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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8

148화 이단 재판

-불에 타면 마귀. 아니면 사람임.

이, 이게 뭔 개소리야.

루이제를 포함한 유엔 직원들은 아연실색해졌다.

화형이라니! 우리를 불에 태울 셈인가!

“야이미친고철덩어리야!”

하지만 기계거미는 그런 목소리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무기질적으로 명령할 뿐이다.

-불 가져와.

“예이!”

단숨에 마을로 달려가더니 횃불을 가져오는 주민들. 일렁이는 불길에 번들거리는 광기가 모두를 비친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요!”

직원 중 한 명이 필사적인 심정을 담아 외쳤다. 이에 횃불을 든 채 멈추는 야피.

-반론?

“다, 당연히 있지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마귀라니! 마귀가 들린 것 같다고 사람을 불태우다니!”

옳소!

이 당연한 이성의 목소리를 공유하는 게 극히 소수라는 것이 유엔 감찰단의 아이러니였다.

-법 있음.

“그딴 개같은 법이 있다고?!”

-태양과 심판의 신성 타타르가 내린 권한 아래 역대 이단 심판관장을 역임한 성배기사들이 올바른 ‘악마 사냥법’을 정립함.

“아, 악마 사냥법?”

이것은 야피가 라이온하트 게이트에 진입하여 수많은 라이온하트의 서적들을 데이터로 저장하며 습득한 지식이었다.

-세 명 이상이 밀고한 악마 추종자 의심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먼저 태울 것임.

뭐야, 그게!

야만적인 중세 시대에서나 저술할 법한 광신도들의 방식이 아닌가!

태워서 죽으면 마녀인 것이고, 죽지 않으면 악마와 계약해서 그렇다고 죽이고! 비슷한 방식으로 마녀사냥의 시대에 난립한 온갖 잔혹한 형벌들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본기는 올바른 절차에 따라 의심되는 악마 추종자를 시험하는 것임. 이것은 데이터로 증명되었음.

다 뒈졌으니까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겠지!

무자비하고 융통성 없는 킬링머신이 법을 주관하면 이렇게 되는 것인가! 도래하는 AI 판사법은 사실 인류의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신도는요!”

-끼룩?

누군가가 한 말에 야피의 카메라 아이가 그쪽을 향했다.

그녀의 이름은 데이나. 감찰단 직원 중에 가장 어리고 말단인 신입이었다.

“저, 저는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님을 섬기는 신도예요!”

“구라치고 앉았네!”

“닥쳐라, 마귀야!”

“궁지에 몰리니 거짓부렁이구먼!”

“지, 진짜라고요!”

-정숙.

야피는 빠르게 다운로드한 라이온하트 왕국법전을 검색해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

-신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과정을 겪어야 함.

“뒈질 거 같으니까 신도라고 사칭하는 겁니다!”

“신성모독이다!”

-정숙히. 그것은 본기가 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님.

그 말에 유엔 직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묘수를 떠올렸다.

“저, 저도 만신전 신도입니다! 어제부로요!”

“저도요!”

“지금부터 믿겠습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면피성 신앙들. 주민들은 모든 눈깔을 부라리며 그들의 거짓된 신앙을 혐오했지만, 증명은 원고의 몫임을 기계 성배기사는 철저히 구분했다.

-본 판사는 적법한 근거에 따라 재판을 진행할 것임. 기존의 판례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것.

오오!

드디어 말이 좀 통하는구나! 유엔 직원들의 표정에 희망이 보일 때였다.

-ㅇㅋ 불 붙여라.

“아니씨발뭐가달라진건데!”

-또 뭐가 불만임?

“아니아니!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잖아요! 불붙이고 보는 건 똑같잖아요!”

-다름.

뭐가 다른데!

도끼눈을 뜬 루이제의 시선에 야피는 차가운 카메라 아이로 교차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믿음이 부족하면 타 죽을 것이고, 신실하면 안 타 죽음. 이것은 데이터가 증명함.

아.

루이제는 깨달았다. 이 미치광이 광신도들은… 자신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음을.

-불을 붙일 것을 명함.

