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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9

149화 아르카넘 페스트 (2)

149화 아르카넘 페스트 (2)

미아의 발걸음은 빠르면서 무거웠다. 그녀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눈에 비친 경기장 안의 어둠은 음울하게 꿈틀거리는 괴물처럼 보였다.

미아는 탈리야를 찾고 있었다. 탈리야에 대해 미아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지만, 포악하고 잔인하다.

D조: 탈리야 데본렉스(4학년) vs 아리엘라 플랑브아즈(1학년)

그런 탈리야의 첫 상대가 아리엘라다. 미아는 탈리야가 아리엘라를 망가뜨릴 것 같아 겁이 났다. 물론 아리엘라는 대단한 마법사다. 하지만 미아는 안다. 아리엘라는 탈리야를 이길 수 없다.

‘······아리엘라.’

사교계 파티장에서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당시 미아는 어렸고,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무관심에서 기인한 지독한 괴로움을 견디는 중이었다.

미아는 긴장된 마음으로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리엘라 플랑브아즈를 만났다. 아리엘라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미아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어린 미아에게 꿈같은 존재였다. 그 순간부터, 미아는 아리엘라를 동경했다.

‘아리엘라만은 안 돼. 나처럼 되도록 둘 수 없어.’

미아는 주먹을 꼭 쥐며 어두운 복도를 달렸다. 이 돔 경기장은 무척 넓어서 숨겨진 공간이 많았다. 미아는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고 시선을 돌리며 탈리야를 찾았다.

그러던 중, 미아는 목표를 발견했다.

“탈리야.”

목소리를 들은 탈리야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주위에는 몇 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다. 그 안에는 데미안에게 시비를 걸었던 황가의 방계, 카시우스 발로리우스도 있었다.

“어머 미아. 본선에 진출했더라? 축하해.”

“또······, 또 상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지?”

“으응?”

“상대는 아직 1학년이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

탈리야가 미소를 머금으며 미아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자 미아는 마음이 아팠다.

한때는 상냥하고 친절했던 언니였다.

“염려 말렴 미아. 아리엘라 플랑브아즈는 그 ‘오필리아 플랑브아즈’의 외동딸이니까. 괜히 그 가문을 건드려서 내게 좋을 일이 있겠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거로 생각해?”

미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그럼······.”

“하지만 8강전을 그렇게 이기고 나면 나는 욕구불만에 휩싸이겠지. 정말로 참기 힘들 거야. 그러니 4강에서는 확실하게, 아주 지근지근 짓밟아줘야 하지 않겠어? C조의 조이 레이디오스는 짜증 나는 녀석이거든. 음······ 아니지 아니지. 혹시 말이야, 미아.”

고개를 가로젓던 탈리야의 눈이 번들거렸다.

“네 친구 중 하나인 금발 말이야. 어쩌면 그 아이가 이기고 올라오지는 않을까? 아아,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그 아이는 정말이지 마구 괴롭히고 싶어지는 얼굴을 하고 있거든. 카시우스와도 나름의 인연이 있는 것 같고 말이야.”

탈리야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귀족적인 기품이 느껴지는 모습.

그러나 미아는 그 웃음을 보며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 내 친구······ 아니, 아리엘라의 친구에게 손대지 마.”

“너 지금 대드는 거니?”

달라진 탈리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미아의 몸은 돌처럼 굳었다.

미아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탈리야가 입가를 길게 찢어 웃으며 다가왔다.

“오, 오지 마.”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잊은 걸까? 나의 사랑스러운 동생이.”

탈리야가 미아의 교복 상의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지익······! 교복이 찢기며 미아의 얼굴이 당혹과 공포로 물들었다. 드러난 미아의 등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쭈글쭈글 일그러진 화상 자국. 미아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탈리야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미아를 내려다봤다.

“한 번 더 까불면 이번에는 얼굴을 불태워버릴 거야. 평생 바깥을 나다닐 수도 없도록.”

미아는 어떻게든 흉터를 가리려 했다.

하지만 탈리야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 누가 좀 말려 봐.”

“미쳤어? 탈리야를 누가 말려.”

미아는 애원하는 얼굴로 탈리야를 올려다봤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도 없었다. 흉터의 기억은 미아에게 그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타, 탈리야······. 제발······!”

탈리야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급기야 미아의 상의를 완전히 벗겨내기라도 할 것처럼 세게 잡아당겼다.

“그만둬.”

그때, 미야의 눈앞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여파로 탈리야의 손에서 미아의 옷자락이 떨어져 나갔다.

미아는 서둘러 흉터를 가리며 고개를 들었다. 부옇게 얼룩진 시야 너머로, 탈리야의 손목을 움켜쥔 성난 얼굴의 사내가 보였다.

“데미안······?”

데미안이 탈리야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미아의 곁에 앉았다. 미아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데미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데미안의 눈동자가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일어설 수 있겠어?”

미아는 멍한 얼굴로 데미안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탈리야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내 친구야.”

“······뭐라고?”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마라. 탈리야 데본렉스.”

탈리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내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이거 정말 재밌네! 아하하하하!”

미아는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탈리야는 지금 극도로 화가 난 상태다.

잠시 후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탈리야는 희미한 미소만을 머금고 있었다. 데미안을 바라보던 그녀의 입술이 우아한 목소리를 뱉었다.

