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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8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58화

52장 공방(3)

헬하임의 파편.

북유럽 신화에는 ‘라그나로크’라는 멸망의 날이 있다.

헬하임은 여신 ‘헬’이 지배하는 곳으로 게임 에티우스에서는 라그나로크가 왔을 때 이 대륙 위에 올라 대지를 죽은 자들의 세계로 물들였다고 한다.

라그나로크 이후 죽은 자들의 세계였던 헬하임이 물러났지만, 세계가 수복되는 속도가 빨라 미처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헬하임의 세계가 조각처럼 남았다.

그것이 헬하임의 파편.

‘그 정보를 들었을 때 헬하임의 파편이라는 건 땅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어. 헬이 발을 디디고 남은 자리일 거라고.’

그러나 에스더의 말대로 헬하임의 파편이라는 것이 정말로 검은 호수라면.

내가 갖고 있는 이 ‘흑천’이, 정말로 파편의 일부일지 모른다.

‘정말로 에스더에게 감사해야겠군.’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물었다.

“그 정보는 어디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헬하임의 파편이 호수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플레이어 대부분은 당장에 클리어에 도움이 안 될 듯한 정보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스터라는 캐릭터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아니니.

“질문은 내가 먼저 했다. 또한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키안을 면회할 수 있는 조건이다. 좀 전에 얘기했을 텐데?”

에스더는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내가 물어본 것이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추측이 적중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기서는 솔직히 말하는 게 낫겠다.

사실 헬하임의 파편이라는 게 나에게 이미 커다란 힌트고, 지금 중요한 건 키안이니까.

“내가 가진 이 목걸이 안에 검은 물이 들어 있는 건 맞지만, 난 이 물의 출처를 몰라.”

“출처를 모른다고?”

“던전에서 미스틸테인의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는 걸 어떤 모험가 파티가 발견한 거니까.”

그 후 모험가 파티는 이것을 경매에 올리고, 경매가 취소된 뒤에 귀족 회의가 열려 나는 미스틸테인이 가짜라고 증명했다.

그 미스틸테인을 흉내낸 가짜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검은 물, 흑천이다.

“나는 예란헤스에서 더 북쪽으로 나아간 적이 없어. 그건 경계 밖이잖아. 그런 미친 짓은 못하지. 그리고 귀족 회의에 대해서는 그 당시 참여한 귀족들은 전부 알 거야.”

“……흐음.”

에스더는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아마 에스더도 귀족 회의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거다. 내 목걸이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걸 보니 나에 대해서 조사를 꽤 한 것 같고, 당시의 귀족 회의는 꽤 유명했으니까.

“좋아. 믿도록 하지.”

“그러면 키안을 만나게 해줘.”

“대체 키안에게 용건이 뭐길래 여기까지 온 건가?”

나는 이 질문에도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포탈.”

* * *

“……그 정도면 뻔뻔함에 도가 텄네. 날 붙잡은 본인이 면회를 온다니.”

수화기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키안은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유리창 건너편에 있는 키안은 안색이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이곳의 숙식에 문제는 없는 듯했다.

“알아주어서 다행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키안의 모습을 살폈다.

‘역시 너무 어린아이야.’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 정도 되었을까. 이 세계에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동안이 많이 있지만, 키안은 진짜로 어리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인더스의 수뇌부로 활동한다는 게 쉽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서 뭐하러 왔어? 놀리러 온 거야?”

“포탈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포탈?”

키안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마 생각지도 못한 용건이겠지.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적을 만나러?”

“……적이라.”

나는 그 단어에 웃었다. 그것이 키안의 심기를 안 좋게 한 모양이었다.

“뭐가 웃겨.”

“너, 여기에 오래 안 있을 거라며.”

“그래. 그러니까 곧 나가면, 너부터 죽일 거야.”

키안이 살기 어린 눈빛을 내게 향했다. 허나 그 살기는 흐트러져 있다.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에스더의 말에 따르면 키안은 범죄 이력이 없다. 헬드레가 그에 관한 기록을 철두철미하게 지워버렸으니.

지금 키안이 옵시디언에 갇혀 있는 건 인더스 내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의 죄를 여러 방면에서 검토하고 있지만, 헬드레의 성격 상 아마 발목이 잡히진 않겠지.

키안 본인도 아마 사소한 경범죄 정도는 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물건을 훔쳤다든가, 몰래 잠입해서 도청했다거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니 범죄 계획에 적지 않은 가담을 했겠지.