“예이!”

“성배기사의 성언을 따르라!!”

“마귀를 태워 정화하자!”

주민들은 야피에게서 받은 횃불을 가지고 가장 먼저 데니스에게 다가갔다. 그가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무의미한 저항이다.

“다, 당신들 미쳤어! 미쳤다고!!”

루이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주민들의 횃불이 장작에 불을 붙였다.

콰아아아! 하고 솟구치는 불길. 데니스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살려, 살려줘어어어어…!”

순식간에 불이 붙은 데니스는 목구멍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산 채로 타죽는 고통 속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심연의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비명이었다.

얼마나 화력이 강한 건지 뼛조각 하나 남김없이 전소해버리는 데니스. 주민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마귀를 죽였다!”

“야크트 스피너 백세! 라이온하트 천세! 만신전 만세!”

자신의 이름이 불리며 환호하자 끼룩, 하고 저장하는 야피. 그는 공명정대한 판사로서 다음 재판을 이어갔다.

-다음 불 붙여라.

“”예이!””

그렇게 한 명 한 명 유엔 직원들이 타죽었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비명 속에서 사람들의 유골마저 남지 않았다.

이윽고 루이제의 차례가 왔다.

-다섯 명 남음. 서두르기를 권고.

끝이다. 이제 정말 끝이다. 제 발밑에 불이 붙자 루이제는 절망 속에서 저주하듯이 외쳤다.

“유엔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이런 야만적이고 파렴치한 광신도들을 이끄는 레온은 미치광이가 틀림없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가 이 미친 뻐킹 레이시스트의 정체를 깨달아야 한다!

“너희들이 악마와 다른 게 뭐야! 뭐냐고! 전부 죽어버──응?”

장작이 불탄다. 횃불에 불이 붙은 장작은 루이제의 발밑에서 활활 타올랐다.

그 화력은 사람의 살가죽을 녹이고 유골도 잿가루로 만들 정도. 그런데…….

“왜 안 타지?”

검은 연기가 자욱하고 온몸에 불이 들러붙었는데, 타죽기는커녕 뜨듯하다. 한국에 처음 와서 문화체험코스라고 찜질방에 갔을 때처럼.

찜질방이 후덥지근하고 찐득한 더위를 유발했다면, 지금 이 불길은 더없이 따뜻하고 안온한 온기로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루이제 무혐의. 다음 피고 시작.

루이제는 차례차례 불길에 타오르는 유엔 직원들을 보면서 경악했다. 정말로 몇몇 직원들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불이 그들을 해치지 않은 것이다!

“이, 이게 무슨…….”

-피고 여덟 명 중 4인 사망. 예상대로임.

“예상… 대로라고요?”

야크트 스피너는 홀로그램으로 영상을 하나 띄웠다. 바로 루이제가 만신전에 처음 온 날 식사자리에서였다.

“저, 저건 언제…….”

-데니스 및 정화된 3인. 식사를 섭취하지 않았음.

“그, 그거야…….”

그러고 보니, 만신전에 도착한 첫날부터 루이제는 축복받은 작물을 양껏 먹으며 호화로운 건강 라이프를 누렸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입맛이 안 맞다며 다른 것을 시켜 먹거나 물러나던 이들이 있었더랬다.

바로 데니스를 포함한 네 명. 즉, 지금 불타 죽은 그 네 명의 직원들이었다.

-성력이 깃든 작물. 악성종자에게 치명적. 그들, 페토스의 불꽃에 견디지 못함.

“전쟁과 불꽃의 신…….”

그 말에 루이제는 자신들을 태운 불꽃이 보통 불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삿된 것을 정화하는 정화의 불꽃. 전쟁신의 불꽃은 무고한 양민을 태우지 않는 것이다.

“그, 그럼 설마 그들이…….”

-악마 추종자들. 농노들과 마찬가지로 악마들을 섬기는 삿된 것들.

“유엔에 악마들이 잠입해 있었다고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을 앞에 두고 의심할 여지도 없다.

