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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0

150화 기회

150화 기회

아리엘은 흔들리는 눈으로 미아를 바라봤다.

“미아! 미아!”

루나가 애타게 불렀지만 치유실에 누운 미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주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미아는 오들오들 몸을 떨었고, 환각이라도 보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두 눈에서는 주룩주룩 눈물이 흘렀다.

비비안 교수가 주문을 읊으며 미아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잠시 후, 미아는 잠들었다.

미아의 화상 자국을 살펴본 비비안 교수가 나직이 말했다.

“오래된 흉터라 지우기는 어렵겠구나.”

아리엘은 눈앞의 미아가 자신이 알던 미아가 맞는지 헷갈렸다. 오늘 아리엘은 미아의 새로운 면모를 너무 많이 보았다.

예상을 뛰어넘는 마법 실력. 승리를 위해 불길로 뛰어드는 위험마저 무릅쓰던 배짱. 그러나 흉터가 노출되자마자 강인했던 모습은 눈 녹듯 사라졌고, 애처롭게 울며 몸을 떠는 어린아이만이 남았다.

“아리엘.”

작게 속삭인 앙투안이 치유실 밖으로 나갔다.

아리엘도 앙투안의 뒤를 따라 치유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앙투안이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

.

.

“그게 사실이야? 앙투안.”

아리엘의 눈이 부릅떠졌다.

앙투안이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미아의 등에 흉터를 만든 게 탈리야 데본렉스라고? 교복을 찢은 것도?”

앙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은 빠득 이를 갈았다. 그 때문이었구나. 지난번에 미아가 탈리야를 보자마자 내 뒤에 숨은 이유는.

아리엘은 화가 났다. 탈리야가 미아를 상처입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본래 아리엘에게 미아는 애매한 존재였다. 루나만큼 친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타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미아가 탈리야에게 애걸했다.

‘또······, 또 상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지?’

미아는 아리엘이 패배할 거로 확신한 것이다.

“감히······ 나를 그런 취급을 해······?”

아리엘은 탈리야보다 미아에게 더욱 화가 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아를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왜일까. 미아가 치유실에 누워있기 때문에? 그녀가 지독한 감정적 충격을 받은 상태라서?

아니다. 무언가 달랐다. 아리엘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래서 아리엘은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탈리야 데본렉스.

***

B조 경기를 치르는 친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잠시나마 잠든 미아를 돌볼 수 있었고, 시간을 맞춰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경기 종료. 아르카넘 듀얼 8강전, C조의 승자는 데미안 시니야카입니다.”

관객석에서 함성이 일었다.

승자를 축하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이어질 D조 경기를 향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거다.

‘휴. 지는 줄 알았네.’

관객석으로 돌아가며 나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상대는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4학년이었으니까.

“누가 이길까? D조 경기는.”

“당연히 탈리야지.”

“아리엘라 플랑브아즈도 만만치 않을걸?”

“맞아. 듣자 하니 벌써 고위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고 하던데.”

역시 관객들은 승리자인 나보다는 다음 경기의 주인공에게 관심이 많았다.

저만치에서 루나가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축하해! 데미안!”

나도 루나를 보며 웃었다.

세실과 카인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도 나를 축하해주었다.

“정말 대단했어. 데미안.”

아리엘은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설마 내가 4학년을 상대로 승리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놀랐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개인 지도 덕분이겠지.

“다음은 오늘의 아르카넘 듀얼, 마지막 경기입니다.”

나와 교대하듯 아리엘이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힘내 아리엘! 꼭 이겨야 해!”

루나는 아리엘이 경기장에 오른 뒤에도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탈리야가 미아에게 한 짓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치유실에서 미아가 잠든 후, 무언가 낌새를 느낀 루나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내게 꼬치꼬치 물었다. 마침 아리엘과 앙투안이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미아가 겪은 일을 알려주었다.

‘용서 못 해!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혀를 뽑아버릴 거야!’

루나는 화가 많이 났다. 자매간의 우애가 깊은 루나로서는 탈리야의 행각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탈리야와 미아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곧 시작이야!”

“화끈하게 이겨라! 탈리야 데본렉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실력을 보여 줘!”

“와아아아!”

아리엘과 탈리야가 경기장에 오르자 관객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두 여인은 곧 펼쳐질 대결을 앞두고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봤다. 탈리야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고, 아리엘의 눈빛은 차가웠다.

‘누가 이길까.’

나는 아리엘이 훗날 얼마나 강해지는지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아리엘이 패배할 거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리엘은 완성되지 않았다. 게다가 탈리야는 만만치 않은 상대로 보인다.

에스틸리아 교수는 내게 탈리야를 상대하게 되면 기권하라고 말했었다. 거기에 더해 탈리야는 에스틸리아 교수와 함께, 근 백 년간의 입학생 중 가장 빼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아리엘이 꼭 혼쭐을 내줘야 할 텐데. 데미안. 아리엘이 이길 수 있겠지?”

“아리엘이 걱정돼?”

“그도 그런데, 만약 마법학부 1학년 중에서 가장 강한 아리엘이 지면 내일은 어떻게 되겠니? 고작 7등으로 지난 학기를 마친 데미안이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 개털이 되도록 얻어터질 거라고!”

“······.”

“게다가 아까 비비안 교수님도 말씀하셨잖아! 탈리야는 위험하다고. 탈리야와 겨룬 상대는 대부분 크게 다쳤다고 말이야!”

루나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게다가 데미안이 개털이 되어 패배하면 다음은 카인의 차례일지도 몰라. 카인은 데미안보다는 강하지만 1등인 아리엘만큼은 아니니까. 쉿! 카인에게는 말하지 마. 걔는 자존심이 세서 이런 말을 들으면 분명······.”

