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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16화 숲의 오염 (3)

16화 숲의 오염 (3)

빌어먹을. 벌써 당했다.

나는 횃불을 비춰 두 소년을 봤다. 123번과 136번. 무리에서 유독 레벨이 낮고 유약한 이들이다.

“저, 저게 무슨······!”

“123번이 136번을 찔렀어······?”

조원들의 말대로 123번이 136번을 찔렀다.

아니, 123번의 몸을 장악한 ‘섀도우 크리쳐’가 136번을 찔렀다.

“가까이 오지 마! 모두 어둠 속에 숨어!”

섀도우 크리쳐(Shadow Creature).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탄생하는 음습한 괴물.

짧게는 수십,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오랜 어둠은 간혹 스스로의 자아를 깨닫고 보금자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섀도우 크리쳐.

하지만 섀도우 크리쳐는 자아만 존재할 뿐 육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놈들이 취하는 방법이 바로.

‘상대의 그림자를 이용해 육체를 강탈하는 것.’

자아를 깨달은 섀도우 크리쳐는 대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작은 동물의 육체를 빼앗는 것으로 첫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자아가 강해진 섀도우 크리쳐는 점차 더 큰 동물로, 종래에는 인간을 넘어 몬스터의 몸을 강탈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로에 진입한 후 동물은 없었어.’

이것도 오염된 숲의 영향인가.

“끼기기끼킥······.”

123번, 아니 섀도우 크리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놈은 136번이 꿰인 나무창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키에엑!”

136번을 바닥에 내팽개친 섀도우 크리쳐가 내게 달려왔다.

나는 족제비의 손에 힐링 블룸을 쥐여주며 어둠 속으로 밀쳤다.

“가. 136번을 치유해.”

“데, 데미안······!”

내게 근접한 섀도우 크리쳐가 나무창을 휘둘렀다. 어설픈 동작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몸을 조종하니 제대로일 리 없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공격할 수 없다. 내 손으로 조원을 해쳐 팀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123번을 죽여봐야 섀도우 크리쳐는 소멸하지 않는다.

‘섀도우 크리쳐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마력으로 공격하는 것.’

물론 그 외에도 방법은 있다.

내 마석 단검에 담긴 생명력은 섀도우 크리쳐를 타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새도우 크리쳐보다 123번이 먼저 죽겠지.

“데미안!”

“오지 마! 테오!”

테오가 섀도우 크리쳐에게 몸을 빼앗기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지 마! 그림자를 드러내서는 안 돼! 123번처럼 몸을 빼앗기고 만다!”

이 정도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었다. 그래도 테오는 내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물론 섀도우 크리쳐가 내 몸을 빼앗으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섀도우 크리쳐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의 몸을 빼앗지 않아.’

나는 통찰의 눈으로 섀도우 크리쳐를 살펴봤다.

놈의 레벨은 15.

반면 나의 레벨은 18이다. 녀석이 내 몸을 빼앗으려 해도 저항할 수 있다.

‘애초부터 섀도우 크리쳐가 자신보다 강한 상대의 몸을 빼앗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니까.’

빛을 향해 나서는 조원은 없었다. 족제비와 136번도 보이지 않는다. 테오가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황은 단순해진다. 섀도우 크리쳐로서는 더 이상 육체를 빼앗을 존재가 없다. 문제는 123번에게서 놈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키에엣!”

섀도우 크리쳐가 마구 나무창을 휘둘렀다. 123번의 몸은 벌써 망가졌다. 나약한 신체를 저렇게 학대하니 몸이 남아날 리 없었다.

[하센베르크 격투술(Lv.1)이 반격의 실마리를 잡습니다.]

나는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의 멱살을 붙잡으며 떠올렸다. 카인이 내게 밀어내기(Lv.2)를 발현하던 모습을.

[밀어내기(Lv.1)를 획득합니다.]

쿵! 123번의 몸이 지면에 떨어졌다. 녀석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날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빨랐다.

치지짓······! 횃불로 놈의 옆구리를 지졌다. 이것이 마력 없이 섀도우 크리쳐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태생이 어둠인 섀도우 크리쳐는 불에 약할 수밖에 없다.

