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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4

153. 약혼관계 – 마누비울

레나와 레오, 알바세테 부족의 다섯 전사들은 아스틴 – 아스터 왕국의 두 관문을 통과했다.

두 북부 왕국의 국경선은 안타로프 대협곡을 기준으로 했기에, 관문은 갈라진 협곡과 협곡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경계는 삼엄했다.

아무리 같은 클라우스 왕가를 섬긴다지만 어쨌든 두 왕국은 십여 년 전에 전쟁을 치른 사이였다.

레나와 레오는 엘슨 아저씨께 받은 용병패로 관문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왜 왔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레오가 일감을 구하러 왔다고 거짓말하자 더는 묻지 않았다.

반면 다섯 전사들은 조금 곤욕을 치렀다. 신분 확인이야 어렵지 않았으나, 곧이곧대로 레티이 대회에 참가하러 왔다고 말하자 왜 아스틴 왕국에서 열리는 마우닌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전쟁 때문에 아스틴 왕국에선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니깐. 몇 번을 말해. 정 의심되면 통신을 넣어서 물어보면 되잖아. 관문에 사제가 있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이래 봬도 이 몸이 알바세테 부족의 차기 족장이라구.”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젊디젊은 관문 수비병은 당황했다. 제 상관에게 가서 뭐라고 떠드는가 싶더니 돌아와 묻는 것이었다.

“전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실 수 있으십니까?”

“뭐라고? 전사의 명예를 이까짓 것에 걸으라고? 얌마, 그냥 사제 불러.”

“그, 그게… 사제님이 지금 자리에 없으십니다. 이게 다 당신의 편의를 위해 드리는 질문이오니 성실하게 답변해주세요.”

“허, 참나… 좋아. 전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아스틴 왕국에선 마우닌 대회가 열리지 않았어. 됐냐?”

다섯 전사들은 툴툴거리며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몇 주일 지나지 않아 그들은 거대한 요새 앞에 서 있었다.

“히야…”

아스터 왕국의 수도 마누비울이었다. 이곳에 한 번 와 봤던 ‘드록사 알바세테’라는 대전사와 어쩐지 심드렁한 레오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꽤 멀리 있음에도 거대해 보이는 성벽. 성벽 전체가 마누비움이 묻은 바위로, 마치 새하얀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이 난공불락의 요새는 수도로 쓰일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직 아이셀 왕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

으레 마법 왕국이라 불리는 아이셀 왕국과 두 북부 왕국의 전신, 아스란 왕국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이셀 왕국은 아카이아 제국이 무너지고, 동부 늪지대로 달아난 황족들이 세운 왕국이었는데, 당연하게도 황족들은 아스란 왕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천한 야만인 따위가 반란을 일으켜 제국을 분열의 길로 이끌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스란 왕국 또한 그들을 억압했던 제국의 지배자들을 혐오했는지라 수십 년에 걸쳐 갈등을 쌓아가던 두 왕국은 결국, 충돌했다.

두 왕국이 국경을 접한 대륙의 북동부에서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그곳의 지명을 딴 ‘모리타냐 전쟁’의 발발이다.

전쟁 초기에는 ‘북부 독립 전쟁’을 경험해 봤고, 야만인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인 아스란 왕국이 우세를 점했다. 그들은 빠르게 모리타냐 황야를 점거하며 남하하였으나…

모리타냐 전쟁을 ‘마법 전쟁’으로 각인시킨 존재들이 아스란 왕국군을 가로막았다.

마법사들이었다.

마법사들이 전쟁의 주역으로 등장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는 마법사라는 명칭도 생소한 시기였는데, 허공에 떠도는 마나를 오직 재능만으로 부리는 주술사란 이들이 있었으나, 그들이 부리는 요술은 전장에서 쓸만한 것이 못 됐었다.

하지만 ‘코르니우스’라는 위대한 주술사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동부 늪지대에서 태어난 그는 허공에 수식을 새기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자유로운 마나에 방향을 강제하여 일정한 유량으로 흐르게 했고, 이것이 바로 근대 마법의 근간이 되는 ‘마나 로드’라는 것이었다.

승승장구하며 남하하던 아스란 왕국군은 기절초풍했다.

천지를 수놓는 광역 마법. 화염과 낙뢰, 태풍과 지진이 군대를 덮쳤고, 기존에 알려져 있던 전쟁의 상식이 뒤집혔다.

