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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8

158화 휘날리는 망토 (2)

158화 휘날리는 망토 (2)

샤를로트는 세실리아의 움직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러나 루나의 눈에는 상대가 경기장에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완벽하게 루나의 사각지대를 달리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자크에게 배운 건가? 아니다. 자크는 단검을 능숙하게 다루는 전사이지만 저런 움직임을 보인 적은 없다.

그렇다면 저것은.

‘세실리아 크라소타의 본래 전투 방식.’

누구에게 배운 것일까. 샤를로트는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전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루나와 세실리아는 같은 성씨를 쓰고 있다. 그들이 한 스승에게 배웠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루나와 세실리아는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달라진다.

“거기 있었구나? 세실리아.”

세실리아의 단검이 뒤로 튕겨 나갔다. 루나는 세실리아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았다. 그동안 루나는 모래벌판을 달리는 훈련만 한 것이 아니다. 블레이드 듀얼을 앞두고 샤를로트에게 집중적인 지도를 받았다.

예상했고, 또 기대한 일이었지만 샤를로트는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잘했다! 사랑스러운 내 제자!”

***

세실은 당황했다. 루나의 방어도 놀라웠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루나의 근력이 강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카아앙!

루나의 반격에 세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단검으로 막았지만, 원심력이 실린 검의 위력은 대단했다. 얼마간 바닥을 구른 세실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

루나는 다시 코앞에 있었다. 그녀의 맹공이 시작됐다. 세실은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루나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도망가려 하면 따라붙고, 피했는가 싶으면 또 다른 공격이 날아 들어왔다.

세실의 눈이 부릅떠졌다.

오랜만이었다.

이 느낌은 마치.

‘쿠훌린.’

은월섬의 대나무 숲에서 자신을 몰아치던 쿠훌린의 모습과 똑같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놀랍도록 쿠훌린을 닮았던 소녀. 루나는 점점 더 쿠훌린과 하나처럼 겹쳐 보였다.

세실의 입술이 따스한 미소를 그렸다. 쿠훌린이 그리워졌다. 리아논도, 디네베도, 트리스탄과 케일라도.

피윳.

세실은 다시금 환영질주를 발현했다. 루나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동그란 귀끝이 꿈틀대는 것이 보인다. 루나는 시각과 청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세실을 찾고 있다.

“거기구나!”

부웅! 루나의 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세실은 그림자처럼 그녀의 뒤로 넘어갔다.

“여기야. 루나.”

단검을 뻗자 루나는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막았다. 손목을 넘어 어깨까지 충격이 밀려든다. 이번의 공방으로 세실은 알았다. 루나의 근력이 강해진 이유.

‘발목.’

체구가 작은 루나는 쿠훌린처럼 싸울 수 없다. 그래서 루나는 그동안 무리해서 하체의 힘을 끌어내어 싸웠었다. 그렇게 피로가 누적된 루나의 몸이 임계점을 넘어 망가진 적이 있다. 아르카넘 홀의 입학시험 날.

그날 루나는 발목을 다쳤고, 이후 샤를로트 교수의 명을 받아 모래벌판을 달렸다. 허벅지가 점점 두꺼워진다며 툴툴대면서도 루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했다.

카앙! 캉! 카아앙!

세실의 단검과 루나의 검이 쉴 새 없이 맞부딪쳤다. 세실은 인정했다. 루나는 강해졌다. 영력을 발현하지 않는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루나에게도 은월의 오러가 있다. 날개를 꺾은 채 싸우는 것은 루나 또한 마찬가지다.

단검을 막은 루나가 뒤로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루나는 아직 세실의 노련함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데 돌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루나가 돌진하며 거리를 좁혔다. 마치 은월송환처럼.

‘이렇게 빠르다고?’

세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루나는 싸울수록 강해지는 것 같았다. 루나의 검이 날아든다. 간발의 차로 막는다. 다시 한번 날아든다. 세실은 몸을 옆으로 날리며 피했다.

“거기 서! 세실리아!”

루나가 무서운 기세로 추격해 왔다. 직각으로 방향을 꺾는데도 루나의 스피드는 줄어들지 않았다. 경이로운 발목의 힘이었다.

“가라 루나! 내 사랑스러운 제자야!”

아까부터 샤를로트 교수는 오리처럼 꽥꽥대고 있다. 원래 저런 사람이었나? 그녀를 견제하듯 자크 교수도 세실의 이름을 외치는 중이다.

루나의 몸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일순, 은월의 오러를 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루나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 태양 같이 빛나던 아이. 요정처럼 걷고, 따스한 햇살처럼 미소하던. 바람에 흔들리던 은빛 머리카락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뭐야. 세실리아가 밀리고 있잖아!”

“아니야! 호각이다!”

“저걸 봐. 세실리아는 방어에만 급급하다고. 루나 크라소타가 압도하고 있어!”

그러던 중 누군가 말했다.

“달빛의 공주······!”

그 말은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퍼져 나갔다.

“달빛의 공주! 루나 크라소타!”

“우와아아아아!”

그들의 눈에도 루나의 빛이 보이는 것일까. 그렇겠지. 루나는 특별한 아이니까. 세실은 루나의 빛이 강해질수록 자신의 어둠이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부터 종종 느껴왔던 감각.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어.

문득 세실의 귀에 데미안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은월섬에서 처음 루나와 겨뤘을 때도 이랬다. 많은 사람이 루나를 응원하고, 자신은 수세에 빠져 있었다.

