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55

154화.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미국경제에 직격타를 날렸다.

이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와 IT기업들은 크게 성장했지만, 제조업은 그다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백인 노동자층의 불만이 쌓였고, 이는 로날드 당선의 배경이 되었다.

로날드는 후보시절부터 미국 노동자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우리는 러스트 벨트에 공장을 건설해 그의 공약을 현실화시켰다.

로날드가 일명 가짜뉴스(Fake News)라고 이름 붙인 CNN과 NBC는 어떻게든 로날드의 흠집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이번 카로스 임단협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로날드와 나는 한 배를 타고 있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노조를 압박하면, 바로 공격적 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미국 노동자를 위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로날드를 지지하던 기업이, 정작 노동자를 탄압한다는 식으로.

때문에 우리는 노조를 상대로 강경하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노조도 그 사실을 알기에 총파업 얘기를 꺼내들며 우리를 압박하는 거고.

노조를 탄압할 생각도 없지만,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생각도 없다.

노조에게 끌려 다니기 시작하면, 은성차 꼴 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은성차는 해외공장이라도 있지, 우리는 모든 공장을 미국에 두고 있다. 그러니 당장의 손익보다는 원칙을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다. 신차를 출시한 이후 판매량이 늘어나는 시점에 문제가 터졌다면, 더욱 대응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역으로 판매망이 무너지고, 판매량이 폭락한 지금이 노조와 협상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데니스는 팔짱을 낀 채 위협적인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반짝거리는 민머리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좀 당황했을 것이다. 설마 내가 파업을 하려면 하라는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겠지.

데니스의 왼쪽에 앉은 더 락을 닮은 노조위원 마이클이 입을 열었다.

“정말 파업해도 괜찮다는 겁니까?”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당연히 괜찮지는 않죠. 가뜩이나 판매량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생산마저 중단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회사가 큰 폭의 적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 역시 잘 알고 있다.

은성차라면 1년 내내 파업해도 절대 망하지 않겠지만, 카로스는 얘기가 다르다. 적자폭이 커지고, 추가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정말로 망할 수도 있다.

데니스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사측이 경영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미진한 경영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 심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로날드가 각종 자유무역협정을 손보는 등 제조업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도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는 많이 부족하다.

만약 회사가 무너지면, 카로스의 노동자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난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먼저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설사 회사가 망하게 되더라도 그전까지 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겠습니다.”

노동자는 임금소득에 생계가 달려있다.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래서 청룡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때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던 거고.

생각해보면, 은성차 노조를 포함해 한국 자동차 노조도 예전엔 이렇게까지 강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1997년 IMF사태는 노사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당시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수십 년 동안 회사를 위해 일한 노동자들을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선배와 동료들이 어떻게 잘려나가는지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이때부터 자동차 노조는 회사의 경영사정을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자신들이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즉, 모든 문제는 해고에서 시작되었다.

“저희 아버지는 자동차 협력업체를 운영하셨습니다. 직원이 몇 안 되는 작은 회사였지만, 문을 닫기까지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의 가장 큰 자랑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을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노조위원들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데릴은 설득하듯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입니다. 판매량 감소로 회사의 앞날에 대한 우려도 클 거라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신차를 개발하고 있고, 연말 전에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판매량도 회복될 겁니다.”

“이미 딜러사들이 등을 돌리고 판매망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판매량을 회복시키겠다는 겁니까?”

난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판매망이 멀쩡했을 때는 차가 잘 팔렸습니까?”

데니스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는 차종을 줄이고, 딜러사들 마진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간신히 적자를 면하며 근근이 판매를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태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았습니다. 현재 몇 개의 생산라인이 멈춰 있는지 알고나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확인했으니까요.”

생산라인이 멈추면 노동자들은 할일이 없다. 그들은 현재 회사에서 실시하는 직업교육을 받는 중이다.

일 안 하고 교육받으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언제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겠지.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신차는 앞으로 직접 팔 거니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인터넷으로요. 모든 걸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세상인데, 차라고 안 될 게 뭡니까?”

데니스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습니까?”

“니콜라도 하는데, 우리도 못할 건 없지요.”

니콜라가 초창기부터 딜러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전기차라는 차별화된 세일즈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확실하게 차별화할 수 있는 세일즈 포인트가 있다.

“아시다시피, 카로스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을 탑재한 신차를 출시할 겁니다. 레벨4 단계의 자율주행차를 생산하는 회사는 오직 우리뿐입니다. 고객들에게 그만한 가치를 제공해줄 수만 있다면, 딜러사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딜러사가 가져가는 마진만큼 우리의 수익이 늘어나게 된다.

