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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1

151화 막내 대악마

게이트는 동굴 안쪽에서 열렸다.

“다행히 놈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로군.”

“지난번에 왔을 때, 혹시 다시 올 때를 대비해 봐둔 장소예요.”

“정말이지 비체 그대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소.”

레온은 안도하면서도 황폐해진 살육대공의 영지를 둘러보았다.

“철저하게 파괴한 보람이 있군.”

지난 한일 연합공략대와 함께 이곳에 왔을 때는 주변 촌락을 급습해 악마 추종자들을 포로로 삼으면서 철저하게 주변을 파괴했다.

덕분에 새로운 촌락이 지어지거나 악마들이 상주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음?”

그때, 레온의 시야에 한 무리의 악마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의 초인적인 시야로도 이 정도라면 대략 5~60km는 떨어져 있는 거겠지.

“악마 놈들이 없지는 않군.”

“영지를 수습하러 온 자들일까요?”

“그럴지도. 비체, 그보다 이것 좀 보시게.”

레온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꺼내 보였다.

“불카누스 경의 단검이…….”

전쟁과 불꽃의 기사였던 그의 의식단검이 희미한 잔불을 일으키고 있었다.

“별철무구와 성력의 공명현상일세. 오랜 인연을 쌓은 무구라면 있는 일이지. 그 단검은 불카누스 경과 꽤… 특별한 인연이 있거든.”

“그렇다는 건 근처에 불카누스 경이 있다는 걸까요?”

그 말에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성배기사쯤 되면 대륙을 넘어서도 그 존재를 피력할 수 있지. 불카누스 경이라면 행성 반대편에 있더라도 공명을 일으킬 걸세.”

고로 이것만으로 불카누스가 근처에 있다고 확신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간다면 이 단검이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렇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해요. 게이트 내에서 좌표를 찾기에는 말이에요.”

베아트리체는 이 마계에서 불카누스가 있는 좌표로 게이트를 열 생각이었다.

이전 라이온하트 왕국 게이트에서 지혜의 군주를 피해 안토크 경과 공간도약을 한 것처럼 말이다.

“좌표를 찾을 때까지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이곳을 거점으로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럼 짐이 주변을 좀 살피고 오겠네. 확인해볼 것도 있으니.”

“그 전에 폐하. 해야 할 것이 있어요.”

“?”

가벼운 접촉이 있었다.

숨이 맞닿는 거리에서 닿은 손가락의 감촉.

여왕의 하얀 손가락에 담긴 마력이 레온의 이마에 콕 닿는다.

이마에 맞닿은 손가락은 기분 좋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환몽의 장막, 빛을 가려라.”

맞닿는 거리에서 속삭이듯이 울리는 목소리가 레온의 귀를 간질거렸다.

목소리에는 마력이 있다, 특히나 마술사에게는 모든 행위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테지.

마술사가 아닌 레온에게는 간질거리는 시간일 뿐이지만.

“다 됐네요.”

조금 아쉬울 정도로 찰나였던 교류가 끝나고 베아트리체가 싱긋 웃어 보였다.

“폐하의 성력을 감추었답니다. 성물을 꺼내거나 성법을 사용하면 풀릴 정도의 자그마한 위장이지만요.”

“그런가.”

레온의 단답형 질문에 베아트리체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아쉬우셨나요?”

누구보다도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그녀의 도발적인 눈웃음에 레온은 피식 웃으며 항복의 의미로 손을 들었다.

“그대처럼 아름다운 이의 유혹에 아쉽지 않은 사내는 심장이 없는 이요.”

“폐하는 여인을 기쁘게 하는 말에 익숙하시네요.”

“궁중생활의 미덕 아니겠나?”

그 말에 베아트리체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본디 왕족은 사교계의 중심인 법이니까.

“주의 드렸던 부분을 조심하시고 행동해주세요. 이곳은 적지 한복판. 여차하면 게이트를 열고 퇴각하면 되지만, 그들의 경계를 사게 될 거예요.”

“알고 있네. 성물과 성법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야.”

그 말을 끝으로 레온은 동굴을 나와 주변을 살폈다.

‘이 주변에 다른 움직임은 없군.’

악마들의 영지라곤 해도, 주변이 무자비하게 파괴된 데다 땅 넓이도 보통이 아니다.

악마들의 부동산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종의 특성상 개체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터.

적어도 이 동굴 주변은 안전하다. 베아트리체가 아주 제대로 좌표를 선정한 것이다.

