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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0

150화 불카누스를 찾아서

“불카누스 경을 탐색할 방법을 찾았다고?”

베아트리체의 말에 반색하는 레온. 그도 설마 이렇게 빨리 방도를 찾을 거라곤 예상 못한듯했다.

“예, 일전에 말씀하셨던 ‘특정 인물’의 좌표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만. ‘뽑아낸 정보’와 실험을 거쳐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렇소?”

“게이트를 여는 데는 지금까지 두 가지가 필요했지요.”

“‘좌표’가 되는 물건과 ‘재료’인 마정석이었지.”

첫째는 제레아가 있는 게이트였다.

정확히는 성물이 있는 게이트를 향하기 위해 레온의 성검이 좌표로 사용되었다.

둘째는 살육대공 아카샤의 영지.

이곳에 향하기 위해 레온은 아카샤의 잘라낸 팔을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군라르의 모종.

이것은 군라르가 활동하던 시기. 라이온하트 왕국의 멸망기로 그들을 인내했다.

그렇다면 불카누스의 의식단검으로는 어째서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가.

“‘단검’이 좌표로서 부족한 것이 아닌가?”

레온이 불카누스를 만난 게이트에서 받은 단검은 비록 그가 수행기사 시절부터 사용해온 물건이라곤 해도 성물급이나 악마대공의 육신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레온은 물건의 격이 부족해서인가 싶었지만,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저었다.

“야피 경의 비유를 빌리자면 물건은 대략적인 좌표를 특정시키는 코드에 불과해요. 그 무작위성을 생각해도 어떤 물건이든 게이트를 여는 좌표가 될 수 있어요.”

베아트리체는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더니 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녀 자신이 기록한 실험기록이다.

그리고 그건 베아트리체가 몇 번이고 게이트를 연 실험영상이 담겨 있었다.

“의외로 마정석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답니다. 대신 가장 등급이 낮은 게이트들만 나왔지만요.”

“게이트 자체는 악마의 것이 아닌, 그저 현상이라고 했지. 의외로 물건의 질 같은 건 따지지 않나 보군.”

레온은 자신도 아직 못 다루는 스마트폰은 능숙하게 다루는 베아트리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불카누스 경이 있는 좌표는 열리지 않는 것이오? 단순히 마정석이 부족하다는 결론은 아닌 듯한데.”

“폐하, 기억하시나요? 불카누스 경이 ‘어떻게 실종’ 됐는지요.”

베아트리체는 지난 라이온하트 왕국 게이트에서 그 소문을 들은 바가 있었다. 그녀와 기사들이 게이트에 진입한 시점이 불카누스의 실종 직후였던 덕이다.

그리고 그것은 200년 전의 기억을 더듬는 레온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란돌체 평야에서 불카누스 경이 나태와 우둔의 악마대공… 통칭 빙하대공이라 불리는 악마와 그 군단과 결전을 벌였지. 그 회전은 불카누스 경의 승리였어.”

당시의 레온은 지혜의 악마대공과 그 군단 20만을 격멸하기 위해 출격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앞에서 불카누스의 군단이 17만의 악마 군단에 맞서 란돌체 평야로 향했고.

“3만의 왕국군과 불타는 검 기사단이 놈들을 격멸했지. 하지만… 불카누스 경과 불타는 검 기사단이 실종됐네.”

“기이한 일이지요. 싸워 둘 다 쓰러졌거나 둘 중 하나 쓰러졌다면 시신이라도 남았을 텐데요.”

베아트리체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폐하, 폐하는 하리 양을 만날 때까지 악마들을 도륙하고 있었지요?”

“그러하다. 몇몇은 놓쳤으나 끝내 모조리 사살했지.”

“빙하대공이라는 자. 그를 만나신 적은 없으시지요?”

“그렇소.”

베아트리체는 짐작했다는 듯 확인을 위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악마들은 자결할 수 있나요? 저는 지금까지 어떤 고통을 받는 악마도 자결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놈들은 죽어도 마계의 본체가 사라지지 않으나 자결은 또 다른 문제일세. 놈들이 마법의 종주이듯이, 스스로가 마법적 존재이거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법적인 행위로 간주한다는 건가요?”