“제 목표는 간단합니다. 좋은 차를 개발하여, 미국에서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동차업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북유럽국가들은 당장 10년 안에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시키겠다고 나섰고, 모든 회사들이 미래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앞서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번에 출시할 신차는 카로스가 개발한 첫 내연기관차이자 마지막 내연기관차다.

현재 건설 중인 신규 공장들은 전부 전기차 공장으로 짓고 있고, 기존 공장들 역시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같은 자동차라고 해도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는 생산방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내연기관차의 부품수는 3만 개에 달하지만, 전기차의 부품수는 그 3분의1에 불과합니다. 엔진과 변속기도 없습니다.부품이 적은 만큼 조립공정은 줄어들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숫자도 절반 이상 줄어들게 될 겁니다.”

이는 자동차 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달로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줄어드는 추세다.

“현재의 고용이라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협력이 필수입니다.”

브룩 레스너를 닮은 노조위원 로스가 말했다.

“노동자들 임금이나 일자리 같은 건 어찌되든 상관없고, 그저 돈만 벌어갈 생각 아닙니까?”

“그만하게, 로스.”

말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데니스가 제지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전 투자자고, 돈을 좋아합니다. 제가 카로스에 거액을 투자한 것은 돈이 목적이지 자선사업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카로스가 벌어들인 돈을 OTK컴퍼니로 빼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신차로 벌어들인 돈은 전부 전기차에 투자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공장을 짓고 더 많은 미국인을 고용하겠습니다. 그리고 혜택은 여러분들뿐만 아니라,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도 골고루 돌아가게 할 생각입니다. 대선 당시 로날드 대통령님께서 이곳 디트로이트에서 했던 연설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저는 미국에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기꺼이 힘을 보태겠습니다.”

내 말에 노조위원들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노조란 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을 위한 이익단체다. 회사가 더 많은 인력을 뽑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챙긴다 한들, 현재 조합에 소속된 이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노동자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자신들 임금만 올려달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국민들이 은성차 노조를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이 고임금을 받기 때문이 아니다.

IT나 금융권 등 그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직종이 수두룩하다. 자동차 생산직이 반드시 그들보다 낮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은성차 노조가 오로지 은성차 정규직의 이익만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다. 임금인상폭과 복리후생이 커질수록 사측은 정규직을 늘리는 데 강한 부담을 느꼈다.

그 결과 은성차는 더 이상 한국에 공장을 짓지 않고, 정규직 고용을 늘리지 않았다. 대신 해외에 공장을 짓고,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자를 고용했다.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자들은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 임금의 3분의1에 불과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과의 임금격차도 계속해서 벌어졌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은성차 노조원들의 임금을 올려주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을 쥐어짜고 있는 셈이다.

데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까지 회사가 버틸 수나 있겠습니까?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공장을 폐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난 딱 잘라서 말했다.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노조위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필요하다면, OTK컴퍼니에서 채권을 발행해서라도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그 외에 회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입니다.”

엄밀히 말해 나는 카로스의 경영진이 아닌, 96퍼센트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다. 그리고 카로스와 협력관계에 있는 배터리회사와 연구소를 소유한 파트너이자, 돈을 대줄 채권자이기도 하다.

내가 분명한 각오를 내비치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노조위원들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요구안에 대해 얘기를 해보죠.”

라이언이 말했다.

“21개 요구안 중 경영과 관련한 사항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현재 회사 재정상 임금인상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러자 데니스는 바로 반박에 나섰다. 사측과 노조 양쪽의 설전이 이어졌다.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고, 대부분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협상이 시작된 지 네 시간이 넘어가자, 다들 지치기 시작했다.

잠시 쉬었다가 재개해도 되겠지만…….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저도 미국까지 와서 뭔가 일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내 말에 몇 명은 피식 웃었다.

이건 노조위원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협상이란 길게 끌어서 극적으로 타결되는 편이 보기 좋다.

원래 쉽게 얻은 것보다는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가치 있게 보이는 법이니까.

그들 입장에서도 ‘사측이 흔쾌히 양보했다’보다는 ‘우리가 힘겹게 투쟁해서 얻어냈다’는 쪽이 더 체면이 설 테고.

내 의도를 눈치 챘는지, 데니스를 포함한 노조위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2차 협상 때 뵙겠습니다.”

그들이 다 나간 후에야, 난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무렇지 않은 척 협상에 임하긴 했지만,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협상이 잘못되면 회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보다는, 한 대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더 컸다.

저런 피지컬로 협상장에 나오는 것 자체가 반칙 아닌가?

손으로 이마를 닦으려는데, 정작 손바닥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엘리는 웃으며 말했다.

“잘 했어요. 협상하는 걸 보니, 변호사해도 되겠던데요.”

데릴도 긴장했는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말은 협상을 마무리한 뒤에나 하죠.”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