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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4

154화 건드려선 안 될 것 (4)

154화 건드려선 안 될 것 (4)

“아니야.”

“아.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아! 너 정말 바보니?”

내게 고위 마법을 가르치며 에스틸리아 교수는 계속 화를 냈다.

“너 정말 어떻게 아르카넘 홀에 입학한 거야? 불꽃의 티아라는 또 어떻게 발현한 거고. 그것도 네 스승에게 배운 거니?”

“뭐, 그렇죠.”

“아무리 불꽃의 티아라를 먼저 익혔어도 그렇지, 이렇게 못하는 게 말이 돼? 아니, 이럴 거면 애초에 왜 물 속성 고위 마법을 알아 온 거니?”

“책에 쓰인 게 이것뿐이었어요.”

내가 익히려는 고위 마법은 ‘물의 속박’. 불꽃의 티아라와는 반대 속성의 마법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에는 상성이 존재한다. 불 속성 마법에 능한 마법사는 물 속성 마법의 발현에 상대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는 말이다. 표준 마법도 그러할진대, 고위 마법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불꽃의 티아라를 익히지 않았다. 그저 ‘카피’해서 사용할 뿐. 즉, 물의 속박 마법을 구현하는 데 불꽃의 티아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꼭 익혀야겠니? 그냥 기권하면 안 돼?”

“어찌어찌 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다듬어주겠다고 말씀하신 건 교수님인데요.”

“그때는 네가 이렇게 허접할 줄 몰랐지.”

“저도 의문이 들긴 했는데 교수님께서 자신있게 말씀하셨잖아요. 2년 만에 아르카넘 홀을 졸업하고 최연소 교수로 부임한 천재 중의 천재라고.”

“후우······, 좋아. 대신 죽는소리한다고 봐주는 거 없어. 알겠니?”

“원하던 바죠.”

.

.

.

에스틸리아 교수의 훈련은 지독했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그런 고생을 했는데도 나는 마법의 구현 확률을 50퍼센트 정도로밖에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내심 걱정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탈리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테니까.

“······소리와 호흡을 제한하고, 굴복시켜라.”

그러나 나는 성공했다. 내 손에서 발현된 물의 속박이 탈리야의 화염 마법을 소멸시키고,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탈리야는 내가 이렇게 강력한 물 속성 마법을 구현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고위 마법, 불꽃의 티아라를 발현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일부러 경기 중에 불 속성 위주로 마법을 발현했다.

그 작전은 먹혔다. 탈리야는 나의 고위 마법에 속박됐다. 이 마법은 마법사에게 치명적이다. 목소리와 호흡을 제한해, 주문을 영창할 수 없도록 만드니까.

“너······!”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탈리야는 사나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육성을 뱉고 있었다. 나는 금세 원인을 찾았다. 탈리야를 집어삼키며 거대한 공처럼 변한 물의 속박구(束縛球). 그러나 그녀의 입술 주변에는 액체로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있었다.

공간을 만든 것은 탈리야의 손끝에서 이는 바람이었다. 그녀는 내게 속박당하기 직전, 바람 속성의 마법을 발현한 것이다.

탈리야의 입술에서 파동이 울린다. 이중 영창이다. 다급해진 나는 내가 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격 마법을 영창했다. 탈리야는 아직 물의 속박구에 갇혀있다. 이 상태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속성은 전격이다.

그러나 탈리야가 주문을 완성하는 것이 나보다 빨랐다. 그녀의 양손에서 회오리바람이 일며 속박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속박구의 표면이 끓는 것처럼 진동하며 회오리와 경합했다.

파지짓!

늦지 않게 내 손에서 마법이 방출됐다. 싯누런 전격이 속박구를 강타하며 탈리야를 습격했다.

“아아아아아악!”

탈리야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잡음의 파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탈리야는 여전히 주문을 읊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중 영창을 발현하고 있다. 우리는 부릅뜬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빨랐다.

파지지짓······!

다시 한번 방출된 전격이 속박구를 휘감았다. 몸안의 마력을 남김없이 그러모아 발현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탈리야의 몸이 갓 잡은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잠시 후, 그녀가 발현했던 회오리바람이 사그라졌다.

크륵······!

탈리야의 입에서 기포가 떠올랐다.

더 이상 그녀가 호흡할 공간은 없다.

탈리야는 물의 속박구에 완전히 갇혔다.

부르륵······! 부륵······!

탈리야의 눈이 충혈됐다. 입술 사이로 쉴 새 없이 기포가 솟아오른다. 탈리야가 괴로운 듯 사지를 버둥거렸다. 이제 그녀는 주문을 영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호흡할 수도 없다.

관객석에서 함성이 일었다. 누가 봐도 탈리야는 반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기를 멈춰야 한다. 이대로면 탈리야는 익사한다.

그럴 거로 생각했다.

돌연 탈리야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무표정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꿈틀거리며 감정을 드러냈다. 흥분. 그리고 쾌감.

퍼어엉!

나의 복부에서 충격이 일었고,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른 채 내 몸이 허공으로 솟았다.

스치는 시야 속에서 산산조각으로 속박구를 부수는 탈리야가 보였다. 나를 향한 그녀의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굶주린 포식자의 눈이다.

“기권해! 데미안!”

빌어먹을 카인의 목소리가 신경을 건드린다. 정신을 반쯤 잃은 상황에서도 나는 마법을 발현하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나는 조금 전의 일격으로 남은 마력을 모조리 소모했다.

