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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2

152화 건드려선 안 될 것 (2)

152화 건드려선 안 될 것 (2)

나는 어젯밤 에스틸리아 교수를 찾아갔었다.

“올 줄 알았어.”

에스틸리아 교수는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테이블에는 주인 없는 찻잔 하나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마셔.”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셨다. 역시 이상한 맛. 떫거나 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차는 달아도 너무 달았다. 불량식품을 먹는 기분이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에스틸리아 교수가 깔깔 웃었다. 저 사람은 매번 이런다. 혹시 나를 골탕 먹이려고 내 차만 이런 괴상한 것을 내주는 게 아닐까.

“내 것도 똑같거든?”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얼굴에 쓰여있어서 하는 말이야.”

“잘 보셨네요.”

당돌한 나의 답변에 에스틸리아 교수가 다시 웃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내일 경기는 기권해.”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에스틸리아 교수를 바라봤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기권할 거였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교수님도 제가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알고 계셨고요.”

“역시 넌 건방진 꼬맹이야.”

“이렇게 큰 꼬맹이 보셨어요? 제가 볼 때는 교수님이야말로.”

“그만. 생각해 둔 묘안은 있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교수님은 이중 영창을 할 수 있으세요?”

“역시 알아봤구나? 탈리야가 한 짓을.”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이중 영창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그리 널리 알려진 능력이 아닌데. 하물며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초심자 주제에 말이야.”

에스틸리아 교수의 의문은 당연했다. 이 세계에서 이중 영창 능력자는 매우 드물다. 소설에서도 단 두 명만 등장했으니까.

물론 이중 영창 능력자가 이 세계에 두 명뿐이라는 추측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래서 나는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묻고 있다.

“입학 전에 마법을 가르쳐 준 스승께 들었어요.”

들은 적 없다.

그냥 엘리샤 팔아먹기.

“네 스승은 제법 실력 있는 마법사였나 보네? 이중 영창의 존재도 알고, 고위 마법 불꽃의 티아라도 네게 알려주고 말이야.”

“강한 마법사였죠. 에스틸리아 교수님만큼은 아니지만요.”

“아부하는 거니?”

“네.”

에스틸리아 교수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웃었다.

“그래. 내가 이중 영창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러면 뭐가 달라지지? 설마 하룻밤 만에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직 ‘주문 속삭임’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너도나도 주문 속삭임을 쓰니 흔한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문 속삭임은 상당한 고급 기술이다. 아르카넘 듀얼 본선에 오를 정도의 실력자들이니 가능한 거다.

1학년이 주문 속삭임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들었다. 아리엘이나 카인 같은 천재는 논외로 하자. 물론 미아마저 주문 속삭임을 사용할 줄은 예상 못 했지만.

“솔직히 말해 봐. 역시 너, 타인의 능력을 복제할 수 있는 거지?”

어느 틈에 에스틸리아 교수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닌데요.”

“그럼 내가 이중 영창 능력자인지는 왜 물었어? 능력을 복제하려면 상대에게 무언가 확인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니?”

“탈리야를 이길 방법을 알고 싶어서요.”

“말했잖아. 네가 이길 방법은 없다고.”

“뭐라고 말씀하셔도 기권은 하지 않아요.”

“미아 데본렉스 때문이니?”

역시 에스틸리아 교수도 탈리야와 미아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아는 모양이다.

“그 이유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럼 왜.”

“저는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해서 도망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거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예전보다는 많이 희석됐지만, 나는 여전히 카인을 경계한다.

나는 이 세계를 구할 것이다.

“건방지고 고집 센 꼬맹이.”

에스틸리아 교수가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중 영창은 특별한 능력이야. 하지만 모든 능력에는 약점이 있는 법이지. 이중 영창도 예외는 아니야.”

“약점이요?”

“두 가지 주문을 동시에 영창하며 생기는 일종의 ‘간섭 현상’이 있어. 각 마법이 가지는 고유의 파동 때문인데, 그 간섭 현상이 마치 잡음 같은 소리를 발생시키는 거야.”

그러고 보니 탈리야가 웃음소리를 내며 마법을 발현했을 때, 묘한 잡음이 느껴졌었다.

“그 잡음이 단서가 되나요?”

“시전자가 발현하려는 마법 속성에 따라 미묘하게 파동이 달라지거든. 잘 잡아낸다면 상대가 어떤 속성의 마법을 쓸지 미리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지. 극도로 숙련되면 속성뿐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마법의 종류도 알 수 있지만, 당연하게도 하룻밤의 훈련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야.”

엄청난 정보였다.

탈리야가 발현할 마법 속성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대비하는 일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정보가 너에게 의미가 있을까? 네가 정말로 운이 좋아 잡음을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치자. 하지만 탈리야가 발현할 속성을 미리 안다 한들 네 실력으로는 대응할 수 없어.”

에스틸리아 교수의 말이 맞다. 탈리야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괴물이다. 그 대단한 아리엘도 방어만 하다가 결국 기권했으니까.

물론 아리엘은 나름의 한 방을 먹이기는 했다. 그러나 탈리야가 방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탈리야는 초반에는 이중 영창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부터 제 실력을 보였다면 분명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을 것이다.

아리엘의 반격 덕분에 나는 탈리야가 이중 영창을 발현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큰 성과다. 아마 탈리야도 아리엘과의 경기 중에 이중 영창을 내보일 생각은 없었겠지. 아리엘의 반격에 흥분한 탓에 자신도 모르게 사용했을 공산이 크다.