“반드시 이기고 올라오렴.”

“그렇게 할 거야.”

탈리야는 키득키득 웃으며 데미안과 미아를 차례로 돌아봤다.

그러고는 뒤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고마워. 데미안.”

미아는 울음을 그쳤고,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는 강한 여자인 것 같다.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네 목소리가 들려서.”

“······봤어?”

등의 흉터를 말하는 것이겠지.

“······아리엘라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어?”

“괜찮아. 이렇게 가리면 돼. 게다가 나는 곧 시합이잖아.”

아르카넘 듀얼의 첫 경기는 카인과 미아의 대결이다.

카인이 순식간에 이길 테니 뭐, 괜찮겠지.

“미아!”

루나가 저만치에서 달려왔다.

“어디 갔다 온 거야? 그것도 데미안과 함께.”

“아무것도 아니야. 데미안은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어.”

“흠······. 그래?”

루나가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나와 미아를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미아! 얼른 준비해! 곧 첫 경기 시작인가 봐!”

.

.

.

“블레이드 앤 아르카넘 홀의 학생 여러분. 오늘 우리는 3년만의 축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열정이 경기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입니다. 이 경기가 모두에게 기쁨과 영감을 주기를 바랍니다.”

이자크 펠리온 교장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곳곳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내 옆의 루나도 짝짝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첫 경기는 아르카넘 듀얼의 A조, 카인 시니야카와 미아 데본렉스의 경기입니다. 심판을 맡은 에스틸리아 교수님께서 공정한 판단을 해주실 것입니다.”

교장이 경기장의 에스틸리아 교수를 바라봤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열정적인 경기를 기대합니다. 최선을 다하시길.”

오늘은 비비안 교수도 나와 있었다. 늘 그렇듯 그녀의 얼굴에는 따스함과 친절함이 가득했다. 루나를 제외한다면 아르카넘 홀에서 가장 선한 인물이 아닐까.

교장의 말이 끝나자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경기장 중앙으로 집중됐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좌우로 일정 거리를 두며, 카인과 미아가 올라섰다.

“기권하고 싶을 때는 망토를 머리 위로 들면 됩니다.”

카인과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카넘 듀얼 8강전 1경기, 시작합니다.”

***

“열심히 해! 카인! 미아!”

루나의 외침을 들으며, 아리엘은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마법사 간의 대결은 기사의 대결과는 전혀 다르다. 기사의 전투가 동적(動的)이라면 마법사의 전투는 정적(靜的)이다. 마법사는 큰 움직임 없이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럴 뿐이다. 마법사의 전투는 기사 이상의 수싸움이 필요하다. 대결의 승패는 마법의 상성과 위력에 달려 있으며, 상대의 마법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카인이 미아를 향해 팔을 내뻗었다. 예상대로 먼저 주문을 완성한 것은 카인이었다.

화륵.

강렬한 화염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그러나 미아는 예상치 못한 대응을 보였다. 물이나 빙결 속성이 아닌, 바람 속성의 마법을 발현해 카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퍼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미아가 발현한 바람의 창날이 카인의 화염을 뚫고 직진했다. 카인의 눈이 부릅떠진 것이 보였다. 그 정도로 미아가 발현한 마법은 강력했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카인이 빙결의 장막을 발현해 자신을 보호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당했을 테지만 카인의 대응은 무섭도록 빨랐다. 그러나 미아는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게 무슨······!’

아리엘은 경악했다. 도넛처럼 구멍 난 화염의 중심으로 미아가 몸을 날린 것이다. 평소의 미아라면 절대로 보이지 않을 과격한 모습. 게다가 그 상황에서도 미아는 주문을 읊고 있었다. 저렇게 긴박하게 움직이며 마법을 발현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화염의 고리를 통과한 미아의 눈이 전투 열기로 타올랐다. 미아는 카인보다 먼저 마법을 완성했다. 아리엘은 직감했다. 미아는 지금의 공격에 사활을 걸었다.

“······!”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벌어졌다. 미아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가 싶더니, 마치 혼이 빠져나간 듯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아리엘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카인도 놀란 눈을 뜨며 주문 영창을 멈췄다.

그리고 아리엘은 깨달았다. 관객석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아가 쓰러졌기 때문이 아니다. 순서가 반대였다. 관객석이 먼저 술렁거렸고, 그것을 원인으로 미아가 쓰러졌다.

쟤 등 좀 봐.

저거 화상 자국 아냐?

끔찍해.

미아는 카인의 화염 마법을 완벽하게 회피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옷과 망토 일부에 불이 붙었다. 게다가 미아의 교복 상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찢겨 있었고, 그녀의 등이 관객석에 노출됐다.

동그랗게 웅크린 미아가 두 귀를 막았다. 그녀는 애처로울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아리엘은 경기장이 멀게 느껴졌다. 관객의 웅성거림은 그치지 않았다. 소음이라는 이름의 벌레들이 집요하게 귓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아리엘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향해 달렸다. 데미안, 루나, 세실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경기장으로 진입하지는 못하고 교직원에게 제지됐다.

“미아!”

아리엘이 소리쳤다. 그러나 미아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잡음 속에서 경기 종료를 선언하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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