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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1

151화 건드려선 안 될 것 (1)

151화 건드려선 안 될 것 (1)

두 눈을 부릅뜨며 표정을 지운 탈리야는 괴기스러운 가면을 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주 잠시였다. 그녀는 킬킬대는 웃음을 뱉으며 불 속성의 마법을 발현해, 제 어깨를 불태웠다.

나는 경악했다. 탈리야가 제 몸에 박힌 빙결의 창을 자해하듯 지우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중 영창!’

웃음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잡음이 섞여있을 뿐. 그런데도 탈리야는 마법을 발현했다.

“자······, 어떻게 요리해 줄까?”

말도 안 되는 강자다. 설마 이중 영창을 발현할 수 있는 존재였다니.

이중 영창은 동시에 두 개의 주문을 영창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주문 속삭임’과 함께 응용하면 지금의 탈리야처럼 웃거나, 혹은 대화하며 불시에 마법을 발현할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 이중 영창을 발현할 수 있는 존재는 두 명 등장했었다.

하나는 황실 수호 마법사단 센티널(Sentinel)의 단장이고.

다른 하나는.

‘······설마?’

상념을 지운 나는 아리엘을 돌아봤다. 아리엘은 더는 제 몸을 방어할 수 없다. 고위 마법 ‘빙결의 수호’에는 후유증이 있으니까.

빙결의 수호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마법을 방어할 수 있는 강력한 보호기다. 그러나 발현 후에는 ‘저체온’이라는 상태 이상에 빠지게 된다. 아리엘의 입술에 새하얗게 서리가 내린 이유도 그 때문이다.

탈리야의 손에서 지금까지의 붉은 화염이 아닌, 검붉은 불의 마법이 쏘아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역시 탈리야는 소설에서 등장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펏퍼펑!

그러나 탈리야가 발현한 마법은 아리엘에게 닿지 못했다. 경기장 중앙에 나타난 거대한 마력 장막이 그녀의 마법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탈리야의 눈이 부릅떠졌다.

“무슨 짓이야!”

탈리야가 에스틸리아 교수를 노려보며 외쳤다.

마력 장막으로 탈리야의 마법을 무효화한 건 에스틸리아 교수였다.

“말버릇이 고약하네? 탈리야 데본렉스.”

서늘한 목소리에 탈리야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턱짓으로 아리엘을 가리켰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는 기권했다.”

아리엘을 돌아본 탈리야가 파들파들 입술을 떨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말대로, 아리엘은 망토를 풀어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너······, 너······, 감히 내게 이런 상처를 입히고 도망을······!”

탈리야를 향해 차갑게 웃은 아리엘이 다시 망토를 둘렀다.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뭐, 뭐야. 기권이라고?”

“왜지? 반격에 성공한 것 아니었어?”

“지금부터가 시작인 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관객은 모를 것이다.

지금 아리엘은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당당한 걸음걸이로 경기장을 벗어났다.

“경기 종료.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의 기권으로, D조의 승자는 탈리야 데본렉스입니다.”

***

미아는 눈을 떴다.

새하얀 벽과 천장.

치유실이다.

“······.”

상체를 일으켜 세운 미아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어쩌다가 치유실에 누워있게 된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달칵, 출입문이 열렸다.

“타, 탈리야!”

미아는 놀라 외쳤다.

카시우스 발로리우스의 부축을 받으며 탈리야가 치유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탈리야!”

미아는 탈리야에게 달려갔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언니였지만, 다친 모습을 보자 걱정부터 됐다. 그러나 탈리야는 거칠게 미아의 손길을 뿌리쳤고, 미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뒤이어 들어온 루나가 화들짝 놀라 미아를 부축했다.

“이게 무슨 짓이니! 네 동생이잖아!”

“······괜찮아, 루나.”

데미안, 카인, 세실리아도 치유실로 들어왔다.

