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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6

155. 약혼관계 – 할파스(Halpas)

레티이 대회가 열렸다. 대회장은 ‘모군티아쿰’이라는 반원형의 구조물이었는데, 평소에는 야외극장으로 쓰이는 곳이어서 둥글게 쌓인 돌계단이 객석이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마누비울의 시민들은 삼삼오오 몰려 앉아 전사들이 무대에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계단 중앙 저 높은 곳은 넓게 비워져 있었다.

그곳은 곧 행차할 왕과 왕족을 위한 자리로, 푹신한 의자들이 놓이고, 아직 따가운 초가을 햇빛을 막기 위한 차양이 설치되는 중이었다.

“먼저… 레나 님, 마인츠 님. 심사관에게 가서 장비를 다시 점검받으시고 경기장에 올라주세요.”

무대 뒤편에는 전사들로 북적이는 대기실이 있었다. 대회 진행을 돕는 기사는 하필이면 레나를 첫 번째 차례로 지목했다.

레나는 하얀 천으로 감싼 자신의 검을 힘없이 챙겨 들며 말했다.

“…다녀올게.”

“그래, 레나. 기죽지 말고 힘내! 다치지만 말고.”

레오가 격려해주었다.

그러자 레나는 싱긋, 걱정하지 말라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깃털이 달린 머리끈으로 졸라맨 그녀의 머리카락은 살랑살랑, 기운 없이 흔들렸다.

단발머리를 고집하는 레나는 원래 머리를 묶지 않았다.

입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걸 싫어하고, 검술 훈련에 방해가 된다며 그때그때 짧게 잘라버리곤 했다.

하지만 에이브릴 성을 떠나 이곳까지 여행하면서 그간 머리를 자를 기회가 없었다. 그녀의 머리는 어느새 어깨까지 자랐고, 레오는 선물로 머리끈을 사다 주었다.

란과 앤이 한 깃털 머리끈을 예쁘다고 했던 적이 있어서였다.

그것과 비슷한 머리끈을 발견했을 때, 레오는 이거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 “안 그래도 직접 머리를 자를까 고민했는데. 생일은 이미 지났지만 고마워. 그런데 며칠이나 돌아다닌 것 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아? 헷. 농담이야. 잘 쓸게.”

레나는 “그럼 이번 기회에 머리를 좀 길러볼까?”라며 그 자리에서 머리를 묶었다. 머리끈을 입에 물고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세모나게 접힌 귀와 고운 목덜미가 드러났다.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이 예뻐서 레오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마터면 꼭두새벽에 열리는 예선에 참가하지 못할뻔했다.

예선은 정오에 끝났다.

레오는 어느 부족의 대전사라는 사람을 가뿐하게 찍어눌렀다. 어지간한 기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춘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왕국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았다.

아직 대련할 사람이 남아 있었음에도 레오는 심사를 맡은 기사의 판단하에 본선 진출이 즉각 확정되었다.

반면 레나는 다소간의 우여곡절을 치렀다. 아슬아슬한 공방을 거듭해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했다.

그녀의 실력은 파혼하려 했던 회차의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다.

여행 중에도 바득바득 훈련하겠다고 시간을 쪼개던 그녀였으나 레오가 놀러 가자며 보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레나의 검술은 착실히 성장했다. 이번에는 레오가 보인 바르트의 검술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그녀의 검은 눈에 보일 만큼 뚜렷한 궤적을 그렸다.

섣불리 내지르지 않으면서도 수동적이지 않은 한 합 한 합.

노엘 덱스터의 안정적인 검술에 레오의 공격성이 더해지자 그녀를 상대하는 사람은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허나 그녀와 맞붙은 이들은 온갖 풍파를 다 겪어본 대전사들이었다. 그들은 때로는 너도 맞고, 나도 맞자는 식으로 공격해왔고, 실전 경험이 부족한 레나는 그들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경우가 잦았다.

또, 아쉽게도 오늘 레나의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아침에 “왠지 몸이 무거워.”라며 투덜거렸던 게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는지 그녀의 자세가 다소 무너져 있었다.