물론 만신전이 뭔가 마법적인 수작을 부려 자신들만 태우지 않았다… 라는 쇼를 벌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이득이 없다.

“그, 그럼… 풀어주는 건가요?”

-무혐의 인정.

야피는 주민들을 시켜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 * *

“간밤에 고생이 많았더군.”

“아,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루이제는 레온의 어전 앞에서 조심스럽게 꾸벅거렸다.

“그래, 감찰단 중에 악종들이 있었다고.”

“……믿기지 않습니다. 그들이, 악마들을 추종하는 이들이었다니.”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인권을 위해 힘쓰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사악한 비명은 놀라울 정도로 ‘그들’과 똑같았다.

“폐하, 여왕전하의 공방에 있는 그들은….”

“지난 데몬 게이트에서 포획해온 것들이지. 베아트리체 여왕이 실험을 겸해 붙잡은 것일세.”

간밤의 소동이 끝나고 루이제는 야피의 손에 이끌려 베아트리체의 공방을 견학했다.

그리고 악마 추종자들처럼 신성의 불꽃으로 악마를 화형하는 장면을 보여주었고,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던 영혼의 비명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

루이제는 악마들의 인권까지 요구할 정도로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폐하. 저는 돌아가면 이 악마들에 대해 보고해야 합니다.”

“그들의 대응이 눈에 보이는구나. 인권이나 뭐니 하며 악마들조차 구제해야 한다는 놈들이 있겠지.”

“……저희 세계에선 소중한 가치입니다.”

“아니, 그런 소릴 지껄이는 자들을 주시해라, 루이제 사무관. 인간이란 어느 세계에서든 악을 혐오하는 법이다. 악에게 관대한 자들은 대개 악인들이지.”

레온은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어떤 잔에서 물에 젖은 목걸이를 건넸다.

“저, 유엔 사무관으로서 뇌물은…….”

“천것이 왕의 하사품을 어찌 거절하느냐. 받아두고 당분간 효력이 계속될 것이니 가지고 있어라.”

레온은 그뿐만 아니라 축복받은 작물을 여럿 하사했다. 그리고 말하였다.

“현명한 여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사용해야 할지는 스스로 알겠지.”

“……!!”

루이제는 레온의 의도를 깨닫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스피너 경.”

-끼룩?

“손님이 돌아가신다는군. 집까지 에스코트할 수 있겠는가?”

-문제없음.

유엔 본부로 돌아가는 길. 루이제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꼭 쥐었다.

* * * *

유엔 인권위 감찰단이 만신전에 방문했다가 네 명이나 죽어나갔다.

이 사실은 한국 정부뿐 아니라 유엔 본부를 들쑤셨다.

“이 야만인들이…!”

유엔 사무총장에서부터 산하기구의 장들.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까지.

그들은 저마다 비상사태에 접어들며 만신전의 만행을 성토했다.

“악마들이… 저희 동료 중에 악마들을 추종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요! 루이제 사무관은 근거 없는 낭설을 함부로 퍼뜨리지 마시오!”

“지금 당장 만신전의 반마인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상부로 불려간 루이제는 그들의 질책을 받으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증언토록 했다.

기나긴 회의와 청문회가 이어지고서, 식사시간이었다.

“다들 식사들 하십시오.”

기나긴 청문회를 위해 준비된 것은 간단한 샌드위치들이다.

그것이 직원들에게 배포되었을 때, 몇몇 직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식사를 거부하는 걸 루이제는 유심히 지켜봤다.

“저, 저는 따로 싸온 도시락이 있어서…….”

“입맛이 없어서 나중에 먹겠습니다.”

그 거부하는 행동에 루이제는 데자뷰를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저 샌드위치는 자신이 가져온 ‘작물’로 만든 음식이었기에.

“저… 해리슨 사무관님.”

“왜… 그러시죠? 루이제 사무관.”

루이제는 고뇌에 빠졌다. 하지만 레온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유엔이 악마들에게 잠식된 것이 사실이라면…….

“비, 빛이 있으라!”

그때였다. 루이제의 목걸이가 갑자기 섬광 같은 빛을 쏟아내더니 청문회장 전체를 감쌌다.