“치유실에서 시끄럽게 굴면 안 된단다.”

비비안 교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노기가 섞여 있었다.

카시우스를 밀쳐낸 탈리야가 침대에 누웠다. 그을린 그녀의 어깨에서는 피와 진물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비비안 교수가 말했다.

“괜찮아졌으면 미아는 돌아가렴.”

.

.

.

아리엘라는 복도의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녀는 미아를 보자마자 가늘게 눈매를 좁혔다.

그 모습에서 조금 위압감이 느껴져서, 미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미아.”

아리엘라가 미아를 불렀다.

복도에는 아리엘라와 미아, 두 사람만 남았다. 마지막까지 불안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던 루나는 ‘곧 앙투안의 경기가 시작된다’며 가급적 빨리 경기장으로 오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아리엘라.”

미아는 아리엘라의 표정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자신이 탈리야에게 한 말을 아리엘라는 알고 있다. 데미안이 말한 걸까? 아니, 그럴 리 없겠지. 미아는 데미안이 약속을 어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중요한 건 누가 아리엘라에게 말했느냐가 아니다.

“미, 미안해.”

“뭐가?”

아리엘라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 아리엘라를 믿지 못해서. 그래서 탈리야에게 쓸데없는 말을······.”

아리엘라가 후우, 한숨을 뱉었다.

“그래. 처음에는 정말 화가 났어. 하지만 탈리야와 겨뤄보니 알겠더라. 왜 네가 그녀를 찾아가 그런 부탁을 했는지.”

미아는 조금 위화감을 느끼며 아리엘라를 바라봤다.

아리엘라는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 반면 탈리야는 상처 입었다. 그래서 미아는 아리엘라가 승리한 거로 짐작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이네. 하지만 틀렸어 미아. 내가 졌으니까.”

미아는 혼란스러웠다. 아리엘라가 졌다고? 아니, 예상한 일이기는 했다. 탈리야는 괴물이니까. 그런데 왜 탈리야가 치유실에 있고 아리엘라는 멀쩡한 거지?

게다가 아까부터 사라지지 않는 이 위화감은.

“······!”

미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깨달았다.

아리엘라는 반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오만했던 거지. 탈리야 데본렉스가 그 정도로 괴물일 줄은 몰랐거든. 후우······. 자존심 상하지만 어쩌겠니. 아직은 내가 더 약한걸.”

“아, 아리엘라······!”

“너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니? 그냥 아리엘이라고 불러.”

아리엘이 뒤돌아 앞장서며 말했다.

“곧 앙투안의 시합이야. 서두르자.”

***

앙투안과 데르맛은 체구도, 검술 실력도 비슷했다.

그런 이유로 경기가 시작된 지 3분여가 지났지만 흐름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대단하다! 1학년들!”

“1학년이 이렇게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칠 줄이야!”

“힘내라!”

앙투안과 데르맛의 접전에 관객들이 환호했다.

그 외침을 들으며 앙투안은 인상을 구겼다. 저들은 알지 못하는 건가. 자신이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데르맛 오셀롯······!’

데르맛은 앙투안보다 강했다. 물론 어쩌지 못할 정도의 격차는 아니다. 그러나 앙투안은 아직 데르맛의 허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앙투안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는 데르맛보다 급격히 체력을 소모 중이었다. 앙투안은 본래 다혈질적인 성격이다. 아리엘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기사가 되기 위해 침착을 가장할 뿐.

아버지인 바스티안 브르타뉴도 앙투안의 그 점을 늘 지적했었다.

‘브르타뉴의 사내는 물처럼 고요해야 한다. 앙투안.’

데르맛의 공세가 한층 날카로워진 순간, 균형이 깨졌다. 폭풍처럼 검이 날아온다. 길고 가느다란 레이피어(Rapier). 데르맛의 아버지이자 황실 근위 기사단 아이기스(Aegis)의 단장인 ‘윌리엄 오셀롯’의 상징과도 같은 검이다.

