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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6

156화 건드려선 안 될 것 (6)

156화 건드려선 안 될 것 (6)

루나는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데미안을 좋아한다니······, 아, 아니야!”

루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부인했다.

미아의 눈이 의심스럽게 좁혀졌다.

“······거짓말.”

“거, 거짓말이 아니라······!”

루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입학시험 날, 치유실 앞에서의 일이 머리를 스쳤다.

‘자, 가시죠. 루나프레나 공주님.’

루나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날, 루나는 데미안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었다.

만약 에스틸리아 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데미안이 좋아.”

미아의 고백은 루나에게 천둥 같은 충격이었다. 왜? 언제부터? 미아는 마치 그림자처럼 아리엘을 따라다니기만 했고, 딱히 데미안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던 미아가 데미안을?

루나의 머릿속에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아르카넘 듀얼 8강전을 앞두고 미아는 잠시 사라졌었다. 그래서 루나는 미아를 찾아다녔다.

‘어디 갔다 온 거야? 그것도 데미안과 함께.’

‘아무것도 아니야. 데미안은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어.’

그러나 미아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탈리야가 미아의 옷을 찢으며 행패를 부렸고, 데미안이 도와줬다.

루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애초에 데미안은 어떻게 미아를 도와줄 수 있었지? 정말 우연히 마주친 걸까?

‘아리엘에게 사과하는 것이 좋겠어 세실리아. 아리엘과 미아는 나를 도와줬거든.’

세실리아와 아리엘 사이에서 마찰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데미안이 했던 말. 어쩌면 데미안은 그 일로 미아에게 호감을 느끼게 됐고, 그래서 남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루나.”

루나는 흠칫 놀라 미아를 봤다.

미아가 무슨 말을 할지 겁이 났다.

“······만약 루나가 내일 세실리아를 이기고 우승한다면.”

안 돼. 묻지 마.

“그렇게 된다면, 루나는 무도회 때 누구를 지명할 거야?”

***

아르카넘 페스트의 열기는 3일째에 접어들며 절정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아르카넘 듀얼과 블레이드 듀얼의 우승자를 가리는 날이다.

“누가 아르카넘 듀얼의 우승자가 될까?”

“당연히 탈리야 데본렉스지.”

“카인 시니야카도 만만치 않아. 3학년의 이안 미스트본이 그러더군. 녀석은 괴물이라고.”

“멍청한 놈들. 탈리야는 그보다 더한 괴물이야.”

관객들 사이에서는 카인과 탈리야, 그리고 루나와 세실에 대한 열띤 토론이 오갔다.

“어찌 됐든 블레이드 듀얼의 우승자는 1학년으로 정해졌군!”

“누가 이길까?”

“세실리아 크라소타겠지. 루나 크라소타가 아무리 강해도 세실리아에게는 안 돼. 앙투안이 손도 못 쓰고 당한 거 못 봤어?”

“하긴. 좀 불쌍하더라.”

앙투안은 아리엘에게 팔을 잡힌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리엘이 막지 않았다면 불만에 찬 앙투안의 손이 지금쯤 한두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미안. 괜찮아?”

세실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내게 닿았다.

나는 목발을 짚고 서 있었다.

비비안 교수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져가라고 했고, 세실이 나를 감시하듯 따라다녔다.

“데미안. 목발. 해야 해.”

“알았어.”

내 대답을 들은 세실이 싱긋 웃었다.

그녀의 미소 너머로 슬픔과 외로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저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무언가 세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걱정 마 세실리아. 목발 잘 짚을 테니까.”

“응.”

우리는 관객석에 앉았고, 잠시 후 경기장에 카인과 탈리야가 올라갔다.

루나는 오늘따라 말이 없다.

쟤는 또 왜 저러지? 평소라면 카인을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또, 세실에게 오늘은 꼭 이기겠다며 당찬 포부를 드러냈을 거다.

***

에스틸리아는 서로를 향해 마주 선 카인과 탈리야를 응시했다.

탈리야가 여유롭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카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오만함과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기대해도 되겠지? 카인 시니야카.”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카넘 듀얼 결승전, 시작합니다.”

에스틸리아의 선언과 함께, 관객석에서 함성이 일었다. 그 소리가 카인과 탈리야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에스틸리아의 귀에는 들린다.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두 사람의 주문 속삭임.

‘첫 주문부터 상급 마법인가.’

탈리야의 손에서 상급 화염 마법이 뻗어나갔다.

데미안을 상대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탈리야는 카인을 경계하고 있다.

쩌저적······!

카인의 몸을 둘러싸며 펼쳐지는 빙결 보호막은 중급 마법. 카인은 탈리야의 상급 마법을 중급 마법으로 막으려 한다. 마법사 간의 전투에서 격의 차이를 보이고 싶을 때 사용하는 심리전. 하지만 탈리야를 상대로?

관객석에서 기대에 찬 환호성이 울렸다. 4강전에서도 카인은 비슷한 광경을 연출했었다.

“우와아아아! 막았어!”

“대단한데! 카인 시니야카!”

에스틸리아도 놀랐다. 카인은 중급 마법으로 탈리야의 고급 마법을 방어하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카인의 교복은 불에 그을렸고, 피부도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탈리야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에스틸리아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두 참가자를 주시했다. 집중하자. 데미안에게 벌어진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걸? 카인 시니야카.”

