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48

148화 아르카넘 페스트 (1)

148화 아르카넘 페스트 (1)

“데미안. 왜 갑자기 정문 쪽으로 산책하러 가자는 거야?”

루나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흰 눈으로 덮인 아르카넘 홀의 교정을 걷고 있었다.

“요즘 아르카넘 페스트 준비로 시끄럽잖아. 오랜만에 한적한 곳에서 쉬고 싶지 않아?”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을 ‘아르카넘 홀’이라 줄여 부르듯,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페스트는 ‘아르카넘 페스트’라고 줄여 부르는 이가 많았다.

물론 검술학부 학생들은 줄인 이름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루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흐응. 그래? 그럼 다 함께 가지, 왜 단둘이 가자고 한 거야?”

“싫어?”

“그건 아니고. 조금 의외라서.”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입학시험일에도 들었었다. 발목을 다친 루나를 치유실로 데려가며.

그때를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루나를 봤다. 루나의 동그란 볼이 발갛다. 하긴, 겨울이니까.

“왜 은근슬쩍 쳐다보니?”

그제야 나는 루나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알았다.

“키가 더 자란 것 같아서.”

“정말?”

루나가 활짝 웃었다.

실제로 루나는 여름방학 이후 더욱 키가 자랐다.

이제는 163센티미터에 근접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세실리아도 그렇게 말했었어! 헤헤.”

그러나 나와 루나의 눈높이 차이는 더 벌어졌다. 아마도 지금의 내 키는 180센티미터에 가까울 거다.

무럭무럭 더 자라면 좋겠다. 무한회귀 설정집에 적힌 카인의 키는 187센티미터였으니까. 참고로 카인은 지금도 나보다 크다.

“데미안은 쑥쑥 자라네. 카인도 그렇고.”

이렇게 루나가 빤히 나를 올려다볼 때,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키가 더 자랐으면 좋겠어?”

“응! 세실리아보다 커졌으면 좋겠어! 아아, 세실리아는 점점 더 예뻐져. 사람들은 아리엘이 더 예쁘다고 하지만······, 아! 물론 아리엘도 정말 예쁘지! 그치만 나는 역시 세실리아가 제일 예쁜 것 같아. 키도 크고, 몸매도 막 엄청나고, 흠흠······.”

“루나는 지금 키가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그래?”

“응. 귀엽잖아.”

루나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루나의 걸음이 빨라졌다.

콧노래 소리도 조금 커졌다.

“데미안.”

“응?”

“그럼 데미안은 귀여운 여자가 좋아, 몸매가 예쁜 여자가 좋아, 아니면 우아한 여자가 좋아?”

“얼굴이 예쁜 여자.”

“아니! 얼굴은 다 비슷하게 예쁘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정말로 다 비슷하게 예쁘다고 생각해?”

“······!”

루나의 말문이 막혔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역시 루나와 세실과 아리엘을 빗대어 말한 거였구나.

“그, 그럼 질문을 바꿔야겠어. 데미안 너, 아르카넘 듀얼에서 우승하면 무도회 때 누구를 지명할 거야?”

“내가 우승할 일은 없어. 아리엘도 있고, 카인도 있고, 지난 듀얼의 우승자도 있는걸.”

“그러니까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럼 지금 생각해!”

나는 대답을 고민하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는 정문 근처에 다다랐고, 아까부터 나는 미니맵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살짝 웃었다. 우호적 표식 하나가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하하하! 큰 공주! 아빠가 왔다!”

“꺄악! 깜짝이야!”

루나는 정말로 크게 놀랐는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금세 쿠훌린의 손에 붙잡혔다.

“악! 이거 놔요! 창피하다고요!”

“데미안밖에 없는데 뭐가 창피하다는 거냐! 으하하하하!”

쿠훌린이 루나의 얼굴에 마구 수염을 문질렀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찡긋 눈인사했다. 나도 웃음으로 답했다.

나는 엘리샤를 통해 오늘 쿠훌린이 도착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 그래서 루나를 놀라게 해 줄 생각에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데, 데미안! 도와줘!”

물론 나는 루나를 도울 수 없다. 그랬다가는 쿠훌린에게 얻어터질 테니까. 나는 요즘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말이다, 루나여.

잠시 후 카인과 세실이 쿠훌린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왔다. 두 사람은 품에 커다란 꾸러미를 안고 있었다. 그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오는 임무를 맡았다. 즉, 나와 카인과 세실은 합심해서 루나를 속인 것이다.

“너무해! 나한테만 말 안 하고!”

루나는 서운하다는 듯 외쳤지만 카인과 세실이 펼쳐놓는 음식을 보자마자 기뻐 날뛰었다. 아르카넘 페스트가 가까워지며 식당의 메뉴는 더욱 화려해졌다.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다. 아리엘과 앙투안과 미아는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 그들이 있으면 쿠훌린과 루나가 편히 이야기하기 어려울 테니까.

***

“카인은 어디로 간 걸까? 앙투안.”

식당에서 아리엘이 물었다.

“글쎄.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이상해. 루나도, 데미안도, 세실리아도 모두 함께 사라졌잖아. 게다가 음식까지 잔뜩 들고서. 무슨 일일까? 나만 빼놓고 소풍이라도 간 걸까?”

아리엘은 토라진 소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앙투안은 화제를 돌렸다.

“음식은 괜찮아?”

“응. 요즘은 제법 먹을만한 게 나오네.”

“많이 먹어. 아리엘.”

“뭐, 많이 먹을 정도는 아니고.”

아리엘은 도도한 얼굴로 턱을 들어 올렸지만 평소보다 많이 먹고 있었다.

앙투안은 미소 띤 얼굴로 아리엘을 바라봤다.

“앙투안.”

누군가가 앙투안에게 말을 걸어왔다.