레나가 본선 첫 번째 경기에 나갔다.

대기실에 남은 레오는 무료하게 자리를 지켰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나르 부족에서 온 여전사, 레나~~~ 아이나르~~!!”라는 외침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기실에서는 본선 진출이 확정된 스물아홉 명의 대전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어떤 전사는 무기를 휘둘러 몸을 풀기도 했고, 어떤 전사는 무릎 꿇고 신께 기도를 올렸다.

상의를 탈의한 그의 등에 어느 아신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나, 레오는 그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신의 역사} 정보에 따르면 저건 이미 십자교회에게 신도를 빼앗긴 아신의 문양이었다.

험한 환경 때문인지 북부의 야만인들은 대체로 강인한 전사를 떠올리게 하는 신을 믿었다. 그리고 십자교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들이 믿는 신을 라차르 님으로 바꿔 넣는 것이었다.

주신의 네 화신 중 하나이자 전투와 명예의 신인 라차르.

북부의 야만인들이야 자신이 믿고 있던 신이 사실은 더 대단한 분이라는데 싫어할 까닭이 없었고, 신도를 잃은 아신은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다.

다만 야만인들은 십자교회가 알려주는 교리를 자기들 멋대로 해석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면 토들러 아키우넨과 관련한 신화가 그중 하나로, 마수를 잡으며 성장한 위대한 전사는 신께 도전할 권리가 있다는 식이었다.

심한 부상을 방지하고자 두꺼운 천으로 감싼 검을 매만지며 기다리길 잠시, 기사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다음은… 레오 님, 드록사 님. 심사관에게 가서 장비를 점검받으시고 경기장에 올라주세요.”

레오의 차례는 두 번째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빙그레 웃었다. 바깥에서 “레나! 레나! 레나!”하는 외침이 울려오고 있었다.

* * *

레오는 우승했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기사가 될 기회를 상으로 주는 대회에 언제든 기사가 될 수 있는 실력자가 참가한 것부터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연전연승,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개중에는 드록사 알바세테라는, 레나 레오와 함께 이곳에 왔고, 많은 이들이 우승 후보로 점찍었던 전사도 있었는데, 그는 32강전에서 레오를 만나 탈락해버렸다.

그래도 그는 일종의 패자부활전, 4강에 들지 못한 이들끼리 치르는 번외 경기에서 일등을 차지하면서 입상했다.

마우닌 또는 레티이 대회에서 입상이란, 준결승전을 치르는 것과 드록사 알바세테처럼 번외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하유. 축하해 레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네가 먼저 기사가 됐네.”

레나는 16강전에서 탈락했다.

상대가 좋지 못했다. 그녀는 운수 나쁘게도 선임 기사를 잘못 만나서 허송세월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라는 식으로 대회에 참가한 준기사를 만났다.

그런 식으로 기사가 되어봤자 기사단에 들어가면 꽤나 고달플 것이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는 뒤이어진 8강전에서 레오를 만났다.

레나는 침울해진 와중에도 축하를 건넸다. 레오와 함께 기사가 되어 결혼하고자 했던 꿈을 따라잡지 못해 아쉬웠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마워. 하지만 레나야. 너는 오늘 그냥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야. 몸 상태도 안 좋았고. 재수가 없었던 거니까 너무 상심하지는…”

위로해주려 했으나 레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몸 관리도 실력이고, 그 준기사를 이겼어도 8강에서 너를 만났겠지. 번외 경기에서도 드록사 아저씨한테 졌고… 변명하자면 끝이 없어. 그냥 내 실력이 기사가 되기에 부족했던 거야.”

아니다.

레나는 전쟁터에 나갔을 때든 언제든 간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했다. 채 일 년이 되기 전에 평기사급 이상의 실력을 갖추곤 했다.

레나가 이번에 기사가 되지 못한 건, 내가 그녀의 훈련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와 한시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으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는 레나가 기사가 되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연인의 꿈이 미뤄진 걸 기뻐하는 자신이 혐오스럽다. 하지만 조금 미뤄졌을 뿐이고, 레나는 수개월 내로 기사가 될 테니까…

“미안해.”