레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애초에 차원을 넘어 수육하는 행위부터가 마법의 산물이다.

육체 자체가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들의 모든 것은 마법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살육과 파괴. 지혜와 탐구. 쾌락과 타락. 그들이 근원으로 삼는 마법적 힘은 비단 적들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지. 놈들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법칙일세.”

성력이 아닌 마력. 악마 그 자체가 마력의 덩어리가 뭉쳐진 존재이기에 모든 행위에는 마력이 간섭한다.

다시 말해 단순한 자결도 ‘자결’이라는 마법적 행위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열한 겁쟁이 놈들, 죽음조차 각오하는 놈이 없을 줄이야.”

“하지만 덕분에 편하겠네요. 적어도 죽음으로 도망치는 경우는 없잖아요?”

“크큭, 짐이 마지막 데몬 게이트를 파괴했을 때, 놈들이 끝내 도주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지.”

레온은 키득거리다가 베아트리체가 왜 이런 질문들을 해왔는지를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가설이 있는 겐가?”

“네, 아마 이건 직접 부딪쳐봐야 알겠지만요.”

베아트리체는 결론을 이야기했다.

“불카누스 경은 아마, ‘악마들의 영지’에 있지 않나, 하고요.”

그것도 빙하대공. 나태와 우둔의 악마대공의 영지에.

* * * *

악마들은 게이트를 이용해 차원을 넘어 여러 세계를 침공했다.

하지만 게이트 자체는 악마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악마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먼저 게이트를 발견해 그것을 활용하고 있을 뿐, 게이트 내부의 ‘시스템’이나 ‘퀘스트’도 일정 부분만 간섭이 가능할 뿐,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악마는 상당히 오랫동안 게이트를 이용해왔어요. 저도 라이온하트 왕국 게이트에서 실감한 거지만, 지혜의 군주에 의해 게이트를 차단당했지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게이트를 활용하는 기술에 있어 악마가 이제 막 게이트 기술을 활용하는 베아트리체보다 훨씬 진보되어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 말인즉슨 그들 나름대로 게이트에 대한 보안체계가 있을 거예요. 다른 존재가 자신들의 차원에 게이트를 열고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허나, 지난번에는 성공하지 않았소. 아카샤의 영지 말이오.”

“그것이 맹점이지요, 폐하. 폐하는 게이트를 말단 악마들이 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

그러고 보면 레온은 게이트를 여는 악마들을 본 적이 극소수였다.

대악마의 경우 제국이 최초로 대악마를 소환했을 때처럼 지혜의 보옥을 사용하거나 한빛궁처럼 강욕의 신앙 등을 퍼뜨리면서 대의식을 준비했다.

대공급이나 군주급 악마라 할지라도 다른 차원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소환의식이 필요했고.

“허나, 대공급 악마쯤 되면 스스로 차원을 열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는 건 가능했지. 살육대공이 그러했고…….”

“저는 불카누스 경과 대적했던 빙하대공 또한 위기를 느끼고 자신의 영지로 도주했다고 생각해요.”

“……!”

이제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란돌체 평야의 회전에서 빙하대공과 불카누스 그리고 그 기사단이 실종된 이유가.

“전투 중에 빙하대공이 도주했고, 이를 쫓아 불카누스 경이 쫓았다?”

“바로 그러합니다.”

그리고 불카누스가 게이트를 넘어 도달한 곳은 빙하대공의 영지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악마대공의 영지인 만큼 베아트리체가 불카누스의 단검을 좌표로 삼아도 대공급 영지의 차단막 때문에 열지 못한다, 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불카누스 경이 게오브릭 경처럼 놈들에게 사로잡혔을 가능성은?”

“모종의 방법으로 불카누스 경이 움직이지 못하는 건 확실하겠죠. 하지만 그걸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빙하대공의 영지를 찾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악마의 영지는 지난번 사용했던 살육대공의 팔로 입장하면 된다는 거군.”

베아트리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레온 또한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

“당분간 자리를 비울 것이다.”

