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55화
51장 복귀
에스더는 여전히 미심쩍은 듯 물었다.
“……여기 인원들을 전부 죽일 정도의 실력이면, 직접 풀지 그런가?”
그럴 수 있으면 진작 그랬지.
‘자는 동안 마나를 좀 회복했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잠이 든 뒤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고 해도, 나는 남들보다 마나 회복이 빠르다. 마나소진이 잦았으니까.
다만 손이 완전히 묶여 있어서, 실을 잘라내려면 허공 직조를 사용해야 한다.
즉 메노소르포를 발동해야 하는데.
‘그랬다간 괜히 또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
만약 에스더가 끝까지 풀어주지 않고 자리를 떠나면 풀어볼까.
메노소르포를 아주 작게 만드는 것도 연습해둬야겠다.
“뭣보다, 나를 어떻게 믿고 등 뒤를 내준다는 건가?”
에스더가 물었다. 그녀는 나를 오늘 처음 봤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그녀를 신뢰하는 모습이 이상하겠지.
하지만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에스더는 선역인 것을 넘어, 그 누구보다 신실한 자다.
여신 유스티티아를 믿고, 죄를 처단하기 위해 범인을 쫓는 정의의 대리인. 옛날 만화였다면 무조건 주인공 역을 꿰찰 만한 캐릭터다.
“말했잖아. 당신을 끌어들였다고. 그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이야.”
“이유는 말하지 않는군. 그 신뢰가 어떻게 생겼냐고 묻고 있다.”
“당신은 옵시디언의 교도소장이잖아. 그거면 됐지.”
내 말에도 에스더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으나, 곧 한숨을 내쉬고 내게 다가왔다.
주변 정황을 보았을 때 내가 이들을 다 죽인 건 둘째 치더라도, 내가 인더스와 적이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스더는 내 등 뒤로 돌아갔다. 작은 금속음이 들렸다. 내 시야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칼을 꺼낸 듯했다.
북북, 에스더가 거미줄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내 팔을 풀어주는 동안에 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있었던 일 말인데.”
“네가 인더스를 전부 죽인 일 말인가?”
이제 아예 그렇게 생각하시는군.
“그래, 그거. 되도록이면 숨겨주지 않겠어?”
“숨겨달라니. 네가 한 게 아닌 것처럼 해달라고?”
에스더가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스더는 단호히 말했다.
“거절한다. 나는 의미 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그게 의미가 있단 말이지.”
콘스텔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나는 현재 렌조에게 납치된 상황이다. 열차 안의 승객들을 대신해서.
그런 내가 헬드레의 대저택 안에서 인더스를 전부 죽이고 헬드레까지 죽였다? 그것도 묶인 채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괜한 의심을 받아 만곶의 꼬리가 잡힐 바에야 없던 일로 처리되는 게 낫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나는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거짓말을 하라는 건 아냐. 너 또한 이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를 텐데?”
“……뻔뻔한 소릴.”
에스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눈으로 보기엔 내가 전부 처리해놓고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
하지만 실제로 난 적어도 ‘저택 안’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의자에 묶여 있었던 게 전부다.
나는 말했다.
“내가 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거짓’이잖아.”
“거짓이라니, 분명 네가,”
“난 대답했지. ‘글쎄’라고. 단 한 번도 내가 했다고 말한 적은 없어.”
에스더의 표정과 말로 미루어볼 때, 그녀는 이 모든 짓을 내가 했다고 반 이상 믿고 있다.
그 정도의 생각이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발뺌을 할 때다. 여기서부터가 오히려 손쉬운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말할 뿐이고, 에스더는 내 진실을 믿지 않으니.
나는 다시 말했다.
“굳이 옵시디언이 전부 해결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내가 전부 했다는 억측도 그만둬. 내가 의자에 묶인 채로 이들 모두와 헬드레를 처치했다고? 직접 본 것도 아니잖아. 그런 ‘가짜 사실’은 당신만 알고 있으면 돼. 그저 가만히 있으면, 무엇이 진실인지는 세상이 알 테지.”
에스더가 지금 가진 나에 대한 오해는 상황에 따라 써먹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 정도면 됐다.
그리고 에스더 본인도 알 거다. 내가 했다는 말 따위를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는 걸. 나는 그렇게 대답한 적이 없고, 그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에스더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에스더가 괜한 소리를 하지 않으면 일반인들은 자연히 ‘옵시디언이 인더스를 잡았다’고 인식할 것이다. 나의 존재도, 나에게 엮여 있는 ‘만곶’의 존재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그렇게까지 해서 공적을 숨기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숨기는 게 아니고.”
나는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을 뿐이야.”
내 대답에 에스더의 눈이 조금 커진 듯했다.
* * *
나의 복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우선은 범인 확보가 먼저였다. 에스더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옵시디언의 사람들이 기절한 키안, 톰슨, 스카일러를 구속구로 묶었다.