세실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데미안과 눈이 마주쳤다. 세실의 눈이 커다래졌다. 데미안은 루나가 아닌, 나를 보고 있어.

‘세실! 지면 안 돼!’

그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세실의 눈빛이 살수의 것으로 바뀌었다.

‘너에게 블레오파드의 절기 하나를 알려주마.’

크쉬와 아버지가 전수하려 했던 절기, 그림자 폭풍. 세실은 아직 그림자 폭풍을 완성하지 못했다.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작은 퍼즐 조각 하나가 부족했다. 더욱 답답한 점은 그 조각의 정체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조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영력을 발현할 수도 없다. 애초에 영력의 발현 없이 가능한 기술이기는 한 것일까. 그때, 세실의 머릿속에 돌연 네몬이 떠올랐다.

“딴생각하는 거니? 세실리아!”

세실은 갑작스레 머릿속을 지배한 네몬의 기억에 얼이 빠졌다. 직전까지의 세실이라면 하지 않을 실수. 그러나 세실은 그녀답지 않는 실수를 했고, 그 대가로 단검을 잃었다.

루나의 검에 튕긴 두 단검이 허공을 난다. 그러나 세실은 놀라지 않는다. 마치 다른 이의 전투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다. 그 정도로 그녀의 머릿속은 네몬의 기억으로 잠식됐다.

‘재미있군.’

네몬의 음성이 귀를 울린다.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2년 전, 카인과 함께 페르디나를 향해 말을 달리던 중 세실은 네몬을 만났다. 모르가나의 검은 구체에 당한 카인이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였다.

세실은 네몬을 공격했고, 그는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세실을 압도했다. 당시 세실의 눈에는 네몬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다. 네몬은 블레이드를 꺼내지 않았고, 단검조차 들지 않았으며, 영력의 발현도 없었다. 즉, 세실은 그때 네몬의 움직임을 봤다.

세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왜 지금까지 잊고 있었을까. 그를 향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네몬의 발이 지면을 내디딘다. 이어 폭풍처럼 회전한다. 세실은 깨달았다. 부족했던 퍼즐 조각이 끼워졌다.

탓.

공중을 날던 세실의 두 발이 지면에 닿았다. 루나가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경기장의 모든 이는 루나의 승리를 확신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실은 이미 무기를 잃었으니까.

세실의 무릎이 굽어졌다.

상체도 낮게 숙였다.

포기하지 않은 눈동자는 루나를 똑바로 겨냥한다.

내디딘 디딤발이 회전을 머금는다.

차아아앙!

흡사 바람이 찢기는 소리였다. 세실의 몸에서 질풍 같은 압력이 터져 나왔고, 칼날처럼 벼려진 손날이 루나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루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경기장이 고요해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세실의 숨소리다. 왜 이렇게 숨이 찬지도 알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절기는 완성됐다.

그러나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발목이······ 부러졌어······.’

루나와 달리 세실은 발목을 집중적으로 단련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완성된 그림자 폭풍의 경지는 그녀의 육체 능력을 벗어난 것이었던 모양이다. 지독한 통증에 얼굴이 찌푸려진다. 아무래도 단순 골절이 아닌 듯하다.

루나는 쓰러졌다. 정통으로 맞았으니 쉬이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쪽도 더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세실은 통증을 견디며 꼿꼿이 몸을 세웠다.

루나가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

***

루나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뭐야······! 방금 그 공격은······!’

세실리아는 저만치에 가만히 서 있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내가 일어서는 것을 기다려주려는 걸까.

‘칫, 여유 부리기는······. 저런 공격을 숨겨두고······!’

루나는 안간힘을 썼다.

어서 일어나야 해. 이대로면 경기가 종료될지도 몰라. 아까부터 에스틸리아 교수가 뱀 같은 눈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루나는 빠득 이를 갈며 외쳤다. 그러나 외침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작은 소리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는 것이 보인다.

“일어설 수······ 있어요······!”

루나는 바들바들 몸을 떨며 상체를 일으켰지만, 이내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세실리아를 이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샤를로트 교수의 명령도 군말 없이 따랐다.

지기 싫어.

이길 거야.

이번에야말로 내가 이길 거라고!

“이야아아앗······!”

루나는 두 팔로 힘껏 지면을 밀어냈다. 넘어질 것 같다. 그러나 견딘다.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바닥이 점점 멀어지고, 발에 무게가 느껴진다.

“하아······! 하아······!”

허리도 꼿꼿하게 펴졌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세실리아······.”

루나는 검을 꼭 쥔 채 비틀거리며 발을 움직였다.

이 몸으로 제대로 싸울 수는 있을까.

하지만 움직이는 이상,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야.

“크흑······!”

옆구리의 통증에 루나는 신음했다.

저절로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그때, 우레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 ······ ······!”

“······, ······ ······, ······!”

귀가 먹먹하다.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어진 에스틸리아 교수의 목소리를 어렵사리 알아들은 순간, 모든 것이 또렷해졌다.

“······!”

루나는 고개를 들었다. 세실리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루나의 시선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세실리아의 어깨를 지나, 팔꿈치를 지나, 손목을 지났다. 그리고 손끝에는······.

루나의 눈이 부옇게 흐려졌다. 손을 들어 닦아내자 선명해졌다. 확실하게 보였다.

세실리아의 손에는 휘날리는 노란색 망토가 들려 있었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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