‘현명한 여인이야.’

레온 자신은 어렸을 적부터 대공가의 적자로서, 여신의 수행기사로서, 선택받은 사자심왕으로서 꾸준히 공부하고 지식을 쌓았지만, 그 지혜가 야크트 스피너나 베아트리체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자심왕은 문관이 아닌 무장. 그 위치는 고결한 기사이자 왕국의 최종병기에 가깝다.

‘카스티야도 현명한 여인이었지.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

────

그때, 레온에게 속삭이는 여신의 목소리.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네 여신의 조언을 넘기는구나, 하고 토로하는 목소리.

그것은 조언이라기보단 다른 무언가에 가깝지 않은가, 하고 레온은 생각했다.

“후우…….”

레온은 동굴 주변을 모두 살피고 너머의 폐허가 된 황야를 응시했다.

이 지점에서 수십 킬로미터. 폐허가 된 촌락 안에서 한 무리가 수상한 작업을 행하고 있다.

생명체가 있다면 저 무리가 유일하다.

* * * *

살육대공의 영지가 쑥대밭이 되고 아카샤가 사라졌다.

놈들에게 잡혀간 이상 소멸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뒷수습을 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폐허가 된 대공령의 영지를 수습하려는 이는 없었다.

-저요? 왜요?

-내가 미쳤다고 거길 들어가? 놈들이 또 게이트를 열면 어쩌려고!

-아, 저는 일이 바빠서…….

악마들은 사상 최초로 침공을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고, 거기에 그 침략자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라는 것에 더더욱 충격받았다.

-미친. 라이온하트 그 새끼가 왜 여기서 나와?

-대, 대공을 잡아 죽였다고? 어, 언제 또 오는 거지?

-아아아악! 우린 다 죽었다!

라이온하트 왕국을 침공했던 악마들이었다.

최후의 데몬 게이트가 파괴되기 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도주에 성공한 그들은 라이온하트와 성배기사들에게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건 그쪽 세계를 침공한 악마들뿐이 아니다.

-마술사 여왕까지? 베아트리체 그 마녀년이 왔다고?

-아, 아파… 모, 몸이, 가죽이…! 이빨이!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

쾌락과 타락의 악마들이 점찍은 타락의 마성. 교태를 타고난 천성의 존재.

그 마술사 여왕을 타락시키고 타락군주로 각성시키기 위해 악마대공 퀘이와 대악마 안드로진이 벌인 수작이 기백 년이다.

그 전에도 마술사 여왕은 유명했다.

불멸의 존재인 악마들이 다시 돌아오는 걸 막겠답시고 ‘트라우마’를 심어주자는 기획을 세운 작자 아니던가.

덕분에 오로지 고통만을 주기 위한 고문 속에서 쇼크로 죽어나간 악마들은 모두가 그 마술사 여왕을 두려워했다.

한쪽은 영혼 자체를 소멸시키는 파괴자였고, 다른 한쪽은 영혼에 고통을 심는 마녀였으니.

숱한 강자들을 상대해본 적 있는 악마들에게 그 둘은 유독 공포스러운 존재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무도 안 맡잖아!’

폐허가 된 살육대공 아카샤의 영지를 수습하는 일을 어떤 대악마도 맡고 있지 않다.

지혜와 탐구의 대악마는 회의에서 손사레를 치는 주변의 대악마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평소라면 약탈당했다곤 해도 무수한 보물이 남아있을 대공령을 차지하겠답시고 나섰을 작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대공령에 진입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

사자심왕과 마술사 여왕의 귀환을 두려워하는 탓이었다.

오바 아니냐고?

논리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지구의 연합 공략대는 게이트를 열고 살육대공의 영지에 진입했다.

그렇다는 건 이쪽 좌표가 노출됐다는 소리다.

이미 한 번 노출된 좌표 근처에서 머물렀다간 가장 먼저 타겟이 될 터.

당연히 악마들은 대공령에 진입할 생각을 못 했고, 주변 영지의 악마들까지도 피난을 선택했다.

한때, 마계에서도 초고가를 갱신했던 살육대공의 영지와 그 주변은 연이은 부동산 폭락으로 폭삭 망했다나.

이런 분위기 가운데, 누군가는 대공령을 수습해야 한다. 적어도 나중에 그들이 본격적으로 침공해온다면 신호를 보낼 시설이 필요했다.

[어이 막내.]

