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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5

154. 약혼관계 – 미행

“마음에 드는 게 없으신가요? 그러면… 이건 어떠십니까?”

통통한 상인이 상점을 이리저리 둘러만 보고 있는 손님을 불러세웠다. 결정을 내리진 못하겠는데 미련은 있어서 시간을 끄는 손님에겐 강한 추천이 즉효라는 걸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상인은 손님한테만 보여주는 것이니 어디서 말하면 안 된다는 제스쳐를 보였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카운터 안쪽 서랍에서 몰래(?) 한 목걸이를 꺼내 주었다.

물론, 바깥에 진열해놓은 목걸이들보다야 확실히 장인의 손길이 들어간 야심작이긴 했다.

그러나, 레오는 심드렁했다.

보여준 목걸이가 예쁘지 않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이거다! 싶을 정도로 끌리진 않았고, 레나도 이런 치렁치렁한 목걸이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이내 고개를 젓고는 시무룩해진 상인을 두고 상가를 떠났다.

레오는 오늘도 홀로 밖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신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여느 때와는 달리 그는 대로변의 상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다.

길거리는 부산스러웠다.

레티이 대회가 열리기에 앞서 그녀의 탄생일을 기리는 축제가 시끌벅적하게 열렸고, 마누비울의 시민들은 그간 살뜰하게 모아 온 저금을 들고나와 어떻게 사용할지를 즐거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축제의 백미인 퍼레이드가 풍악을 울리며 마누비울 외곽 대로를 가로질렀다.

그 행렬엔 자원한 수백의 시민들이 있었는데, 각기 야만인 전사, 농민병 또는 아카이아 제국군으로 분장해 북부 독립 전쟁을 묘사해냈다.

행렬 중앙에는 어디서 후원을 해주었는지 제법 좋은 마차가 있었다. 마차에는 레티이 여왕인 듯, 품위 있게 치장한 여인이 올라 손을 흔들었고, 마부석에서는 한 광대가 그녀가 과거에 한 명령을 외쳐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레티이 여왕께서 명하셨다! 한 달 이내로 전쟁을 끝마칠 것!”

행진을 구경하던 시민들은 광대의 말에 웃음을 터뜨릴 준비를 했다. 지금 그가 무어라 말하려는지, 레티이 여왕이 무어라 말했었는지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남편이 나와 당장 결혼할 수 있도록 하여라!”

“와하하하하! 레티이 여왕 만세!”

“여왕님! 생신 축하드려요!”

예정된 폭소와 환호가 터졌다.

그녀가 내린 저 명령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아직도 널리 회자 되는 일화였다.

수백 년 전, 마우닌과 레티이라는 두 영웅이 제국의 폭정에 분연히 들고 일어났다.

뛰어난 전사일 뿐만 아니라 ‘기동전술론’, ‘전격전의 유래와 금언’과 같은 서적을 공동집필 할 정도로 훌륭한 장군이었던 그들은 독립군을 결성해 아카이아 제국을 북부에서 몰아내었다.

제국군과의 마지막 회전에서 대승을 거둔 덕분에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레티이는 수도로 돌아갔다. 아스란 왕국의 초대 여왕으로 즉위한 그녀는 오랜 전쟁으로 궁핍해진 민심을 보살폈다.

그러면서도 곧 돌아올 그녀의 연인, 마우닌과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우닌이 돌아오질 않았다.

아카이아 제국군이 퇴각하지 않고 국경 부근을 호시탐탐 어슬렁거렸기에, 총지휘관인 그가 돌아갈 수 없던 것이었다.

진노한 레티이 여왕이 명했다.

– “나더러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냐. 너! 전선으로 가라. 장군들에게 지금 그어진 국경은 잊으라고 전해라. 군대를 진격시켜 보잘것없는 제국군을 완전히 패퇴시켜라. 만약 한 달 이내로 전쟁을 끝내지 못해 내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엄벌을 내릴 것이다!”

아스란 왕국의 장군이지만 그녀의 부하인 그들은 여왕의 서슬 퍼런 엄명을 충실히 받들었다.

