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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3

153화 건드려선 안 될 것 (3)

153화 건드려선 안 될 것 (3)

카인이 물끄러미 나를 봤다.

녀석의 눈빛에서 걱정이 엿보여서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결승 진출 축하해, 카인.”

“고마워, 아리엘.”

아리엘에게 미소 지은 카인이 다시 나를 돌아봤다.

“대응할 방법은 찾은 거야? 데미안.”

“뭐, 어느 정도는.”

“그렇구나.”

싱긋 웃은 카인이 자리에 앉았다.

세실과 미아가 카인의 결승 진출을 축하해 주었다. 앙투안은 아리엘에게 옆구리를 쿡 찔린 후에야 뒤늦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다음은 B조, 데미안 시니야카와 탈리야 데본렉스의 경기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왜일까. 나는 탈리야를 두려워하는 건가.

저 멀리 탈리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소설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안다. 루나, 세실, 아리엘이라는 최강의 동료를 얻은 카인이 제국 동부와 맞서 싸우던 중, 탈리야는 마치 운명처럼 전장에 나타났다.

나는 탈리야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녀가 앞으로 얼마나 무시무시한 마법사로 성장하는지도 알고 있다. 나는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데미안.”

그때, 누군가 나의 손을 잡았다. 세실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를 걱정해서? 탈리야에게 심하게 당할까 봐? 아니다. 세실의 눈빛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세실만이 아니었다. 관객석의 사람들도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저 표정 좀 봐. 무슨 짐승도 아니고······.”

“화난 늑대 같아. 아니, 웃는 늑대.”

“바보야. 늑대가 어떻게 웃냐.”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나는 내가 이를 악물고 웃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웃을 상황이 아닐 텐데······.”

“탈리야를 상대로 웃음이 나오다니. 미친 건가?”

“저렇게 무섭게 웃는 사람은 처음 봐.”

“화난 거라니까.”

나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잠시 내 의식을 지배했던 것 같은.

나는 세실의 손을 마주 잡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고요하다.

“걱정 마. 세실리아.”

몸의 떨림도 멈췄다.

.

.

.

“정말로 이기고 올라왔네? 금발 애송이.”

나와 탈리야는 경기장 위에 마주 섰다.

“맞아. 이번 경기도 이기고 올라갈 거야.”

“말하는 것도 귀여운 노란 병아리네. 정말 괴롭히고 싶게 생겨서 말이야.”

나는 탈리야의 어깨를 흘끗 살펴봤다. 교복과 망토 탓에 상처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이전 경기의 영향이 크지 않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에게 당한 상처를 걱정해 주는 거니? 어머, 자상하기도 해라.”

탈리야가 웃었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흠잡을 곳 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족 영애다.

“아르카넘 듀얼 4강전 2경기, 시작합니다.”

경기가 시작됐다.

***

“어떻게 될 것 같아? 카인.”

루나의 표정은 진지했다.

조금 전까지의 환한 미소와는 달리,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실력으로만 봤을 때는 탈리야가 몇 수는 위야. 어깨의 상처도 잘 치유된 것 같고.”

카인의 대답에 루나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루나는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카인의 눈은 정확할 것이다.

“데르맛. 앙투안보다. 강했어.”

세실리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긴 건. 앙투안.”

세실리아가 루나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는 세실리아를 마주 봤다. 이 인형처럼 예쁜 아이는 내가 불안할 때마다 힘이 되는 말을 해준다.

“아아, 넌 내 꺼야 세실리아······! 내 꺼라고······!”

루나는 세실리아를 덥석 끌어안았다. 앙투안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지만 헤헤 웃으며 무시했다. 그러면서 문득 떠올렸다.

세실리아가 데미안에게 했던 말.

‘내가. 혹시. 우. 우승하면.’

그다음에 세실리아는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

탈리야는 자신이 패배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다. 재수 없지만 근거 넘치는 자신감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의 카인은 탈리야를 이기지 못할 거로 예상한다. 어쩌면 엘리샤도.

소설에 등장한 탈리야는 그 정도의 괴물이었다. 그녀의 등장으로 카인은 동부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퇴했다. 하지만 지금의 탈리야는 다르다. 마법사로서 완성된 상태도 아니고, 정신적으로도 미성숙해 보인다.

자만에 찬 탈리야는 내게 전력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틈을 노려야 한다.

화르르르!

탈리야의 손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거대하지만 경기장을 가득 메울 정도는 못 된다. 나는 전력질주(Lv.4)를 발현해 달렸다. 지금부터 내가 벌일 전투는 일반적인 마법사의 전투가 아니다.

향상된 나의 주력이 탈리야의 마법을 회피했다. 관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누구도 내가 이런 몸놀림으로 탈리야의 마법을 회피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마법학부 학생이 저렇게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한 건가?”

“그런 마법이 있어?”

“웬만한 검술학부 학생보다 빠른 거 같은데!”

놀란 건 관객만이 아니었다.

탈리야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봤다.

어디에선가 에스틸리아 교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환청이겠지.

‘할 수 있어.’

이것은 아마도 나와 카인만 지닌 장점이다. 우리는 육체를 단련했지만 마법사가 됐다. 이는 흑기사 같은 ‘전사형 소서러’와는 다른 형태다.

“뭐야 노란 병아리! 나를 재밌게 해주고 있잖아!”

탈리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깔깔대는 그녀의 손에서 새로운 화염 마법이 발현됐다.

머리 위로 생성된 반투명한 장막에서 불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자연 감응(Lv.2)을 발현했다. 그러자 허공을 메운 수많은 화염구의 흐름이 눈에 드러나며, 회피의 궤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뭐, 뭐야! 저 1학년이 다 피하고 있잖아!”