가을 추수를 앞두고 널널한 휴식을 이어나가고 있는 만신전은 레온의 느닷없는 선언에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 어디 가시나요?”

나름 짬과 위치가 있는 하리가 질문했다.

“비체와 함께 게이트를 탐색할 생각이다.”

“???”

더욱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 그렇다면 더더욱 단둘이서만 게이트를 탐색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레온은 초력의 강자이지만, 그 자신이 집단의 힘을 좌시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는 초인이기 이전에 사령관. 초인들의 시대인 이 지구에서 맨앳암즈라는 대규모 병단을 키워내지 않았던가.

그 자신의 막강한 버프 능력을 생각하면 군대… 최소한 기사단은 데리고 가는 것이 맞았다.

“기사단이라도 데려가셔야 하지 않나요?”

기사단장인 천소연이 손을 들었다. 만신전에는 이미 숱한 정예세력이 존재한다.

당장 산하로 들어온 한빛궁의 박용신이 그러하고, 천검길드의 광검자 천진수나 불새길드 이용완, 한유리, 황금사자 길드의 황금철과 황연하도 레온에게 협력적이다.

레온은 유사시 ‘군단’을 동원할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짐은 악마들의 땅으로 향할 것이다.”

“……!”

놀라는 그들에게 레온이 찬찬히 설명했다.

“허나, 살육대공 때처럼 정벌이 아니다. 놈들의 차원에 잠입해 찾아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너희들은 휴식을 취하며 만신전을 잘 지키도록 하라.”

은밀임무라는 것이다. 레온과 베아트리체 둘 뿐이라면 어떤 위협이 있든 어떻게든 후퇴할 수 있을 테니까.

두 사람 다 초력의 무력을 가진 건 당연하고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베아트리체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

가을추수 기간. 레온과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악마들의 차원으로 떠났다.

* * * *

대격변 이후 게이트가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세계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헌터길드의 하위층들은 노란색이나 초록색 게이트를 열심히 클리어하고, 빨간색이나 주황색 같은 고위 게이트는 S급 헌터와 공략대가 있는 대형길드가 처리한다.

그러다가 인류의 위기라고 불리는 흑색 게이트가 등장할 때면 티격태격하긴 해도 주변국들이 합심해서 어떻게든 클로징해낸다.

인류의 전력은 3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해졌고, 이제 어지간한 게이트는 여유롭게 방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 오늘 클로징된 게이트는 총 17개. 공략 진행 중인 게이트는 42개입니다.”

“흠… 남은 게이트가 평소보다 많군.”

헌터협회 김진수 과장의 보고를 들은 오강혁 협회장은 생각보다 많은… 미 클리어 게이트가 신경 쓰였다.

“음… 연 평균으로 치면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아~”

그제야 오강혁은 자신이 가진 위화감을 깨달았다.

최근 한국 내 게이트들이 속속 클리어되는 이유는 어떤 대형길드의 존재 덕분이었다는 것을.

“만신전은 추수기간이라 여전히 휴식 중이라던가?”

“예, 33%씩 로테이션으로 쉬고 있는 모양입니다.”

만신전은 투자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오지나 저등급, 가성비가 좋지 않은 게이트도 차별 없이 클리어해주었기에 협회에 있어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영향은 10대 길드들에게도 끼쳐 지금은 한빛궁이나 불새, 황금사자와 천검 길드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그분의 존재가 크긴 크군.”

“뭐, 이이상 커지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김진수 과장은 만신전에 파견 나가 있으면서 만신전과 레온이라는 사내의 잠재력을 피부로 느꼈다.

“알고 계시겠지만, 레온 폐하는 한 국가에 국한될 분이 아닙니다.”

“아네. 대통령 각하는 정치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네만.”

레온이 당장 나라의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과 그 적법한 지도자에 대한 존중이다.

무엇보다 그가 보는 눈은 ‘국가’나 ‘대륙’이 아닌 ‘세계’.

“만신전의 내년 성장률은 어디까지 치솟을 거라 보는가?”

“우크라이나의 초르노젬, 헤이룽 인민국의 베이다황, 미국의 캘리포니아 옥수수밭… 마소로 오염되었던 전 세계 곡창지대가 정화되며 데메라 여신님의 신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뿐만일까.