“서, 섬광탄?!”

“루이제 사무관, 무슨 짓을──!”

루이제의 돌발행동에 화들짝 놀라 눈을 가리는 직원들. 바로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끄아아아악!”

“키이에에에에엑!!”

해리슨 사무관을 비롯해 샌드위치를 거부한 직원들이 고통스러 괴성을 지르더니 온몸이 타들어 간 것이다.

“해, 해리슨 사무관?”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축복과 성수에 잠겼던 목걸이가 발산한 빛은 둔갑한 악의 실체를 드러냈다.

-찌익!

-찌이익!

사람의 거죽이 벗겨지고 핏빛 날개가 펼쳐진다.

흉악한 이빨과 손톱, 사이한 눈빛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아, 악마?!”

“키익!”

처음으로 반응한 사람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는 악마. 그러나 악마의 흉수는 그에게 닿지 못했다.

-휘릭!

채찍 소리를 내며 휘둘러진 강철 와이어. 그것이 악마의 몸을 순식간에 절단한다.

온 사방에 악마의 피가 흩뿌려졌고,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끼룩!

루이제의 가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니멀 사이즈의 강철기사. 야크트 스피너의 기계팔이 뻗으며 강철 와이어들이 채찍처럼 휘둘러진다.

“이 자식!”

“죽여…!”

청문회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악종들이 도륙당하기까진 2초도 걸리지 않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들. 성력이 담긴 와이어에 사망한 악마들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며 소멸한다.

난데없이 청문회장에서 나타난 악마와 그런 악마들을 도륙낸 강철의 기사.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야크트 스피너는 무기질적인 기계음으로 선언했다.

-악마 소탕작전 개시.

만신전 인권침해 감찰단에서 시작된 해프닝은 유엔 본부의 악마들이 일소되는 소탕전으로 이어졌다.

유엔본부 악마 출몰사건.

성배기사 야크트 스피너에 의해 신속히 제압됨.

337마리의 악마와 악마 추종자 소탕.

-세상이 말세임. 끼룩!


           


Chapter 148

Chapter 148

148화 이단 재판

-불에 타면 마귀. 아니면 사람임.

이, 이게 뭔 개소리야.

루이제를 포함한 유엔 직원들은 아연실색해졌다.

화형이라니! 우리를 불에 태울 셈인가!

"야이미친고철덩어리야!"

하지만 기계거미는 그런 목소리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무기질적으로 명령할 뿐이다.

-불 가져와.

"예이!"

단숨에 마을로 달려가더니 횃불을 가져오는 주민들. 일렁이는 불길에 번들거리는 광기가 모두를 비친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요!"

직원 중 한 명이 필사적인 심정을 담아 외쳤다. 이에 횃불을 든 채 멈추는 야피.

-반론?

"다, 당연히 있지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마귀라니! 마귀가 들린 것 같다고 사람을 불태우다니!"

옳소!

이 당연한 이성의 목소리를 공유하는 게 극히 소수라는 것이 유엔 감찰단의 아이러니였다.

-법 있음.

"그딴 개같은 법이 있다고?!"

-태양과 심판의 신성 타타르가 내린 권한 아래 역대 이단 심판관장을 역임한 성배기사들이 올바른 '악마 사냥법'을 정립함.

"아, 악마 사냥법?"

이것은 야피가 라이온하트 게이트에 진입하여 수많은 라이온하트의 서적들을 데이터로 저장하며 습득한 지식이었다.

-세 명 이상이 밀고한 악마 추종자 의심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먼저 태울 것임.

뭐야, 그게!

야만적인 중세 시대에서나 저술할 법한 광신도들의 방식이 아닌가!

태워서 죽으면 마녀인 것이고, 죽지 않으면 악마와 계약해서 그렇다고 죽이고! 비슷한 방식으로 마녀사냥의 시대에 난립한 온갖 잔혹한 형벌들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본기는 올바른 절차에 따라 의심되는 악마 추종자를 시험하는 것임. 이것은 데이터로 증명되었음.

다 뒈졌으니까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겠지!

