 교수는 아르카넘 홀의 마법학부 동급생이었다고 한다.

“······에스틸리아 교수님은 원래 저렇게 미친 여자였나요?”

계속되는 부상 때문이었을까,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비비안 교수는 동그랗게 눈을 뜨더니, 이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고는 에스틸리아에게는 비밀로 해줄 테니 절대로 그 말은 그녀 앞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란다. 그래서 평소에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거야.”

“내가 뭘 싫어하는데?”

흠칫 놀란 나와 비비안 교수가 출입문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고양이 같은 눈을 뜨고 선 에스틸리아 교수가 있었다.

“왔니? 그런데 너, 개인 지도를 조심히 해야겠어. 어떻게 하루를 거르지 않고 제자가 치유실 신세를 지게 만드니?”

비비안 교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무척 당황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처음으로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반말하고 있었으니까.

비비안 교수도 그것을 느꼈는지 곧장 어투를 바꿨다.

“아무튼 주의해 주세요. 아무리 에스틸리아 교수라도,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교장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칫.”

에스틸리아 교수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치유실을 떠났다.

뭐야. 저렇게 갈 거면 애초에 왜 들어왔던 건데.

“네가 걱정돼서 왔을 거란다.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여리거든. 그녀는.”

나는 비비안 교수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저런 미친 사람이 남을 걱정한다고? 마음이 여리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글을 이렇게밖에 못 쓰는 거니? 평생 편지 한 번 안 써본 거야? 그래서 그렇게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아무래도 너는 마법이 아니라 문학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지난번에 편지를 쓸 때도 에스틸리아 교수는 나를 지독하게 타박했다.

내용 중 어디를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도 일일이 지적했다. 심지어 필체가 마음에 안 든다며 처음부터 다시 적으라고도 했다.

‘네? 저더러 우편배달부를 하라고요?”

‘불만인가요? 당신은 어차피 아르카넘 홀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쭉정이일 뿐이라는 거, 설마 당신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요?’

‘쭈, 쭉정이라니! 여, 옆에 학생도 있는데 그런 심한 말씀을 하시면······!’

‘호오. 그렇다면 실력을 증명할 기회를 드리죠. 장소는 지난번처럼 제 개인 연습실로 하면 되겠죠? 지금 당장 그리로.’

‘힉! 히익! 자,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다, 다시는 교수님 말씀에 토 달지 않겠습니닷! 히익! 힉······!’

그렇게 나는 엘리샤의 슬픈 과거를 알게 되었다.

엘리샤도 나처럼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가루가 되도록 얻어터진 경험이 있는 것이다.

나는 엘리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아무튼 데미안. 오늘도 너는 치유실에서 자야겠구나. 아예 기숙사의 짐을 이리로 옮기는 것이 어떠니?”

비비안 교수가 장난치듯 웃으며 내 곁을 떠났다.

나는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요즘 내가 떠올리는 주제는.

‘제국 서부의 움직임.’

나는 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소설에서 카인의 주 활동무대가 제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머지않아 제국 서부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할 것이다. 그 바람은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 플랑브아즈를 포함한 여러 강력한 가문으로 구성된 거대 연합을 일구어내기에 이른다.

‘자유의 왕관.’

이름 그대로 ‘자유의 왕관’은 제국으로부터 독립해 자신들의 왕국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합이다. 훗날 오필리아 플랑브아즈는 연합 내에서 상당한 권력자가 된다. 그에 따라 아리엘도 연합에 가담하고, 카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카인은 아리엘을 포섭해 자신의 측근으로 만든다. 당시의 카인이 표면적으로나마 자유의 왕관과 동맹 관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카인은 루나, 세실, 아리엘과 함께 암영과 모르가나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암영의 살수들과 어둠의 군대, 그리고 제국 동부의 병력과 맞서 싸운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진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카인은 모르가나와 함께 어느 장소에 다녀오고, 머지않아 흑화해 자신의 모든 동료를 살해한다.

‘모르가나는 분명 그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어.’

나는 아직 모르가나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흑기사는 만났다.

지난번 모르가나의 마법진에서 암영과 흑기사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그들은 협력 관계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어쩌면, 일루산이 말한 ‘그림자 군주’가 흑기사인지도 모른다.

‘군주는 세실을 노리는 건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가 세실을 어떤 목적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뿐.’

‘그런 위험한 자로부터 내가 세실을 지킬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너는 그와 닮았다.’

일루산은 내가 그와 닮았다고 했다. 물론 일루산이 말한 ‘그’는 그림자 군주를 뜻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흑기사일 가능성은 크다. 그는 나의 아버지니까.

‘군주의 정체가 뭐지?’

‘너에게 많은 것을 밝힐 수는 없다. 다만 그는 위험한 존재다. 그가 주시하는 하센베르크의 망자 또한 마찬가지다.’

일루산은 내게 많은 것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왜일까.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럴 리가. 일루산은 내게 세실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되도록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편이 세실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알려주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겠지.

어쩌면 그림자 군주는.