만신전은 그 교리와 가입방법이 인터넷을 통해 매우 접근성 좋게 뻗어있다.

기존 대형 종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실존하는 신과 기적은 무신론자 뿐 아니라 기존 종교계의 신도들까지 빠져들게 하고 있었고.

“실제로 한국 내에서만 성법 사용자만 사백 명 이상 알려졌습니다. 신앙하는 신의 가벼운 술법을 부리는 수준이지만요.”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만신전의 위세는 연 단위가 아니라 달 단위로 폭증할 것이다.

“유엔 악마사건이 컸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자국 정부와 지도층을 불신하면서 만신전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이걸 잘 됐다고 해야할지…….”

“무엇이든 과도기가 있는 법일세.”

이미 야피를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받고 있는 오강혁 협회장은 전 세계에 심각한 수준으로 암약하고 있는 악마들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레온과 만신전 뿐이라는 확신이 더욱 가중되었고.

“이대로만 가주면 좋겠군. 만신전의 규모가 커질수록 세계의 안보는 차츰차츰 해결될 거야.”

하지만 오강혁은 경험상 알고 있다. 보통 두려운 적은 가장 취약한 때를 노려 싹수를 잘라내기 마련이라고.

────────!!

그 순간, 협회의 직원들의 휴대폰… 김진수 과장과 오강혁 협회장의 휴대폰에도 찢어지는 것 같은 경보음이 울렸다.

협회 직원이라면 의무적으로 설치된 게이트 출몰 경보. 그것이 연달아 울렸다.

-삐익! 삐익! 삐익!

“협회장님…! 이건!”

김진수 과장의 안색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지금도 계속 울리고 있는 경보음이 말하는 바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오강혁 협회장은 곧장 지시를 내렸다.

“십대 길드에 비상령 내리게! 그리고 만신전… 한하리 대리를 통해 곧장 야피 경과 연결해!”

“예…!”

오강혁은 서늘한 등골에 식은땀을 흘리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그의 휴대폰에는 전국 각지에서 출몰한 백여개의 게이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추가되고 있었다.


           


Chapter 150

Chapter 150

150화 불카누스를 찾아서

"불카누스 경을 탐색할 방법을 찾았다고?"

베아트리체의 말에 반색하는 레온. 그도 설마 이렇게 빨리 방도를 찾을 거라곤 예상 못한듯했다.

"예, 일전에 말씀하셨던 '특정 인물'의 좌표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만. '뽑아낸 정보'와 실험을 거쳐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렇소?"

"게이트를 여는 데는 지금까지 두 가지가 필요했지요."

"'좌표'가 되는 물건과 '재료'인 마정석이었지."

첫째는 제레아가 있는 게이트였다.

정확히는 성물이 있는 게이트를 향하기 위해 레온의 성검이 좌표로 사용되었다.

둘째는 살육대공 아카샤의 영지.

이곳에 향하기 위해 레온은 아카샤의 잘라낸 팔을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군라르의 모종.

이것은 군라르가 활동하던 시기. 라이온하트 왕국의 멸망기로 그들을 인내했다.

그렇다면 불카누스의 의식단검으로는 어째서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가.

"'단검'이 좌표로서 부족한 것이 아닌가?"

레온이 불카누스를 만난 게이트에서 받은 단검은 비록 그가 수행기사 시절부터 사용해온 물건이라곤 해도 성물급이나 악마대공의 육신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레온은 물건의 격이 부족해서인가 싶었지만,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저었다.

"야피 경의 비유를 빌리자면 물건은 대략적인 좌표를 특정시키는 코드에 불과해요. 그 무작위성을 생각해도 어떤 물건이든 게이트를 여는 좌표가 될 수 있어요."

베아트리체는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더니 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녀 자신이 기록한 실험기록이다.

그리고 그건 베아트리체가 몇 번이고 게이트를 연 실험영상이 담겨 있었다.

"의외로 마정석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답니다. 대신 가장 등급이 낮은 게이트들만 나왔지만요."