마우닌은 그녀의 명이 떨어진 지 불과 석 달 만에 못 말리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고, 즉위식과 결혼식을 동시에 치렀다.

그랬던 레티이 여왕은 북부인이라면 누구나 손꼽아 좋아하는 위인이었다. 그녀는 호탕한 전사였고, 여왕 노릇을 하기엔 지나치게 서민적이어서 그 이후로도 차마 웃지 못할 사건들을 양산해냈다.

마차에 탄 광대가 그녀의 일화를 꺼낼 때마다 시민들은 박장대소했다. 악의 없는 웃음을 지으며 행진을 따라 멀어져 갔다.

이제야 좀 살겠네.

행진이 멀어지고서야 레오는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들었던 군중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별 의미 없이 “레티이, 마우닌”이라 중얼거려보고는 자잘한 소품을 사고파는 가게에 발을 들였다.

“어서 오세요.”

금속을 박아 장식한 나무 액자와 보드라운 헝겊 인형, 초록색으로 진하게 염색된 테이블 보와 이국적인 장식품들.

누군가가 대단히 아꼈을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레오는 여기서도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그는 레나의 생일 선물을 찾고 있었다.

‘검 손잡이를 감쌀 가죽끈이 확실히 실용적이고 좋았단 말이지… 나는 뭘 사다 주면 좋아하려나.’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검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그리 넓지 않은 소품 가게를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한 쌍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구리로 만든 반지. 특별한 장식이 없어 소박하고, 반들반들하게 잘 관리되어있어 욕심이 나는 것이었으나 레오는 반지가 든 작은 함을 내려놓았다.

이걸 사가면 레나는 분명 좋아할 터였다. 우린 약혼반지를 맞추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결혼하고 싶지 않다. 가능하면 하루라도 더 미루고 싶은데, 결혼을 연상시키는 물건을 선물로 주고 싶진 않았다.

만약 입상하거든 기사가 될 기회가 주어지는 레티이 대회에서 레나가 소득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는 기왕 여기까지 온 것, 남쪽에 있는 아이셀 왕국에도 다녀와 보자 꼬드길 요량이었다. 용병패와 용병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서 국경도 손쉽게 넘을 수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레오는 결정을 내렸다. 돈을 건네고, 다시 복작이는 길거리로 나와 걸음을 서둘렀다.

‘조금 약소한 것 같긴 하지만 이거면 레나가 좋아할 거다.’ ─ 생각하며 가벼워진 마음으로 숙소를 향하는데…

난데없이 업적이 튀어 올랐다.

[ 업적 : 파블로 드 클라우스를 만남 – 클라우스 왕가를 섬기는 모든 귀족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파블로 드 클라우스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깜짝 놀란 레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축제가 무르익어 흥겹게 돌아다니는 시민들만이 보였을 뿐, 귀하디귀한 왕족의 행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레오는 우두커니 서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울리고 긴장감에 목이 뻣뻣해졌다.

왕자를 떠올리자 {추적술}이 그의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방향이 매우 빠르게 회전하는 거로 보아 왕자는 방금 나를 지나쳐간 것이 분명했다.

후우, 하. 후우, 하아. 후우, 하아아. 후웁.. 하아아아…

시끄러운 시장통이었으나 레오는 자신의 숨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마지막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이대로 모른 척하고 레나에게 돌아갈 수도 있지만… 왕자를 몰래 뒤쫓아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 *

파블로 드 클라우스로 추정되는 사내는 군청색 머리칼을 날리며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왕자임을 들킬 것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 듯 옷을 평범하게 차려입었을 뿐 어떤 위장도 하지 않았다.

왕자를 마땅히 호위해야 할 기사도 없어서 미행하기는 편했다. 하지만 의심 가득한 레오는 몸가짐에 주의를 기울였다.

무려 마흔 걸음이나 떨어져 왕자를 따라갔고(추적술 덕분에 꼭 왕자가 시야에 들어올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그가 시가지를 벗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레오는 이내 마음을 놓았다.

그리 유복해 보이지도, 그리 가난해 보이지도 않는 가정집 앞을 왕자가 어슬렁거렸다.

