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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4

빌어먹을 아이돌 154화

*   *   *

염성훈은 평범한 50대였다.

능력 없는 상사에게 눌리고, 능력 있는 후배에게 치이며, 회사를 그만두는 상상을 매번 하지만…….

“에휴.”

가족을 떠올리며 삼겹살과 소주로 하루를 달래는, 그런 평범한 가장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이것저것 도전하는 꿈 많은 청년이었지만 전부 추억이다.

거울 속의 자신은 슬슬 머리도 벗겨지고 배도 나오는 중년이었으니까.

염성훈은 난데없이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낯설어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사춘기인 딸과 대화가 적어진 게 아쉽지만, 그래도 아내와 딸은 그의 전부다.

“왔어요?”

“주희는?”

“방에서 노래 듣던데요?”

“그래?”

딸의 방에 들러 볼까 하다가 일단 씻고 나왔다.

그런데 거실에서 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왜?”

“혹시 이 사람들 알아?”

“이 사람들?”

딸이 내민 건 웬 CD 케이스였다.

“앨범이네?”

“살살 만져!”

“뭘 살살이야. 근데 누구를 아냐고?”

“여기 적힌 사람들.”

딸이 조심스레 열어 준 CD 케이스 안에 부클릿 비슷한 게 있었는데, 거기에 크레딧이 적혀 있었다.

“어?”

한데 크레딧에 적혀 있는 이름이 좀 이상하다.

에릭 스캇, 얀코스 그린우드, 모스코스…….

그의 젊은 시절을 수놓았던 영웅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모르는 이름도 있었지만, 대부분 너무나 유명한 뮤지션들이다.

처음에는 그냥 존경하는 뮤지션들을 적어 놓은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럴 수가 없다.

크레딧이 아닌가?

‘그건가? 멜로디 가져다 쓰는 거?’

샘플링이라는 단어는 모르지만 개념은 알고 있던 염성훈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딸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공동 작곡을 한 뮤지션들이 엄청 유명한 옛날 사람들이라는데, 아빠가 아는지 궁금해서.”

“이게 공동 작곡이라고?”

“응.”

“어떻게?”

“응?”

한 명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염성훈이 알기로 요즘 아이돌들은 정말 많은 돈을 투자한다.

그러니 회사에서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거장을 한 명쯤 섭외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한 명이 아니라, 여덟 명이다.

게다가 염성훈이 정확히 알고 있는 넷은, 자신이 20대일 때 미국 대중음악을 흔들어 놓았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었다.

나머지 넷 중에 둘도 이름은 익히 알고 있고.

“세달백일 이게 누구야?”

“아빠도 알잖아. 가로등 아래서.”

“아, 걔네?”

“응.”

“얘네 뭐, 정치인 아들이야? 아니지. 정치인으로 안 되지. 그럼 재벌 2세?”

빈약한 상상력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었지만, 상상할 필요는 없었다.

아빠가 눈이 동그래져서 놀라는 걸 본 딸이 신나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염성훈은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놀랐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청춘이었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눈빛이 희미해진 중년이지만, 그에게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염성훈은 군대를 가기 전까지 밴드를 했었다.

직업은 아니었고, 취미였다.

당시에는 밴드가 아니라 그룹사운드라고 불렸는데, 그때 한국 음악은 언제나 마이너였다.

일본 밴드들이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고, 도쿄의 이미지를 차용한 시티 팝을 퍼트릴 때 얼마나 부럽다고 생각했었던가?

군대에 다녀와서는 취업을 하느라 음악에서 멀어졌고, 결혼을 하고는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젊은 시절을 채웠던 영웅들의 이름을 보니 궁금해졌다.

“이거 어떻게 들어? 컴퓨터로 들으면 되나?”

집에 CD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물어본 말이었는데, 딸이 방에서 CD 플레이어를 가지고 왔다.

“뭐야 이건?”

“앨범 굿즈에 있었어.”

“굿즈?”

“앨범 사면 같이 주는 거야.”

“이걸? 앨범이 얼만데?”

“삼만오천 원.”

앨범만이라고 하면 좀 비싼 것 같지만, CDP를 함께 준다고 생각하면 싼 것 같다.

염성훈은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세달백일 정규 1집의 스탠다드 버전은 13,000원이었다.

스탠다드 버전에는 부클릿, 앨범, 포카 2장, 가사집이 들어간다.

리미티드 에디션 버전은 35,000원이었는데 스탠다드 구성에 더해서 미공개 포카와 포토 앨범이 제공된다.