"게이트 자체는 악마의 것이 아닌, 그저 현상이라고 했지. 의외로 물건의 질 같은 건 따지지 않나 보군."

레온은 자신도 아직 못 다루는 스마트폰은 능숙하게 다루는 베아트리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불카누스 경이 있는 좌표는 열리지 않는 것이오? 단순히 마정석이 부족하다는 결론은 아닌 듯한데."

"폐하, 기억하시나요? 불카누스 경이 '어떻게 실종' 됐는지요."

베아트리체는 지난 라이온하트 왕국 게이트에서 그 소문을 들은 바가 있었다. 그녀와 기사들이 게이트에 진입한 시점이 불카누스의 실종 직후였던 덕이다.

그리고 그것은 200년 전의 기억을 더듬는 레온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란돌체 평야에서 불카누스 경이 나태와 우둔의 악마대공… 통칭 빙하대공이라 불리는 악마와 그 군단과 결전을 벌였지. 그 회전은 불카누스 경의 승리였어."

당시의 레온은 지혜의 악마대공과 그 군단 20만을 격멸하기 위해 출격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앞에서 불카누스의 군단이 17만의 악마 군단에 맞서 란돌체 평야로 향했고.

"3만의 왕국군과 불타는 검 기사단이 놈들을 격멸했지. 하지만… 불카누스 경과 불타는 검 기사단이 실종됐네."

"기이한 일이지요. 싸워 둘 다 쓰러졌거나 둘 중 하나 쓰러졌다면 시신이라도 남았을 텐데요."

베아트리체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폐하, 폐하는 하리 양을 만날 때까지 악마들을 도륙하고 있었지요?"

"그러하다. 몇몇은 놓쳤으나 끝내 모조리 사살했지."

"빙하대공이라는 자. 그를 만나신 적은 없으시지요?"

"그렇소."

베아트리체는 짐작했다는 듯 확인을 위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악마들은 자결할 수 있나요? 저는 지금까지 어떤 고통을 받는 악마도 자결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놈들은 죽어도 마계의 본체가 사라지지 않으나 자결은 또 다른 문제일세. 놈들이 마법의 종주이듯이, 스스로가 마법적 존재이거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법적인 행위로 간주한다는 건가요?"

레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애초에 차원을 넘어 수육하는 행위부터가 마법의 산물이다.

육체 자체가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들의 모든 것은 마법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살육과 파괴. 지혜와 탐구. 쾌락과 타락. 그들이 근원으로 삼는 마법적 힘은 비단 적들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지. 놈들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법칙일세."

성력이 아닌 마력. 악마 그 자체가 마력의 덩어리가 뭉쳐진 존재이기에 모든 행위에는 마력이 간섭한다.

다시 말해 단순한 자결도 '자결'이라는 마법적 행위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열한 겁쟁이 놈들, 죽음조차 각오하는 놈이 없을 줄이야."

"하지만 덕분에 편하겠네요. 적어도 죽음으로 도망치는 경우는 없잖아요?"

"크큭, 짐이 마지막 데몬 게이트를 파괴했을 때, 놈들이 끝내 도주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지."

레온은 키득거리다가 베아트리체가 왜 이런 질문들을 해왔는지를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가설이 있는 겐가?"

"네, 아마 이건 직접 부딪쳐봐야 알겠지만요."

베아트리체는 결론을 이야기했다.

"불카누스 경은 아마, '악마들의 영지'에 있지 않나, 하고요."

그것도 빙하대공. 나태와 우둔의 악마대공의 영지에.

* * * *

악마들은 게이트를 이용해 차원을 넘어 여러 세계를 침공했다.

하지만 게이트 자체는 악마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악마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먼저 게이트를 발견해 그것을 활용하고 있을 뿐, 게이트 내부의 '시스템'이나 '퀘스트'도 일정 부분만 간섭이 가능할 뿐,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악마는 상당히 오랫동안 게이트를 이용해왔어요. 저도 라이온하트 왕국 게이트에서 실감한 거지만, 지혜의 군주에 의해 게이트를 차단당했지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게이트를 활용하는 기술에 있어 악마가 이제 막 게이트 기술을 활용하는 베아트리체보다 훨씬 진보되어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 말인즉슨 그들 나름대로 게이트에 대한 보안체계가 있을 거예요. 다른 존재가 자신들의 차원에 게이트를 열고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허나, 지난번에는 성공하지 않았소. 아카샤의 영지 말이오."

