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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7

157화 휘날리는 망토 (1)

157화 휘날리는 망토 (1)

탈리야는 온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카인의 악랄한 공격으로 그녀는 상처 입었고, 주저앉았다.

“너는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어.”

카인의 낮은 목소리가 탈리야의 고막을 흔들었다. 이제는 목소리마저 아버지의 것처럼 들린다. 그것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되살렸다. 형제의 죽음. 지독했던 학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버지······.’

탈리야는 망토에 손을 가져갔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고, 탈리야는 이내 굴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을 압도하는 두려움이 그녀의 손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은 카인의 대응에 의해 중단됐다. 그가 발현한 화염 마법이 탈리야의 망토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탈리야는 공포감에 짓눌렸다.

“사, 살려주······.”

사실 탈리야의 몸에는 상당량의 마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의지의 통제력을 잃은 탈리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망가져 삐걱거리는 인형일 뿐이었다.

그런 탈리야를 보며 카인이 처음으로 감정의 변화를 드러냈다.

‘큭큭큭큭큭······.’

탈리야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눈앞에 보이는 얼굴은 아버지도, 카인도 아니었다. 아니,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저런 무서운 얼굴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악마다.

악마의 손이 펼쳐진다. 시커멓게, 활활 타오른다. 하얗게 풀린 탈리야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떨어졌다.

“그만. 너의 승리다. 카인.”

악마의 손에서는 마법이 발현되지 않았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그의 손목을 쥐고 있다. 악마의 얼굴이 서서히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카인은 표정 없는 눈으로 에스틸리아 교수를 돌아봤다.

그의 손에서 마법의 기운이 사그라졌다. 탈리야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몸을 떨었다. 카인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며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탈리야.”

탈리야는 바들바들 턱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번 데미안을 건드리면.”

카인의 눈동자는 코앞에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연기와 수증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경기가 중지된 건가?”

“마법은 계속 발현 중인 거 같은데?”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그들의 말처럼 연기와 수증기로 뒤덮인 경기장은 카인과 탈리야의 모습을 지웠다.

그러나 내 눈에는 보인다. 내가 지닌 관찰력 특성과 자연 감응 적성은 마치 적외선 카메라와 유사한 방식으로 마력의 흐름을 눈앞에 그려냈다.

‘탈리야가 공격하고, 카인이 저지한다.’

에스틸리아 교수는 절반쯤 마법을 완성한 채로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다. 흐름은 카인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탈리야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경기장의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너무 갑작스럽게 탈리야가 무너졌다.

물론 카인은 놀라운 기술을 선보였다. 무려 일곱 차례나 연속적으로 마법을 발현해 탈리야의 블러디드를 막았다. 아직도 심장에서 떨림이 느껴진다. 나는 카인이 발현한 기술을 알고 있다.

‘주문 가속.’

훗날 고위 마법의 극한에 닿은 마법사들이 긴 시전 시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시키는 기술. 주문 가속을 활용하면 에스틸리아 교수보다 빠르게 주문을 읊을 수 있다. 그 미래의 기술을 카인이 구현한 것이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 세계의 카인은 소설에서의 모습보다 위험하다. 소설 속 카인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이자, 소서러였다. 그런데 이 세계의 카인은 마법사로서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독보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 보여. 어떻게 된 거지? 데미안.”

루나는 아까부터 기도하는 자세로 경기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리엘과 미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돌연, 경기장에 가득했던 매연이 옅어지며 시야가 맑아졌다. 마법을 발현해 공기를 정화하는 에스틸리아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곁에는 카인이 서 있었다. 들것에 실려 가는 탈리야도 보였다.

“경기 종료. 아르카넘 듀얼의 우승자는 카인 시니야카입니다.”

관객들은 경기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해 화가 난 듯했지만, 이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환호성을 질렀다.

“우승이야! 카인이 우승이야 데미안!”

루나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아리엘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평소의 귀족적인 모습이 사라진, 소녀처럼 귀여운 모습.

“······나, 치유실에 다녀올게.”

미아가 몸을 일으키자 루나와 아리엘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나, 나도 같이 갈게!”

“아니야. 루나는 결승전을 치러야 하잖아. 나 혼자 가는 것이 좋겠어.”

아리엘에게도 비슷한 말을 남긴 미아는 애써 웃으며 관객석을 뛰어 내려갔다.

“아······. 바보 같이 들떠 가지고선······.”

루나가 주먹으로 콩콩 머리를 때리며 자책했다. 아리엘도 죄책감이 짙게 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얼굴은 카인이 관객석에 올라오자마자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루나와 아리엘이 축하 인사를 건넸고, 이어 루나는 어떻게 이겼는지 나중에 꼭 설명해 달라며 카인을 다그쳤다.

“알았어 루나.”

“약속이다? 꼭?”

“응.”

고개를 끄덕인 카인이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찌어찌 이기기는 했네. 미아는 치유실에 간 모양이지?”

나는 물끄러미 카인을 마주 봤다. 녀석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일까, 나는 괜히 심술이 나 되는대로 내뱉었다.

“이제 무도회 때 누구를 지명할지 고민하고 있겠네.”

