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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3

152. 약혼관계 – 신화(神話)

그 소년 소녀는 눈에 태양을 품고 태어났다.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그들이 범상치 않은 아이들임을 증명했으나, 그들의 탄생 과정 또한 남달랐다.

남아는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났다. 추운 겨울. 그는 스스로 탯줄을 끊었고, 울먹임 없는 외침으로 자신의 등장을 세상에 알렸다.

한편 쌍둥이였던 둘째는 뱃속에서 나오길 거부했다.

성급한 오라비와 달리 그녀는 충분히 성장한 몇 주일 뒤에야 스스로 자궁을 기어 나왔는데, 그녀는 울지 않았다. 방긋 미소지어 자신 때문에 두 번이나 고된 산통을 겪은 어미를 위로해 주었다.

남매는 무럭무럭 자랐다.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으며, 온 마을의 관심 속에서 아름다운 소년 소녀로 성장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돌산에 발을 들였다. 땔감을 찾아다니던 그는 바위틈에 감춰진 경사로를 발견하였고, 어쩐지 으스스한 그 길을 따라 오르자 한 마리 동물이 바위에 묶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둥근 뿔이 달렸으니 양이라 해야 할까, 비늘로 덮인 네 다리와 꼬리가 있으니 도마뱀이라 해야 할까. 기묘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넌 왜 여기에 묶여있니?”

레오넬이 물었다. 그러자 동물이 답했다.

“나도 몰라. 나는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 태어났어.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잡더니 묶어놓고 떠났어! 그러고 있지 말고 날 풀어줘.”

하지만 그 동물을 속박한 끈은 도저히 풀리지 않았다. 꽤 애를 썼음에도 풀리지 않자 레오넬은 다시 찾아오겠노라 약속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으스스한 경사로를 무서워하면서도 돌산을 올라 어떻게 하면 매듭을 풀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바보야. 이까짓 것도 못 풀어?”

소년이 가져온 딱딱한 견과류를 꼬박꼬박 먹었기 때문일까? 그 동물은 빠르게 자랐다. 조그마했던 것이 이제는 바위만큼 커져서, 두려움을 느낀 소년이 말했다.

“널 풀어줘도 좋을지 모르겠어. 이젠 널 찾아오지 않을 거야.”

“너는 거짓말쟁이구나. 좋을 대로 해. 나는 영원히 여기에 묶여있겠지. 평생토록 너의 거짓말을 되새기며 슬퍼할 거야.”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매듭은 풀리지 않고, 너는 너무 무섭게 생겼는걸.”

눈물을 흘리던 동물이 미소지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를 풀어주지 마. 대신 다른 약속을 하는 게 어때? 네 이름을 내게 줘. 그리고 나를 잊지 말아줘. 나는 너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여기에 묶여있는 거니까.”

“좋아.”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고 돌산을 내려왔다. 다시는 그 으스스한 경사로를 찾지 않았다.

그 이후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를 멀리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고, 심지어 아버지 어머니까지도 아들의 눈을 피했다.

동생, 레이시아가 지적했다.

“오빠. 오빠 어쩐지 좀 무서워.”

이름을 잃은 소년은 불쾌해졌다. 용감하게 다가와 충고해준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하나뿐인 옷을 갈기갈기 찢어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면 아주 맛있을 것 같다.

“아악!”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경악한 그는 황급히 돌산을 올랐다. 견과류를 가져다주지 않았음에도 더 거대해진 동물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차라리 거짓말쟁이가 되겠어! 내 이름을 돌려줘!”

동물은 거절했다.

“싫어. 이름을 돌려받고 싶거든 이 매듭을 풀어줘. 걱정하지는 마. 이제는 풀 수 있을 거야. 내가 ‘안에서’ 도와줄 테니까. 나도 많이 자랐잖아?”

“…알겠어. 약속한 거다?”

동물은 고개를 끄덕였고, 소년은 매듭을 풀었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풀리지 않던 매듭은 안에서 도와주겠다던 동물이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음에도 쑥쑥 풀려나갔다.

“이제 됐지? 내 이름을 돌려줘.”

“거짓말이었어. 안 돌려줄 거야. 먼저 약속을 어긴 건 너잖아.”