장창을 든 밀집대형. 방패로 무장하고 활로 원거리 사격하던 궁병대.말을 몰아 진형을 가르고, 달아나는 적을 섬멸하던 기병대.

그 무엇도 운용할 수가 없었다. 병사들의 밀집대형은 마법사들에게 근사하게 차려진 요깃거리에 불과했다.

아스란 왕국군은 패퇴했다. 그간 집어삼켰던 모리타냐 황야는 물론, 그들의 영토까지 역으로 빼앗겼다.

기세를 잡은 아이셀 왕국군은 황명에 따라 아스란 왕국의 수도 바르나울을 목표로 진격해 나갔다. 땅을 넉넉하게 떼어줄 테니 화평을 맺자는 아스란 왕국의 제안은 묵살당했다. 아이셀 황실은 고까운 클라우스 왕가를 멸해버릴 작정이었다.

허나 그들의 진격은 안타로프 대협곡에서 멈췄다. ‘마누비움’이라는 하얀 광물이 많은 그곳에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마법이 도통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법만 없다면야, 아이셀 왕국군은 아스란 왕국군의 상대가 못 되어서 협곡의 관문들을 두고 지지부진한 대치가 이어졌다.

화평은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감정의 골이 파일 대로 파인 데다가 아스란 왕국은 저놈의 마법만 없으면, 아이셀 왕국은 저놈의 협곡만 아니면 서로를 찍어 누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아이셀 왕국은 안타로프 대협곡을 돌아갈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북쪽의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이 있겠으나 무거운 병장기를 나르기엔 위험천만해서 벨리타 왕국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협상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아스란 왕국군이 먼저 돌파구를 찾아냈다.

협곡을 낀 채 방어하던 그들은 간혹 출격해 마법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대책을 강구해 낸 아스란 왕국의 장군들은 다시금 군대를 진군시켰다.

기묘한 진격이었다. 수천 개의 분대로 쪼개진 병력이 광활하게 펼쳐져 수십 개의 거점을 동시에 타격하는 것이었다.

전선을 밀어내는 전쟁.

그건 과거에 없었던 형태의 전쟁이었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회전(會戰)을 겨루는 전통적인 방법이 마법사라는 존재로 변화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아스란 왕국의 장군들은 기마대까지 해체해버렸다. 어차피 마법사의 광역 마법이 두려워 기마대를 쓰지 못하니 그 귀한 기사들을 두셋씩 짝지어 전선에 밀어 넣었다.

그 방법은 실효를 거뒀다. 아이셀 왕국군이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전방은 협곡으로 막혀 나아갈 길이 없는데, 아스란 왕국군이 넓게 펼쳐져 사방의 땅을 잠식해오니 아이셀 왕국도 병력과 기사를 쪼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사는 아스란 왕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이셀 왕국의 두 배는 되었고, 갓 점령한 영토에 있는 아스란 왕국의 국민들(특히 야만인들)이 후방에 잠입한 아스란 왕국 기사들의 보급로가 되어주었다.

어떻게든 전선과 보급로를 유지하려 안간힘쓰던 아이셀 왕국군은 북부의 매서운 겨울이 다가오자 버티지 못하고 화평을 제의했다.

그어진 국경은 모리타냐 황야로 전쟁 이전과 같았다. 오직 상처만을 남긴 전쟁이었다.

그리고 두 왕국은 서로에게 부족했던 점을 되새기며 다음을 기약했는데, 마법사의 무서움을 절감하고, ‘마누비움’이라는 광물의 효용을 알게 된 아스란 왕국은 그 광물로 ‘마누비울’이라는, 마법사의 공격을 대비한 요새를 세웠다.

아쉽게도 국경선인 모리타냐 황야에 건축하지는 못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마누비움이 안타로프 협곡에서 멀리 떨어지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레나와 레오, 다섯 전사들은 마누비울 외곽에 있는 한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레티이 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는지라 숙소는 아스틴 왕국 전역에서 몰려든 전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레티이 대회 우승은 우리 부족의 대전사이자 내 친구인 이 드록사 알바세테가 가져갈 거다! 이의 있는 사람 있으면 와서 내 술을 받으시게! 하하하!”