“다 들려. 루나.”

“앗!”

루나가 놀란 얼굴로 카인을 돌아봤다.

“어, 어떻게 들었어? 진짜 작게 말했는데······!”

“나는 귀가 밝은 편이야.”

“아······.”

당황한 루나를 향해 카인이 씩 웃었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며, 에스틸리아 교수와 똑같은 말을 했다.

“데미안. 혹시 다음 경기에서 탈리야를 만나게 되면, 그냥 기권해 줘.”

***

“표정을 보니 미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나 보네? 저런. 혹시 마음이 불편해지기라도 한 걸까?”

탈리야가 빈정거렸다.

아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귀하신 몸이니 살살 다뤄줄게.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는 말렴?”

탈리야가 키득키득 웃었다.

“좀 웃어 봐. 그 대단하신 플랑브아즈 공작 가문의 영애께서 돌처럼 굳어있으면 되겠니? 아, 혹시 겁먹은 거야?”

“경기 시작은 언제 하는 거죠? 어디서 시끄러운 파리가 날아다니는 거 같군요.”

아리엘이 무심한 얼굴로 에스틸리아 교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순간 탈리야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피식 웃었다.

“아르카넘 듀얼 8강전 4경기, 시작합니다.”

경기장 중앙에서 아리엘과 탈리야는 서로를 집중적으로 응시했다. 언뜻 말없이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두 사람은 남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고, 빠르게 주문을 읊고 있었다.

먼저 주문을 완성한 것은 탈리야였다. 그녀의 긴 손가락이 공기를 헤집으며 펼쳐졌고, 화염이 쏟아졌다.

“뭐, 뭐야! 언제 주문을 완성한 거지?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멍청아. 너는 ‘주문 속삭임’도 모르냐?”

“검술학부인데 어떻게 알아!”

아리엘은 신속히 대응했다. 그녀 역시 주문 속삭임으로 마법을 완성해 빙결의 장막을 펼쳤다.

퍼엉! 화염과 빙결이 경합하는 광경을 보며 아리엘은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녀는 첫 마법을 공격이 아닌, 방어 마법으로 결정했다. 상대의 힘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강해.’

탈리야는 아리엘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였다. 그 증거로, 아리엘은 다시 한번 방어의 주문을 읊고 있었다. 탈리야의 마법이 빙결의 장막을 순식간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겁먹었니? 이거 어쩌지?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탈리야의 다음 공격은 전격 마법이었다. 아리엘은 땅 속성의 마법을 펼쳐 방어했다.

그렇게 몇 차례 공격과 방어가 이어졌다. 틈을 노린 아리엘이 기습을 시도했지만 탈리야는 가뿐하게 막아냈다.

“고작 그런 마법으로 나를 공격하려고? 가능할 거로 생각하니? 아아, 쥐새끼처럼 숨어서 방어만 하느라 제대로 된 공격 주문을 읊을 시간이 없구나?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간절히 부탁하면 네 공격 주문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 줄 수도 있는데, 어쩔래?”

탈리야가 깔깔 웃었다.

“그런데 왜 아까부터 나만 떠드니? 아아, 너는 쉴 새 없이 주문을 읊느라 대답할 틈이 없겠구나? 조금 느슨하게 공격해 줄까? 공작가의 아가씨가 경기 중에 혀라도 깨물면 그게 무슨 수치니? 안 그래?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아가씨.”

돌연 탈리야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재미없네. 천재라고 불리길래 얼마나 대단할까 했더니, 보잘것없는 어린애였어.”

탈리야의 손에서 가공할 마력이 일었다.

아리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탈리야는 이번 공격으로 경기를 마무리지을 생각이다.

“차가운 겨울의 숨결은 나의······.”

아리엘은 빠르게 주문을 속삭였다. 최초의 공방 이후, 아리엘은 탈리야와 자신의 실력 차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모든 위협으로부터 냉정을 유지하······.”

탈리야의 손에서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불길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아리엘은 고위 마법의 주문을 완성했다.

“······대가를 나는 받아들인다.”

***

두 사람의 경기를 보며 나는 놀랐다. 설마 아리엘이 저렇게 방어에만 급급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지금, 탈리야는 엄청난 마법을 발현했다. 가히 경기장을 집어삼킬 듯한 화염.

중단해야 해.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에스틸리아 교수가 끼어들지 않는다. 왜지? 이대로라면 아리엘은 처참하게 당할 것이다.

화르르르!

혀를 날름대는 거대한 화염이 아리엘을 덮쳤다. 그것이 검은 연기와 수증기를 폭발하듯 내뿜었다.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앙투안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엘의 이름을 외쳤다.

탈리야는 두 팔을 펼치며 깔깔 웃었다. 그러고는 관객석을 향해 우아하게 궁정식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관객들은 얼빠진 얼굴로 바라봤다.

그때였다.

콰득!

불길을 뚫고 날아든 빙결의 창이 탈리야의 어깨에 박혔다. 그 엄청난 풍압에, 경기장을 휘감은 연기와 수증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제야 나는 볼 수 있었다. 반쯤 녹아 없어진 커다란 빙결의 알. 그 안에서 창백한 얼굴의 아리엘이 탈리야를 향해 오른팔을 뻗은 모습을.

‘고위 마법, 빙결의 수호!’

탈리야가 신음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리엘을 돌아봤다.

새하얗게 변한 아리엘의 입술이 비웃음을 뱉었다.

“그렇게 무릎꿇고 있으니 잘 어울리는구나. 천박한 것.”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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