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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9

148화.

주말에는 웬만하면 집에서 쉬는 편이다.

늦게 일어난 나는 주방으로 내려가 커피를 뽑아 마셨다. 택규는 TV를 켜놓은 채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또 밤새 게임을 한 모양이다.

난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며, 녀석을 깨웠다.

“야, 일어나.”

“왜 깨워? 좀만 더 자자.”

“이따 현주 누나와 엘리 오기로 했잖아.”

씻고 정리가 끝날 때쯤 현주 누나와 엘리가 도착했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한 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실로 올라왔다.

“저희 왔어요.”

“어서 와요.”

엘리는 평소 입는 여성용 바지정장이 아닌 긴소매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스키니진이라 늘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현주 누나 역시 오늘은 간편한 복장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깬 택규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누나 왔어?”

“제시카가 주말에도 일하러 간다는 걸 억지로 끌고 왔어요. 잘했죠?”

일부러 현주 누나를 쉬게 할 겸 주말 점심약속을 잡은 건가?

골든게이트는 공식적으로는 주 5일 출근이나, 직원들은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출근했다. 지사장이 잠도 안 자고 일하는데, 직원들이 쉴 수 있겠는가?

유능하고 일 열심히 하는 상사만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없다. 무능하면 때려치우거나 이직이라도 생각해볼 텐데,정확히 필요한 지시만 내리니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랄까?

이러한 현주 누나의 노력(과 직원들의 야근) 덕분에 골든게이트 한국지사는 완전히 자리를 잡아 더 이상 아시아지사의 지원이 없이도 독자운영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골든게이트는 글로벌 시장의 경험과 인프라를 내세워 기업고객들과 고액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영업했다.

올해 말부터는 지점을 개설하여, 일반고객들을 상대로도 영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은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했다.

식사는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미리 준비해두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이러고 있으니, 사람 사는 집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너무 대충 먹긴 했지.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각자 커피나 음료를 들고 거실에 앉았다.

“호텔에서 케이크 사왔어요.”

엘리는 케이크를 잘라서 각자의 접시에 나눠주었다.

택규가 말했다.

“로날드는 내일 오나?”

“점심쯤 도착할 거야.”

로날드 대통령은 한국에서 2박3일의 일정을 소화하고, 일본과 중국을 차례대로 방문할 예정이다.

주미대사관 방문,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방문, 경제인 간담회, 국회연설, 현충원 헌화 등 일정이 빼곡했다. 여기에 스탬퍼 코퍼레이션이 지분을 투자한 가평 골프장에 들르는 코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깨알 같은 자기회사 홍보랄까?

엘리가 말했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 찬반 집회하고 있지 않나요?”

이번이 미국 대통령의 첫 방한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환영과 반대를 나타냈다. 주말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때문에 경찰만 바빠졌다. 경찰은 갑호 비상을 발령하고 195개 중대, 1만5천명의 경력을 총동원했고,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펜스를 설치했다.

“TV 좀 틀어봐.”

현주 누나의 말에 택규는 TV를 틀었다.

뉴스채널을 틀자 역시나 집회 관련 기사가 흘러나왔다. 로날드 방한을 환영하는 보수단체의 집회 모습이 보였다. 보수단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부모님연합은 물론이고, 중년여성들로만 구성된 ‘엄마봉사부대’, 박시형을 지지하는 모임인 ‘박사모’ 등등.

여기에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들도 가세했다. 해병대 팔각모를 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할아버지가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엘리는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저분들은 누구예요?”

“구국군인협회라고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단체라는데요.”

“그렇군요. 대단하신 분들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는 잠시 후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다들 지나치게 젊지 않나요?”

“……그러게요.”

구성원들 대부분이 70대고, 많아야 80대 정도다. 설마 한두 살 때 총 들고 참전했나?

단상 위에 각 단체의 대표들이 나와 연설을 했다. 광장 가득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나부끼고, 각종 현수막이 펼쳐졌다.

[로날드 스탬퍼 대통령님의 방한을 환영합니다!]

[Welcome! Mr. President!]

[로날드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LOVE USA!]

[한미동맹이여, 영원하라!]

[Old soldier naver die!]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렇게 미국 대통령을 사랑한다.

미국에서는 매일같이 욕을 먹고 있는 로날드가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우방국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는 건 참 좋은 일이지.

한 집회 참가자는 인터뷰 도중 감정이 복받치는지 ‘로날드 대통령이 다 해주실 거야. 희망이 있잖아, 희망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대체 뭘 해준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현주 누나는 화면을 가리켰다.

“스펠링 틀렸네.”

“예?”

자세히 보니 ‘never die’가 아니라 ‘naver die’다.

저게 뭔 뜻이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는데, 왜 아무도 지적해주지 않는 거지?

환영집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보단체들 역시 결집해서 로날드 반대집회를 벌였다.

[전쟁광 로날드는 물러가라!]

[한반도에 평화를!]

[대북제재 중단하라!]

[인종차별정책, 반이민정책을 폐기하라!]

?일부는 성조기를 찢거나 불태우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거나, 미국 대사관으로 밀고 들어가려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로날드를 싫어하는 미국 국민들이라 해도 저런 행동을 좋게 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엘리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내 말에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뭐 어때서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죠.”

맞는 말이다. 지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

어쨌거나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두고 나라가 이렇게 떠들썩한 걸 보면…….

“그만큼 로날드가 호불호가 갈리는 건가?”

택규가 한마디 했다.