“끼에에······아악! 뜨거워어어!”

섀도우 크리쳐의 비명이 123번의 육성으로 바뀌었다. 나는 123번의 그림자에서 분리되는 또 다른 그림자를 봤다. 섀도우 크리쳐다.

휘리릭! 뱀처럼 움직이며 놈이 도주했다. 달아나게 해서는 안 된다. 놈이 어둠 속에 숨으면 언제든 다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

[거미줄을 발사합니다.]

발사한 거미줄이 놈에게 붙었다. 나는 거미줄을 수축시켜 거리를 좁혔다. 그럼에도 놈을 잡을 수는 없었다. 거미줄에 붙은 것은 놈이 아닌 지면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놀리듯 몸을 뒤튼 섀도우 크리쳐가 어디론가 이동했다. 횃불을 비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136번을 치유 중인 족제비가 있었다.

“데, 데미안?”

당황한 족제비는 섀도우 크리쳐를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거미줄로 따라잡아 봤자 다시 놈을 놓칠 것이다.

이대로라면 족제비가 몸을 빼앗긴다. 하지만 족제비는 도망치지 않는다. 다친 136번을 두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 살려 줘······!”

어떻게든 136번을 끌고 가려는 족제비를 보며 나는 아공간에서 돼지기름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하센베르크 격투술(Lv.1)의 낙법을 변형해 측면으로 몸을 굴렸다.

자세를 바로잡은 나는 섀도우 크리쳐를 향해 횃불을 겨누며 돼지기름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발현했다.

[리메이커가 세계의 현상에 간섭합니다.]

【······데미안은 손에 쥔 돼지기름에 의지를 전달했다. 그러자 고체였던 기름이 순식간에 액체로 변했고, 그것이 횃불을 뚫으며 발사······】

화르르르르르르!

나는 화염방사기처럼 방출된 불이 섀도우 크리쳐를 습격하는 것을 봤다. 당황한 섀도우 크리쳐가 몸을 떨었고, 화염에 잠식됐다.

끼헤에에엣······!

타오르는 그림자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 횃불로 추가 공격을 했다.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둠이 남으면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섀도우 크리쳐가 내 몸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나의 저항을 뚫지 못했다. 불타는 그림자가 점점 작아졌다. 이윽고 바닥에는 시커먼 잿개비만이 눌어붙어 있었다.

“데, 데미안······!”

족제비의 머리카락은 반쯤 타버렸다. 나는 화염이 족제비를 덮치는 상황을 피하고자 측면으로 몸을 굴려 각을 만들었었다. 다행히 족제비는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나 보다.

“데미안!”

테오가 달려왔다. 섀도우 크리쳐에게 몸을 빼앗겼던 123번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는 나의 횃불 공격까지 맞았다.

나는 123번의 관절에 힐링 블룸을 으깨 바른 뒤 부목으로 고정했다. 옆구리의 화상에도 힐링 블룸을 발랐다.

“부상이 심해.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을 거야.”

잠시 후 의식을 되찾은 123번이 나와 136번에게 사과했다. 섀도우 크리쳐에게 육체를 빼앗겨도 기억은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그제야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조원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데, 데미안. 넌 정말 마법사인 거야?”

“아까 그건 화염 마법 맞지? 화악! 하고 불이 뻗쳤던 거 말이야!”

“데미안은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었어! 마법 실력도 끝내준다고!”

정비를 마친 우리는 다시 미로를 걸었다. 횃불을 추가로 제작해 족제비에게 맡겼고, 다친 123번과 136번은 들것을 만들어 실었다.

머지않아 먼지가 엷게 몸을 떨었다.

“테오. 고블린이 온다.”

우리는 즉각 전투태세를 갖췄다. 다소 느슨해졌던 분위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저만치에서 고블린 무리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레벨이 상당했다.

우리는 팔랑크스 방진을 펼쳤다. 123번과 136번은 뒷줄에 눕혔다. 나는 덩치에게 손도끼를 건넸다.

“덩치. 간다.”

