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마피아가 되었다 152화
다른 녀석들이 동시에 나를 노려 올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사방에서 몰려올 줄은 몰랐다.
“저거 목만 따면 상위권이야!”
“포인트가 4천짜리라고!”
4천 포인트?
그 목소리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눈앞에 불투명한 창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은 지금 아카데미의 배틀로얄에 들어왔습니다! 보유 포인트에 따라 서열이 정해집니다.]
【포인트 제도】
「생존 점수」
[1등 – 2만 포인트]
[2등 – 8천 포인트]
[3등 – 4천 포인트]
「킬 점수」
[1등 처치 시 – 8천 포인트]
[2등 처치 시 – 4천 포인트]
[3등 처치 시 – 2천 포인트]
“이걸 지금 보여 준다고?”
어쩐지 대기시간이 길다 했더니, 이거…… 설마 3년 차에 지수연이 제안하는 리미트룰이 적용된 건가?
‘배틀로얄도 이른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배틀로얄이라고 해 봤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강한 놈이 편하게 이기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게임처럼 맨손으로 시작해서 무기를 파밍하는 것도 아니고 각각 자신의 특색과 고유 무장이 있는 상태에서 무작위 전투를 시작할 뿐.
그렇기에 초창기 배틀로얄에서는 순위가 크게 변동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꼴이 아니꼽던 우리의 전투광 담임이 제안했던 것이 바로 리미트룰.
순위권의 사람들이 더 늦게 나와 지형 및 시간적 이점을 최대한 적게 만들고, 다른 이들의 파티에도 최대한 배제하게 만드는 악랄한 설계였다.
이렇게 되면 숨을 곳도 부족하고 숨더라도 보이는 표식을 따라 확실히 고점을 노리러 올 터.
말 그대로 ‘어떻게 하면 고위 순위인 애들을 사냥하기 좋게 만들어 전투가 많이 일어나게 할까?’를 위해서만 구상한 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원래라면 고위 등수일수록 엄청나게 불리란 게 정상인데…… 뭐, 원래는 말이지.
[혈계 능력 : 칼리오네가 활성화됩니다.]
주변 적의 숫자에 따라 강해진다는 혈계 능력 덕분에 순식간에 올라간 신체 능력과 오러량.
“다음에 올 때는 혼자 오는 게 유리할 거야.”
이제는 자연스럽게 큐브에서 뽑혀 나온 토미의 총구가 달려드는 녀석들을 향해 겨누어진다.
“Ciao.(잘 가).”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나가는 오러의 총탄 세례.
“그거다!”
“실드 펼쳐!”
이에 달려들던 녀석들은 황급히 실드를 펼치거나 몸을 웅크리며 착탄 범위를 줄이려 했다.
확실히 한 명이나 두어 명이 달려오며 실드를 펼쳤다면 뚫기 힘들었겠지.
그런데…… 7명이라, 많이도 모아 왔다.
아주 좋은 버프네.
쨍그랑──!
특성에 의해 강화된 총탄은 녀석들의 기대를 배반하듯 넓게 펼쳐진 실드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분명 실드는 못 뚫었을 텐데……!”
“그건 또 언제 적 이야기야.”
현역 영웅이라면 모를까 이젠 평범한 아카데미 1학년이 내 토미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 / ──! / ──! / ──! / ──! / ──! / ──! / ──! / ──! / ──! / ──!
마치 빗자루로 바닥을 쓸 듯 순식간에 쓸려 나가는 아이들.
치명타를 허용함과 동시에 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이번 배틀로얄 제작에 누가 관여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박윤호. 그 양반이네.”
이러한 거대한 필드에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
‘박윤호’ 그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합동으로 만든 시험이라니, 와…….
신입생들이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인 만큼 이런 방식으로 배틀로얄을 만든다면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도 금방 적응할 터.
[pt +700]
“포인트에 귀환 모션까지 만든 거면 대체 얼마나 진심인 거야?”
시카고 타자기에 갈려 나간 아이들의 몸은 새파란 빛에 휩싸이며 [100pt]라는 글씨만 남긴 채 사라진다.
“여기 있어 봐야 계속 다른 녀석들이 달려올 것 같은데…….”
문뜩 좋은 생각이 들었기에 고개를 들어 빛기둥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최연이 있는 곳은 국회의사당 쪽인가?”
이대로라면 계속 나와 최연을 노리는 녀석들이 몰려올 것을 직감했기에, 우선은 최연과 합류하기로 했다.
어차피 계속해서 녀석들이 몰려올 거라면 힘을 합쳐서 끝까지 살아남고 마지막에 승부를 보는 게 더 유리할 테니까.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 한 건 아닌지, [☆★1위★☆] 표시와 빛기둥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좋아. 이대로 합류만 한다면──’
콰앙───!!
