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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7

147화 집단지성

나주 토박이 농사꾼이자 만신전 소속 생명과 풍요의 사제 최 영감은 레온이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부터 그의 신자였다.

마소에 오염되어 불모지가 되어버린 땅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것이 몇 년인가.

나주 땅에서 땅을 잃고, 마탑의 비싼 정화제를 계속 들이붓고 빚에 허덕이던 이들이 수십이다.

어디 나주뿐일까. 한국 여기저기가 마소에 오염되었었고, 그것이 비단 농부들뿐 아니라 살 곳을 잃어 타향살이를 하던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더랬다.

그들의 희망은 언젠가 오염된 땅을 정화할 강력한 정화제가 나와 구제받는 것.

하지만 나랏님도 마소로 오염된 땅을 어찌하지 못했고, 기약 없는 공허한 약속만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짐이야말로 사자심왕. 만신을 대리하는 자이며 영광의 기사들을 대표하는 기사왕이다.」

하지만 그때, 그분께서 나타나셨다.

마탑의 마법사들도 해내지 못한 땅을 정화하셨고, 이 땅에 생명과 풍요의 여신님을 강림시키셨다.

축복받은 작물을 처음 섭취했을 때의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만년 허리통증은 물론이오, 간 경화나 틀니로 대체했던 이빨도 새로 돋았다. 옆동네 김 영감은 치매도 나았다던가.

농촌 지역의 인구는 대부분 노인들이다. 요즘 같은 스마트 시대에 젊은이들이 부족한 것은 세계공통이다.

노인들은 금방 아프고 쉽게 다친다. 인생의 전성기를 떠나보내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들에게 레온의 존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다.

그들은 젊어졌고, 건강해졌으며, 전성기에도 내지 못한 힘을 얻었다.

여신께서 축복하신 작물을 섭취하고, 신들의 고매한 강령을 따르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갖가지 축복들이 함께했다.

“최 영감!”

“어, 박씨.”

최 영감은 마을의 농기구나 트랙터를 수리하는 박씨의 공방에 다가갔다.

철물점을 운영하며 고장 난 트랙터 수리나 하던 그는 만신전의 수혜를 크게 받았는데, 철과 대장장이의 신 헤토 님을 신앙하며 그 품질이 크게 올랐던 것이다.

“뭐 하고 있는감?”

“이번에 야피 경이 개량한 트랙터 좀 손보고 있었지.”

야피는 주마다 홀로그램 드론을 이용해 만신전 신도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박 씨는 그중에서 철과 대장장이 신관으로서 속성교육을 받는 중이었고.

“이번에 집안에 텃밭 마련하는 양반들 있지 않나. 거기에 쓸 낫하고 호미 좀 만들었는데 어때? 몇 개 사갈 텐가?”

“흠…….”

최 영감은 고민에 빠졌다. 교리상 땅의 소산을 십구조가 적용되지만, 12평 남짓의 소규모 텃밭에서는 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 그런고 하고 폐하께 물으니 개인 텃밭은 본토 농지의 연장선으로 보지 않고 개인 취미로 본다는 모양이다.

이제는 나주평야 데메라 교단 최고신관이라 할 수 있게 된 그는 생각보다 만신전의 교리가 그리 빡빡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규제와 규율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양심과 선의에 의존한단 말이지.’

악용하려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다소 허점이 많은 체제다. 하지만 최 영감은 오히려 그것이 맹점이라 봤다.

부정한 놈들은 뒈진 다음에 영혼이 갈갈죽 될 테니 말이다.

“저, 안녕하십니까?”

그때였다. 한국의 시골농촌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코쟁이 백인이 찾아온 것은.

“으잉? 뉘시오?”

“아, 저는 유엔 조사관인 데니스라고 합니다.”

“유우엔?”

“왜, 이번에 감찰단인가 뭔가하는 거 온다고 하지 않았수?”

그러고 보니 만신전의 하리 신녀님으로부터 유엔에서 감찰단인가 뭔가가 온다고 들었더랬다.

만신전이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가지고.

최 영감과 박 씨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다름이 아니라──”

데니스는 최대한 지역주민에게 친화적인 태도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무려 십구조를 강제하는 만신전 소속의 신도들이다. 분명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어따~ 유럽 양반이 울 마을에 관심이 많은가벼~”

“허긴 우덜 마을이 요즘 잘나가긴 하지~”

목소리는 친근했으나 두 영감의 시선은 매처럼 날카로웠다. 그러다 데니스가 조심스럽게 화제를 유도했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 보아하니 이국적인 분들이 많은데, 다들 외국인 노동자신 겁니까?”

데니스는 그들의 정체를 알았다. 그야 그렇다. 그들은 반인반마. 이를테면 악마추종자인 자신의 선배들이니까.