나는 망토에 손을 가져갔다. 기권하는 것은 싫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손이 육체의 위험 신호를 받아들였다. 지금 기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폐인이 되거나, 죽는다.

파앙!

망토를 쥐려던 오른손이 무언가의 힘으로 밀려났다. 왼손으로 쥐려 하자, 이번에는 왼손이 밀려났다. 엄습하는 통증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 양팔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탈리야가 나의 기권을 방해하고 있다.

쿠당탕탕! 낙하한 내 몸이 바닥을 굴렀다. 이제는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온몸이 만신창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두 팔은 죽은 가지처럼 축 늘어졌다. 나를 향해 펼쳐진 탈리야의 새빨간 손이 보인다.

“그만둬! 탈리야!”

처음으로 보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당황한 얼굴이다. 그러나 탈리야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웃는다. 악마처럼, 입술을 귀 끝까지 길게 찢고서.

에스틸리아 교수가 내게 손을 뻗었다. 이어 쩌적! 나와 탈리야 사이를 가로막는 빙결의 장막이 펼쳐졌다.

***

탈리야는 노란 병아리와 노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카시우스의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신체 능력을 갖추었을 거로 예상은 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게다가 저 노란 병아리는 난생처음 보는 마법을 발현했다. 아마도 고위 마법.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그러나 그녀의 직감과 순발력은 빠르게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익사하는 척 괴로움을 연기하며 노란 병아리를 바라볼 때는 정말로 흥분됐다. 그때의 노란 병아리는 마구마구 괴롭혀주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렴 삐약아. 아주 잠시면 되니까.

탈리야는 이중 영창으로 완성해 둔 마법으로 물의 속박을 찢고, 삐약이를 공격했다. 이어 망토로 손을 가져가는 삐약이의 두 팔을 차례로 분질렀다. 이런. 조금 실망했단다 삐약아. 끝까지 투쟁할 줄 알았는데.

데굴데굴 바닥을 구른 삐약이가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을 보며 탈리야는 윗입술을 핥았다. 그래.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거구나. 너는.

“그만둬! 탈리야!”

삐약이를 향해 팔을 펼친 순간, 에스틸리아 교수가 소리쳤다. 역시 끼어드는군, 재수 없는 여자. 우리의 놀이를 방해하지 마. 하지만 결국 너는 네 멋대로 하겠지. 분하게도, 아직 너는 나보다 강하니까.

붉게 물든 탈리야의 손에서 마법이 발현됐다. 그와 동시에 쩌적!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빙결의 장막이 세워졌다.

탈리야의 눈동자가 엷게 흔들렸다. 눈앞에 있던 삐약이가 사라지고, 그 대신 그녀의 시야를 메운 것은 거대한 얼음의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탈리야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치 깨진 거울을 마주하듯 일그러진 얼굴. 귀밑까지 길게 찢긴 입술. 지금의 상황을 견디지 못해 새어 나오는 웃음.

“큭큭큭큭······.”

역시 에스틸리아 교수는 대단한 마법사였다.

게다가 눈치마저 빠르다.

저 여자를 속이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성공했다.

탈리야의 눈 초점이 바뀌었다. 그러자 얼음의 벽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사라지고, 새빨간 불기둥에 휩싸여 날아가는 삐약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을 위해 터득해 둔 고위 마법. 타깃의 몸에 은밀하게 불의 씨앗을 심어놓고, 발화시키는.

“데미안!”

놀란 얼굴로 관객석에서 달려 내려오는 삐약이의 친구들이 보인다. 경기장으로 뛰어 올라오는 비비안 교수가 보인다. 경기 종료를 선언하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외침. 다급한 발소리. 관객석의 소란. 들끓는 공기.

탈리야의 입에서 주체 못 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꼴좋구나 노란 병아리!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

“데미안! 데미안!”

들것에 실려 가는 데미안의 뒤를 쫓으며 루나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카인과 세실리아는 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미아는 두 사람의 눈을 보며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포심을 느꼈다.

비비안 교수는 들것 옆으로 바짝 붙어 달리며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데미안의 몸이 은은한 빛으로 감싸였다. 하지만 여전히 움직임은 없다.

“방해되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렴.”

비비안 교수가 데미안과 함께 치유실 안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혔고, 루나가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어떡해······. 데미안 어떡해······. 카인······! 세실리아······! 흐흑······!”

카인과 세실리아가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미아는 그들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아리엘이 루나를 끌어안으며 다독였다.

“탈리야의 공격을 막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말했지만 그녀를 탓하는 이는 없었다.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저만치에서 데르맛을 포함한 몇몇 학생이 달려왔다.

그들은 엉엉 우는 루나를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그녀의 눈물로 데미안의 상태를 짐작한 것이다.

“어머. 다들 모여있었네? 설마 나를 마중 나온 것은 아닐 테고.”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미아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예상대로, 인파를 헤치며 등장한 이는 탈리야였다.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탈리야에게 달려드는 루나를 에스틸리아 교수와 세실리아가 막았다.

카인은 말없이 탈리야를 노려봤다.

“드디어 내일 싸울 수 있겠네? 카인 시니야카.”

탈리야가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카인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탈리야를 응시했다.

“너, 너, 지금 웃음이 나와? 그 입술을 당장 찢어버릴 거야! 이거 놔! 놓으라고 세실리아!”

탈리야는 여유롭게 웃으며 루나를 돌아봤다.

그녀의 시선이 루나를 지나 세실리아, 앙투안, 미아를 바라봤고, 아리엘에게 고정됐다.

“플랑브아즈 소공작께서는 참 운이 좋았어. 그렇지?”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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