뿌드득, 기지개를 켠 동물이 미소지었다. 공포스럽게 둥근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좋아.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이상하게 널 가지고 싶어. 괴롭히고 싶어. 그러면 네 동생도 딸려 오겠지. 너랑 네 동생은 하나로 묶였으니까…”

소년은 달아났다. “넌 이미 나와 하나야. 달아날 수 없어.” 속삭이는 동물을 피해 도망쳤으나 이내 붙잡혀 비늘 돋은 발굽에 깔리고 말았다.

“뭐, 뭘 원하는 거야.”

“네가 타고난 모든 걸 원해.”

양 주둥이가 소년의 목을 물었다. 그 괴이한 동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소년은 녀석이 자신의 혈관을 따라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 이제 돌아가. 돌아가서 네 동생을 내게 보여줘. 어라?

소년은 말을 듣지 않았다. 정반대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동물이 물었다.

– 넌 내가 무섭지 않아?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야?

“…무서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혈관을 따라 흐르는 공포가 그를 무겁게 갉아먹었으나, 까마득한 벼랑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평평하게 펼쳐진 대지. 멀리 마을이 보였다. 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돌산은 가팔랐고, 거센 바람이 몰아쳐 소년의 몸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두렵다. 하지만 이 괴물을 동생에게 데려가는 게 더 무섭다.

괴물의 명령을 뿌리친 소년이 몸을 던졌다. 소년이 된 괴물이 “안 돼!” 비명을 지르는 순간,

장엄한 존재가 손을 뻗었다. 곤두박질치는 소년을 안아 들더니 따스한 울림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 레오넬.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거대한 여인이었다. 가시가 솟아난 면류관을 쓴 그녀는 고통스러워 보였으나 숭고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 앞으로도 우리는 너를 지켜보리라. 이건 내 선물이다.

여신이 소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돌산 아래에 내려진 레오넬은 자신의 몸이 달라진 걸 느꼈고, 괴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 * *

“레오넬은 위대한 전사로 성장했지. 양손검 두 개를 벼락같이 휘둘러 온갖 괴물을 처지했고, 인류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단다.”

바하타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차즈를 싹싹 긁어먹은 레나는 무릎을 감싸 안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동생, 레이시아는 그의 뒤를 받쳐주었지. 그녀는 충성을 맹세한 마을들을 현명하게 통치했고,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을 세웠단다. 그 규칙은 훗날 ‘아카이아 법전’의 기초가 되었다고 해.”

레오는 팔짱을 낀 채 이를 듣고 있다가 널브러진 그릇들을 포개어 옆으로 밀어두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단다. 크흠. 자, 여기서부터는 십자교회가 말해주지 않는 거니까 똑똑히 들어.”

바하타르가 목을 다듬더니 강조했다. 뒤이어진 이야기는 확실히 레오가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대륙 중앙의 이종족들을 물리치고 동생과 함께 아카이아 왕국을 세운 레오넬. 모두가 영웅의 다음 행보를 기대했으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르빌이라 명명한 수도에 근사한 왕궁을 지은 그는 거만해졌다.

자신의 이름을 ‘토들러 아키우넨’이라 칭하곤 왕궁에 틀어박혀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이시아의 행보도 이상했다.

왕국을 세운 직후 태양력(太陽曆)을 정립해 농사에 도움을 주고, 치수(治水)에 보탬이 될 장비들을 고안하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녀도 궁에 틀어박혔다.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사랑을 노래하는 시였다.

그래도 모두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훌륭한 작품들이었기에 칭송받았지만, 이내 온 왕국민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결혼하지 않은 레이시아가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 레오넬! 네 이놈!

하늘이 열리며 검과 방패를 든, 전투와 명예를 관장하는 라차르 신이 뛰쳐나왔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레나 아이나르는 옆에서 레오가 건네주는 후식을 와삭와삭 먹으며 물었다.

“전사의 신, 라차르 님께서 레이시아를 잡아가셨지. 레오넬 왕더러 반성하라 호통치고 떠나셨는데 그는 반성하지 않았어. 폭정을 일삼아 왕국민들을 공포에 몰아넣더니 훌쩍 북부로 떠났지. 라차르 님의 신전이 있다는 이곳으로 와서 칼부림을 벌였는데…”

바하타르가 등을 돌렸다. 그들이 있는 야트막한 산 아래로 펼쳐진 수십 갈래의 새하얀 협곡을 가리켰다.