"그것이 맹점이지요, 폐하. 폐하는 게이트를 말단 악마들이 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

그러고 보면 레온은 게이트를 여는 악마들을 본 적이 극소수였다.

대악마의 경우 제국이 최초로 대악마를 소환했을 때처럼 지혜의 보옥을 사용하거나 한빛궁처럼 강욕의 신앙 등을 퍼뜨리면서 대의식을 준비했다.

대공급이나 군주급 악마라 할지라도 다른 차원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소환의식이 필요했고.

"허나, 대공급 악마쯤 되면 스스로 차원을 열어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는 건 가능했지. 살육대공이 그러했고……."

"저는 불카누스 경과 대적했던 빙하대공 또한 위기를 느끼고 자신의 영지로 도주했다고 생각해요."

"……!"

이제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란돌체 평야의 회전에서 빙하대공과 불카누스 그리고 그 기사단이 실종된 이유가.

"전투 중에 빙하대공이 도주했고, 이를 쫓아 불카누스 경이 쫓았다?"

"바로 그러합니다."

그리고 불카누스가 게이트를 넘어 도달한 곳은 빙하대공의 영지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악마대공의 영지인 만큼 베아트리체가 불카누스의 단검을 좌표로 삼아도 대공급 영지의 차단막 때문에 열지 못한다, 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불카누스 경이 게오브릭 경처럼 놈들에게 사로잡혔을 가능성은?"

"모종의 방법으로 불카누스 경이 움직이지 못하는 건 확실하겠죠. 하지만 그걸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빙하대공의 영지를 찾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악마의 영지는 지난번 사용했던 살육대공의 팔로 입장하면 된다는 거군."

베아트리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레온 또한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

"당분간 자리를 비울 것이다."

가을 추수를 앞두고 널널한 휴식을 이어나가고 있는 만신전은 레온의 느닷없는 선언에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 어디 가시나요?"

나름 짬과 위치가 있는 하리가 질문했다.

"비체와 함께 게이트를 탐색할 생각이다."

"???"

더욱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 그렇다면 더더욱 단둘이서만 게이트를 탐색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레온은 초력의 강자이지만, 그 자신이 집단의 힘을 좌시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는 초인이기 이전에 사령관. 초인들의 시대인 이 지구에서 맨앳암즈라는 대규모 병단을 키워내지 않았던가.

그 자신의 막강한 버프 능력을 생각하면 군대… 최소한 기사단은 데리고 가는 것이 맞았다.

"기사단이라도 데려가셔야 하지 않나요?"

기사단장인 천소연이 손을 들었다. 만신전에는 이미 숱한 정예세력이 존재한다.

당장 산하로 들어온 한빛궁의 박용신이 그러하고, 천검길드의 광검자 천진수나 불새길드 이용완, 한유리, 황금사자 길드의 황금철과 황연하도 레온에게 협력적이다.

레온은 유사시 '군단'을 동원할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짐은 악마들의 땅으로 향할 것이다."

"……!"

놀라는 그들에게 레온이 찬찬히 설명했다.

"허나, 살육대공 때처럼 정벌이 아니다. 놈들의 차원에 잠입해 찾아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너희들은 휴식을 취하며 만신전을 잘 지키도록 하라."

은밀임무라는 것이다. 레온과 베아트리체 둘 뿐이라면 어떤 위협이 있든 어떻게든 후퇴할 수 있을 테니까.

두 사람 다 초력의 무력을 가진 건 당연하고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베아트리체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

가을추수 기간. 레온과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악마들의 차원으로 떠났다.

* * * *

대격변 이후 게이트가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세계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헌터길드의 하위층들은 노란색이나 초록색 게이트를 열심히 클리어하고, 빨간색이나 주황색 같은 고위 게이트는 S급 헌터와 공략대가 있는 대형길드가 처리한다.