카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저 표정이 녀석의 진실한 감정인지 확인할 수 없다.

나의 머릿속에 달빛나무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와 함께 가자. 데미안.’

그날 나는 카인의 과거를 봤다.

그뿐만 아니라 카인의 시선을 공유하고, 감정을 느꼈다. 마치 나 스스로 카인이 된 것처럼.

[새로운 스킬 해금을 위한 조건이 충족되고 있습니다.]

그때 발생했던 메시지. 그날의 신비로운 경험과 연관이 있는 듯한.

이전에도 나는 고민했었다. 저 ‘새로운 스킬’은 지금도 조건을 충족시키는 중인 걸까. 아니면 완전히 기울어버린 천칭의 여파로 조건 충족을 멈춘 상태인 걸까.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저 스킬이 ‘리메이크’처럼 봉인된 상태라는 거다. 또한 나는 저 스킬이 리메이크와 같은 ‘특수 스킬’일 거로 예상한다. 천칭이 오른(현실)쪽으로 완전히 기운 후 사용할 수 없게 된 스킬은 특수 스킬인 리메이크뿐이니까.

그리고 나는 현재 카인의 감정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저 봉인된 스킬을 어떻게든 해금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위해 아스트레아의 천칭을 왼쪽으로 기울이는 것에 대해 다시 고민해 봐야겠다.

***

“잠시 후, 블레이드 듀얼의 결승전이 시작됩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에 우레 같은 함성이 잇따랐다.

“어이, 샬리! 내 제자가 이길 테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라고! 이번 듀얼의 우승자는 무조건 세실리아 크라소타다! 으하하하하!”

자크의 호언장담에 샤를로트가 답했다.

“천만에. 내 제자가 이길걸.”

“뭐라고?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단상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목소리 좀 줄이는 게 어때. 아까부터 교장이 심술 가득한 눈으로 너를 주시하고 있다고.”

자크가 흠칫 놀라 교장을 돌아봤다.

샤를로트는 관객석에서 내려오는 루나와 세실리아를 보고 있었다. 그동안 루나는 열심히 훈련했다. 그리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인한 육체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샤를로트의 시선이 세실리아에게 옮겨졌다.

루나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실리아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4강전에서 앙투안을 쓰러뜨리던 저 아이의 몸놀림은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결과가 어찌 되든, 블레이드 듀얼 역사상 최고의 경기가 되겠지.’

경기장에 올라선 루나와 세실리아가 서로를 향해 마주 섰다.

***

세실은 맞은편의 루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루나는 역시······ 데미안을 좋아하는 거지?’

미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게다가 미아는 자신도 데미안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말들이 세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데미안을 좋아한다니······, 아, 아니야!’

‘······거짓말.’

세실은 루나를 이기면 무도회의 상대로 데미안을 지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뒤숭숭했다. 루나와 데미안의 관계에 대한 의문, 그리고 미아의 갑작스러운 고백이 세실을 괴롭혔다.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관객석에서는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세실리아. 세실리아. 나의 왕자님. 나의 공주님.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블레이드 듀얼 결승전, 시작합니다.”

세실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밀어내며 루나를 직시했고, 흠칫 놀랐다.

루나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부웅.

세실은 미끄러지듯 루나의 공격을 회피하고, 반격했다. 그러나 세실의 단검은 루나에게 닿지 않았다. 루나는 안정적으로 세실의 공격을 회피했다.

예상한 바다.

루나는 강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당하는 건 이쪽이다.

‘루나는 역시······ 데미안을 좋아하는 거지?’

세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미아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세실을 괴롭혔다.

세실은 마음의 여유가 소모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초조해졌다. 침착함과 인내심은 살수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것이 옅어지고 있다.

카앙! 바람처럼 쇄도하는 루나의 검을 세실은 단검을 뻗어 막았다. 세실 자신도 놀랐다. 흐트러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첨예하게 벼려지며 빈틈없는 방어 태세로 전환됐다. 뼛속 깊숙이 각인된 살수의 본능.

“이잇······!”

루나가 놀란 표정으로 이를 악문다. 루나는 감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난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데미안을 좋아한다니······, 아, 아니야!’

안 돼 세실리아. 지금은 어제의 일을 떠올릴 때가 아니야. 당장 머릿속에서 지워.

세실은 크게 단검을 휘둘러 루나를 밀쳐냈다. 그러고는 의지를 집중하며 달렸다.

피윳.

세실의 몸이 흐릿해지며, 고속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루나가 볼 수 없는 사각지대를 누비며 달리고 있었다. 은월섬에서 단독 훈련을 하며 완성한 기술. 그림자 도약과 달리 영력을 발현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아버지는 이것을 ‘환영질주(幻影疾走)’라고 불렀다.

시이잇! 시이이이잇!

날카로운 바람 소리는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위협이자, 목을 죄는 경고였다. 세실이 환영질주를 처음 사용한 것은 앙투안과의 4강전에서였고, 앙투안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

루나가 당황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기회를 포착한 세실의 단검이 루나의 옆구리를 노리며 쏘아졌다. 그 순간, 세실은 싱긋 미소하는 루나와 눈이 마주쳤다.

“거기 있었구나? 세실리아.”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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