허나.

“키안. 너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어?”

“…….”

“사람을 죽인 적이 없으면서 나는 어떻게 죽이려고?”

“당신이 내 첫 살인이 될 거야.”

키안은 지금껏 그 손에 피를 묻혀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나보다도 깨끗하다고 할 수 있다.

세르프 다니엘은 내가 죽인 거나 다름 없고, 난 그 외에도 많은 적들을 상처 입혔고 죽기 직전까지 몰았으니.

“여길 나오면, 평범하게 사는 게 어때. 다른 애들처럼.”

“안 돼. 난 혁명을 위해 살았어.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면서?”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사람을 죽이는 다른 사람들을 내가 도왔으니까.”

키안의 생각은 확고한 듯했다.

나는 또 물었다.

“네가 말하는 혁명이란 게 뭐야?”

“황제가 죽는 거. 평민들의 부당한 박해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거.”

마치 정해둔 대답처럼 바로 튀어나온다. 혁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번 들어왔고 또 여러 번 말했겠지.

나는 눈을 가라앉혔다. 잠깐 주위를 확인했다. 그로벨을 만났을 때처럼 여긴 감시관이 있다. 그러니 아무 얘기나 마구 할 수는 없지만.

……흠, 뭐 상관없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건 어차피 이뤄질 거야.”

“뭐?”

“너, 황제 바르텔로 테르스트의 얼굴 본 적 있어?”

내 질문에 키안의 말이 멎었다. 잠시 멍해지다가, 그 미간이 모였다가, 또 눈가를 찌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상황에서 말하긴 뭐하지만 꽤 귀여운 몸짓이었다.

“그거 무슨 뜻이야?”

“바르텔로가 황후인 필리 테르스트에게 대부분의 실무를 맡긴 지 얼마나 지났다고 생각해?”

“…….”

“바르텔로는 이미 쇠약한 지 오래야.”

이건 황실 극비의 정보다.

너무 극비라서, 내가 여기서 이렇게 떠들어대봤자 사실 확인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극비.

지금 내가 하는 얘기도 곧 헛소리라고 일축될 것이다.

“쇠약…….”

“그래. 어차피 얼마 안 가서 황제는 죽어. 네가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황제가 죽으면 다음 황제가 오를 뿐이야. 신분은 여전하고, 평민들의 아픔도 여전해.”

“그래. 다음 황제, 살레 테르스트가 오르지. 제국 최초의 여황제.”

“거봐, 똑같잖아.”

“그 여황제가 신분제를 없앨 거야.”

키안의 얼굴이 더 찌그러졌다. 음, 아이의 얼굴은 저 정도로 찌그러져도 귀엽구나. 키안의 외모 덕인가.

“없앤다기보다, 없애는 흐름이 된다고 할까.”

“무슨 뜻이야?”

“인류가 계급을 나누는 시기도 끝나간다는 거야.”

키안은 모르겠지만, 에티우스의 긴 역사로 보았을 때 평민은 점차 그 권리가 향상되어왔다. 애초에 평민 단체라는 명목으로 인더스가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 세계에서 신분제는 끝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신분제가 무너지는 신호탄이 되는 것이 바로 ‘아스터 에반스’. 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재능과 인성, 잠재력을 전부 갖춘 아스터는 앞으로 인류가 마물을 막아내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할 거고, 귀족 중에서 그에 비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 1위인 에든 하멜롯도 평민이라 그 조짐은 있어왔는데, 이후 아스터가 여러 사건을 겪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괜히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네가 원하는 건 ‘혁명’이지?”

“…….”

“사람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잖아.”

“…….”

키안은 내 말에 긴 침묵을 지켰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다가 내 눈치를 보는 게, 내 말을 의심하는 것이 반, 믿어보고 싶은 게 반인 것 같다.

“……그럼, 할아버지는 뭣하러 그 고생을…….”

“너도 알고 있잖아. 헬드레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길 바랐어. 그의 혁명은 말 그대로 쿠테타야. 정권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정권을 잡을 뿐이지.”

키안은 머리가 좋은 아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할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그녀라면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밀에는 금이 가기 시작하니까.

다만 키안은 그게 차라리 나았다고 믿었겠지. 헬드레가 정권을 잡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 될 거라고 믿은 거다.

그러나 그 헬드레는 이제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난 네가 꿈꾸는 세상은 별 관심이 없어. 제국은 내부의 문제도 있지만, 외부의 문제는 더 심각하니까. 나에게는 신분제보다는 아직도 영역 밖에서 득시글거리는 마물들을 처리하는 게 더 중요해.”

