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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6

155화.

1차 협상이 끝나자 미국 언론들의 취재요청이 이어졌다.

CEO 데릴은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노조위원장 데니스는 ‘파업여부는 사측의 태도에 달려있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2차 협상은 일주일 뒤로 정해졌다.

난 점심때쯤 택규와 통화했다. 서울은 새벽시간이겠지만, 얜 원래 늦게 잔다.

[일은 잘 돼가?]

“협상 중이야. 회사는 별 일 없지?”

[그럼.]

택규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실무는 헨리와 상엽 선배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언제 돌아와?]

“좀 걸릴 것 같은데.”

[빨리 와. 혼자 노니까 심심해.]

“……알았어.”

난 전화를 끊고,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엘리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다른 손으로 펜을 돌리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미국까지 데려와서 일만 시키네요.”

내 말에 엘리는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일하러 온 건데요, 뭘.”

원래 계획은 적당히 일을 끝낸 다음 차를 몰고 오대호와 나이아가라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일에 치여 꼼짝도 못하는 중이다.

벌써 세 번째 미국행인데, 정작 관광다운 관광은 한 번도 못 해봤구나.

“커피 왔습니다.”

누군가 커피를 사오자, 각자 주문한 커피를 뽑아들었다.

난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화이트보드에는 전에 내가 써놓은 ‘연구개발, 생산, 판매’ 라는 글자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연구개발은 본사가 하고, 생산은 공장이 하고, 판매는 딜러사가 한다. 하지만 판매가 분리된 것처럼 연구개발과 생산이 분리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생각해 보면 연구개발과 생산의 분리는 예전부터 이뤄져왔다.

자동차회사는 엔진 같은 몇 가지 핵심부품을 제외하면, 다른 제품들은 수많은 협력업체에 위탁해서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 전체 공정의 70~80퍼센트 정도는 끝난다.

자동차공장은 마치 레고를 조립하듯 납품받은 부품들을 조립해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역할만 한다.

그 조립공정을 꼭 완성차업체가 소유한 공장에서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실제로 자동차회사들마다 몇몇 차종은 다른 회사 공장에 위탁생산하기도 한다. 공장을 거느리지 않고도 차를 출시해 판매하는 것이다.

난 1차 협상 때 본 노조위원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회사 사정에 따라 언제든 공장이 폐쇄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역시 미국의 금융위기 때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 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카로스의 경우 소프트웨어 회사가 공장을 가진 기존 자동차업체를 인수한 형태다. 다른 회사에 비해 연구개발과 생산의 분리가 쉬운 구조다.

판매량은 줄고 있는데, 공장들은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당연히 기존 공장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GM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철수하고, 태국과 러시아 계열사를 매각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호주공장마저도 폐쇄했다.

이는 본사가 수익을 쫓아 얼마든지 생산 거점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소비자들이야 어디서 생산한 차든 상관이 없고, 주주들도 수익성이 올라가서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엘리는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어떻게 노조를 설득할지 생각 중이에요. 기존 공장을 폐쇄하고, 판매중인 차량은 단종 시키고, 신차 물량은 다른 곳에서 위탁생산하겠다고 압박하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되면 노조의 파업은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가 물량을 준다고 한다면, 두 팔 벌리고 환호할 곳은 얼마든지 있다.

내 말에 엘리는 웃음을 지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난 잠시 생각한 다음 고개를 저었다.

“힘들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 사람들도 다들 집에 가면 한 가정의 가장이겠죠. 사랑스런 아내도 있고, 키워야 할 자식도 있고, 갚아 나가야 할 대출이 있을 테고.”

지금은 어쩌다 보니 경영자 입장에 서게 되었지만, 노동자들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노사관계란 결국 인간관계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대립하더라도, 존중과 이해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엘리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진후의 그런 점이 매력적이라는 거.”

난 쑥스러운 기분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힘들지는 않아요?”

“제시카 밑에서 일하는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예요.”

“…….”

골든게이트 직원들이야말로 파업해야 하는 거 아니야?

* * *

2차 협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또 다시 협상장에서 마주앉았다. 다시 봐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피지컬이다.

대체 공장에서 뭔 일을 하면, 저 정도 근육이 생기는 거야?

데니스는 초반부터 강경하게 나왔다.

“잔업과 특근을 못해 수당이 줄었으니, 그만큼 보전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데릴이 맞받아쳤다.

“그럼 나중에 잔업과 특근이 늘어나면, 그땐 기본급을 낮출 겁니까?”

어림도 없는 얘기다. 임금이란 한 번 오르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역시나 데니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우리가 인수하기 전부터 크라이슬러의 판매량은 매우 안 좋았다. 다른 빅3인 GM과 포드와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고, FCA그룹 안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판매부진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만큼, 현재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임금과 복리후생은 동종업계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투쟁하는 거고.

협상이 시작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노조는 임금인상과 복리후생을 주장했고, 사측은 회사 재무제표를 꺼내들며 힘들다고 했다. 노조는 경영진의 경영실패를 거론하며 노조에게도 경영참여 기회를 달라고 했고, 사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대로라면, 하루 종일 협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난 생각을 해보았다.

신차가 나오고 나면 수익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낸 수익은 다시 전기차에 투자해야 한다.

아마 몇 년간은 수익을 재투자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나라고 해서 왜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잘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성장의 과실은 주주와 경영진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누리는 게 당연하다. 노동자를 대우해주고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가치를 올리는 일이다.

