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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2

151. 약혼관계 – 안타로프 협곡

“그럼… 족장님은 돌아가셨나 보군요. 예상은 했지만, 북부 최고의 전사가 그리 허무하게…”

술집 주인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주위에 둘러앉은 전사들은 ‘북부 최고의 전사’라는 오만한 칭호에 움찔했으나, 딴지를 걸진 않았다.

고인이 된 이의 실력을 의심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얼음섬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었다.

한 번 시련을 치른 전사는 더는 마수를 잡으러 다니지 않았다. 다음에 탄생할 대전사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었는데, 모든 대전사가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아니었다.

간혹 더 많은 시련을 치르고자 하는 전사들이 있었고, 그런 이들은 자연스럽게 북쪽을 향했다.

그들의 종착지는 북부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얼음섬. 달이 푸르게 빛나는 밤마다 거대한 마수가 얼음 바다를 깨부수며 상륙한다는 섬이었고, 그곳에서 끝없는 시련과 영광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섬에 세워진 부족이 바로 아비커(avviker) 부족이었다. 몰려든 대전사 중에서도 가장 강한 전사가 족장으로 추대받았으니 ‘북부 최고의 전사’라는 칭호에 아주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 봐야 이십여 년 전, 십자교회의 공격을 받아 몰살당했지만…

“제사장님도 사라지고… 란과 앤이 고생이 많았겠군요. 그래도 애도 낳고 잘살고 있다니 참 다행입니다.”

숙소 주인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나에게 두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더니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술자리를 떠났다.

주인장이 떠나자 흥이 깨진 다섯 전사들도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비웠다. 텅 빈 식당에 남은 사람은 레오와 레나, 주방에서 뒷정리하는 아주머니가 전부였다.

“…우리도 자러 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던 말이었지만,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두 사람은 말없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얼음섬 출신의 야만인들, 마르하스, 레나에게 들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던 레오는 취기에 떠밀려 금방 잠이 들었다.

레나가 잠든 레오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다음 날, 늦잠을 잔 레나와 레오는 여관을 떠났다.

숙소 주인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는데, 그의 행방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아마 란과 앤을 찾아갔을 거다.

레오는 여정을 서둘렀다.

하지만 떠나온 숙소에서 멀지 않은 한 공터에서 마르하스의 제단을 또! 발견하고야만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래서는 아스틴 왕국에서 레나를 공주로 만드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 아닌가. ─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스터 왕국을 향해 동쪽으로 가는 여행이 계속되었다.

그들은 레티이 대회가 열릴 아스터 왕국의 수도 ‘마누비울’로 가는 중이었고, 중간중간 마주치는 마을에 들러 독특한 먹거리가 있으면 빠짐없이 사 먹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었으므로 신기한 구경거리나 근사한 풍경을 지나치지 않았다.

“우리 꼭 신혼여행 나온 것 같네.”

레나는 즐거워했다. 항상 레오와 팔짱을 꼈고, 바르나울에서 멀어질수록 레오도 여유를 되찾았다.

모든 {이벤트}와 위기들을 버리고 왔다. 이렇게 무작정 길을 떠나 드넓은 평야를 걷고 있노라면 묘하게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일단의 사제들이 우글우글 몰려오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심장이 덜컥 떨어졌었다. 우리에게 또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알고.

하지만 사제들은 우리를 바쁘게 스쳐 지나갔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레오는 이내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렸다.

초여름.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레브가 사고를 친 게 딱 이맘때쯤이었다. 아마 지금쯤 오른 왕국의 수도 네비스는 바르바토스의 사냥터가 되어 붉게 물들어 있으리라.

‘바르나울을 일찍 떠나길 정말 잘했어…’

레브가 친 사고는 온 대륙에 영향을 미칠만한 대형사고였다. 바르나울에도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떠나온 지금에서야 든 생각이었으나, 큰일 날뻔했다는 생각에 레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아는 어떻게 될까?’

레오 덱스터는 지난 회차에서 기억나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구멍으로 바르바토스가 된 레아가 손을 뻗어 나를(레브의 시점에서) 쥐어뜯었다.