“가르쳐 주세요. 그 ‘잡음’을 구분하는 방법을.”

.

.

.

지난밤을 떠올리며 나는 하품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그래서 낮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는데 루나가 자꾸 이거 하자, 저거 하자며 끌고 다니는 바람에 쉬지 못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까.

“카인이 이기겠지? 그치 데미안?”

경기장으로 내려가는 카인을 보며 루나가 물었다. 루나의 동그란 뒤통수를 보니 쓰다듬어주고 싶은 욕구가 일었지만 옆자리의 세실을 보고 참았다. 세실이 나를 보며 살짝 웃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실의 머리를 만지고 싶어졌다.

아아, 데미안 라플라스. 너는 언제까지 루나와 세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셈이냐.

“데미안.”

“응. 세실리아.”

나는 아직 세실을 세실리아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

“호. 혹시. 내가.”

“응?”

“내가. 혹시. 우. 우승하면.”

그 말에 루나가 휘둥그렇게 눈을 뜨며 세실을 돌아봤다.

“세실리아! 우승이라니! 나는 어차피 네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거니?”

“그. 그게. 아니라······!”

당황한 세실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모습을 보고 꺄아! 소리친 루나가 세실을 끌어안더니 마구 볼을 문질렀다.

“아아, 세실리아······. 미안해. 장난이야. 아무튼 넌 내 꺼야. 진짜 내 꺼라고······.”

카인의 경기가 시작됐다.

***

“뭐야! 이안이 밀리고 있잖아!”

“이안! 힘내!”

“상대는 1학년이야! 아직 풋내기라고!”

동급생들의 응원을 들으며 이안 미스트본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미친놈들. 네놈들이 한번 겨뤄 봐라. 너희가 풋내기라고 외치는 저 녀석은······.’

이안은 부릅뜬 눈으로 카인 시니야카를 노려봤다.

‘······저 녀석은 괴물이라고!’

수세에 몰리던 이안의 손에서 물의 마법이 발현됐다. 이안은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아르카넘 홀의 3학년 중에서 물 속성 마법을 다루는 능력이 가장 뛰어났다.

푸른 물의 회오리가 카인을 습격했다. 사실 물의 마법은 일정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불의 마법이나 빙결의 마법 같은 파괴력은 없다. 그러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제대로 적중시키면 상대의 호흡과 주문 영창을 방해할 수 있다.

화륵.

카인의 손에서 기초적인 불의 마법이 발현됐다. 그의 손에서 뻗친 화염이 물의 회오리와 부딪쳤다.

이안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이 발현한 중급 마법을 초급 화염 마법으로 저지하려는 카인이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장난치지 마!”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카인의 초급 마법이 이안의 중급 마법을 저지했다. 그것을 넘어 카인은 이안에게 반격을 꾀했다. 이번에도 초급 화염 마법이었다.

그런데.

‘뭐, 뭐가 저렇게 커!’

이안은 경악했다. 말이 초급 마법이지 중급 마법 이상의 위력을 지닌 불덩이가 날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안은 상대의 의중을 읽지 못했고, 그래서 방어 마법을 구현할 시간이 부족했다.

“기, 기권! 기권이라고!”

다급히 망토를 쥐었지만 긴장한 탓에 풀리지 않았다.

어느새 시뻘건 화염은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안은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콰드드드!

그때, 이안의 눈앞으로 생성된 빙결 장막이 카인의 화염을 막았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나선 것이다.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관객들이 경기장 중앙을 보며 술렁대고 있었다. 곧 이안도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빙결의 장막은 하나가 아니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것과 겹치듯 또 하나의 장막이 허공에 드리워 있었다. 뭐지? 에스틸리아 교수가 두 개의 장막을 만든 건가? 하지만 무엇 때문에.

에스틸리아 교수는 경기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녀는 물끄러미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안의 등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는 깨달았다. 또 하나의 장막을 세운 이가 누구인지.

“서, 설마······! 말도 안 돼······!”

에스틸리아 교수가 바라보는 대상은 카인 시니야카였다.

***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카인은 이안 미스트본의 물 속성 마법을 초급 화염 마법인 ‘발화’로 막고, ‘화염구’를 발현해 반격했다. 아무리 주문 내용이 짧은 초급 마법이라 해도 너무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카인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녀석은 기권하려는 이안 미스트본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는 순식간에 빙결 장막을 펼쳤다.

‘······이중 영창?’

아니, 이중 영창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르다. 이중 영창이라고 느껴질 만큼.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에스틸리아 교수도 상당히 놀란 듯했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카인을 응시했다. 아니, 무섭게 노려봤다.

“경기 종료. 아르카넘 듀얼 4강전, A조의 승자는 카인 시니야카입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심판과 대전 상대에게 예를 표한 카인이 관객석으로 올라왔다.

“우와아아! 1학년이 결승에 오르다니!”

“3년 전의 탈리야 같잖아!”

“결승에는 당연히 탈리야 데본렉스가 올라오겠지?”

“벌써 기대되는군!”

관객들이 우레같은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몇몇 학생은 마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카인을 보고 있었다.

“축하해! 카인!”

“고마워, 루나.”

루나에게 싱긋 미소 지은 카인이 나를 돌아봤다.

“데미안. 어제도 말했지만.”

“시끄러워. 난 기권 같은 거 안 해.”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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