술이 들어간 바하타르 알바세테가 넉살 좋게 외쳤다. 뻔하디뻔한 도발이었으나 주위 전사들은 짐짓 화난 척하며 다가와 “우승은 내 차지니 술을 내놓으시게!”, 술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레오는 이젠 진저리가 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레나야. 나 어디 좀 다녀올게.”

“응? 어디 가는데?”

“그냥… 산책.”

레나는 막 벌어진 술자리가 아쉬웠지만 그를 따라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레오가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

“나 혼자 다녀올게.”

“왜? 나 때문에 그러는 거면 괜찮은데. 날이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가.”

“괜찮아. 너까지 데려가면 내가 다른 아저씨들한테 미안하잖아. 금방 돌아올게.”

“흐음~ 알겠어. 길 잃어버리지 말고, 일찍 돌아와.”

– 쪽.

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난 레오의 목을 감싸 내리 끌더니 고개 돌려 가볍게 키스했다. 신혼부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자연스러움이었다.

레오도 쪽쪽, 떨어지려는 그녀의 입술에 몇 번 더 뽀뽀해주고는 “이야~ 뜨거운데!” 전사들의 짓궂은 놀림을 뒤로하고 숙소를 나왔다.

그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한가로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쉴 틈 없이 사방을 헤매었다.

혹시라도 바르나울처럼 아신의 흔적이 어딘가에 있지는 않을까, 미리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수도 마누비울은 여태껏 그가 경험한 어떤 도시보다도 도시 외곽 지역이 넓었다.

마누비울이라는 성 자체가 수도로 기능할 것을 상정하지 않고 지어진 요새였기 때문에 상업지구, 거주지구 따위가 요새 바깥에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발품 팔아 도시를 둘러보던 레오는 싱겁게 혹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소득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자 술에 취해 기분이 한껏 들뜬 레나 아이나르가 그를 끌어안았고, 레오도 그녀의 머릿결을 익숙하게 쓸어넘겼다.

* * *

레오는 그 이후로도 자주 바깥을 쏘다녔다. 왜 자꾸 혼자 나가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내던 레나는 갑자기 “앗?!” 묘한 기대에 찬 표정을 짓더니 “그래. 잘 다녀와.” 싱글벙글 레오를 보내주었다.

쟨 또 왜 저러는 걸까?

의아했으나 레나 아이나르가 엉뚱한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므로 레오는 레티이 대회가 다가오는 일주일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거대한 수도를 다 둘러볼 순 없어서 레오는 동서남북, 네 방향을 집중적으로 훑었다. 당연히 내성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여긴 아무래도 요새인지라 수비병들의 군기가 바짝 살아있었다.

다른 수도들은 적당히 들여보내는 것을 굳이 붙잡아 꼼꼼히 질문했고, 레오는 큰아버지께서 주신 용병패와 용병임을 (거짓) 증명하는 서류가 참 요긴하다고 생각했다.

다소 좁은 내성까지 둘러본 레오는 여기서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자 안도했다.

아신이 사방팔방에 있으리라 지레짐작하고 근심한 자신이 우습게까지 생각되어 그는 풋, 웃고 말았다.

위기는 끝난 모양이다.

하기야 무언가 {이벤트}로 연결될 것만 같았던 것들을 모조리 바르나울에 두고 왔으니 나와 레나는 안전한 것이었다. 이젠 레나와 행복하게 살다 결혼할 일만 남았다.

레오는 기분 좋게 자책하며 성을 빠져나왔다. 하얗고 거대한 성벽을 그제야 멋지네, 구경하고는 숙소로 돌아왔는데… 위기가 닥쳤다.

레나가 그를 뾰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뭔가 단단히 심통이 난 듯하다.

그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은근히 돌려 말했다.

“흐음… 오늘도 없네~?”

“뭐가?”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안 좋다는 얘기야. 그냥 뭐, 그렇다고. 기대가 너무 커지면 실망할지도 모르잖아?”

“…”

이럴 땐 입을 닥치는 게 상책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레나는 내게 뭔가를 바라고 있었다.

레오는 묵묵부답 말을 아끼며 눈치를 살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일주일째 밖을 쏘다니나 몰라~”

역시나, 레오가 입을 열지 않자 레나가 힌트를 무더기로 내놓기 시작했다.

약간 화난 듯한 표정. 자꾸 내 허리춤을 향하는 눈동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섞인 말투…

아하.

레오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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