거기서부터 기억이 끊어졌다. 민서가 넋을 놓아버리면서 어떻게 끝이 났는지, ‘엔딩 크레딧’이란 걸 하나도 읽지 못한 것이다.

성녀와 바르바토스. 과연 누가 이겼을까? 이건 레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성녀가 이겼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바르바토스가 이겼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누구도 그녀를 막지 못할 것이다. 레브처럼 레아에게도 극도의 효율이 주어졌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 “네놈이 더러운 신의 장난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뭐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다 읽지는 못했다만… 어쨌든 죽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 이년과 마찬가지로. 그러니 말을 듣지 않는 사도는 나무가 되어있으라. 이 몸은 내가 잘 사용해주겠다.”

이년과 마찬가지로…

이게 힌트가 됐다. 바르바토스는 레아를 레브와 거의 비슷한 존재로 판단한 게 틀림없었다.

‘잠깐만… 그럼 우리는? 바르바토스는 왜 우리를 죽였지?’

모르겠다. 당시 레브로서 느낀 감정은 이놈들(나와 레나)을 빨리 죽여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레오 덱스터는 곁에서 걸어가는 레나 아이나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들넋바람’을 상쾌하게 쐬고 있었다.

들넋바람은 여름에 부는 바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방향은 대륙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랐다.

여름에는 바람이 바다에서 대륙 중앙으로 불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해서 들넋바람은 대륙 서쪽에 있는 신성왕국에서는 대체로 서풍이었고, 동쪽에 있는 아이셀 왕국에서는 동풍, 남서쪽의 오른 왕국에서는 남서풍, 동남쪽의 콘라드 왕국에서는 동남풍이었다.

그러니 이곳, 아스틴 왕국에서 맞는 들넋바람은 북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이었다.

“어? 레오. 저기 봐. 그 아저씨들이 또 있네.”

그때, 레나가 손을 들어 멀리 앞서가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쪽 아주 멀리에 다섯 전사들이 한가롭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번에 얼음섬 여관에서 만났던 전사들로, 가는 길이 같은지 여태껏 여행하는 동안 종종 마주치곤 했다.

“저 아저씨들도 진짜 느리게 간다. 어떻게 우리랑 비슷하게 가냐. 하하.”

레나의 밝은 웃음에 레오의 상념이 떨어져 나갔다.

레아가 승리할지 어쩔지는 아직 모른다. 엔딩을 맞이하며 본 그녀의 꼴은 말이 아니었으므로 성녀가 이겼을 수도 있어서 레오 덱스터는 고민을 미뤄두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레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몇 배는 더 소중하다.

* * *

“이야- 역시 장관이구만. 저게 다 칼자국이라지? 하하하. 정말 대단해.”

자신을 ‘바하타르’라 소개한 중년의 전사가 감탄했다.

그들은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올랐는데, 아래로 거대하고 새하얀 협곡들이 펼쳐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협곡들은 하나로 이어진 게 아니라 마치 드넓은 대지를 누가 난도질한 것처럼 수십 가닥으로 갈려 있었다.

“우와… 근사하네요. 이게 진짜 토들러 아키우넨이 했다는 짓이에요? 전 처음 듣는데…”

“그렇다니깐. 너희 아이나르 부족은 신성왕국이랑 가까워서 잘못 알려진 모양인데, 토들러 아키우넨은 반신(半神)이야. 북부가 낳은 위대한 전사지. 자,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기운도 받을 겸,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고 갈까?”

얼마 전부터 동행하기 시작한 아저씨, 바하타르가 레나의 잘못된 지식을 정정해주었다.

토들러 아키우넨.

‘안타로프 협곡’이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레나는 그를 최초의 소드마스터이자 인간 최초의 왕국, 아카이아 왕국을 세운 영웅으로 알고 있었다.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으나, 이 다섯 전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는 등의 야영 준비가 끝났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아서 일곱 사람은 부산스럽게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때,

– 퐁당. 치지지직-.

“어엇?! 뭐 하시는 거예요?”

레나는 한 전사 아저씨가 냄비를 불에 올릴 생각은 안 하고, 두툼한 돌을 넣는 걸 보곤 외쳤다.

