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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7

146. 약혼관계 – 간파(1)

“나가라. 이제 이 저택은 클라우스 왕가의 소유다. 네까짓 것들이 머물러도 되는 곳이 아니다.”

왕실 근위병이 고압적인 태도로 손가락질했다. 그 대상이 된 소년은 부르르, 솟아오르는 모욕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떨었다.

여긴 내 집이다.

내 부모님의 유산이고, 우리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재산이다.

하지만 수 개월간의 경험으로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꺼지라면 꺼지고, 기라면 턱까지 땅에 대어야 하는 신분이 되었다는 것을.

이를 악물며, 소년은 돌아섰다.

일개 병사에게 단 한마디의 반론조차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만 하는 자신이 처참하게 느껴졌으나, 병사의 무례한 요구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잠깐. 그 옷들도 벗어라.”

근위병은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거지들에게 명했다.

이 저택에 있는 옷을 가져다 입었는지, 눈앞의 거지들은 천이 많이 들어간 값비싼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다.

거지 소년들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옷을 여상히 벗어 던졌다.

주홍 눈동자의 소년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원통함에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결국,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갈색 코사쥬(Corsage, 조끼)를 벗었다. 끈을 풀어 위아래 블리오(Bliaud, 겉옷의 일종)까지 벗자 지저분한 속곳과 함께 소년의 얇고 하얀 알몸이 처량하게 드러났다.

다른 거지들이 각자의 누더기를 찾아 갈아입는 사이, 그는 갈아입을 옷이 없어 망연자실했다. 지금 바닥에 깔린 옷들이 전부 그의 것이었음에도.

기어이 유안은 고개를 들고야 말았다. 앙상한 뺨으로 눈물을 흘러내리며 수개월 전의 과거를 떠올렸다.

+ + +

“어머니! 아버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유안이 소리쳤다. 난장판이 된 저택을 뛰어다니며 부모님을 찾았으나,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너! 내 부모님을 찾아와라. 당장!”

유안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를 섬겨온 시종과 시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당혹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는가 싶더니 청년이 퉁명스럽게 뱉었다.

“제기랄. 역시 망했네. 어쩐지 생활비가 안 온다 했어.”

“이제 어떻게 하지?”

“어쩌긴. 가문도 망하고,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데 가져갈 수 있는 것만 챙겨서 떠나야지.”

“내 말이 안 들리느냐! 당장 가서 부모님을 모셔오지 못할…!”

– 짜악!

시종이 차가운 눈으로 유안을 돌아보았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뺨을 후려쳤다.

청년의 매서운 손찌검에 깜짝 놀란 유안은 뺨을 붙들고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좀 심한 것 아니야?”

“심하긴. 이 싸가지없는 귀족 새끼 뒤치다꺼리한 것만 생각하면 이가 갈려. 야. 너희 집 망했어.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리네.”

“이,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가, 감히 귀족을…! 죽고 싶으…”

– 짜악!

“뭐 어쩔 건데. 앙? 어쩔 거냐고? 질질 짜면서 기사님이라도 불러 보시던가요. 다 뒈지고 없겠지만.”

청년은 고개 숙여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검지로 유안의 이마를 밀치며 이죽거렸는데, 그의 표정에는 유안이 익히 보아온 미소가 아닌 순수한 경멸이 담겨있었다.

뒤에 있던 시녀가 말했다.

“그만둬. 빨리 짐이나 챙기자. 뭐라도 건져야 할 것 아니야. 벌써 누가 다 훔쳐 가고 없네.”

훗, 코웃음 치며 시종이 돌아섰다. 그와 시녀는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유안을 무시하고 저택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씨. 보석함도 없어졌네. 야, 거긴 뭣 좀 있어?”

“진열장도 다 비었어. 그림도 다 떼어갔고. 넌 뭐 아는 것 없어?”

“으음… 부엌에 가보자. 시녀장이 몰래 드나드는 걸 봤어.”

시녀와 시종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우습게도 유안은 그걸 졸졸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이쪽이었던 것 같은데…? 아! 여기 있다. 밀어 봐. 여기만 조금 흔들리지?”

“진짜네. 근데 이걸 어떻게 열지?”

“근육은 장식이야?”

“아, 그러네. 부수면 되겠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단한 나무 벽을 부술 것을 찾는데, 문가에 서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유안이 보였다.

“쟨 또 왜 저러고 있어?”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연장이나 가져와.”