그리고 무려 CD 플레이어가 추가된다.

그러니 팬들은 물론이고, 팬클럽에 가입하지 않고 세달백일의 앨범을 사는 이들도 다들 리미티드 에디션을 구매했다.

미공개 포카나 포토 북에는 관심이 없지만, CD 플레이어가 탐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디 싸구려 중국산 기계를 제공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세달백일이 유투브에 공개한 앨범깡을 보고는 그런 말이 싹 들어갔다.

딥블루 색의 깔끔한 디자인에, 제조업체도 국내에서 음향 기기로 유명한 중소기업이었으니까.

사람들은 대체 세달백일이 돈을 벌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한시온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숙원 사업이다.

그는 전 국민의 가정에 CD 플레이어를 보급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니까.

국가가 허락만 해 준다면 사비를 들여서 국민 복지의 일환으로 1가구 1CDP를 제공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염성훈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고, 딸에게 받은 CDP로 초저녁부터 세달백일의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감동했다.

그가 좋아했던 영웅들의 음악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을 가진 1번 트랙 .

곡의 도입부를 알리는 영롱한 기타 소리를 듣는 순간, 담배를 꼬나문 곱슬머리의 백인이 떠올랐다.

에릭 스캇.

3대 기타리스트니, 5대 기타리스트니 할 때 이름이 절대 빠지지 않는 남자.

솔로 기타 연주를 독보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기타리스트들의 우상.

이제는 60대가 됐겠지만, 염성훈의 머릿속에서 에릭 스캇은 영원히 30대였다.

하지만 염성훈은 이어지는 노래에 기타를 들었을 때만큼 놀랐다.

이번 앨범에서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구태환의 도입부였다.

‘뭐야?’

염성훈의 나이쯤 되면 굳이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이돌이 공장에서 찍어 낸 상품이고, 반복된 트레이닝을 통해 틀에 박힌 채 나오는 보컬이니 하는 것도 아는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다.

염성훈은 그런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편견조차 없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편견은 한국 음악의 수준에 대한 것이었다.

레드 제플린이 을 연주할 때, 한국은 가라오케 사운드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에릭 스캇이 기타 솔로로 웸블리 스타디움을 마비시켰을 때, 한국의 기타와 베이스는 리듬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물론 이건 약간의 편견이 들어간 사견이긴 했다.

한국에도 특출난 천재 뮤지션들이 있었으니까.

이런 편견은 자신의 청춘이 어마어마하게 빛났었다는 추억 보정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염성훈의 20대를 꽉 채운 것이 음악이니까.

그래서 더욱 놀라웠다.

에릭 스캇이고, 모스코스고, 얀코스 그린우드고…….

전부 장치로 쓰이고 있다.

이들이 음악의 중심이 아니다.

음악의 중심은 세달백일이라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염성훈은 그렇게 세달백일의 앨범을 들었고, 한 번 더 들으려다가 아내에게 혼이 나서 CDP를 내려놓았다.

내일 출근을 어떻게 할 거냐면서.

그는 꿈에서 20대였고, 무대 위에 있었다.

다음날 아침.

딸에게 CDP를 빌려서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앨범을 다시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회사에서 염성훈은 어쩌다 보니 어제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곤 놀랐다.

“난 에릭 스캇보다는 키스 리차드가 더 좋았는데.”

“키스 리차드는 롤링 스톤스의 유명세에 좀 업혀 가지 않았나?”

“에이, 부장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키스 리차드는 천재예요.”

“그래도 기타는 에릭 스캇이지.”

“에릭 클랩튼이 진짜 느림의 미학 아닙니까?”

“하, 옛날 생각나네. 동묘에 가면 빽판으로 빌보드 차트 틀어 주는 다방이 있었는데…….”

자신만 그 시대의 뮤지션들을 우상으로 삼는 게 아니었다.

그와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도 전부 비슷했다.

이들은 문화생활에서 멀어진 지 한참이나 된 이들이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아들놈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네.”

“유튜브로 직접 들으시면 되죠.”

“그건 어떻게 해?”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났다.

다음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 끝났지만, 부장은 정말로 앨범을 들었다.

그리고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퍼부었다.

회사 생활이란 게 무엇인가?

윗사람이 하는 건 가급적 같이 하는 게 좋다.

그게 특별히 싫은 게 아니라면.

그리고 염성훈은 몇몇이 앨범을 구매하는 걸 목격했다.

자식들과 이야기를 나눌 거리가 있다며 좋아하는 것도 목격했고.