그러다가 인류의 위기라고 불리는 흑색 게이트가 등장할 때면 티격태격하긴 해도 주변국들이 합심해서 어떻게든 클로징해낸다.

인류의 전력은 3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해졌고, 이제 어지간한 게이트는 여유롭게 방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 오늘 클로징된 게이트는 총 17개. 공략 진행 중인 게이트는 42개입니다."

"흠… 남은 게이트가 평소보다 많군."

헌터협회 김진수 과장의 보고를 들은 오강혁 협회장은 생각보다 많은… 미 클리어 게이트가 신경 쓰였다.

"음… 연 평균으로 치면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아~"

그제야 오강혁은 자신이 가진 위화감을 깨달았다.

최근 한국 내 게이트들이 속속 클리어되는 이유는 어떤 대형길드의 존재 덕분이었다는 것을.

"만신전은 추수기간이라 여전히 휴식 중이라던가?"

"예, 33%씩 로테이션으로 쉬고 있는 모양입니다."

만신전은 투자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오지나 저등급, 가성비가 좋지 않은 게이트도 차별 없이 클리어해주었기에 협회에 있어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영향은 10대 길드들에게도 끼쳐 지금은 한빛궁이나 불새, 황금사자와 천검 길드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그분의 존재가 크긴 크군."

"뭐, 이이상 커지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김진수 과장은 만신전에 파견 나가 있으면서 만신전과 레온이라는 사내의 잠재력을 피부로 느꼈다.

"알고 계시겠지만, 레온 폐하는 한 국가에 국한될 분이 아닙니다."

"아네. 대통령 각하는 정치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네만."

레온이 당장 나라의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과 그 적법한 지도자에 대한 존중이다.

무엇보다 그가 보는 눈은 '국가'나 '대륙'이 아닌 '세계'.

"만신전의 내년 성장률은 어디까지 치솟을 거라 보는가?"

"우크라이나의 초르노젬, 헤이룽 인민국의 베이다황, 미국의 캘리포니아 옥수수밭… 마소로 오염되었던 전 세계 곡창지대가 정화되며 데메라 여신님의 신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뿐만일까.

만신전은 그 교리와 가입방법이 인터넷을 통해 매우 접근성 좋게 뻗어있다.

기존 대형 종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실존하는 신과 기적은 무신론자 뿐 아니라 기존 종교계의 신도들까지 빠져들게 하고 있었고.

"실제로 한국 내에서만 성법 사용자만 사백 명 이상 알려졌습니다. 신앙하는 신의 가벼운 술법을 부리는 수준이지만요."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만신전의 위세는 연 단위가 아니라 달 단위로 폭증할 것이다.

"유엔 악마사건이 컸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자국 정부와 지도층을 불신하면서 만신전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이걸 잘 됐다고 해야할지……."

"무엇이든 과도기가 있는 법일세."

이미 야피를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받고 있는 오강혁 협회장은 전 세계에 심각한 수준으로 암약하고 있는 악마들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레온과 만신전 뿐이라는 확신이 더욱 가중되었고.

"이대로만 가주면 좋겠군. 만신전의 규모가 커질수록 세계의 안보는 차츰차츰 해결될 거야."

하지만 오강혁은 경험상 알고 있다. 보통 두려운 적은 가장 취약한 때를 노려 싹수를 잘라내기 마련이라고.

────────!!

그 순간, 협회의 직원들의 휴대폰… 김진수 과장과 오강혁 협회장의 휴대폰에도 찢어지는 것 같은 경보음이 울렸다.

협회 직원이라면 의무적으로 설치된 게이트 출몰 경보. 그것이 연달아 울렸다.

-삐익! 삐익! 삐익!

"협회장님…! 이건!"

김진수 과장의 안색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지금도 계속 울리고 있는 경보음이 말하는 바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오강혁 협회장은 곧장 지시를 내렸다.

"십대 길드에 비상령 내리게! 그리고 만신전… 한하리 대리를 통해 곧장 야피 경과 연결해!"

"예…!"

오강혁은 서늘한 등골에 식은땀을 흘리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그의 휴대폰에는 전국 각지에서 출몰한 백여개의 게이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추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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