무자비하고 융통성 없는 킬링머신이 법을 주관하면 이렇게 되는 것인가! 도래하는 AI 판사법은 사실 인류의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신도는요!"

-끼룩?

누군가가 한 말에 야피의 카메라 아이가 그쪽을 향했다.

그녀의 이름은 데이나. 감찰단 직원 중에 가장 어리고 말단인 신입이었다.

"저, 저는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님을 섬기는 신도예요!"

"구라치고 앉았네!"

"닥쳐라, 마귀야!"

"궁지에 몰리니 거짓부렁이구먼!"

"지, 진짜라고요!"

-정숙.

야피는 빠르게 다운로드한 라이온하트 왕국법전을 검색해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

-신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과정을 겪어야 함.

"뒈질 거 같으니까 신도라고 사칭하는 겁니다!"

"신성모독이다!"

-정숙히. 그것은 본기가 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님.

그 말에 유엔 직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묘수를 떠올렸다.

"저, 저도 만신전 신도입니다! 어제부로요!"

"저도요!"

"지금부터 믿겠습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면피성 신앙들. 주민들은 모든 눈깔을 부라리며 그들의 거짓된 신앙을 혐오했지만, 증명은 원고의 몫임을 기계 성배기사는 철저히 구분했다.

-본 판사는 적법한 근거에 따라 재판을 진행할 것임. 기존의 판례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것.

오오!

드디어 말이 좀 통하는구나! 유엔 직원들의 표정에 희망이 보일 때였다.

-ㅇㅋ 불 붙여라.

"아니씨발뭐가달라진건데!"

-또 뭐가 불만임?

"아니아니!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잖아요! 불붙이고 보는 건 똑같잖아요!"

-다름.

뭐가 다른데!

도끼눈을 뜬 루이제의 시선에 야피는 차가운 카메라 아이로 교차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믿음이 부족하면 타 죽을 것이고, 신실하면 안 타 죽음. 이것은 데이터가 증명함.

아.

루이제는 깨달았다. 이 미치광이 광신도들은… 자신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음을.

-불을 붙일 것을 명함.

"예이!"

"성배기사의 성언을 따르라!!"

"마귀를 태워 정화하자!"

주민들은 야피에게서 받은 횃불을 가지고 가장 먼저 데니스에게 다가갔다. 그가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무의미한 저항이다.

"다, 당신들 미쳤어! 미쳤다고!!"

루이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주민들의 횃불이 장작에 불을 붙였다.

콰아아아! 하고 솟구치는 불길. 데니스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살려, 살려줘어어어어…!"

순식간에 불이 붙은 데니스는 목구멍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산 채로 타죽는 고통 속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심연의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비명이었다.

얼마나 화력이 강한 건지 뼛조각 하나 남김없이 전소해버리는 데니스. 주민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마귀를 죽였다!"

"야크트 스피너 백세! 라이온하트 천세! 만신전 만세!"

자신의 이름이 불리며 환호하자 끼룩, 하고 저장하는 야피. 그는 공명정대한 판사로서 다음 재판을 이어갔다.

-다음 불 붙여라.

""예이!""

그렇게 한 명 한 명 유엔 직원들이 타죽었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비명 속에서 사람들의 유골마저 남지 않았다.

이윽고 루이제의 차례가 왔다.

-다섯 명 남음. 서두르기를 권고.

끝이다. 이제 정말 끝이다. 제 발밑에 불이 붙자 루이제는 절망 속에서 저주하듯이 외쳤다.

"유엔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이런 야만적이고 파렴치한 광신도들을 이끄는 레온은 미치광이가 틀림없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가 이 미친 뻐킹 레이시스트의 정체를 깨달아야 한다!

"너희들이 악마와 다른 게 뭐야! 뭐냐고! 전부 죽어버──응?"

장작이 불탄다. 횃불에 불이 붙은 장작은 루이제의 발밑에서 활활 타올랐다.

그 화력은 사람의 살가죽을 녹이고 유골도 잿가루로 만들 정도. 그런데…….

"왜 안 타지?"