그중 스카일러를 구속할 때는 다소 애를 먹었다. 본래 영체이다 보니, 겉의 갑옷을 구속한다 한들 아무 소용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마물용 구속구가 따로 있어 스카일러를 구속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일 때의 마물은 대부분 섬멸하는 것에 집중했기에, 마물을 구속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수갑을 차는 인간과 달리 마물은 거대한 구 형태의 유리구슬 안에 집어넣었다.
평소엔 반지만큼이나 작은 고리 형태의 아티팩트인데 구속을 위해 사용할 때는 마나로 된 막을 형성해 그 체적을 넓혔다.
상당히 편리하고 유용해 보였지만 전투 시에 쓰기는 어렵다고 한다. 막을 펼치는 데에 시간이 들고, 저 아티팩트 하나 만드는 데에 상당한 시간과 자금이 든다. 비파강으로 만들기라도 하는 건지.
자연히 내 눈은 그 아티팩트를 공방에 담았다. 물론 내 마나가 사라지면 구속도 풀리는 반쪽짜리지만, 실물과 달리 돈 안 들고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잠깐 발을 묶는 데에 유용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어쩐지 그리운 풍경이네.”
나는 차를 탄 채 콘스텔로 향했다.
공중철도에서 인더스를 방해하고, 크로폴에 가서 라이프가드 일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렌조를 만나고, 헬드레의 대저택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별의별 일을 다 겪어서 콘스텔로 향하는 길은 정겨운 느낌마저 들었다.
운전은 옵시디언의 직원이 해주었다. 에스더는 아직 현장 감독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꽤 시간이 지났으니 만곶의 마나는 사라지고 없겠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순 없다.
“학생. 운 좋은 줄 알아. 소장님이 거기 없었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거야.”
운전하던 직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정말이지, 천운이었어요. 이것도 유스티티아 님의 자비겠지요.”
“허허. 그 말 소장님이 들으면 좋아했을 텐데.”
옵시디언의 사람들은 저택 안에서 벌어진 일을 거의 대부분 에스더가 한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에스더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나, 당시 상황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뿐이니.
이로써 당시 사건 현장에 대한 이해의 묘한 구도가 완성되었다.
나의 독단이라 생각하는 에스더, 에스더가 전부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옵시디언, 이 사건이 발표되면 옵시디언이 인더스를 붙잡았다고 믿을 일반인들.
그러나 그중에 진실은 없다. 그 세 개의 심리의 벽이 존재하는 한, 만곶의 개입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 도착했어.”
“감사합니다.”
한참이 지난 뒤, 차가 멈췄다.
나는 직원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콘스텔의 교문 앞에서 위를 올려보았다.
로아흐 저택이 아니라 콘스텔로 온 이유는 제인 및 다른 교사들에게 소식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렌조가 나를 납치했다고 알고 있는 제인.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걸 방방곡곡에 떠들진 않았을 거다. 아마 교사 몇몇만이 그걸 알고 있겠지. 아무 데나 떠들어봤자 혼란이 올 뿐이다.
아마 나를 다시 탈취하기 위한 팀 같은 걸 짜고 있지 않을까. 거기에는 오스프리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무사를 알려주기 위해 서둘러 콘스텔에 돌아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콘스텔의 교무실로 가려다, 방향을 바꿔 교장실로 향했다. 괜히 내 상황을 모르는 선생님들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
그런데 막상 도착한 교장실엔 아무도 없었다.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었고, 안에 인기척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설마.’
그때 어떤 생각이 미친 나는 발길을 돌려 회의실로 향했다.
인더스를 잡기 위해 이전에 교사들과 함께 회의를 하던 바로 그 장소.
조금 멀리서도 회의실 안에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소수 정예를 먼저 파견해서…….”
“성급하게 움직여 발각된다면 되려 학생에게 위험이…….”
안에서는 신중한 말들이 오갔다. 뭔가 불온한 작전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마 그 주제는 나겠지.
똑똑.
나는 회의실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그러나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무시했다기보다, 회의의 열정이 너무 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끼익.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안에서 거대한 탁자를 둘러싼 교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안에 들어온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회의를 이어나갔다.
아마 나 말고도 회의실을 들락날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았겠지. 작전을 위해서 여러 자료를 가져와야 했을 테니. 내가 있었던 저번 회의 때도 그랬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온 집중을 다해 나를 구하려는 작전을 짜고 있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어딘가 기분이 묘해졌다.
“아, 흠흠. 다녀왔습니다.”
나는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말을 걸었다. 그에 교사들은 나를 힐끗 바라보곤 다시 이야기를 나누려다가, 얼굴을 기묘하게 바꾸곤 다시 나를 보았다.
거의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 비슷한 행동을 취했다.
“……프론디어?”