고개 돌린 앙투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일이지. 데르맛.”

“본선에서 겨루게 되었잖아. 정정당당하게, 힘껏 싸워보자.”

데르맛이 앙투안에게 악수를 청했다.

앙투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지난 학기에서 성적이 높았다고 자신만만하군. 실전은 성적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둬라.”

앙투안은 데르맛이 싫었다. 사실 그는 데르맛보다는 세실리아를 이기고 싶었다. 그러나 앙투안의 바람과 상관없이 검술학부 1학년들은 앙투안과 데르맛을 라이벌로 보았고, 그 점이 앙투안을 불쾌하게 했다.

게다가 데르맛의 가문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기사 중 한 명이자, 황실 근위 기사단 ‘아이기스(Aegis)’의 단장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앙투안은 데르맛을 볼 때마다 자격지심을 느꼈다.

“예의를 지켜. 앙투안.”

아리엘의 목소리에 앙투안의 어깨가 흠칫했다.

앙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데르맛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힘껏 겨뤄보자. 데르맛.”

악수를 마친 데르맛은 아리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사라졌다.

아리엘이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 앙투안.”

“미안해.”

“괜찮아. 식사하자.”

“그런데 아리엘.”

오물오물 과일을 씹으며 아리엘이 앙투안을 바라봤다.

머뭇거리던 앙투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첫 상대 말이야. 좋지 않은 소문이 많아. 혹시라도 위험한 기색이 느껴지면.”

“걱정하지 마. 내가 누구인지 잊은 거야?”

아리엘이 우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너야말로 데르맛에게 지면 용서하지 않을 테야. 나의 기사가 되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앙투안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

루나의 볼록해진 배를 구경하고 있을 무렵, 미니맵에 중립적 표식이 나타났다.

“왜 약속 장소로 오시지 않고, 이런 곳에서.”

표식의 주인은 에스틸리아 교수였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당신 짓인가요? 데미안 시니야카.”

나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루나와 쿠훌린을 편히 만나게 하려면 점심시간이 적당할 것 같아 벌인 일이었는데, 아무래도 에스틸리아 교수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이 일에 대해서는 추후 이야기하기로 하죠.”

그때, 쿠훌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거구인 쿠훌린과 아이처럼 자그만 에스틸리아 교수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서로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듯 첨예하게 꿈틀거렸다. 둘 사이의 공기가 베일 것처럼.

“하하하하! 요 녀석들이 제법 말썽을 부리는 모양입니다!”

쿠훌린이 껄껄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뒤돌아 앞장섰고, 쿠훌린은 우리에게 히죽 웃어 보인 뒤 그녀를 따라갔다.

나는 확신했다.

쿠훌린은 에스틸리아 교수를 경계하고 있다.

.

.

.

쿠훌린은 아르카넘 홀을 떠나며 우리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모두 열심히 하거라. 섬은 걱정하지 말고.”

며칠 더 있으면 안 되느냐고 세실이 물었으나, 쿠훌린은 말없이 웃으며 세실의 머리를 헝클었다. 카인도 아쉬워하는 얼굴이었다. 루나는 창피하니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막상 쿠훌린이 떠나자 울먹거렸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예고대로 나는 그녀의 개인 연습실에서 넝마가 되도록 얻어터졌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가 고위 마법을 발현할 수 있도록 힘써주었고, 그 결과 나는 어설프게나마 고위 마법을 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이걸 그렇게밖에 못하는 거야?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자, 봐봐. 이렇게 하면 되잖아, 이렇게.”

물론 에스틸리아 교수의 마음에는 들지 않은 모양이다.

***

아르카넘 홀이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 찼다.

오늘은 3일 동안 이어지는 아르카넘 페스트의 첫날, 다시 말해 눈의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데미안! 저기 좀 봐! 눈사람 경연대회가 열린대!”

루나가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세실리아가 루나의 옆에서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카인과 아리엘도 조용히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오늘의 아리엘에게서는 겨울의 여왕과 같은 기품이 느껴졌다.

어딘가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눈 위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축제의 첫날이니만큼 모두가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

.

.

해 질 녘이 되자 학생들은 돔 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아르카넘 듀얼과 블레이드 듀얼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예선을 통과한 인원은 각 학부에서 8명씩이었다. 이들은 본선에서 토너먼트식 시합을 하게 되며 8강전은 축제 첫날에, 4강전은 둘째 날에, 결승전은 마지막 셋째 날에 치러진다.

“드디어 시작이군!”

“누가 4강에 올라갈까?”

“1학년이 이렇게 많이 살아남다니.”

이번 듀얼은 시작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16인의 본선 진출자 중에 1학년이 무려 여덟 명이나 포함된 것이다.

그 때문에 1학년 관객의 열기가 무척 뜨거웠다. 그들은 누가 우승할 것인지, 혹시 1학년에서 우승자가 나온다면 누구일 것인지, 그리고 우승자가 무도회 때 누구를 지명할 것인지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곳곳에는 대진표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아르카넘 듀얼 8강전>

A조: 카인 시니야카(1학년) vs 미아 데본렉스(1학년)

B조: 이안 미스트본(3학년) vs 클로이 나이트블루(2학년)

C조: 조이 레이디오스(4학년) vs 데미안 시니야카(1학년)

D조: 탈리야 데본렉스(4학년) vs 아리엘라 플랑브아즈(1학년)

<블레이드 듀얼 8강전>

A조: 데르맛 오셀롯(1학년) vs 앙투안 브르타뉴(1학년)

B조: 엘라 가드릭(4학년) vs 세실리아 크라소타(1학년)

C조: 막스 블레드윈(4학년) vs 루나 크라소타(1학년)

D조: 이바르 스위프트(4학년) vs 소피아 윈데일(3학년)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