검은 연기가 자욱하고 온몸에 불이 들러붙었는데, 타죽기는커녕 뜨듯하다. 한국에 처음 와서 문화체험코스라고 찜질방에 갔을 때처럼.

찜질방이 후덥지근하고 찐득한 더위를 유발했다면, 지금 이 불길은 더없이 따뜻하고 안온한 온기로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루이제 무혐의. 다음 피고 시작.

루이제는 차례차례 불길에 타오르는 유엔 직원들을 보면서 경악했다. 정말로 몇몇 직원들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불이 그들을 해치지 않은 것이다!

"이, 이게 무슨……."

-피고 여덟 명 중 4인 사망. 예상대로임.

"예상… 대로라고요?"

야크트 스피너는 홀로그램으로 영상을 하나 띄웠다. 바로 루이제가 만신전에 처음 온 날 식사자리에서였다.

"저, 저건 언제……."

-데니스 및 정화된 3인. 식사를 섭취하지 않았음.

"그, 그거야……."

그러고 보니, 만신전에 도착한 첫날부터 루이제는 축복받은 작물을 양껏 먹으며 호화로운 건강 라이프를 누렸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입맛이 안 맞다며 다른 것을 시켜 먹거나 물러나던 이들이 있었더랬다.

바로 데니스를 포함한 네 명. 즉, 지금 불타 죽은 그 네 명의 직원들이었다.

-성력이 깃든 작물. 악성종자에게 치명적. 그들, 페토스의 불꽃에 견디지 못함.

"전쟁과 불꽃의 신……."

그 말에 루이제는 자신들을 태운 불꽃이 보통 불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삿된 것을 정화하는 정화의 불꽃. 전쟁신의 불꽃은 무고한 양민을 태우지 않는 것이다.

"그, 그럼 설마 그들이……."

-악마 추종자들. 농노들과 마찬가지로 악마들을 섬기는 삿된 것들.

"유엔에 악마들이 잠입해 있었다고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을 앞에 두고 의심할 여지도 없다.

물론 만신전이 뭔가 마법적인 수작을 부려 자신들만 태우지 않았다… 라는 쇼를 벌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이득이 없다.

"그, 그럼… 풀어주는 건가요?"

-무혐의 인정.

야피는 주민들을 시켜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 * *

"간밤에 고생이 많았더군."

"아,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루이제는 레온의 어전 앞에서 조심스럽게 꾸벅거렸다.

"그래, 감찰단 중에 악종들이 있었다고."

"……믿기지 않습니다. 그들이, 악마들을 추종하는 이들이었다니."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인권을 위해 힘쓰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사악한 비명은 놀라울 정도로 '그들'과 똑같았다.

"폐하, 여왕전하의 공방에 있는 그들은…."

"지난 데몬 게이트에서 포획해온 것들이지. 베아트리체 여왕이 실험을 겸해 붙잡은 것일세."

간밤의 소동이 끝나고 루이제는 야피의 손에 이끌려 베아트리체의 공방을 견학했다.

그리고 악마 추종자들처럼 신성의 불꽃으로 악마를 화형하는 장면을 보여주었고,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던 영혼의 비명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

루이제는 악마들의 인권까지 요구할 정도로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폐하. 저는 돌아가면 이 악마들에 대해 보고해야 합니다."

"그들의 대응이 눈에 보이는구나. 인권이나 뭐니 하며 악마들조차 구제해야 한다는 놈들이 있겠지."

"……저희 세계에선 소중한 가치입니다."

"아니, 그런 소릴 지껄이는 자들을 주시해라, 루이제 사무관. 인간이란 어느 세계에서든 악을 혐오하는 법이다. 악에게 관대한 자들은 대개 악인들이지."

레온은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어떤 잔에서 물에 젖은 목걸이를 건넸다.

"저, 유엔 사무관으로서 뇌물은……."

"천것이 왕의 하사품을 어찌 거절하느냐. 받아두고 당분간 효력이 계속될 것이니 가지고 있어라."

레온은 그뿐만 아니라 축복받은 작물을 여럿 하사했다. 그리고 말하였다.

