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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8

157. 약혼관계 – 사라진 여자

[ 레나 키우기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나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웅성거리는 시민들, 부서진 난간, 운하로 떨어지면서 가면이 벗겨진 소드마스터까지도 삽시간에 멀어져갔다.

턱이 부서져 흉측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누구의 시선이든 잡아끌 외견이었지만 레오는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사라진, 너무나도 익숙한 육체가 운하에 가라앉고 있었다.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될 머리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

어둠이 깔렸다. 레오는 손가락 틈새로 사그라드는 레나의 감촉을 망연자실하게 흘려보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사람이란 이리도 쉽게 죽는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이 부지불식간에 끝나버릴 수 있단 말인가.

머리가 쪼개질 것만 같다.

급격히 차오르는 분노가, 모든 게 나 때문이라는 자책이, 포개어진 살결로 전해지던 뜨거움과 어울리지 않게 무척 수줍어했던 그녀의 미소가 그의 정신을 쥐어뜯었다.

허억.

하지만 레오 덱스터는 견뎌냈다. 숨을 가쁘게 집어삼키며 제정신을 유지해냈다.

나까지 넋을 놓아버리면 끝장이다.

지난번 메시지도 읽지 못했고, 이번 회차에선 민서에게 전해줘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레오는 조각나지 않으려 안간힘썼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글자들이 떠오르는 가운데, 레나의 사진이 올라서자 그는 기어이 울부짖고 말았다.

[ 레나 아이나르 ]

[ 최종직업 : 아이나르 부족의 대전사 ]

[ 결혼 상대 : 레오와 약혼 ]

[ 레오 덱스터 ]

[ 최종직업 : 바르바토스의 사도 ]

[ 결혼 상대 : 레나와 약혼 ]

[ 약혼관계 엔딩 : 신혼여행 ]

– 에이브릴 성에서 태어난 레나 아이나르는 행복한 유년기를… (중략) …경기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레나는 레오를 다짜고짜 공격하는 소드마스터,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에게 몸을 던졌다. 레오를 구하려다 백작의 검에 명을 달리했다. –

– 수도 바르나울에서 태어난 레오 덱스터는 행복한 유년기를… (중략) …레오는 미쳤다. 몰려든 시민들을 무차별로 살해해 버렸다. 그 시체들로 바르바토스의 제사상을 마련한 그는 정식 사도가 되어 운하에서 기어 나온 자코브 모드레드 백작과 싸우다 죽었다. –

[ 소꿉친구 시나리오 엔딩이 변경되었습니다. ]

+ 데모스 마을에서 태어난 레브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중략) …사도가 된 레브는 바르바토스에 의해 정신이 삼켜져 갔다. 그는 네비스의 모든 인간을 죽인 뒤, 레아를 데리러 제롬 신성왕국으로… +

레나의 잘린 목이 사진의 절반을 채웠다. 엔딩 메시지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이 보란 듯이 그려져 레오의 가슴을 후벼팠다.

허망하게도 그녀의 얼굴엔 어떤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목이 날아가기 직전 이를 악물었는지 입술이 뭉개질 지경으로 맞물려 있었으나, 활짝 열린 동공은 이 사람이 죽었음을 알려줄 따름이었다.

레나 이 멍청아. 바보 같은 여자야. 왜 따라왔어. 왜! 도망치라니깐…

둥그런 구체가 잠시 진동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떤 소리도, 절규도, 이기적인 원망도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이어진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허공에 떠오른 글자들과 사진이 위로 사라져갔다. 자신도 곧 사라질 것을 깨달은 레오 덱스터는 가까스로 중얼중얼, 민서에게 전언을 남겼다.

들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오 덱스터가 사라지자 민서가 급부상했다. 산산이 조각났던 그가 엔딩을 맞이하며 원 상태로 돌아왔으나, 민서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 안 돼… 그만해. 제발. 애들은 내버려 둬. 할아버지도. 으히히히히, 뭐 어때 재미있잖… 아아아악!’

피. 피. 피. 피. 그리고 피.