“미국에서는 그냥 불호 아니야?”

“…….”

그렇긴 하지.

* * *

로날드 스탬퍼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최우방국 대통령의 첫 방한인 만큼 한국에서는 국빈으로 맞이했다. 박시형 대통령은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가는 예우를 보였다.

이번 만남이 처음은 아니다. 로날드가 당선인 신분일 때 박시형 대통령이 급하게 미국으로 달려가 잠깐 만났었다.

설마 진짜로 당선될 줄은 몰랐던 만큼 외교라인에는 로날드와 접점이 있는 사람이 전무했다. 부랴부랴 관련자를 찾느라 진땀을 뺐을 정도다.

뭐, 당연히 다이앤이 될 거라 믿고, 그쪽에만 줄 대고 있었던 것은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했다.

로날드는 취임하자마자 무역적자와 방위분담금 문제를 꺼내들며 한국을 압박했고, 이는 박시형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로의 생각이야 어떻든 두 정상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로날드는 박시형의 손을 꽉 붙잡은 채 갑자기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박시형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고, 로날드는 웃으며 어깨를 붙잡아주었다.

외교적 결례지만, 박시형은 항의 한마디 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두 정상은 보란 듯이 다정하게 레드카펫 위를 걸었다.

이후 바로 청와대로 이동해 공식 환영식을 가졌다.

육해공군 의장대와 군악대 등 수백 명의 장병들이 도열하고, 양국 국가연주 및 의장대 사열 등 공식행사가 진행되었다.

이어진 국빈만찬에서 박시형은 기업인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을 꺼내들며 말문을 열었고, 로날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화답했다.

한국 언론들은 로날드의 방한일정을 집중보도하며, 향후 한미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 * *

퇴근하고 집에서 쉬는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차를 몰고 남산에 있는 그랜드파로스호텔로 향했다.

평소와는 달리 주차장에서부터 경호가 삼엄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20층으로 올라갔다.

20층에는 복도에서부 양복을 입은 미국 경호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역시나 몸수색은 기본이었다.

샅샅이 몸수색을 당하고 핸드폰을 맡긴 뒤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100평이 넘는 규모였고, 창밖으로는 남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실을 지나 서재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로날드는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오랜만이네, 미스터 강. 취임식 이후로는 처음인가?”

“한국에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대통령님.”

로날드는 내 손을 아플 정도로 꽉 붙잡고, 내 어깨를 세차게 두드렸다.

“자네에 대한 소식은 계속 듣고 있네. 한국 대통령과는 여전히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로군.”

난 쓴웃음을 지었다.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그쪽에서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텐데 말이지. 어쨌거나 앞으로도 화해는 힘들겠지.

“자리에 앉게.”

로날드는 소파에 앉으며,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

“나가보게.”

경호원들이 머뭇거리자 로날드는 농담하듯 말했다.

“왜? 내가 이 친구와 싸우면 질 것 같나?”

“알겠습니다.”

경호원들이 거실로 나갔고, 서재 안에는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세계 최고의 권력자다. 세상에 미국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이 자리에서 단둘이 마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특권이다.

바쁜 일정과 시차 때문인지 로날드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생각해 보면 나이가 벌써 70대다. 남들이었으면 진작 은퇴하고 집에서 손자들 재롱보고 있을 나이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로날드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정치라는 게 쉽지 않군.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펜트하우스에서 편하게 누워있었을 텐데.”

“그래도 재선까지는 하셔야지요.”

그냥 해본 말이다.

빌 클린턴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전부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로날드의 현재 지지율로는 재선은커녕 남은 임기만 다 채워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건가요?”

로날드는 책상 위에 놓인 술잔을 들어보였다.

“혼자 마시다 보니 적적해서 술친구가 필요해서 불렀네. 괜찮겠나?”

난 또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물론입니다. 좋은 술은 같이 마시면 더 좋은 법이죠.”

“하하, 이 친구 뭘 좀 아는군.”

로날드는 잔에 버번위스키를 따라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잠시 후,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난 이제까지 항상 이기는 게임만 해왔네. 실패조차도 성공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

로날드의 가장 큰 장점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주변에서 온갖 잡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한번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추진력을 갖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돌파해나갔다. 어쩌면 그런 긍정적이고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선에 도전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유명세를 얻으려는 장난 정도로 생각했지. 그건 공화당 후보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고. 누구도 내가 정말로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네. 심지어는 내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도.”

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아무래도 지지율이 크게 뒤지고 있었으니까요.”

로날드는 나를 가리켰다.

“그런데 자네만은 달랐어.”

“뭐가요?”

“마치 내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는 듯 행동했단 말이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렇게 확신했으니까요.”

로날드는 러스트벨트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러스트벨트 승리의 밑바탕에는 OTK컴퍼니의 투자가 있었다.

내가 로날드를 도운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게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난 취임식 당시 만났던 노년의 여성을 떠올렸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이앤은 민주당 주류에 속해 있고, 전 대통령의 후임으로 지명 받았다. 정치명문가 출신인 데다가, 상원의원과 국무장관 자리를 두루 거치며 쌓아온 국정경험도 풍부하다.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만큼, 별다른 논란 없이 전임 정부의 정책을 승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날드가 대통령이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내가 예지를 보지 않았다면, 그래서 로날드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지금 미국 대통령은 로날드 스탬퍼가 아닌 다이앤 언더우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예지에 다이앤이 아니라, 로날드가 보였던 걸까?

그리고 그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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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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