청년이 유안을 지나쳤다. 시녀는 밀거든 살짝 덜컹거리지만, 도통 열리지 않는 이 나무 벽을 어떻게 하면 열 수 있을까, 주위의 물건들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청년이 사라지자, 유안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내 부모님께서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그러니 지금이라도… 용서해줄 테니 내 부모님을 찾아와라.”

까치발을 들고 텅 빈 찬장을 뒤지던 시녀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평소의 당찬 태도는 사라지고, 한없이 쪼그라든 소년이 있었다. 사실 소년이라 하기에도 조금 어려서 어린이라 부르는 게 맞았다.

시녀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도 그는 그녀가 몇 년간이나 돌봐온 공자님이었다.

삼 년 전, 왕이 의문사했다. 후계자 없이 비워진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백작님은 만약을 대비해 하나뿐인 아들을 제롬 신성왕국으로 피난을 보내셨다.

처음에는 마차를 타고, 용병단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다녔다.

제롬 신성왕국 각지의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여행했고, 잘 나가는 백작가의 후계자인 유안은 융숭히 대접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편으로 보내오던 생활비가 오지 않았다. 백작님께 받은 주머니에서 금화가 사라지고, 은화마저 떨어졌을 때는 무려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섣불리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스란 왕국에서 기어이 내전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나더러 이런 작은 마차에 타라는 것이냐? 무엄하구나!”

결국, 말과 마차를 팔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전쟁이 끝나겠지, 기대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공자님을 달래어 작은 마차로 갈아탔다.

하지만 내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화마저 다 떨어진 시종과 시녀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작은 마차마저 팔았다. 그 돈으로 겁도 없이 아스란 왕국으로 향하는 상단에 몸을 실었고, 분노한 유안은 소리 질렀다.

“날 이따위로 대접하다니. 너희들은 돌아가면 치도곤을 면치 못할 것이다!”

상황파악을 하기엔 너무 어리고, 귀족의 자존심만 고고한 공자님.

그래도 시녀와 시종은 참았다. 백작가에 이변이 생겼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그의 횡포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 북쪽에 있는 백작령에 그들의 부모님이 소작농으로 묶여 있었기에, 만약 백작이 살아있다면 자칫 큰 문초를 당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쟁통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바르나울의 저택으로 돌아와 보니… 이 꼴이었다.

시녀가 애증 어린 공자에게 바짝 다가가 충고했다.

“너, 이젠 그런 태도는 고치는 게 좋을 거야. 그래서는 살아남기 힘들걸?”

“…그게 무슨 소리냐. 고쳐야 할 것은 나를 대하는 네놈들의 태도다. 빨리 내 부모님을 찾…”

“공자님!”

시녀가 소리쳤다.

“정신 차리세요. 당신은 더 이상 잘 나가는 백작가의 공자가 아니세요. 정신 바짝 차리고 몸을 낮추지 않으면 방금처럼 뺨을 맞는 거예요. 알겠어요?”

“감히 누가 내 뺨을 때린다는 말이냐. 귀족에게 그런 짓은…”

– 찰싹!

시녀가 유안을 올려붙였다. 세게 때리지는 않았으나, 손바닥을 느리게, 내가 지금 당신을 치려 한다는 걸 똑똑히 보여준 동작이었다.

유안은 다시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맞은 뺨을 부여잡았다. 그의 작은 가슴이 숨을 얕고, 빠르게 내뱉었다.

쪼그려 앉아있던 시녀는 몸을 일으켰다. 충고는 여기까지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에도 오지 않는 조그만 소년을 잠시 내려다보고는 다시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화덕 안쪽에 있는 작은 레버를 잡아당기자 나무 벽에서 달그락하는 소리가 났다. 나무 벽은 문처럼 밀렸고, 좁은 창고 안에는 잘 말려진 각종 향신료가 가득했다.

“야! 찾았어.”

시녀는 시종을 불렀다. 가져가는 즉시 돈이 되는 도끼 같은 연장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어서 한참을 헤매던 시종이 기쁘게 웃었다.

“이만하면 넉넉하네. 부모님을 모시고 외국으로 도망치고도 남겠어.”

시종은 부엌에 떨어진 포대기 하나를 집더니 향신료 꾸러미를 마구 쓸어 담았다.

좁은 창고에 비치된 찬장이 거의 동날 때쯤, 시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왜?”

“조금은 남겨 둬.”

“왜?”

시녀는 까닥, 뒤로 눈짓했다. 시종은 뒤에 멍하니 서 있는 유안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지만, 여자친구의 말을 들었다.