그 묵직하고 다소 서늘한 목소리. 중앙 뒤편에 앉아 있던 오스프리트가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본 오스프리트의 놀란 표정 중 가장 놀란 표정이다.
그 중얼거림에 아직 나를 보지 않은 모든 교사들의 시선까지 전부 쏠렸다. 그중에는 제인도 있었다.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다.
나는 말했다.
“네, 프론디어 드 로아흐. 지금 복귀해서,”
“프론디어!!”
그때 내 이름을 외치며 달려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꽉 껴안고는 그 얼굴을 내 어깨에 묻었다.
말리아였다.
“프론디어! 다행이야, 프론디어……!”
감격한 듯 떨리는 목소리. 나는 기시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전, 엘리시아의 탑으로 향했을 때 나를 배웅해 주던 그녀의 눈빛, 목소리 따위가 다시 되살아났다.
말리아에게서 엄마의 향기가 난다. 참으로 비겁한 일이었다. 나의 진짜 엄마가 아닌데.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이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이제야 길고 긴 무언가를 끝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 * *
콘스텔의 교사들은 내가 렌조에게서 생환했다며 난리였다.
물론 알고 있는 교사가 소수였으나, 그들에게서 내 인상이 변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몇몇은 나에게 대체 렌조의 손아귀에서 어떻게 도망쳤냐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번번히 말리아와 제인에게 가로막혔다.
이제 겨우 살아돌아온 학생에게 뭘 물어보려는 거야! 따위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교사들은 물러섰다. 나로서는 편한 일이었다.
저택에서는 그냥 그랬다. 애초에 내가 작전에 참여했다든가, 납치됐다든가 하는 건 저택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을 테니. 앙페르를 마주쳐도 이전과 똑같았다. 참으로 안심이 되는 평화로다.
나로서는 사정상 좋은 일이었다. 지금부터 쓸데없는 방해가 들어오면 안 되니까.
로아흐 저택의 내 방. 나는 오래 기다렸던 확인 작업을 실시했다.
“먼저, 렌조의 창과 방패.”
렌조가 가지고 있던 아레스의 무기들. ‘엔케스팔로스’와 ‘리노토로스’. 각각 창과 방패의 이름이다.
나는 렌조가 저 두 신물을 꺼낼 때 바로 공방에 저장했으나, 전혀 쓸 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
•등급 : ???
•설명 : ???
능력 상세 >
– ???
– ???
창과 방패 양쪽 다 이딴 식으로 나와 있었다. 처음엔 오류라도 난 줄 알았다.
‘아레스가 숨긴 거로군.’
아레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나에 대한 언급을 들었을 테니,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템의 설명은커녕 이름까지도 감출 수 있다니, 자기 물건이라 가능한 건가? 물론 말 그대로 정보를 숨겼을 뿐이기에 직조는 할 수 있다.
성능도 그대로. 정보를 숨긴 이유는 아마 내가 모르는 두 아이템의 또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에 대해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두 아이템 다 능력 상세가 두 줄이라는 것.
창이 가진 ‘무한시도’와, 이름은 모르겠지만 정면 전체를 막아내는 방패의 능력. 이것 말고도 각 무기에는 하나의 능력이 더 있는 것이다.
그 능력이 아레스가 숨기려는 것인가?
“그럼 이건 나중에 알아보는 걸로 하고.”
신이 작정하고 감춘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딱히 알아낼 방법이 없다.
뭣보다 오늘 확인할 메인은 이 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스마트워치를 열었다.
[메인퀘스트, ‘인더스 소탕 작전’ 완료.]
[메인퀘스트 : 인더스 소탕작전]
•설명 : 인더스의 계획이 드러났습니다. 계획을 저지하고 인더스 멤버를 제압하세요.
•목표 : 인더스 회원 및 리더 제압하기.
•보상 : 제압한 인원에 따라 차등 지급.
•실패 시 ‘무정부 상태’에 돌입할 가능성 존재.
[보상 확인]
– 무정부 상태에 돌입하지 않았습니다.
– 네임드 캐릭터 전원 생존.
– 제압한 인원 : 헬드레, 크라켄, 키안, 톰슨, 스카일러. 인더스의 수뇌부 전원 제압 성공.
[최고 등급 보상이 책정되었습니다. 보상은 현재 캐릭터에게 맞춰 등급에 따라 제공됩니다.]
이전 메인퀘스트에 이어, 두 번째 최고 등급 보상.
나는 기대감을 품고 다음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
[오류 발생.]
[헬드레의 사망에 대한 공헌도가 확인되었습니다.]
[네임드 캐릭터 렌조의 선역 전환 가능성이 제시되었습니다.]
[보상 측정을 다시 시작합니다.]
[측정 완료.]
[초월 등급 보상이 지급됩니다.]
“……엉?”
나는 그걸 한참 읽다가 미간을 모았다. 게임 에티우스를 하면서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가 나왔다.
“초월 등급이 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