"현명한 여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사용해야 할지는 스스로 알겠지."

"……!!"

루이제는 레온의 의도를 깨닫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스피너 경."

-끼룩?

"손님이 돌아가신다는군. 집까지 에스코트할 수 있겠는가?"

-문제없음.

유엔 본부로 돌아가는 길. 루이제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꼭 쥐었다.

* * * *

유엔 인권위 감찰단이 만신전에 방문했다가 네 명이나 죽어나갔다.

이 사실은 한국 정부뿐 아니라 유엔 본부를 들쑤셨다.

"이 야만인들이…!"

유엔 사무총장에서부터 산하기구의 장들. 유엔 평화유지군 사령관까지.

그들은 저마다 비상사태에 접어들며 만신전의 만행을 성토했다.

"악마들이… 저희 동료 중에 악마들을 추종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요! 루이제 사무관은 근거 없는 낭설을 함부로 퍼뜨리지 마시오!"

"지금 당장 만신전의 반마인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상부로 불려간 루이제는 그들의 질책을 받으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증언토록 했다.

기나긴 회의와 청문회가 이어지고서, 식사시간이었다.

"다들 식사들 하십시오."

기나긴 청문회를 위해 준비된 것은 간단한 샌드위치들이다.

그것이 직원들에게 배포되었을 때, 몇몇 직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식사를 거부하는 걸 루이제는 유심히 지켜봤다.

"저, 저는 따로 싸온 도시락이 있어서……."

"입맛이 없어서 나중에 먹겠습니다."

그 거부하는 행동에 루이제는 데자뷰를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저 샌드위치는 자신이 가져온 '작물'로 만든 음식이었기에.

"저… 해리슨 사무관님."

"왜… 그러시죠? 루이제 사무관."

루이제는 고뇌에 빠졌다. 하지만 레온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유엔이 악마들에게 잠식된 것이 사실이라면…….

"비, 빛이 있으라!"

그때였다. 루이제의 목걸이가 갑자기 섬광 같은 빛을 쏟아내더니 청문회장 전체를 감쌌다.

"서, 섬광탄?!"

"루이제 사무관, 무슨 짓을──!"

루이제의 돌발행동에 화들짝 놀라 눈을 가리는 직원들. 바로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끄아아아악!"

"키이에에에에엑!!"

해리슨 사무관을 비롯해 샌드위치를 거부한 직원들이 고통스러 괴성을 지르더니 온몸이 타들어 간 것이다.

"해, 해리슨 사무관?"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축복과 성수에 잠겼던 목걸이가 발산한 빛은 둔갑한 악의 실체를 드러냈다.

-찌익!

-찌이익!

사람의 거죽이 벗겨지고 핏빛 날개가 펼쳐진다.

흉악한 이빨과 손톱, 사이한 눈빛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아, 악마?!"

"키익!"

처음으로 반응한 사람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는 악마. 그러나 악마의 흉수는 그에게 닿지 못했다.

-휘릭!

채찍 소리를 내며 휘둘러진 강철 와이어. 그것이 악마의 몸을 순식간에 절단한다.

온 사방에 악마의 피가 흩뿌려졌고,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끼룩!

루이제의 가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니멀 사이즈의 강철기사. 야크트 스피너의 기계팔이 뻗으며 강철 와이어들이 채찍처럼 휘둘러진다.

"이 자식!"

"죽여…!"

청문회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악종들이 도륙당하기까진 2초도 걸리지 않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들. 성력이 담긴 와이어에 사망한 악마들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며 소멸한다.

난데없이 청문회장에서 나타난 악마와 그런 악마들을 도륙낸 강철의 기사.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야크트 스피너는 무기질적인 기계음으로 선언했다.

-악마 소탕작전 개시.

만신전 인권침해 감찰단에서 시작된 해프닝은 유엔 본부의 악마들이 일소되는 소탕전으로 이어졌다.

유엔본부 악마 출몰사건.

성배기사 야크트 스피너에 의해 신속히 제압됨.

337마리의 악마와 악마 추종자 소탕.

-세상이 말세임. 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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