문제는 지금 당장 어렵다는 건데…….

생각을 끝마친 나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죠. 매년 6퍼센트씩 임금을 인상하겠습니다. 각종 수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휴가비, 자녀 학자비, 의료비 등 복리후생도 차차 늘려 업계 평균 이상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데니스는 입을 다물었고, 데릴은 놀라서 소리쳤다.

“대표님!”

난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현재 회사 사정상 당장 시행은 무리입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콰앙!

데니스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런 약속은 질리도록 들었습니다! 나중에 하겠다고 말해놓고, 말을 바꾸는 걸 한두 번 본 줄 아십니까?”

난 나에게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럼 얘기를 정정하죠. 기본급 인상, 상여금 인상은 회사 상황과 상관없이 2년 후부터 실시하겠습니다. 인상분에 대해서는 2년 후에 한꺼번에 지급하고, 인상률 역시 합산해서 한 번에 적용하겠습니다. 복리후생은 소급적용은 못하겠지만,적어도 남부럽지 않은 정도로는 만들겠습니다.”

내 말에 데니스는 허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난 농담처럼 말했다.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저보고 일하라고 했다면, 반나절도 못 버티고 드러누웠을 겁니다.”

다행히 몇 명이 피식 웃으며, 분위기가 좀 풀렸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대신 노조도 회사에 협력해줘야 합니다. 지금은 노사가 힘을 합쳐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경영은 경영진이 하겠지만, 생산에 대해서는 노동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앞으로 자동차업계는 많은 것이 변할 거다.

변화에 적응하기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경직된 노동구조를 가진 기업은 도태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양보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지, 노조위원들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난 그들을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협상안을 만들어볼까요?”

* * *

15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우리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먼저 정리해고 금지, 고용안정, 정년연장에 대해서는 노조의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임금인상과 복리후생을 2년 후부터 실시하자는 내 제안은 노조가 받아들였다.

생산라인 전환배치, 직원교육 등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결정하되 최대한 노조가 협력하는 것으로, 그 외에 생산성 향상을 필요한 각종 조치에도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또 다른 중요 사항 중 하나는 회사가 위험해질 경우 최대주주인 OTK컴퍼니가 출자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노조위원장 데니스 블록은 협상안을 들고 가서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조합원들은 90퍼센트 가까이 찬성표를 던졌고, 협상안은 통과되었다.

경영진을 믿어보겠다는 심정이 느껴지는 결과였다.

CEO인 데릴과 노조위원장 데니스는 각자 협상안에 사인을 하고,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이로써 임단협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임단협은 4년 후니, 그때까지는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열심히 취재하던 CNN과 NBC는 막상 협상이 타결되자 간단한 기사만을 내보냈다.

반면 지역 폭스뉴스는 중요기사로 다루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참고로 폭스뉴스는 CNN과 NBC와는 달리 친공화당,친로날드 성향을 지니고 있다.

[카로스 노사 대타협, 노사협력의 모범적인 사례!]

[사측은 임금인상과 고용확대를, 노조는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기로 약속]

[카로스 노사 상생의 길을 열어]

?로날드는 유럽에 가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기사를 링크해 투윗을 날렸다.

[카로스 노사합의를 환영한다!

미국 자동차 노조는 파업만 일삼는 한국 은성차 노조와는 다르다.

미국 노동자들은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 얼마든지 사측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면서 은성차 조지아공장과 은성차 울산공장의 임금과 생산성을 비교하는 그래프를 올렸다. 당연히 조지아공장이 울산공장에 비해 임금은 낮고, 생산성은 높았다.

한마디로 미국 노동자들이 이렇게 훌륭하니,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얘기였다.

-ㅋㅋ이젠 로날드까지 은성차 노조를 까네.

-인간적으로 은성차 노조는 반성 좀 해라. 하는 짓 보면 회사가 안 망하는 게 신기하다.

-은성차는 경영진이나 노조나 하는 짓이 똑같음.

-재작년도 파업, 작년도 파업, 올해도 파업. 내년과 내후년도 파업한다는 데 내 전 재산을 건다.

-은성차 생산직 연봉 거의 1억 아님? 나도 은성차에서 일하고 싶다.

-은성차도 웃긴 게 협력업체인 우송기업 노조 파괴하려고 별짓 다해놓고선, 정작 자기네 노조한테는 꼼짝도 못함.

졸지에 저격을 당한 은성차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기본급으로만 따지면 한국 임금이 낮고, 고급차를 주로 생산하는 한국 공장의 특성상 HPV(Hour Per Vehicle,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 시간)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조위원장 명의로 로날드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은성차 노조위원장 클래스에 지렸다.

-각하도 못하는 그 어려운 일을 노조가 해낼 것인가?

-보고 있나, 로날드? 자네를 능가하는 권력자가 여기 있네.

-꿇어라, 로날드. 이게 너와 은성차 노조의 눈높이다!

-(사진 첨부) 조지아공장 노동자와 울산공장 노동자의 급여명세표 입니다. 기본급은 한국이 조금 낮지만, 특근과 각종 수당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국민소득과 노동자 평균임금을 따져보면 차이는 더욱 벌어집니다.

은성차 노조위원장의 사과 요구는 인터넷에서 각종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유행처럼 번졌다.

한국 보수언론들도 로날드의 투윗을 거론하며, 무리한 파업을 자제하고 노사가 협력해야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은성차 노조는 올해도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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