사방을 둘러보아도 피였다. 그는 사람을 끔찍하게 살해하곤 달콤하게 내리는 신력에 행복해하다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오 덱스터의 전언이 전달된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어둠이 깔려 있었기 때문일까. 민서는 참혹한 살해 현장을 떠올리면서도 위로 반쯤 사라진 엔딩 크레딧을 필사적으로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가 꾀꼬닥, 다시 정신줄을 놓아버릴 무렵에 다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레나 키우기를 클리어하지 못하셨습니다. ]

[ 레오 당신은 소드마스터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그 업적으로 {검술.4v : 자코브류(流)} 능력을 드립니다. ]

[ 다시 시작됩니다. ]

“오빠… 나 배고파…”

정신을 차려보니 오르빌이었다. 순간 앉은 자리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난 레오는 황망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저분한 거리. 축축한 엉덩이와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기갈까지.

‘돌아왔구나.’

코를 찌르는 오물 냄새를 맡으며 레오 드 예리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팔을 들어보니 앙상할지언정 썩어있지는 않았다.

오리아스(Oriax).

나는 놈의 저주에 죽었다. 혼자 있을 레나에게 가겠다고 땅바닥을 기던 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실패했군.’

다른 이들의 기억이 느지막하게 달라붙었다. 사도가 된 레브와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보려 애쓴 레오 덱스터의 기억이었다.

“오빠. 목도 말라…”

끄으응-

레오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검이 허리춤에 덜렁 매달리고, 주머니에 {초기 자금} 몇 푼이 짤그랑,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물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철푸덕 앉아있던 레나가 팔을 들었다. 바르바토스의 문양이 새겨지지 않은 레오의 왼손바닥에 동생의 작은 손이 힘없이 얹혔다.

“레나야. 우리 밥 먹으러 가자. 그동안 힘들었지?”

레나가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지만, 레오는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나 없이 홀로 남겨진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비록 공작위까지 올랐지만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지금보다도 그녀는 더 외롭고 힘겨운 나날을 보냈을 터였다.

레오는 비틀거리는 동생을 부축했다. 동생의 얇디얇은 허리를 붙들고 행여나 돌부리에 걸릴세라 그녀의 발디딤을 도와주었다.

레나는 오빠의 그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가…

“응? 오빠. 이게 뭐야? 이건 또 뭐고?”

검과 팔찌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아침에 주워온 건데, 이따가 밥 먹고 보여줄게.”

레오는 우선순위를 확실히 했다. 레나는 “응.” 더는 묻지 않았다.

이쪽이었던가… 레오는 민서의 기억을 긁었다. 골목길을 좌우로 한 번씩 꺾어 시장통으로 나아갔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그는 닭고기 집 주인에게 은화를 보였다. 거지 남매의 지저분한 옷차림을 못마땅하게 흘겨보는 상인에게 삶은 닭고기를 달라고 부탁했다.

“양념은 필요 없고?”

“네. 삶은 것이면 충분해요. 닭을 삶고 우러나온 국물이랑 소금만 조금 주세요.”

“밍밍해서 맛이 없을 텐데? 나중에 맛없다고 딴소리하면… 알겠다.”

레오가 은화를 미리 건네주자 주인은 군말 없이 돌아섰다.

“오빠, 그건 어디서 난 거야? 그게 돈이라는 거지?”

동생이 몇 번이나 했던 질문을 똑같이 반복했다. {초기 자금}을 보거든 반드시 튀어나오는 동생 레나의 반응이었다.

“그걸로 집도 가질 수 있어?”

레오는 동생의 몰상식한 질문들을 적당히 받아주었다. 예전에 민서가 내놓았던 답변을 답습하는데, 빠르게 준비되어 나온 삶은 닭고기가 레나의 입을 가로막았다.

암냠냠냠냠.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여기 소금도 있어. 퍽퍽하면 국물도 좀 마시고.”

양념이 전혀 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다는 듯 레나는 몸통을 허겁지겁 파먹었다. 소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뭐, 빈속에 자극적인 게 들어가서 좋을 건 없으니까. ─ 생각한 레오는 자신도 부지런히 닭고기를 뜯어 먹었다.

닭 한 마리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닭집 주인은 뭐 저런 거지새끼들이 다 있을까 하는 눈으로 남매를 바라보았고, 기름기가 둥둥 뜬 국물을 나눠마시던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이 약간 모자랐는지 소금을 손으로 찍어 먹으려 하는 동생을 잡아끌었다.