그러길 잠시, 대체로 평범하지만 어깨가 좁고 목선이 얇아서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여인이 나왔다. 둘이 서로의 허리를 감싸며 키스하는 것이었다.

레오 덱스터는 그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미행해놓고는 할 말은 아니지만, 남의 사생활을 훔쳐볼 의도로 따라온 것은 아니었다.

왔던 길을 돌아가며, 레오는 왕자를 쫓아와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당연한 거지만, 애초부터 왕자와 레나를 결혼시키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어. 멍청한 민서 놈이 만약 저 왕자와 레나를 엮으려 했으면 틀림없이 실패했겠지.’

설령 이 팔찌가 당시에 있었다 할지라도.

레오가 팔을 들었다.

그의 손목에는 검붉은 구슬 세 개가 달린 가죽 팔찌가 걸려 있었다. 지난 시나리오 보상으로 받은 {바르바토스의 팔찌}였다.

이 팔찌로는 바르바토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매달린 세 개의 검붉은 구슬에 놈의 신력이 아롱아롱 맺혀있음을 레오는 {신력 간파}로 볼 수 있었다.

만약 민서가 이 팔찌를 지난 회차 이전에 얻었더라면… 정말이지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을 터였다.

바르바토스의 [매혹의 눈] 능력은 자신에게 호감을 품도록 만드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품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레나는 나를 사랑하고, 저 왕자는 몰래 사랑하고 있는 여인이 있으니 매혹이 오래가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민서는 뒤따라오는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했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처참한 엔딩을 맞이했을 것이다.

휘유-

유안에 이어 파블로 드 클라우스까지. 묘한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발견해 두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 정도 정보들을 모아준 것만 해도 몇 번의 회차를 아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태껏 레나와 탱자탱자 놀아서 다른 레오들에게 미안했던 감정이 다소 누그러들었다.

레오는 레나에게 줄 선물을 품에 안고 빠르게 되돌아갔다. 파블로 드 클라우스 왕자도 자신의 연인에게 선물인 듯, 한 송이의 꽃을 건네주었다.

함께 축제를 구경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요청하였지만, 그 가느다란 목을 가진 아가씨는 눈앞의 남자가 왕자인 것을 모르는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앞치마도 벗지 못하고 나온 걸 봐서는 뭔가 바쁘게 집안일을 하다 나온 모양이었다.

왕자는 상심한 듯했으나 강요하지 않았다. 미안해하는 연인을 돌려보내곤 자신의 귓가에 손을 올리는 예법을 취했다.

“…자코브 경?”

그런데 자코브 경이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왕자가 의아해하며 대화하고 싶다는 예법을 두어 번 반복한 뒤에야 조용히 걸어 나왔다.

조금 작은 체구를 가진 중년의 기사. 등에는 날이 움푹움푹 패인 괴상한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런 것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건 그의 얼굴이었다.

턱 하관이 반쯤 부서져 있었다. 틀림없이 미남이었을 외견으로, 곧은 콧대와 잘 정돈된 눈썹, 강직한 눈매를 지녔음에도 곱상한 윗입술만을 남기고 아랫입술은 고작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자코브 경. 늘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헛걸음하게 됐네요. 시간도 남고, 마침 축제 중이니 어디서 가볍게 술이라도 한잔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왕자가 말을 높여 말했다. 하지만 자코브 경이라는 그 기사는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답을 하지 못했다.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님?”

그는 자신의 풀네임이 불리고서야 시선을 왕자에게로 돌렸다.

“외옹합이아. 잉경으이응게 있어어 으앱읍이아.”

“그러셨군요. 무슨 일인지 제가 알아야 할 문제입니까?”

자코브 경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신하가 왕자에게 하기엔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턱이 날아가 발음하기가 쉽지 않은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왕자도 그런 사정을 아는지라 개의치 않아 했다. 그는 자코브 경을 이끌고 다시 축제가 열리는 시가지를 향해 걸음을 돌렸다.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

그는 왕실의 근위기사단장이자 아스터 왕국의 자랑거리, 소드마스터였다.

그리고 그는 불편한 시선으로 레오가 있었던 자리를 흘겨보다 왕자님을 따라나섰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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