서늘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팔을 들어 올리자 엄청난 충격이 팔을 때렸다.
있는 힘껏 하체에 힘을 주지만 그대로 밀려나는 몸.
“괴물 같은 놈. 이걸 막아?”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활을 겨눈 채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최대한 빠르게 끝내줄게. 너 말고도 최연도 잡아야 하니까.”
정의훈.
녀석이었다.
“……하다 하다 이젠 날파리도 달라붙네.”
“뭐? 날파리?”
날파리라는 말에 표정을 와락 구기는 녀석.
“방금 그 말…… 후회하게 해 주마.”
다시 한번 활시위를 당기는 녀석의 모습을 본 나는 곧장 자리를 박차며 앞을 향해 달려들었다.
안 보이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렇게 뻔히 보이는 공격을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활잡이라는 놈이 적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 멍청한 새끼.”
그리고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을 때.
“이 활은 저격용이 아니거든……!”
──기기기긱!
확연히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당겨지는 활시위에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저거……!
쾅!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닥쳐드는 새하얀 화살.
[‘이지스의 시계’가 발동합니다.]
[공격을 방어하는 데 성공합니다.]
나로서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지스의 시계가 발동하며 녀석의 공격이 막히고 만다.
“무슨?!”
자신의 공격이 막힐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는지 경악하는 녀석.
“이제 안 되니까 집안 가보를 들고 오네? 미친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와 외형이다 했더니, 내가 알고 있는 무기였다.
[태조의 각궁]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활 중 1티어에 속하는 활로 정의훈의 가문이 대대로 보관해 오고 있던 무기.
“사소한 부탁 지금 쓰고 싶은데, 그 각궁. 나 줘.”
“되겠냐. 망할 새끼야!”
그대로 뒤로 물러서며 다시 한번 활시위를 당기지만 방금처럼 화살이 빛난다거나 활시위가 괴상한 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녀석의 오른팔.
“무리했나 보네?”
“닥쳐!”
그대로 꼴에 활잡이라고 엄청난 속도로 건물들의 사이를 종횡하며 나를 향한 공격을 이어 나간다.
히트 앤 런으로 작전을 바꾼 건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방법이 다 있지.
큐브에서 뽑혀 나오는 ‘빌리 더 키드의 샷건(Billy the Kid‘s Shotgun)’.
어차피 이 안에서는 안 죽으니까.
“……클레이 사격은 오랜만인데.”
조금 과격해져도 되겠지?
계속해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녀석의 화살들을 피해내며 샷건의 개머리판을 견착한 뒤 녀석을 겨냥한다.
활을 쏘기 위해 한 번씩 몸을 돌리는 그때가 녀석을 맞추기 좋은 타이밍.
천천히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녀석이 화살을 발사하는 순간.
──쾅! 쾅!
연속으로 두 발을 발사시켜 녀석을 맞춘다.
“크학!”
짧은 비명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녀석.
동시에 견착과 조준을 위해 가만히 있었기에 어깨에 화살 한 발이 박히고 말았지만…….
화살을 뽑아내자 파프니르의 피 덕분에 등급이 올라간 [자연치유(A)]가 발동하며 상처 부위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건가?”
녀석이 추락한 방향을 바라보니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녀석의 모습이 보인다.
역소환 되진 않은 것을 보아하니 거리 탓에 산탄이 퍼지며 충격량이 감소한 모양.
“내 손으로 마무리할 수 있으니 오히려 다행인가.”
터벅터벅 녀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뒤를 돌아본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내 쪽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
하지만 샷건에 피격당해서인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활시위도 잡아당기지 못하는 녀석.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오른손에 살기 어린 오러를 담으며 그렇게 말하자 녀석은 망연자실해 하며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진짜 괴물 같은 새끼.”
“그러게 왜 날 잡으러 와? 너 정도면 충분히 열 명안에도 들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치켜들자 녀석은 나를 향해 중지를 치켜올리며 피식 웃어 보인다.
“그냥 죽여. 새끼야.”
“병신이 쿨한 척하네. 그래 봐야 넌 꿀밤에 죽어.”
“잠깐만, 꿀밤이라니 그게 무슨──”
그대로 녀석의 말을 끊고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주먹.
“──공포의 쓴맛.”
쿨한 척하는 녀석에게는 티배깅이 딱이거든.
“그헥!”
그대로 나의 주먹에 맞고선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역소환 당하는 녀석.
“러지 컷.”
꽤나 만족스러운 손맛이었다.
* * *
[4300pt]
“떨거지들 잡는 것도 꽤 쏠쏠한데?”
비장의 수를 전부 써 버린 정의훈과 계속해서 날 노리는 떨거지들을 처리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상당한 숫자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굳이 1, 2위 들을 노리지 않고도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을 노리고 한 방을 노린 녀석들이 먼저 탈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내 쪽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총성 때문일까, 아니면 나에 대한 소문이 벌써 퍼진 것일까.