“……마물.”

“네가 여기를 나와서 신분제를 없애기 위해, 혹은 제국의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그것도 좋겠지. 넌 똑똑하니까. 신분제가 사라지는 게 더 빨리 앞당겨질 수도 있고. 하지만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어.”

나는 키안의 눈을 보았다. 어느새 키안은 나에 대한 살기와 적의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네 적이 아냐.”

“…….”

인더스가 해체된 지금, 나에게 키안 개인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저쪽은 내가 해놓은 짓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다만, 적어도 나만큼은 키안을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키안은 너무 어리니까. 함부로 상처를 주는 것도 망설여지고 만다.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천천히 생각해. 나중에 또 올 테니까.”

키안은 내가 설명을 시작한 이후부터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포탈에 대해서는 다른 방편도 많다. 예를 들면 빈키스 선생에게 물어본다든가. 아니면 유명한 마공제를 만드는 회사 ‘히치콕’에 들러볼까.

수화기에서 귀를 떼고 내려놓으려던 그때, 키안은 내게 손바닥을 펼쳤다.

“──포탈은 마법진이야.”

“마법진?”

키안이 펼친 손바닥을 자세히 보니, 분명 무언가 문신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인더스의 수뇌부들은 모두 이 마법진을 손바닥에 새겨. 이것만 있으면 포탈은 가용할 수 있어. 하지만 마법진을 인체에 새기는 건 너무 위험하고, 손바닥이라는 작은 면적에 정확히 그리기 위해선 그만한 기술자가 필요해.”

“…….”

“그러니까 우리는 마법의 재능이 있든 없든 마나만 있으면 누구든지 포탈을 쓸 수가 있지만, 부외자인 너는 포기하는 게, 이봐, 듣고 있어?”

나는 키안이 펼친 손바닥에 새겨진 문신을 말없이 보았다.

키안은 내게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키안이 내게 마법진을 보여준 이 순간, 나에겐 포탈에 대한 문제가 전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마워. 도움이 되었어.”

“응? 뭐, 그래. 아무튼 포탈은 술식 영창으로도 가능하니까, 다른 사람을 알아봐.”

키안은 그렇게 말했으나,

다른 사람을 알아볼 필요 따위는 이제 없었다.

* * *

저택에 돌아온 나는 또다시 차를 타고 오두막에 도착했다.

운전수는 나를 태워준 뒤 얄짤없이 저택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붙임성 없는 운전수다.

“자, 그럼 먼저.”

나는 공방 안에 저장해놓은 ‘포탈’의 마법진을 열었다. 방식은 메노소르포 때와 같았다. 포탈은 그 크기가 훨씬 작으니 손쉬운 일이었다.

마법진을 발동시키자 포탈이 열렸다. 분명 인더스 녀석들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다.

“이곳을 거점으로 설정해두면 다른 곳에서 여기 오두막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거지.”

지금은 오두막으로 돌아갈 때만 쓸 수 있지만, 언젠가는 양방향 포탈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포탈보다는 ‘게이트’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오두막 근처의 적당한 빈 터를 찾았다. 사실 빈 공간이 넓을 필요는 없었다.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

“메노소르포.”

나는 이걸 하늘에 띄울 거니까.

허공 직조

등급 – 고유

공방

나는 하늘 높이 공방을 직조했다.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건축물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지만, 괜히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웅장했다.

그리고.

“역시 있구나. 아래층.”

나는 저택에서 직조했을 때보다 한참 거대한 크기를 보며 웃었다.

본래라면 지하 밑으로 숨겨져 있어야 할 공방의 지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그 크기가 내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지상으로 3층짜리의 공방의 지하는, 단 1층임에도 그 높이가 어마어마했다.

저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결국 ‘초월’ 등급의 보상이라는 건 무엇일지.

“가볼까.”

나는 마나를 두르고 천천히 떠올라, 공방의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AWR,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Etius, a game that no one has cleared. [GAME OVER] The moment all possible strategies failed, “Student Frondier ?” I became an Extra in the game, I became Frondier! [Weaving] •Saves and replicates images of objects. However, it is an illusion. All I have is the ability to replicate objects as virtual images! [Main Quest: Change of Destiny] ? You know the end of humanity’s destruction. Save humanity and change its fate. “Change the fate with this?!” Duplicate everything to carve out my dest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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