반면 앙투안의 검은 투핸디드 소드, 클레이모어(Claymore)다. 그가 어릴 적 이 검을 자신의 무기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큰 검이 아리엘을 지키기 좋아 보였으니까.

흘끗 관객석을 돌아본 앙투안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아리엘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눈파는 건가! 앙투안!”

레이피어가 쇄도했다. 앙투안은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두 자루 검이 부딪치며 카랑한 소음을 냈고, 주인의 손을 떠난 레이피어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아리엘을 본 순간 앙투안은 예상외의 힘을 발휘했고, 마구 휘둘렀다고 생각한 클레이모어는 데르맛의 의표를 찌르는 경로로 날아 들어갔다.

데르맛은 검을 잃었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지나치게 동작이 컸던 앙투안의 틈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몇 번의 타격 끝에 앙투안은 검을 놓쳤고, 두 사람은 맨주먹으로 서로를 상대했다. 초반에는 기술이 뛰어난 데르맛이 우세해 보였지만 앙투안이 점차 흐름을 뒤집기 시작했다.

***

아리엘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앙투안과 데르맛의 경기가 너무 야만적이었기 때문이다.

앙투안은 장차 자신의 기사가 되어야 할 존재다. 따라서 그는 단지 강한 검술 실력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아리엘에게 걸맞은 품위를 지녀야 했다.

그런데 저런 시정잡배와도 같은 주먹다짐을 벌이다니.

‘대체 뭐 하는 거야. 앙투안은.’

어찌 됐든 상황은 벌어졌다. 그렇다면 반드시 앙투안이 이겨야 한다. 저런 미개한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모자라 패배까지 했다가는 아리엘 자신이 그 분노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탈리야 데본렉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데.

“우와! 맨손 격투라니! 대단한데!”

“블레이드 듀얼이 아니라 맨주먹 듀얼이군!”

“가라!”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아르카넘 홀의 학생은 대부분 귀족 집안의 자제다. 그리고 대개의 귀족은 가슴 한구석에 야만적인 폭력을 갈망하는 삐뚤어진 마음을 가졌다.

“경기 종료. 블레이드 듀얼 A조의 승자는 앙투안 브르타뉴입니다.”

바닥에 누운 데르맛은 기절한 것으로 보였다. 그 위에서 앙투안이 곰처럼 두 팔을 들며 포효했다. 관객이 환호하자 앙투안은 더욱 기세 좋게 괴성을 질렀다.

“······.”

아리엘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벗어났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앙투안과 거리를 둘 생각이다.

***

아르카넘 페스트의 둘째 날이 밝았다.

“데미안! 이거 봐! 이것 좀 봐!”

세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든 루나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그 옆에서 아리엘과 미아는 동화 속 눈의 궁전을 만들고 있었다. 몇 번인가 앙투안이 아리엘에게 다가갔지만, 그때마다 아리엘은 매서운 눈빛으로 앙투안을 밀어냈다.

오후에는 카인이 눈싸움을 제안했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눈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새하얀 눈덩이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동안 우리의 입에서는 웃음과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아하하! 데미안 좀 봐! 절반이 눈에 덮였어!”

“너도 마찬가지거든? 루나.”

해 질 녘, 우리는 다시 돔 경기장에 모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어제의 경기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1학년이 다섯 명이나 올라가다니.”

“여덟 명 중의 다섯이면 절반이 넘잖아!”

대진표도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아르카넘 듀얼 4강전>

A조: 카인 시니야카(1학년) vs 이안 미스트본(3학년)

B조: 데미안 시니야카(1학년) vs 탈리야 데본렉스(4학년)

<블레이드 듀얼 4강전>

A조: 앙투안 브르타뉴(1학년) vs 세실리아 크라소타(1학년)

B조: 루나 크라소타(1학년) vs 이바르 스위프트(4학년)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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