“왜? 뭐가?”

“그걸 냄비에 넣으시면 어떻게 해요. 돌을 어떻게 먹으라고.”

“뭐? 아하하하하하하! 이 아가씨, 똑 부러지게 생겨가지곤 의외로 웃기는 구석이 있구만. 이건 물을 끓이려고 넣는 거야, 먹는 게 아니라. 이리 와서 봐봐.”

그가 냄비를 가리켰다. 모닥불에 뜨겁게 달궈진 돌이 들어가자 아직 묽은 국물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얼음섬만큼은 아니더라도 맹렬한 폭설이 몰아치는 북부에서 물을 끓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은 눈바람에 쉬이 꺼졌으므로 북부에 사는 이들은 뜨겁게 달군 돌을 물에 넣어 끓이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에이브릴 성에서 살아온 레나는 이를 몰랐던 것이다.

“헤에… 스프를 이렇게 끓이는 거예요? 그럼 돌은 어쩌고요.”

“다 끓으면 빼야지. 여긴 날씨가 따뜻해서 그냥 끓여도 되긴 하겠다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난 왠지 맛이 다른 것 같더라고. 어쨌든, 요리하는 사람은 나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는 맹한 강아지를 길들이듯이 기다려, 선을 그어놓고는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쒸…”

레나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애 취급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툴툴거리며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었다.

마침 그녀의 눈길을 끌어주는 게 있었다. 저쪽 협곡으로 내려가는 방향에 깔린 돌멩이들만 유독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주위 땅이나 바위 색깔과는 전혀 달랐다. 꼭 허연 액체가 뿌려져 마른 것 같다.

“뭐지? 왜 얘네들만 이렇게 하얗지?”

레나가 다가가 돌멩이를 하나 집어보았다. 역시 첫인상이 맞았다. 돌멩이 뒷면은 평범한 회색, 하얗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하타르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토들러 아키우넨의 전설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그래서야 어디 가서 전사라고 하겠어? 이리 와라. 이 ‘알바세테’ 부족의 차기 족장님께서 친히 가르쳐주마.”

차기 족장?

레나는 어쩐지 말만 앞설 것처럼 생긴 바하타르 아저씨를 조금 달리 보았다. 다가가 앉아 그의 말을 기다리는데, 그럼 그렇지, 그녀의 눈은 곧 샐쭉해졌다.

“뭔 소리야. 너 차기 족장 아니잖아. 족장 자리는 너희 형이 물려받을…”

“앗! 이봐!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얘들이 십자교회에서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모양인데, 나한테도 무슨 공신력이 있어야 설득력 있게 떠들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아, 그것도 그렇군. 맞아. 이 친구가 바로 차기 족장이야. 내가 깜박했네.”

“…이미 다 들었거든요?”

“하하하. 미안하군. 그러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니까. 자, 많이 먹어라.”

레나의 나무 그릇에 스프가 왈칵 담겼다. 고기를 우려낸 국물에 우유를 듬뿍 부어 끓여진 ‘오차즈’라는 요리였는데, 냄새가 고소하고 척 보기에도 기름져 보였다.

레나와 레오, 다섯 전사들이 모닥불에 둘러앉았다.

‘알바세테’라는 부족명을 들은 레오는 당장 당신들은 아스틴 왕국의 소드마스터, ‘아르펜 알바세테 남작’과 무슨 관련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북부에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전설. 바하타르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본 모양인지 양팔을 펼치며 그럴싸하게 운을 뗐다.

“아주아주 먼 옛날, 얼음 요정의 눈물이 이슬이 되고, 이 추운 북부에 노움(Gnome)들이 살아가던 아주 먼 옛날에 힘없이 살아가는 인간족이 있었단다.”

“그렇게 애한테 말하는 것처럼 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냥 들어. 나도 이렇게밖에 안 해봤으니까. 큼. 그리고 한 작은 인간족 마을에 ‘레오넬’과 ‘레이시아’라는 남매가 있었지…”

노을이 내린 협곡이 노랗게 빛나는 가운데, 바하타르가 토들러 아키우넨의 전설을 읊기 시작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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