레오가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레나는 “하하! 네가 왜 미안해해? 미안하면 내가 기사가 될 때까지만 기다려 줄래?”라며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휘익! 저게 대체 몇 살이야? 저렇게 어린 우승자는 처음 보는걸!”

본선에 출전한 서른두 명의 참가자가 무대에 오르자 시민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레오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환호성이 터졌는데, 그가 보여준 기량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시상이 있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세요.”

사회자를 맡은 여자가 소리쳤다.

대대로 레티이 대회의 우승자에겐 축제 때 레티이 여왕으로 분장했던 여인이 질 좋은 검을 하사하는 관습이 있었다.

검이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좋은 걸 가진 레오였지만, 군말 없이 여왕에게서 검을 받아들었다.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곁에 있는 레나도 짝짝 박수 쳐 그의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입상한 네 명의 전사들에게도 경품이 수여되면서 대회가 성황리에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왕께서 수상자들을 보고 싶으시답니다. 이쪽으로 올라가시지요.”

사회자가 입상한 다섯 사람에게 다가와 말했다. 시민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레오가 돌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반쯤 올랐을 무렵, 한 가면을 쓴 기사가 그를 가로막았다.

왕에게 접근하는 자의 검을 잠시 수거하려는 것 같았다. 그때, 불현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 업적 : 소드마스터, 3/3 ]

[ ‘소드마스터’ 업적이 소멸됩니다. ]

[ 퀘스트 : 수호자, 1/3 ]

‘뭐, 뭐야 이건?’

무의식중에 검을 내밀면서 레오는 눈앞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소드마스터인가?

하지만 키가 작고 왜소한 이 사내가 대륙의 최강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괴상하게 이어져 떠오른 메시지들이 그의 집중을 흩트렸다. 레오는 기사가 쓴 가면 눈구멍으로 불편하다 못해 불쾌한 시선을 쏟아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검을 건네고, 비무장이 된 레오는 다시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귀 따가운 환호성과 메시지로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는데…

왕에게 거의 도달했을 무렵,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 업적 : 왕 2/7 ]

이번엔 메시지로 인해 놀라지 않았다. 오른 왕국의 늙은 왕을 만났을 때도 이와 같은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집중은 다시금 깨져버렸다.

파블로 드 클라우스 왕자보다 높은 의자에 앉은 남자. 클라우스 왕가를 상징하는 짙은 군청색 머리칼을 가지고, 갓 중년에 이르러 패기와 현명함을 고루 갖춘 왕이 그를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다, 그는… 그는 왕이 아니었다.

이자는, 몸에 검은 신력이 휘몰아치는 이자는 ‘사도(使徒)’였다.

“훌륭한 전사를 만나게 되어 반갑구나.”

– 바르바토스?

‘페트라 드 클라우스’가 말했다. 그가 입을 염과 동시에 레오의 머릿속으로 어딘가 깍깍거리는 듯한, 신경질적인 질문이 따라붙었다.

“잘 보았다. 대단하더구나. 나이도 어린데, 아~주 대단해.”

– 바르바토스의 사도가 여긴 여쩐 일로 왔느냐?

왕의 눈동자가 순간 레오의 하얗게 질린 주먹을 향했다.

주먹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오른손 손바닥에는 누구도 보지 못하는 바르바토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전사들도 훌륭하였다. 이렇게 좋은 경기는 오랜만이었어. 모두 수고했다.”

– 대답해라. 왜. 여기에. 왔지? 대답을 할 줄 모르나? 그럼 바르바토스란 놈을 불러라. 감히 듣도 보도 못한 아신 따위가 내 앞으로 사도를 보내다니…

그제야 레오는 알 것 같았다. 이 왕은 아신에게 반쯤 잡아먹힌 사도였다.

그리고 몸에서 휘몰아치는, 방패 모양으로 이뤄진 팔각형의 신력으로 미루어보건대 이자가 모시는 신은 두 마리 까마귀가 얽힌 마르하스(MalHas)의 일부이자 검은 까마귀,

할파스(Halpas)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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