포대기를 가지고, 그들은 황량한 저택을 빠져나갔다. 유안은 하릴없이 그들을 쫓아갔는데, 무언가에 막힌 듯, 정문을 넘지 못하고 소리쳤다.

“나, 나를 두고 가지 마라!”

“뭐래. 빌어먹을 꼬맹이가.”

“냅둬. 불쌍하잖아.”

“불쌍하긴. 저게 다 업보야. 신께서 벌을 내리신 거야.”

“제, 제발… 부탁한다. 부탁… 드려요. 부탁드릴게요. 저, 저를 두고 가지 마세…”

겁에 질린 유안은 무릎 꿇고 애원했으나, 시녀와 시종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근위병에게 쫓겨 유안은 저택을 떠났다. 친구의 누더기를 빌려 입은 그는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언제부턴가 그의 저택은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소년 소녀들의 소굴이 되었고, 유안은 그들과 몇 개월을 함께 살았다.

처음엔 많이 맞았다.

내 집에서 나가라며 소리 질렀던 유안은 소년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장난감이 있었던 살풍경한 방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을 울었다.

다행히 거지 소년 소녀들은 그를 쫓아내지 않았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답게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기어 나온 유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때려서 미안했다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소년도 있었다.

비루한 평민의 손길.

유안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자신이 이들과 다를 바가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이런 평민들과 부대끼고 살아야 함을 알아차리곤, 향신료가 남은 창고를 보여주었다.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값비싸고 손쉽게 팔리는 향신료는 그들에게 연명할 거리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무려 삼 년이나 이어진 내전이 끝났다. 아스란 왕국은 분열되어 서쪽에는 아스틴 왕국이, 동쪽에는 아스터 왕국이 들어섰다.

아스란 왕국의 수도, 바르나울은 살짝 서쪽으로 치우쳐 있었기에 아스틴 왕국의 소유가 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아스터 왕국의 편을 들었던 귀족들의 재산은 몰수되었다.

유안의 저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은 아스터 왕국의 편을 들었던 것이다.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나.

거지 친구들과 결별하고 정처 없이 걷던 유안의 눈에 공고문이 들어왔다. 치열했던 내전에서 공훈을 세운 귀족과 기사, 병사들의 이름과 업적을 나열해놓은 것이었는데, 빽빽하게 새겨진 그 공고문에는 부모님의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공훈자가 아닌 업적의 결과물로서.

“노엘… 덱스터.”

긴 전쟁 내내 바르나울을 떠들썩하게 울린 기사의 이름이었다.

누가 누구의 편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내전이었기에 수도에서는 암투가 끊이질 않았다. 많은 기사들이 자신의 몸과 신념을 숨기고 그 암투에 뛰어들어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개중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가 바로 노엘 덱스터. 유안까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귀족도살자’가 그의 부모님을 살해한 것이었다.

공고문 앞에서 유안은 우두망찰했다. 가슴 깊숙이에서 무언가가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는데, 어린 소년은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누더기를 걸친 소년은 조용히, 시끌벅적한 인파 속으로 걸음을 돌려 사라졌다.

* * *

“어떻게 아셨습니까?”

값비싼 크리스탈 술잔을 매만지며, 유안이 담담히 되물었다. 그는 레오 덱스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네가 라디무 절임을 맨손으로 집는 걸 보고 알았다. 그리고 내가 예법을 보이자 반응하더군. 글을 읽지 못한다고 했으면서… 넌 귀족이 아니냐. 어째서 귀족이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이지?”

“…놀랍군요.”

유안은 크리스탈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제야 레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단하신 분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고작 그런 거로 제 신분을 알아차리시다니. 제가 당신을 과소평가했군요.”

귀족은 라디무같이 천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평민들이나 먹는, 오직 연명하기 위한 음식을 입에 대는 건 고고한 귀족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의치 않게 그런 음식을 먹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귀족들은 맨손을 이용했다.

그런 음식에 고아한 예법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부끄러운 일이라, 천한 음식은 천하게, 장난치듯이 집어먹었다.

레오는 유안이 미처 버리지 못한 자존심을 간파한 것이었다.

잠시 술잔을 두드리던 유안이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제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군요. 들어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말이지요.”

레오 덱스터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팔짱을 꼈는데, 유안은 그걸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모두가 자러 들어간 밤.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청년 사이로 복잡한 눈길이 오갔다. 한 청년은 경계 어린 시선을 풀지 않았고, 다른 청년의 눈동자는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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