‘아잇──’

마법 통신 중에 자신을 바라보는 선배 대악마. 그의 그림자에서 펄럭이는 새까만 날개는 지혜의 대악마의 위엄 그 자체다.

하지만 그런 위엄과는 별개로 ‘막내’라 불린 지혜의 대악마는 땀을 뻘뻘 흘렸다.

[잘하자?]

‘──싯팔!’

어딜 가나 말단은 잡일 담당인 법이다.

“빨리빨리 움직여랏!”

지혜의 고블린 대악마 고브는 반인반마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재촉했다.

“오늘 내로 이 구역의 복구를 완료한닷!”

살육대공의 영지는 넓고 부유했지만, 한 차례 메뚜기떼가 지나간 것처럼 파괴되어 있었다.

“으아악! 오염수치 85%!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 이런 천인공노할 놈들…! 땅에다 성력을 퍼붓고 갔어!”

악마들에게 성력은 극상성의 힘이다. 레온을 비롯해 기사단이 뿌리고 간 성법의 흔적들은 그대로 마계의 영토를 오염시켰다.

“세, 세상에…! 풀이!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언빌리버블! 이런 끔찍한…!”

마치 방사능에 오염된 기형 식물을 보는 것처럼 경악하는 악마 추종자들.

그들에게 있어 푸른 초목은 가히 방사능 오염을 마주한 인간들과 다를 바 없다.

“성력이 물든 흙을 한곳에 모아랏!”

고브는 노예들을 시켜 성력이 물든 흙을 한곳에 모았다.

“주, 주인님… 이런 끔찍한 흙을 한곳에 모아 어쩌시려고…….”

“다 쓸데가 있닷!”

고브는 신비로운 마법의 힘을 이용해 흙에서 성력을 뽑아냈다. 그러자 응축된 성력이 그의 지팡이에 몰려든다.

“주인님, 그 지팡이는 대체?”

“핫핫! 이것은 내가 250년 동안 성력을 모아둔 것이닷.”

“대, 대체 어째서 그런 일을?”

멍청한 것들. 성력이 얼마나 쓸모 있는 힘인지도 모르다니.

이래서 자신은 대악마이고 저 멍청한 놈들은 반마 나부랭이인 것이다.

고브는 노예들에게 작업을 시키곤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상하게 초조하다.

악마에겐 방사능 오염이나 다름없는 정화된 땅에 온 것 때문만이 아니다.

몬가… 몬가가 불안하다. 왜지?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생존촉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상하닷. 몬가 이상햇!’

지혜와 탐구의 대악마인 것치고 비논리적인 생각이었지만, 그 사자심왕에게서조차 살아남은 자신의 촉이다.

고브는 자신의 임시 집무실에서 파괴된 촌락의 자료를 살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지구의 근황을 확인하는 걸 잊었군.’

지혜의 보옥은 차원 침공을 통해 대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악마들의 안배다. 하지만 전임 지혜의 보옥 담당이 레온의 등장을 감지하곤 업무를 팽개치고 도주한 것이다.

덕분에 짬이 딸리는 고브가 그 일을 맡았지만…….

‘레이날드 놈. 뭘 시켜도 다 이상하게 꼬이기만 하곳!’

고브는 불안해서 레이날드를 한국에 접근도 못 하게 했다. 혹시라도 지혜의 보옥이 사자심왕의 검에 잘리기라도 했다간 영혼이 이어져 있는 자신까지 뒈진다.

최근은 느닷없는 업무 탓에 연락이 뜸해졌지만, 돌아가는 즉시 사자심왕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주의를 시키리라.

그렇게 밤이 찾아왔을 때──

-으억!

어디선가 들린 신음소리. 고브는 그것이 무슨 소린지 모르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

복도로 나와보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폐허가 된 건물의 복도를 밝히는 건 오직 희미한 달빛뿐.

그곳에서 고브는 기이함을 느끼며 노예들을 찾았다.

‘이상하닷. 이상하닷…….’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자신이야 짬이 있으니 쉰다고 쳐도 노예 놈들은 한창 일할 시간인데…….

-시익

그때였다. 고브는 자신이 친 결계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평범한 대악마라면 눈치 못 챘을 만큼 아주 조용한 움직임.

하지만 생존본능의 극에 달한 고블린이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찰나의 위화감이다.

‘모, 몬가….’

고브는 자신의 생존경고가 극에 달했음을 감지했다. 비논리적이지만, 언제나 자신을 살려왔던.

‘이, 있닷! 있엇! 무언가 내 뒤에 있엇!’

어떤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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