퍼억! 나는 명중이었지만 덩치는 실패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족제비가 화살을 쐈고, 엉뚱한 바닥에 꽂혔다.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왔다. 달리는 속도가 빠르다. 숲의 오염이 놈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창 들어! 그대로 대기!”

테오가 방진을 더욱 단단하게 응집시켰다. 훌륭한 선택이다. 팔랑크스 방진은 애초부터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찔러!”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테오, 덩치, 족제비가 선두에서 창을 질렀고 나도 나무창과 마석 단검으로 가세했다. 후열의 조원들이 우리의 등을 받쳤다.

.

.

.

죽은 조원은 넷이었다.

그 안에 136번이 포함됐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123번과 달리 녀석은 다친 몸으로 전투에 참여했고, 전사했다.

부상자는 사망자보다 많았다. 테오를 비롯해 덩치, 족제비 등 거의 모든 조원이 상처를 입었다. 가지고 있던 힐링 블룸이 모두 사라졌다.

성과도 있었다.

테오, 덩치, 족제비가 각각 1레벨씩, 다른 조원들도 한두 단계씩 레벨이 올랐다.

“흑······! 흐흑······!”

생존자들의 얼굴은 침통했다. 테오는 눈물을 참고 있었고, 족제비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으며, 덩치의 눈은 횃불 때문인지 더욱 빨갛게 보였다.

“가자.”

우리는 다시 전진했다. 사망자들이 두 손을 모은 채 생존자를 배웅했다.

“테오.”

“······응?”

“얼굴 좀 펴. 네가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으면 조원들에게 영향이 가.”

지난 회차에서 나는 이렇게 말해 테오의 정신력 특성을 개화시켰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리더는 감정을 숨길 줄 알아야 해. 그래야 팀이 흔들리지 않아.”

“네 말이 맞아 데미안. 고맙다.”

◎ 특성: [책임감], [통솔자], [인내력], [정신력]

그렇게 테오는 다시 정신력 특성을 개화했다.

이후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렀다. 나와 덩치는 레벨이 오르지 않았지만 테오와 족제비는 한 단계씩 올라 14레벨과 12레벨이 됐다.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123번을 제외하면 가장 레벨이 낮은 녀석도 9레벨에 도달했다.

재미있는 점은 나와 덩치가 손도끼를 투척할 때마다 족제비도 활을 들고 가세했다는 거다. 물론 화살이 타깃에 맞는 일은 없었지만.

“흑······! 흐흐흑······!”

전투를 치를수록 사망자는 늘었다. 결국 123번도 죽었다.

“이제 횃불은 끄는 것이 좋겠어.”

마침내 우리는 미로의 끝에 닿았다. 지난 회차에서 카인을 만났던, 좌우로 길게 보급로가 펼쳐진 곳이었다.

[미니맵(Lv.2)이 3레벨로 진화합니다.]

[이제부터는 중립적인 대상도 미니맵에 표시할 수 있습니다.]

뜬금없이 미니맵이 업그레이드됐다. 미로를 통과한 것에 대한 보상인가.

나는 조원들을 미니맵에 띄워보려 했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조원들은 우호적 대상이라는 거겠지.’

지난 회차와 달리 카인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저쪽의 숲은 미로화가 진행되지 않은 건가. 그래서 카인과 C조는 이미 이곳을 지나간 걸까.

‘아니야.’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카인은 나를 살리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나를 만나려 하겠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대로 숲을 달려 탈출해야 할까. 카인을 기다려야 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카인과 함께 움직여야 해.’

오러 블레이드의 기사와 차원의 그림자 간의 전투는 예정된 일이다. 카인은 지난 회차처럼 보급로의 기병을 습격하고, 그곳에 차원의 그림자가 등장하도록 유도할 거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다.

‘나도 그 전투에 참여한다.’

나는 오러 블레이드의 기사와 차원의 그림자들의 전투를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힘이 부족한 저울에 조금의 무게추를 더해 평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두 세력을 전멸시킬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차원의 그림자가 이기든, 오러 블레이드의 기사가 이기든 우리에게 찾아올 결말은 죽음뿐이야.’

그 결말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양측의 공멸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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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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