“저게 말이 돼?”

“검술학부의 스파이다!”

“바보냐? 검술학부 학생이 어떻게 마법을 써!”

관객석은 혼란과 경이로 가득했다. 그러나 내가 완벽하게 탈리야의 공격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화염구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전부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살갗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괜찮다. 나는 아마도 웃고 있을 것이다. 조금 전 관객석에서 그랬듯이.

“아하하하! 이거 재밌네! 정말 재미있잖아!”

나보다 더욱 즐거워 보이는 건 탈리야였다. 그녀는 내가 거리를 좁히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씩 다가오며 나를 도발했다.

그녀의 도발에 화답하듯 나는 화염 마법을 그녀에게 쏘아냈다. 예상대로 탈리야는 손쉽게 막았다.

화르륵!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의 화염 마법이 탈리야를 향해 사정없이 쏟아졌다. 이는 그녀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진짜 계획을 숨기기 위한 포석이다.

“다람쥐처럼 재빠른 움직임에 비해 마법 실력은 형편없잖아 노란 병아리! 아하하하하!”

나는 탈리야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점점 더 거리를 좁혔다. 관객의 함성이 들린다. 루나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

“데미안! 힘내!”

탈리야의 표정이 선명히 드러날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쩌면 탈리야는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압도적인 강자였고, 그래서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몰며 긴장감을 즐기고 있다.

탈리야의 눈빛이 번들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붉은 입술 사이로 키들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와 동시에 들렸다.

잡음.

[관찰력을 발현합니다.]

나는 관찰력을 발현해 탈리야의 입술을 읽었다. 제아무리 주문 속삭임이라 해도 입술의 움직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면서 나는 잡음의 파동에 집중했다.

어떤 마법일까. 이번에도 화염 속성? 그게 아니면.

‘전격!’

운이 따랐다. 나는 전격 속성의 파동을 읽는 능력이 그나마 가장 나았다. 물론 고작 하룻밤의 훈련이었기에 적중률은 터무니없이 낮다. 하지만 나는 그 자그만 확률에 기대야 한다.

나는 전격에 대항하기 위해 땅 속성의 주문을 영창했다. 주문 속삭임은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나의 대응을 안 탈리야는 도리어 더욱 흥미를 느끼며 달려들 것이다.

“어떻게 알았니? 내가 전격 마법을 발현하려는 것을.”

내 손에서 땅의 마법이 발현된 것과 동시에 벼락이 내리쳤다. 대지의 보호막이 부서지며 내 몸에 전류가 들이닥쳤다. 순간 나는 의식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대지의 보호막이 조금이나마 전격의 힘을 감소시킨 덕분이지만, 그보다 큰 이유가 있었다.

[불굴의 정신을 발현합니다.]

불굴의 정신.

‘비상한 적응력’, ‘회복력’, ‘리메이커’와 함께 처음부터 특성란에 있었던 능력. 이런 식으로 발현될 줄은 몰랐다.

“뭐야. 안 쓰러져?”

나는 탈리야에게 통찰을 시전했다. 승부수를 던질 때다. 방금 내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순전히 시스템의 힘 덕분이다.

[대상이 통찰에 저항했습니다.]

탈리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녀는 나의 통찰을 감지했다. 예상한 일이었고, 탈리야의 마음에 불안의 씨앗을 심기 위한 전략이다.

탈리야의 입술에서 다시금 잡음의 파동이 일었다. 웃음소리는 없다. 이번에는 정말로 이중 영창이다.

[이중 영창을 카피합니다.]

나의 입에서도 파동이 일었다. 나는 탈리야와 동기화해 이중 영창을 카피했다. 통찰은 먹히지 않았으나 정확한 스킬명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주문 속삭임을 활용했다. 하지만 탈리야는 잡음의 파동을 감지했다.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너······, 너 뭐야······! 어떻게 그걸······!”

탈리야의 마음에 심어둔 불안의 씨앗은 한순간에 열매를 맺었다. 그 증거로 탈리야는 저도 모르게 경악의 외침을 뱉었고, 그녀가 발현하려던 마법 하나가 소멸했다.

나는 웃었다. 역시 탈리야는 아직 완성된 마법사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빼어난 재능을 지녔기에, 역설적으로 마법사의 필수 덕목인 정신적 평정이 미흡하다.

“건방진······!”

탈리야의 손에서 불의 마법이 쏘아졌다. 대응을 위해 발현한 나의 빙결 보호막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나는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옆구리가 뜨겁다. 그 와중에도 주문을 읊는 나의 입술은 멈추지 않는다. 아까부터 나는 하나의 긴 주문을 영창하고 있다.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찾아냈고, 에스틸리아 교수의 도움으로 발현할 수 있게 된 고위 마법.

“너의 끝없는 힘을 빌려 그대 앞에 장벽을······.”

그러면서 나는 이중 영창을 활용해 탈리야의 공격에 대항하고 있다. 물론 형편없이 밀린다. 방어 마법만으로는 부족해 육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내 몸은 점점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럼에도 나는 고위 마법의 영창을 멈추지 않는다.

“······의 부드러운 손길로 내 앞에······.”

탈리야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잡음의 파동이 더욱 거세어졌다. 화염이 날아든다. 나를 잡아먹기 위해 혀를 날름거린다.

“······소리와 호흡을 제한하고, 굴복시켜라.”

그리고 마침내, 나는 고위 마법을 완성했다. 콰르륵! 내 손에서 발현된 물의 장막이 탈리야의 화염 마법을 흡수하며 거대한 보자기처럼 펼쳐졌고,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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