떨거지들이 슬슬 나를 찾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 / ──! / ──!
이렇게 짧게 허공에 총만 쏘아도 반응이 들려온다.
-한유진이다!
-도망쳐!
-저 미친놈 손에 걸리면 바로 아웃이야!
-그냥 자기장으로 뛰어들어! 저 총에 처맞는 것보단 나아!
……이거 재미있는데?
마치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토미로 한국인만 아는 비트를 연주하며 길거리를 걷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리?”
“누, 누구…… 히익? 유, 유진 씨?!”
아기자기한 인형 군단을 이끌고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는 마리를 만난 것이었다.
이 안에서는 처음 만나는 익숙한 얼굴인가.
“어때, 포인트는 많이 모았어?”
“네? 네에. 상위권에 들 정도는 모은 거 같아요.”
“그래?”
언제라도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듯 인형들이 나와 마리의 사이를 가로막기 시작한다.
“맞다. 혹시 ‘파밀리아’ 애들이랑 마주친 적 있어?”
“아, 30분 전인가. 왠지 진우 씨가 잔뜩 지쳐 있길래 제가 기습하긴 했는데요…….”
진우는 죽었구나.
불쌍한 놈.
듣자 하니 다른 녀석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하다 적을 너무 만들어서 레이드 당했다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친구의 복수를 해야겠네.”
“으, 으익! 그냥 가시면 안 될까요……? 아니! 제가 떠날게요!”
내 말을 들은 마리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한다.
커다란 눈동자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
힐끔 주변을 둘러보며 줄어드는 자기장을 확인한 나는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알잖아. 마주친 이상 방법이 없다는 거.”
결국 자기장이 좁아지면 강한 놈들만 살아남을 텐데, 언제 다방면에서 공격받을지 모르니 경쟁자는 최대한 줄여 놓는 게 좋았다.
“그, 그렇다면 저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아요!”
“미안. 너랑 나는 상성이 너무 안 좋아.”
──콰앙!
대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순식간에 마리와 인형들을 집어삼킨다.
하나하나의 개체가 강하다면 모를까.
의미 없는 물량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었다.
[4800pt]
“오. 마리는 500포인트네.”
그래도 역시 강자는 강자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제 메인 이벤트인가?”
최연이 있는 한강공원 앞에 도착함과 동시에 엄청난 파공성이 귓가를 때렸다.
──쾅! ──쾅쾅!
“역시 난리구나.”
공원의 한가운데.
사방에서 닥쳐오는 공격을 검 한 자루로 모조리 튕겨 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최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좀 죽어!”
“이걸 대체 어떻게 막는 거야?!”
최연을 공격하고 있는 녀석들의 검 놀림을 보아하니 꽤 실력자인 모양.
“최연 씨 미안해요!”
그 와중에 익숙한 얼굴의 세아도 보인다.
……쟤도 수석을 노리는 건가.
“이제는 익숙해졌어.”
지금까진 회피와 방어만 하던 최연의 검이 점차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서서히 빨라지는 그녀의 움직임에 점차 뒤로 밀려나는 녀석들.
“여기서 더 빨라진다고?!”
“……괴물!”
그 와중에 미소를 짓고 있던 최연에게서 두려움을 느낀 것인지 녀석들의 뒤로 물러날 타이밍을 잡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뭐, 최연이 그걸 가만히 두겠냐마는.
“극(隙) 베기.”
녀석들이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최연의 검이 일(一)자로 크게 베인다.
내 눈으로도 쉽게 쫓을 수 없는 엄청난 쾌검(快劍).
이에 두 녀석이 순식간에 푸른빛에 감싸이며 사라지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세아는 발라당 넘어지고 만다.
“……최연 씨 너무 강한데요.”
“응. 너무 즐거웠어. 나중에 보자?”
“자, 잠깐 안 아프게── 악!”
세아마저도 아웃.
슬슬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았기에 모습을 드러내려던 찰나.
────구구구구구.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숨을 고르고 있던 최연 역시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뒤를 돌아본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강이 있는 방향을 향해 검을 겨누는 그녀.
적이 뒤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동시에.
───콰과과광!
한강에서 솟아오른 물줄기가 최연이 있는 방향을 향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물살 가르기.”
하지만 그것을 순식간에 양단해 버리는 최연.
동시에 물줄기는 폭발하며 주변에 물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뚜욱. 뚜욱.
젖어 버린 그녀의 푸른 머리끝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아니, 흘러내리기 전 다시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누구?”
뒤편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말하는 최연.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니 수면 위를 뚜벅뚜벅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든 남자가 최연을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최강현. 너를 쓰러뜨리고 수석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와.
개 재밌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