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47

147화 지난 듀얼의 우승자 (2)

147화 지난 듀얼의 우승자 (2)

겨울의 품에 안긴 아르카넘 홀은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건물들은 광택 가득한 눈으로 덮여 마치 눈의 여왕이 사는 성처럼 보였다. 창문마다 반짝이는 서리가 은은한 빛을 발했다.

“안 들어오니?”

“들어가야죠.”

입김이 새어 나왔다.

뚱한 눈으로 나를 보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입술에서도 입김이 흩어졌다.

“왜. 친구들과 눈싸움이라도 하고 싶니?”

에스틸리아 교수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저럴 거면 대체 왜 물어보는 건지.

“내일부터 예선전이 치러지는 거 알지?”

“알아요.”

우리는 연습실 안에서 마주 섰다.

“너는 우승하지는 못할 거야.”

아주 악담을 하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어쩌면 4강 정도는 가능할 거야. 물론 대진운이 좋아야겠지만.”

“그래도 예선 탈락할 거라는 말은 안 하시네요.”

“그런 얼간이라면 애초에 개인 지도를 하지도 않았어.”

“칭찬인가요?”

“얼간이가 아니라는 말이 칭찬으로 들리니? 너도 참 자존감 낮은 녀석이네.”

말과 달리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빛은 묘하게 따스했다.

“고위 마법은 본선이 치러지기 전에 완성되지 못할 거야.”

나는 에스틸리아 교수와의 대련 외에도 고위 마법을 추가로 수련하고 있다. 플랑브아즈 저택의 서재에서 읽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에스틸리아 교수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녀의 개인 연습실은 고위 마법을 연습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역시 그렇겠죠?”

“네가 카인 시니야카 정도의 재능만 있었어도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칫. 역시 그 녀석을 개인 지도했어야 했나.”

“······.”

“아. 들렸니?”

들리게 말해놓고서는.

“흠. 들었다면 어쩔 수 없네. 조금 미안하기도 하니, 어찌어찌 발현할 수 있을 정도로는 다듬어줘 볼까.”

나는 반색했다.

저 사람도 마음에 드는 말을 할 때가 있구나.

“그게 가능해요?”

“잊었어? 나 에스틸리아 벨라코트야. 2년 만에 아르카넘 홀을 졸업하고 최연소 교수로 부임한 천재 중의 천재.”

에스틸리아 교수가 히죽 웃었다.

“게다가 너는 이미 불완전한 고위 마법을 발현한 적이 있잖아. 입학시험에서.”

아리엘에게서 카피한 ‘불꽃의 티아라’를 말하는 것이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말을 조금 정정하자면, 불완전하다기보다는 1레벨로 열화된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미완성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 저 괴물 같은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발현해 봐. 그 고위 마법.”

“여기서요?”

“왜. 못하겠니?”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녀가 이어 말했다.

“너, 사실은 그 마법, 발현할 수 없지?”

나는 흠칫 놀랐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말씀이세요. 잊으셨어요? 저는 실습 시간에도 불꽃의 티아라를 발현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리엘라 플랑브아즈가 곁에 있었지.”

나는 본능적으로 표정 관리를 했다.

하지만 나의 경악이 그녀에게 드러난 것 같았다.

“물론 입학시험일에도 있었고. 관객석에.”

에스틸리아 교수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저럴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그동안 너와 대련하며 틈틈이, 많은 시간을 줬어. 네가 최선의 공격을 펼칠 수 있도록 말이야. 네가 정말로 얼간이가 아니라면 눈치챘을 거야. 내가 대놓고 너의 공격을 기다린 적도 많았다는 걸. 심지어 아주 조금이라도 내게 유효한 공격을 성공시키면 네가 졸업할 때까지 개인 지도를 계속해 주겠다고까지 했지. 그런데 웬걸? 너는 단 한 번도 내게 불꽃의 티아라를 발현하지 않았어. 왜일까? 왜 너는 이 연습실에서는 불꽃의 티아라를 발현하지 않는 걸까? 네가 지닌 가장 강력한 공격 마법은 바로 그것인데도.”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이 여자는 위험하다.

“그래서 생각했지. 너에게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시야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마법을 복제할 수 있다든가 하는. 뭐,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 세계는 온통 비밀투성이거든. 한낱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하다는 뜻이야. 그래. ‘소서러’의 존재를 예로 들 수 있겠지. 너도 알지? 네가 발현하려 노력하는 고위 마법도 실은 소서러의 능력을 부러워한 늙은이들이 우연히 발견한 부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에스틸리아 교수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혹한의 땅에 살고 있다는 ‘눈새’의 전설을 들어본 적 있어? 눈의 새는 존재할까? 혹시 눈새 같은 존재가 어딘가에 더 있는 것은 아닐까? 눈새와 소서러의 연관성은? 정령은? 왜 정령사와 마법사는 비슷하지만 다른 힘을 발현하는 거지? 그렇다면 드루이드는? 아스트레아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족은 모두 어디에서 왔지? 왜 대륙의 바다는 결계로 둘러싸인 걸까? 결계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먼 옛날 존재했다는 고대의 마법 왕국은 어디로 사라졌지? 왜 우리는 그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걸까?”

나는 두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딱따구리가 쉴 새 없이 귓속을 찌르는 것 같아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태고의 불꽃이여. 나의 손끝에서 피어올라······.”

내 입에서 고위 마법의 주문이 흘러나왔다.

의기양양하게 나를 보던 에스틸리아 교수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했다.

“어? 어라?”