한시온에게 빌보드의 거장들은 특별한 이들이 아니었다.

수많은 회귀를 진행하며 수도 없이 만난 이들이고, 셀 수 없이 작업을 해 본 이들이다.

그러니 에 거장들의 공동작곡을 진행한 건, 그저 이슈 몰이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겨 냈지만, 앨범을 만들 때만 해도 세달백일은 이슈가 필요했으니까.

최대호의 압박을 뚫고 나올 만한 거대한 이슈를 만들 수 있는.

하지만 한시온에게 익숙한 거장들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빛나던 순간의 편린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세달백일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시간 여행처럼.

그렇게 조용히 앨범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뜨거운 이슈는 없었다.

40-60은 행동할 뿐, 말하지 않는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기록된다.

세달백일의 초동은 22만 장이었다.

2주차에는 빌보드 거장들의 리뷰 러쉬 때문에 판매량이 줄지 않았다.

국내에서 뒤늦게 앨범을 사는 이들이 많았고, 해외에서도 공동 구매가 터졌으니까.

2주차 판매 기록은 무려 34만 장.

2주차 판매량이 초동을 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달백일이 3주차 때는 앨범 판매량이 드라마틱하게 꺾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뒤늦게 이슈에 반응한 해외 구매자들과 소리 소문 없는 40-60의 구매력이 더해졌다.

3주차의 판매량은 다시 22만 장이었다.

3주차까지의 총 판매량은 78만장.

한시온의 입장에서는 대단할 것 없는 기록이지만…….

[순수한 음악의 힘! 세달백일 정규 1집 , 100만 장의 고지 넘나?]

[자식들과 함께 듣는 앨범으로 자리매김한 세달백일 정규 1집.]

[추억 속의 영웅들의 음악에 아빠들의 지갑이 열린다.]

그사이 세달백일은 공중파 3사 음악 방송에서 모두 1위를 거머쥐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몇몇 기획사에서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세달백일, 아니 한시온이 빌보드의 거장들을 섭외한 방법이 순수한 음악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

이 바닥이 그렇게 순진하게 돌아가는 곳도 아니고, 분명 어떤 이면 거래가 있을 거라며.

하지만 이건 대한민국의 기획사들이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들의 생각처럼 거장들이 뼛속부터 순수한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많은 돈을 벌었고, 너무 많은 명예를 거머쥐었기 때문에 음악의 취사선택에 있어서는 오히려 순수해질 수 있었다.

거장들의 대답은 심플했다.

[음악을 보내.]

하지만 음악을 보낸 이들은 그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답을 해 준 건 도널드 맥거스였지만.

[내가 10살에 만들었던 것보다 구린 멜로디 전개인데?]

핀잔만 들었을 뿐이었다.

*   *   *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뮤지션들은 중심을 잡아야한다.

가장 중요한 건 현실 감각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음악이 3주째 대한민국을 울리고 있지만, 취해서는 안 된다.

한 번 발매된 음악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거기에 대고 뭘 한다고 해서 음악이 더 좋아질 수는 없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드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다음 앨범을 만드는 것.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강석우 피디가 입을 연다.

지금은 마침내 포맷이 결정된 엠쇼의 예능 회의였으니까.

“이번 프로그램의 테마는 힐링 겸 버스킹 여행입니다. 스페인으로 갈 것 같아요.”

“네.”

“하지만 이건 2부고, 1부는 국내에서 찍을 겁니다.”

1부?

“여러분은 국내에서 여행에 쓸 경비를 벌어야 합니다. 경비에 따라서 초호화 힐링 여행이 될지, 초저가 궁상 여행이 될지가 달라지겠죠?”

“미션 같은 걸로 번다는 건가요?”

“아뇨. 방송국에서 내어 주는 돈 말고, 정말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세달백일이라는 정체를 숨긴 채, 오직 음악으로.”


           


Damn Idol

Damn Idol

빌어먹을 아이돌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a harrowing car accident that defies the odds of survival, Han Si-On finds himself once again at the crossroads of fate, quite literally. Miraculously walking away with his life, he faces the daunting task of navigating a life he’s all too familiar with—due to a cryptic deal that traps him in a cycle of regressions. [Mission failed.] [You will regress.] His mission? A seemingly impossible feat of selling 200 million albums, a goal dictated by the devil himself. With each regression, Han Si-On returns to the age of 19, burdened with the knowledge and memories of countless lives lived, all aimed at achieving a singular, elusive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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