여전히 탈리야는 이중 영창을 저런 식으로 사용 중이다. 달리 말하자면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탈리야의 손에서 다시 한번 화염 마법이 발현됐다. 직전에 쏘아낸 것보다 더욱 강력한.

이제 카인은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도 동일한 마법을 발현했다. 에스틸리아의 눈이 커졌다. 위험하다.

“······!”

순간 에스틸리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카인의 보호막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두며 두 겹의 보호막을 둘렀다.

이중 영창? 아니다. 이중 영창이었다면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설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주문을 읊어 이중 영창처럼 느껴지게 한 건가? 그게 가능하다고?

“우와아아아!”

관객의 환호가 에스틸리아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번에도 카인은 탈리야의 공격을 막았다.

몇 차례의 공방이 이어졌다. 주로 탈리야가 공격하고 카인이 막았다. 에스틸리아는 탈리야의 감정 변화에 주목했다. 어제의 경기로 탈리야는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 그것이 더욱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던 중 카인이 처음으로 기습에 성공했다. 바람 속성의 마법으로, 그리 강한 공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맞은 곳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탈리야는 꼴사납게 바닥에 넘어졌다.

“탈리야가 쓰러졌어!”

“지금이 기회다! 카인!”

그러나 관객의 기대와 달리 카인은 탈리야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일어나라. 탈리야 데본렉스.”

“가, 감히 1학년 따위가······!”

탈리야의 얼굴이 구깃구깃 일그러졌다. 악다문 입술에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탈리야는 본격적으로 이중 영창을 발현하고 있다.

에스틸리아는 몸의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탈리야는 승부를 내려 할 것이다. 어쩌면 에스틸리아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마법일는지 모른다. 그 정도의 힘이 있는 가문이다. 데본렉스는.

“안 돼! 탈리야!”

미아 데본렉스의 목소리. 그것으로 에스틸리아는 확신했다. 탈리야가 발현하려는 마법은 ‘블러디드(Blooded)’다.

카인을 돌아본 에스틸리아는 흠칫 놀랐다. 카인은 주문을 읊지 않고 있었다. 그저 탈리야를 응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던 카인과 상반된 모습이다. 그는 줄곧 뛰어난 직감을 바탕으로 상대의 마법을 간파하고, 대응했었다. 그런데 왜 저런 무모한······.

‘빌어먹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역시 ‘그 사람’의 말이 맞았다. 카인 시니야카는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위험하다.

탈리야의 손에서 검붉은 불꽃이 쏘아졌다. 에스틸리아는 저것과 비슷한 마법을 본 적이 있다. 탈리야는 아리엘을 상대하며 단 한 번, 저런 검붉은 화염을 발현했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르다. 모습은 비슷할지언정 위력에서 비할 수 없는 차이가 난다. 에스틸리아는 이유를 깨달았다. 탈리야는 이중 영창으로 각기 다른 두 개의 마법을 발현한 것이 아니다. 둘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

“아하하하하하!”

탈리야의 비명 같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에스틸리아는 방어 마법을 발현하려 했다. 이대로라면 카인이 위험하다. 그런데 할 수 없었다. 에스틸리아는 마법을 발현하기 직전 무엇에 끌린 것처럼 카인을 돌아봤고, 얼어붙었다.

카인은 탈리야가 아닌, 에스틸리아를 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에스틸리아는 느꼈다. 방해하지 마.

쩌저저······ 퍼엉!

카인이 발현한 빙결의 장막은 순식간에 파괴됐다. 검붉은 화염의 위력은 아주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인의 손에서 재차 빙결의 장막이 펼쳐졌다.

이번에도 장막은 금세 파괴됐다. 탈리야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카인은 표정 한번 바꾸지 않은 채 빙결의 장막을 발현하고, 또 발현했다.

쩌저저저······ 펑! 퍼펑!

매캐한 연기와 수증기가 경기장을 메웠다. 장막이 파괴되는 소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에스틸리아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카인은 벌써 일곱 개째의 빙결 장막을 생성하고 있다.

치이이이이······!

마침내 탈리야의 블러디드가 소멸했다. 이어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공기를 울렸고, 비명이 들렸다.

***

탈리야의 어깨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이틀 전,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에게 당했던 상처의 재현처럼.

탈리야는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카인 시니야카는 결국 데본렉스의 블러디드를 소멸시켰다. 저렇게 연속해서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탈리야는 주문을 읊었다. 저 멀리에서 날아온 바람 마법은 연기와 수증기로 자욱한 경기장에 좁고 기다란 통로를 만들었다. 통로 너머로 카인 시니야카가 보인다.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콰드득!

카인을 향해 팔을 뻗은 순간, 또 다른 바람 마법이 탈리야의 어깨를 관통했다. 그래서 그녀가 발현하려던 마법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쏘아졌다.

다가오는 카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는 냉정하고 익숙하게 탈리야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탈리야가 마법을 발현하려 할 때마다 그녀의 신체를 농락했다. 탈리야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독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허벅지를 관통당한 탈리야가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이 정도로 끝날 거로 생각하지 마라.”

속삭임이 들린 순간, 탈리야는 카인에게 드리운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봤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위험한 감정을 건드렸다.

‘이 정도로 끝날 거로 생각하지 마라. 탈리야.’

탈리야는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그녀는 자신의 통제력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카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마치 그날의 아버지처럼.

“너는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어.”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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