그들이 이런 냄새나는 시골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는 꼴을 보자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녀. 폐하께서 우덜 같은 늙은이들 일 좀 편하게 하라고 하사하신 것이여~”

“하사… 요?”

옳커니! 데니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분들은 만신전의 신도님이십니까?”

“…….”

최 영감은 홀홀 웃는 낯으로 침묵했다. 데니스는 게슴츠레한 노인의 시선에 흠칫하면서도 좀 더 질문의 수위를 올려갔다.

“월급은 어떻게 되는지, 노동환경에 대해 조금만 질문을──”

“허~ 이 양반 말하는 싹퉁머리 보랑께? 어찌 그리 폐하하고 우덜 사정에 관심이 많으실까?”

발끈한 박 씨의 목소리에 당황하는 데니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여! 저짝의 춘식이들을 우덜이 착취라도 하고 있다는 거여!!”

박 씨가 대뜸 낫을 들고 들이대자 데니스는 식겁하며 물러섰다. 미친 영감탱이, 성력이 깃든 무기로 뭣 하는 짓인가!

“제때 밥 처먹여주고 재워주면 해줄 것 다 해준 거시지! 에잇 싯펄! 촌바닥이라고 조까치 보는 거시여 뭐여!”

“그만허이.”

“최 영감…!”

“어허, 그리 승질머리를 주체하지 못해서야 폐하께 부끄럽지 않은가.”

“끄응…….”

최 영감은 못마땅한 듯 도끼눈으로 데니스를 노려봤다.

“유우엔 양반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나가 애들헌티 마을 구경 좀 시켜줄랑께.”

“아, 예… 예에…….”

데니스는 워낙 극성인 박 씨 탓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등을 응시하며 최 영감이 말했다.

“박 씨.”

“예.”

“애들 연장 챙기라 그래. 오늘 밤, 거사를 치러야겄구만.”

유엔 감찰단. 그들은 시골의 닫힌 사회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껴봐야 했다.

* * * *

그리하여.

유엔 생존자 인권 감찰단이 주변을 들쑤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주민들은 오밤중에 그들이 묵는 숙소를 급습해 루이제 사무관과 감찰단 직원들을 매달았다.

“죽이랑께!”

“마귀를 매달랑께!”

“저 시방것들을 태워죽여야 한당께요!”

주민들의 광기어린 집단지성과 폭거에 루이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이 정녕 선진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이란 말인가?

아무리 시골이라도 그렇지 유엔에서 파견된 감찰단을 이렇게 매단다고?

“말도 안 돼!”

그동안 인권조사를 하면서 틈틈이 목숨의 위협을 받거나 자료를 탈취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구는 군인들을 몇 번이고 마주친 루이제였다.

하지만 이렇게 태워 죽이겠다고 매달리는 꼴은 결코 없었다.

“다, 다들 진정하세요. 대체 무슨 일이죠? 저희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루이제는 일단 폭도들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의 필사적인 외침은 전혀 먹히질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맞다! 통역장치를 놓고 왔어!’

하리가 건네준 통역장치. 다급하게 끌려오느라 차고 오질 못했다. 이러다가 꼼짝없이 화형당하게 생겼──

-끼룩!

그때였다.

꼼짝없이 화형당하려던 유엔 감찰단 앞에 앙증맞은 미니멀 사이즈의 기계거미가 다가온 것이다.

“야피 경!”

“기사님 오셨습니까!”

야피가 등장하자 일제히 쭈욱 갈라서는 주민들. 방금까지 광기에 차 있던 충혈된 시선은 존경과 존중이 대신하고 있었다.

-무슨 일임?

“저놈들은 마귀입니다!”

박 씨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주민들.

“저놈들이 만신전의 폐하께서 사람을 학대하지 않았냐고 들쑤시고 다녔당께요!”

“씨불장 것들이 말이여. 아주 모옷된 짓거리라고 편파보도하려 드는디 저희가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요!”

“무, 무슨…!”

루이제는 억울했다. 이 정도 주변 탐방이야 기자들도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것이 그들의 맹점을 찌른 것일지라도 보통은 입을 꾹 다물거나 내쫓는 선에서 끝났다.

이렇게 사람을 매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야, 야크트 스피너 경! 이런 부당한 만행을 두고 보실 생각이신가요!”

루이제는 그나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기계거미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래, 주민들은 그렇다 쳐도 니들이 그러면 안 되지!

-끼룩. 재판을 시작한다.

“예?”

“미, 미친! 미친 짓입니다!”

“저희들은 유엔 소속입니다! 무슨 법으로 저희들을 재판하겠다는 겁니까!”

-본기는 만신전의 성배기사.

“예? 그게 어쩠다고요?”

-만신전의 성배기사는 법 위에 있음.

“뭣?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와아아아아아…!”

“마귀들을 심판하라!!”

성난 주민들의 환호성에 묻히는 항의. 야피는 곧장 이단 재판을 시작했다.