“나는 이만 퇴근해야겠구나. 아르카넘 듀얼 준비도 좋지만 몸 생각도 하렴. 젊을 때 너무 몸을 혹사하면 늙어서 고생한단다? 그럼 푹 쉬렴, 데미안.”

비비안 교수가 친절하게 웃으며 치유실을 떠났다. 백의의 천사란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아아, 에스틸리아 교수가 저 친절함의 반의반만 가지고 있어도 좋으련만.

나는 아르카넘 듀얼에 관한 것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일단 눈앞에 닥친 문제는 그거다. 사실 문제라고 할 것은 없고, 기왕 출전하기로 한 듀얼이니 가급적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을 뿐이지만.

‘아니. 지금 단련해 두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나는 마법에 재능이 있다.

조금 놀라운 일이다. 내가 알기로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육체를 단련할수록 마법을 운용하는 데 어떤 ‘저항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육체를 단련했음에도 마법학부의 동급생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다.

카인도 마찬가지다. 녀석은 아직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나와 버금갈 만큼 육체를 단련했다. 그런데 녀석은 아리엘 다음가는 마법사가 됐다.

‘소드 엑스퍼트가 아니라서 그런 건가?’

나보다 육체 단련도가 낮은 이유로 더 강한 마법사가 됐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나도 소드 엑스퍼트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강해졌을까.

물론 나는 육체 단련을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검과 마법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검을 택할 것이다. 나는 마법보다는 검이 좋다. 어차피 내게는 소서러의 마력도 있다.

그러나 당분간 나는 육체를 단련한 것을 후회할 예정이다.

이유?

에스틸리아 교수의 개인 지도가 너무 가혹하니까.

***

시간은 금세 흘렀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찾아왔고, 나와 루나와 세실과 카인은 17세가 됐다.

우리는 생일에 진수성찬을 맞이했다. 카인의 생일을 미리 알게 된 아리엘이 플랑브아즈 저택에 서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헤헤. 이거 먹으면 키가 더 크겠다. 그치 세실리아.”

“으. 응.”

루나는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약간 배가 볼록해진 루나는 정말 귀엽다.

우리는 아르카넘 홀의 교정에 동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앙투안과 미아도 함께였다.

“고마워 아리엘.”

“아니야. 생일 축하해 카인.”

카인과 아리엘은 더 가까워졌다. 루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눈에는 루나가 두 사람을 자꾸 흘끔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궁금했다. 카인은 아리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일까.

소설 속의 카인은 아리엘을 철저히 이용했었다. 물론 동료로서의 유대감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인이 마음을 연 대상은 오직 루나뿐이었을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데미안도 생일 축하해.”

아리엘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답하며 생각했다. 아리엘이 내게 친절한 이유는 나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카인의 동료이기 때문일까.

“근데 아리엘. 너는 생일이 언제야?”

“나는 겨울이야. 조금 더 지나야 해, 루나.”

“언제인데? 알려 줘. 우리도 네 생일 챙겨줄게. 응?”

아리엘은 머뭇거렸지만 루나가 집요하게 묻자 결국 생일을 밝혔다.

“앗! 눈의 축제와 겹치잖아!”

공교롭게도 아리엘의 생일은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페스트의 마지막 날이었다.

“우와! 그러면 아리엘의 생일날 무도회가 열리는 거네?”

루나의 말에 얼굴을 붉힌 아리엘이 슬쩍 눈동자를 굴려 카인을 봤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도회 ‘프로스트 갈라(Frost Gala)’는 아르카넘 듀얼과 블레이드 듀얼과 함께, 최근 학생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주제였다.

“너도 프로스트 갈라에 관심이 있는 거야? 루나.”

“당연하지 데미안! 엄청 기대돼! 세실리아도 요즘 그 얘기뿐이야!”

“루. 루나······!”

블레이드 듀얼과 아르카넘 듀얼의 우승자는 무도회 당일에 교복이 아닌, 특별한 옷을 입는다고 한다. 남학생은 검은 턱시도. 여학생은 눈처럼 새하얀 드레스.

종종 듀얼의 두 우승자가 서로를 선택하는 일도 있는데, 그때는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요즘 부쩍 가까워진 비비안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로, 그때의 비비안 교수는 소녀처럼 행복해 보였다.

나는 루나와, 세실과, 아리엘이 흰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상상해 봤다. 저들 세 사람은 우승도 노려볼 수 있는 실력자니까. 실제로 1학년에서 우승자가 나오는 일도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지난 아르카넘 듀얼, 즉 3년 전의 우승자도 1학년이었다고 들었다.

.

.

.

“아. 탈리야 말이로구나.”

비비안 교수가 내 팔에 붕대를 두르며 말했다.

나는 오늘도 치유실에서 잘 운명이다.

“그래. 정말 빼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지. 에스틸리아 교수도 인정하는. 하지만 데미안. 혹시 아르카넘 듀얼에서 탈리야를 상대하게 되면 각별히 조심하렴.”

“왜요?”

비비안 교수가 주저하듯 답했다.

“그 아이와 겨룬 학생은 대부분 크게 다쳤거든.”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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