“······불꽃의 티아라여. 나의 의지를 따라.”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이 놀란 고양이처럼 커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웃었다.

“적을 불태워라.”

내 손에서 발현된 태고의 불꽃이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

.

.

“아. 하마터면 당할 뻔했네.”

짙은 수증기 사이로 드러난 에스틸리아 교수의 몸에는 불에 닿은 흔적조차 없었다. 그녀는 아리엘의 불꽃을 막아냈을 때처럼 빙결 속성의 마법을 발현했고, 나의 고위 마법은 그것을 뚫지 못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발현할 수 있었어?”

운이 좋았다.

늘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얻어터지기만 하던 나는 반격의 실마리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이곳에 오기 전, 아리엘의 고위 마법을 카피했다.

다른 마법을 카피해 볼 생각도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엘은 통찰 스킬의 저항력이 강했다. 물론 쿠훌린이나 카인처럼 아예 스킬이 먹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검은 사각형으로 가려진 부분이 지나치게 많았다.

————————

◎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16세], [Lv.■■]

◎ 속성: [화염], [빙결], [■■]

◎ 특성: [귀족적 오만], [동화 속 사랑], [동료애], [의외의 온정], [마법 ■■력], [마력 ■■력], [■■■], [■■■], [■■력], [전략적 ■■], [■■■], [마법의 재능]

◎ 적성: [고위 마법 Lv.3], [주문 ■■ Lv.4], [주문 ■■ Lv.4], [■■ ■■ Lv.5], [■■ ■■ Lv.5], [■■■ 영창 Lv.1]

◎ 일반 스킬: [정신 집중 Lv.3], [주문 강화 Lv.5], [■■■ Lv.5], [■■ ■■ Lv.5], [■■■ ■■ Lv.3], [전격 ■■ Lv.3], [■■ 파동 Lv.3], [■■ ■■■ Lv.4], [······

아무래도 마법사는 전사보다 통찰 스킬의 저항력이 강한 듯하다.

특히 빼어난 실력의 마법사는 더욱.

“흠. 나의 가정이 틀린 건가?”

에스틸리아 교수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런데 위력이 전보다 강해졌네?”

“뭐, 매일 치유실을 들락거리며 훈련하다 보니.”

“지금 나한테 항의하는 거니?”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빛이 사나워지는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교수님. 탈리야라는 선배 말인데요. 그 선배가 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학생이죠? 동급생을 다치게 해 유급했었다는.”

“탈리야에게 관심이 있니?”

“지난 듀얼의 우승자라고 들어서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에스틸리아 교수가 말했다.

“탈리야를 이길 생각은 하지 마. 네가 무슨 수를 써도 이기지 못하는 상대니까. 만약 대진운이 나빠 탈리야를 만나게 되면 그냥 기권해.”

***

이튿날, 실내 훈련장에서 아르카넘 듀얼의 예선전이 개최되었다. 참가 학생들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비공개 방식이었다. 참관 교수는 이자크 펠리온 교장을 포함한 다섯 명이었고, 에스틸리아 교수와 비비안 교수도 그중에 있었다.

예선전은 되도록 다른 학년의 학생과 매치되도록 짜였다. 강한 학생이 조기에 탈락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1학년은 4학년과, 2학년은 3학년과 대결하는 일이 많았다. 그 결과로 본선에서는 주로 3학년과 4학년 학생들의 경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아무튼 덕분에 나와 카인과 아리엘과 미아는 예선전에서 만날 일이 없었다.

“히, 힘내. 아리엘라.”

“염려 말아요 미아. 제가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은 털끝만큼도 없으니까요.”

아리엘은 여전히 미아에게 존대했다.

미아는 조금 실망한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카인 시니야카니?”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카인을 불렀다.

나는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 서 있는 여학생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녀는 아리엘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귀족적인 미인이었다. 등 뒤의 붉은 망토는 그녀가 4학년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놀란 이유는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었다.

얼굴이 낯익다.

“내 이름은 탈리야 데본렉스. 마법학부 4학년이야. 네 명성이 하도 자자하길래, 궁금해서 말이지.”

탈리야.

말로만 듣던 지난 듀얼의 우승자다.

그런데 데본렉스라고?

“오랜만이네? 미아.”

탈리야의 미소는 따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 일그러진 기운을 느꼈다.

“이름을 듣고 눈치챘겠지만 미아는 내 동생이야.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미아는 아리엘의 뒤에 숨어, 탈리야를 바라봤다. 그녀의 두 손은 아리엘의 팔에 매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탈리야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였다.

“오랜만에 봐서 그러니? 부끄럽기라도 한 거야? 미아.”

미소 띤 탈리야의 눈동자가 미아를 지나, 카인에게 돌아왔다.

“하루라도 빨리 겨뤄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예선전의 대진표를 보니 너를 상대할 일은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본선에서 만나게 되겠지?”

탈리야의 얼굴은 미아와 닮았지만 표정과 말투는 완전히 달랐다. 무언가 음울하고 위협적인 기운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듯했다.

“기대하죠. 탈리야 선배.”

카인이 대답하자, 탈리야의 눈이 잠시 놀란 듯 커졌다.

그러나 곧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훈련장 문이 열리며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1학년 알렉스 플레어하트. 4학년 탈리야 데본렉스.”

“어머, 내 차례네?”

탈리야가 여유롭게 몸을 돌렸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자연스럽고 우아했다. 미아와 아리엘을 지나쳐 가던 탈리야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 돌린 그녀의 눈동자는 어두운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나를 만날 때까지 절대로 지지 말렴. 카인.”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