-피고인들에게는 본 판사가 실시간으로 통역하겠음. 증인 앞으로.

야피의 말에 가장 먼저 나선 건 철물점 박씨였다.

야피의 홀로그램 강의를 들으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그는 먼저 철과 대장장이 신의 성배기사인 야피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쇤네는 마을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창호라고 합니다.”

-ㅇㅇ

그래, 대체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루이제와 유엔 직원들이 일제히 박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 그가 느닷없이 삿대질로 고성을 질렀다.

“저 연놈들은 마귀가 들렸습니다!”

“예?”

“아니, 느닷없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마귀라니요!”

유엔 직원들의 항의에 박 씨는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저 허여멀건 놈! 재수 없게 생긴 눈깔 파란 놈이 갑자기 찾아와 그럽디다! 폐하께서 무고한 사람들을 학대하지 않았느냐고요!”

“아, 아니,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폐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다 망해가던 우리 마을을 살려주신 분 아닙니까! 신들을 우리와 이어주신 분 아닙니까!”

그런 분한테 인권탄압 혐의라니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옳소!””

박 씨의 말에는 논리가 없었다. 하지만 광신이 들어찬 주민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음 증인.

“생명과 풍요의 여신 데메라 님을 섬기는 미천한 종 최덕수입니다.”

이번 폭동을 주도한 최 영감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매달린 유엔 감찰단들을 쳐다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저놈들은 마귀입니다.”

-근거는?

“마귀를 마귀라 하지요. 제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뭐이런 미친 영감탱이!”

“왔더뻑! 알유크레이지?!”

“저저씨불장놈이 감히 최 영감 욕한 거여?”

“죽여버려라! 마귀를 꺼내 불에 태워버려라!”

당연한 항변을 했다가 되로 얻어맞는 감찰단. 그들은 점점 거칠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위축되었다.

“제가 저들을 의심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게 무엇임.

“제가 반마 놈들을 보건데 그 눈깔이 마귀의 눈깔 그 자체였습니다. 사악하고 추잡하고 더러운 마귀의 눈깔 말입니다. 헌데…….”

최 영감은 조용히,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데니스를 가리켰다.

“저 양놈들도 눈이 게슴츠레한 것이 마귀의 눈깔이옵니다!”

“뭐라는 거야, 이 노망난 늙은이야! 난 눈이 원래 이래!”

“닥쳐라, 마귀눈깔아!”

데니스는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저 영감탱이가 귀신같이 알아맞추기는 했는데, 마귀 눈깔 같아서 마귀라니?

논리 따윈 개나 줘버린 헛소리 아니던가!

“제 촉이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연놈들은 마귀가 분명합니다요!”

최 영감의 증언이 끝나자 주민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환호했고, 억지 증언들이 이어졌다.

“저희 집 누렁이가 저 마귀년놈들 오고 나서부터 밥을 안 먹습니다!”

“누렁이가 밥을 안 먹는 게 저 마귀의 소행이 분명하구만!!”

“아니, 댁네 소가 밥 안 먹는게 왜 우리 잘못──!”

“”닥쳐라, 마귀야!!””

-왕왕!

“저희 집 똘이가 저 마귀놈들 보면서 짖는 거 좀 보십시오! 저것들이 마귀라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고럼! 개는 영험한 동물 아니든가! 마귀를 알아보는 것이여!”

“개가 짖는 거 가지고 무슨──”

“”닥쳐라, 마귀야!!””

-피고인들. 반론 있음?

야피가 기회를 주자 루이제는 다급하게 외쳤다.

“부당합니다! 저희들은 결코 마귀가 아닙니다!”

루이제는 인권을 중시하는 유엔의 사무관으로서, 그녀가 평생 해오던 것들의 근거를 대며 말했다.

설령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 인권이 존중되어야 할 필요성과 과도한 형벌주의가 낳을 세계.

논리적이고 쳬계적인 그녀의 반증은 누구나가 납득 할 만했다.

-인정함. 논리적으로 부당하지 않음.

야피는 그들의 논리를 인정했다. 기계적인 논리의 괴물은 합당한 논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새끼들 마귀임. 내가 봤시유.”

“인정. 마귀 인정.”

“저거 마귀라는데 내 손목을 걸겠다!”

무질서한 집단지성. 그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인정함.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성이 있음. 고로.

야피는 합리적이라 보고 판단을 유보했다. 누가 봐도 폭거에 가까운 재판을 기각하지 않았다!

“대, 대체 무슨 생각이죠? 저, 저희들을 고문이라도 하려는 겁니까! 그런 건 결코 세계가 인정하지 않을──”

-불에 태워본다.

“……예?”

“와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야피 경! 명판결입니다요!”

느닷없는 화형선고. 루이제와 유엔 직원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불에 타면 마귀. 아니면 사람임.

“야이고철새끼야!!”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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