밖으로 나오자 동생이 다시 질문했다. 뒤에서는 상인이 그들이 먹다 남긴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오빠. 아침에 주워왔다는 그것들은 뭐야?”

“이건 팔찌고 이건 검이라는 거야. 무긴데… 위험하니까 눈으로만 봐.”

레오는 구슬이 두 개밖에 남지 않은 팔찌와 하나뿐인 귀속 아이템, 검을 두 치가량 뽑아 보여주었다. 검집만 한 번 만져보게 하고 검날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약간 뾰로통해진 레나가 말했다.

“이것들을 주워 온다고 아침에 물을 못 떠 왔구나.”

“…”

그러고 보니… 레오는 의문이 생겼다. 민서가 여태껏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대목에 의아한 점이 있었다.

– 나는 왜 아침에 물을 떠 오지 않았을까?

의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지점. 구정물이 고여 있는 지저분한 골목길은 우리의 집이 아니었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몇 골목 떨어진 곳이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한 모양이었다.

‘물도 안 마시고… 나는 어딜 가던 중이었을까?’

그랬던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집을 떠나올 이유가 없었다.

비가 아침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를 맞으며 이동한 것 같진 않았고, 출발하기 전에 비가 왔다면 허름한 집 앞에 놓인 컵으로 빗물을 받아먹었을 터였다.

또, 무슨 일이 있어서 아침에 물을 떠 오지 못했다면, 그래서 물을 마시러 가는 중이었다면 컵을 집에 두고 올 이유가 없었다.

“레나야. 혹시 내가 너한테 아침에 어디 가자는 말을 했었니?”

레오가 물었다. 하지만 레나는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어디 가자고만 했잖아. 그러다가 비 오니깐 비 그치면 먹을 거 찾으러 가자면서.”

“…그랬지.”

레오는 의문을 접었다. 이미 잊어버린 과거의 일이라 알아낼 방도가 없어 보였다.

“지금은 어디 가는 거야?”

“…갈 곳이 있어.”

동생이 “치이.” 입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뭐라 말해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카시아를 찾아가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지라 레나에게 미리 알려줄 내용이 없었다.

[ 업적 : 카시아가 목숨 바쳐 지킨 남자 – 카시아에게 큰 호감을 얻음. ]

더군다나 카시아는 ‘큰 호감 업적’ 때문에 달달달 떨며 갖은 호의를 다 베풀 것이었다. 받는 사람이 의심할 정도로 뭐든 다 내주려 한다.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것도 우습고, 좋지 않았다.

레오는 익숙하게 걸음을 옮겼다.

벌써 몇 번이나 지나다닌 길이었다. 깡패로 일하면서 자주 돌아다녀 보기도 한 길이어서 과장 조금 보태면 여기선 눈 감고도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카시아한테 도움을 받지 않았던 적이 없네.’

거지남매 첫 회차에서 그녀는 약방 앞에 쓰러진 우리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었었다.

두 번째 회차에선 (결말은 좋지 않았지만) 오갈 데 없는 우리에게 방을 내어주었고, 세 번째 회차에서는 오베르를 소개해 주며 라우노 패밀리에 들어가려는 우리의 신원을 보증해주었다.

그리고 그때, 카시아는 자신을 밀쳐버린 남자를 살리고자 이렌느라는 기사에게 몸을 던졌다. 바로 직전 회차의 레나 아이나르처럼 목이 날아갔었다.

고마운 여자.

그랬으면서도 바라던 게 고작 한 번의 포옹이었던 안타까운 여자다.

‘이번엔 꼭 어떤 보답을 해줘야겠다. 또 돈을 벌어오게 만들지 않고.’ ─ 라 다짐하면서 레오는 가죽 거리 골목길을 꺾어 들어갔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

레오의 발걸음이 멈췄다. 카시아의 가게가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이 골목길 중간에 있었어야 할 신발 가게 자리에는 잡동사니가 쌓인 창고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당황한 레오는 잘못 찾아온 걸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위를 맴돌았다. 신발 가게였어야 할 창고 앞으로 돌아와 멍청해졌다.

카시아가 사라졌다.

심지어 시나리오 보상으로 얻은 절대적인 능력, {추적술}로도 그녀의 위치가 잡히질 않는 것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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