“아까 왜 돌멩이가 하얗냐고 물었지? 그건 신의 피가 흘렀기 때문이야. 아흐레의 전투 끝에 레오넬은 라차르 님의 몸에 칼을 박아넣었고, 스물네 방울의 피가 대지에 떨어졌어. 결국 라차르 님께서 승리하시긴 했지만 인간의 공격에 피해를 입으신 게야. 그래서 레오넬이 반신(半神)이라 불리는 것이고. 물론 십자교회는 이 모든 걸 부정하고 있어. 신께서 상처를 입었다는 걸 인정하느니 차라리 토들러 아키우넨과 주신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야.”

레나가 미심쩍게 물었다.

“그럴 만도 하네요. 누가 믿겠어요? 신이 인간의 칼에 맞아 피를 흘렸다는 걸.”

“하하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하지만 증거가 있어. 저 돌멩이들을 봐. 저기에 묻은 하얀 것들이 바로 ‘마누비움’이야. 모든 마법을 빗겨내고, 신력을 증폭시킨다는 기적의 광물이지.”

“흐음…”

레나는 조금 전에 집어온 돌멩이를 뒤집어 엄지로 뽀득뽀득, 하얀 면을 문질러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레나는 긴가민가 납득할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녀가 조용해지자 바하타르가 입을 열었다.

“라차르 님께서는 토들러 아키우넨을 죽이려 하셨지. 그때, ‘바눈 라오노’가 간청했어. 인류 최초의 귀족이자 토들러 아키우넨의 첫 번째 신하였던 그는 토들러보다 한발 앞서 신전에 와 있었던 거야. 그는 왕과 왕비의 죄를 용서해달라 청하며 대신 자신의 목숨을 바쳤어. 그러자 라차르 님께서 말씀하셨지.”

= 인간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제가 섬기는 왕의 동생이자, 부인이 된 여자를 위해 목숨을 끊다니… 좋다.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너는 내가 흘린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 이후 토들러 아키우넨과 레이시아는 사라졌어. 다행히 레이시아가 낳은 아들은 성군이 되어 왕국을 훌륭하게 통치해나갔고, 토들러 아키우넨이 저질렀던 폭정은 잊혀졌지. 어때? 십자교회가 가르쳐주는 이야기와는 다르지?”

바하타르가 씨익 웃었다. 레나는 쭙쭙, 입맛을 다시며 마뜩잖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단순히 이 아저씨가 기고만장해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기에 레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뭐… 고마워요. 덕분에 토들러 아키우넨의 전설을 알게 됐네요.”

“하하하. 그럼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못 들어. 우리 ‘알바세테’ 부족에서만 구전되는 거니깐.”

“에이- 그건 허풍이죠?”

“어떻게 알았냐? 하하하. 조금 과장을 보태면 그렇다는 얘기야. 북부에 있는 부족들 대부분이 알긴 알지. 하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뉘예뉘예. 어련하시겠어요.”

“어쭈구리? 여태껏 재미있게 들어놓곤 이제 와서 딴소리야?”

레나와 바하타르가 투닥투닥 잡담하는 사이, 레오 덱스터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알바세테’ 부족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지만, 그보다도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레이시아.”

그는 작게, 레나를 불러보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그 이름을 말하자…

“응? 레이시아 뭐? 왜 말을 하다 말아?”

레나는 아리송한 눈을 돌려줄 뿐이었다. “레오넬.”이라고도 중얼거려 본 레오 덱스터는 이내 고개를 머쓱하게 까닥였다.

병신같은 짓을 했다.

레오가 고개를 들었다. 알바세테 부족에 관해 질문하려 했는데, 바하타르를 포함한 다섯 전사들은 자리에 없었다. 모두 저쪽 멀리에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푸른 그믐달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레오. 우리도 가서 구경하자. 경치가 근사하네.”

레나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를 일으켜 세우곤 고함을 지르는 아저씨들을 따라 “우와아아아!” 협곡을 향해 패기롭게 포효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야만인 전사들이란…

레오는 시끄럽게 소리치는 그들을 못 말리겠다는 듯이 바라보았고, 모닥불 주위에 풀어 놓은 그의 검이 웅- 웅- 미약하게 떨리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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