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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9

158. 거지남매 – 극장

“오빠, 뭐해?”

레나가 레오를 불러세웠다. 말은 안 했지만, 이 골목길 주변을 하릴없이 배회한 게 벌써 한참이었다.

어디 갈 데가 있다더니,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오빠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 창고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골목길 밖을 둘러보기를 반복하더니 이윽고 “이리로 와.” 내 손을 붙들곤 빠르게 걸어 나갔다.

나는 조용히 오빠를 따랐다.

가죽 냄새가 나는 길거리를 빠져나오자 널찍한 대로가 펼쳐졌다. 왼쪽 멀리에는 높은 돌담으로 겹겹이 쌓인 왕성이 근사하게 서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치밀하게 쌓인 성벽에 큼직한 대문이 달려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둘러본 레나는 오빠의 걸음걸이에 맞춰 종종종 걸었다.

오빠의 보폭은 넓다.

성큼. 성큼. 내가 반걸음을 더 밟아야 할 정도로 걸음이 넓었지만, 따라잡기가 어렵진 않았다. 오빠는 보폭만 넓었지 발을 내딛는 속도가 느렸다.

레나는 오빠의 헤진 가죽 신발과 땟국물이 흐르는 면 신발이 번갈아 앞장서는 걸 바라보며 자기도 발에 맞지 않아 덜렁이는 신발과 바닥이 터진 신발을 부지런히 앞장세웠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오빠와 발을 맞추면서.

– 턱.

걸음걸이에 집중하는데 오빠가 내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나를 뒤로 밀치는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으로 히히힝! 마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깜짝이야.

놀랐네.

“레나야. 앞을 보고 걸어야지.” ─ 라고 말하는 오빠도 놀랐는지 표정이 안 좋았다. 그 이후로 오빠의 걸음걸이가 더 느려져서 나는 편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대로를 건넜다. 오빠는 거침없이 건너편에 있는 여러 골목길 중 하나를 선택해 들어갔다. 세어봤는데 여섯 번짼가 다섯 번짼가 그랬던 것 같다.

붉은 등불들이 달린 골목길이었다.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낮이라 불을 켜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먼지가 잔뜩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움찔.

그때, 오빠의 걸음이 흔들렸다. 눈을 들어보니 골목길 저편에서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무서워.

나는 오빠의 등 뒤로 몸을 감췄다. 오빠가 옛날부터 누누이 강조한 대로 얼굴을 내밀지 않고 가만히 숨어 있었다.

오빠도 무서울 텐데…

걱정했지만 오빠의 몸은 굳어있지 않았다. 아저씨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 보니 오빠는 스쳐 간 아저씨들을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는 사람인가?

의문은 거기서 끝났다. 오빠가 다시 걸어가면서, 알록달록한 삼각 깃발들이 달린 한 극장 앞에 도착하면서 우리의 여정도 끝이 났다.

극장 앞에는 거구지만 뚱뚱해서 어딘지 모르게 푸근한 아저씨와 진회색 눈동자를 가진 밝은 인상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오베르 씨. 1극은 시작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언제쯤 도착할까요?”

“어휴, 식구들이 원체 많다 보니… 소이린이 깜박 전파를 다 하지 못했나 보더라고. 방금 애들을 보냈으니 곧 도착할 거요.”

오빠는 주저하지 않고 뚱뚱한 아저씨를 향해 다가갔다. 걸음걸이가 경쾌한 것이 마치 반가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만 같았다.

* * *

‘찾았다.’

카시아가 사라졌다. 깜짝 놀랐지만 그녀가 왜 사라졌는지 짚이는 점이 있었던 레오는 가죽 거리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 업적 : ‘카시아의 삶’ 퀘스트 완료 – 카시아가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

지난 회차 때 카시아가 굴레에서 풀려났다. 레오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떠나려 했던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펑펑 울더니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 “이젠 누나라고 부르셔도 좋아요, 왕자님. 마음이 후련해졌어요. 어쩐지… 자유로워진 느낌이에요.”

너른 들판을 향해 파하하! 큰 웃음을 터뜨렸던 카시아.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과 에락트 피혁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신발, 삐뚤빼뚤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그게 세상에서 사라짐을 뜻할 리 없었다. 그녀는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 터였고,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어떤 확신을 가지고 가죽 거리를 둘러보던 레오는 오베르가 자리에 없음을 알아차렸다.

출근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막연한 추측으로 {추적술}을 걸어본 레오는 그가 라우노 패밀리의 저택 방향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오베르를 찾아가는 동안 막연한 추측은 점차 확신으로 변했다. 카시아가 일하던 창관이 바로 이 여섯 번째 골목길에 있었다.

아니, 있었었다.

언젠가 한 번 불쾌한 심정을 안고 둘러본 창관. 여기서 동생이 일했단 말이지, 구역질 나는 분노를 되새기며 훑어봤던, 끈적한 공기가 흐르던 창관이 사라지고 없었다.

카시아처럼.

대신 창관이 있던 자리에는 못 보던 극장이 있었는데, 현판에는 ‘오랑주 극장’이라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레오는 오베르에게 스스럼없이 인사했다. 오베르도 생전 처음 보는 거지 꼬맹이가 말을 걸어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한때 거지였던 그는 오르빌의 거지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인사였다.

항상 군것질거리를 품에 넣고 다니다가 거지를 보거든 하나씩 나누어 주었고, 사지 멀쩡한 청년이 빌어먹고 있으면 ‘다룬’이라는, 가죽 거리의 소상공인장에게 소개를 해주기도 했다. 그는 생긴 것이나 자기가 하는 일에 비해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었다.

물론, 아무한테나 착하게 구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어쨌든 간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안면몰수하고 흉기를 휘두를 수 있는 깡패인 것이다.

“죄송한데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얌마. 그런 것보다 너네는 좀 씻어야겠다. 아우, 냄새 지독한 것 봐라.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안 씻은 거야?”

오베르가 애 다루듯이 레오의 지저분한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돌렸다.

“거지 대장은 뭘 하는 거야? 내가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호수에 나가서 애들 씻기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중얼거리는 그는 레오에게서 묻어나오는 {기품}이나 {왕의 피} 따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사회의 통념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깡패. 그는 예전에 레오가 타티안 후작가의 양자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도 태도를 고치지 않았었다.

“너도 이리로 와.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나, 뭘 그렇게 묻히고 다녀? 브레틴 씨. 샤워장 좀 쓸게요.”

오베르는 극장주에게 허락을 구하곤 꾀죄죄한 거지 꼬맹이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헤에-

레나는 난생처음 보는 극장 내부를 신기하게 둘러보았다.

먼저 그녀를 반긴 것은 어둡고 붉은 통로였다.

관객의 기대감을 증폭시킬 요량인지 홀(hall)로 이어지는 그 통로는 제법 길었다. 다양한 연극이 있음을 알리는 대자보가 벽을 가득 채웠고, 곳곳에 붉은 장막이 걸려 신비스러움을 자아냈다. 인테리어를 한 사람의 세심함인지 가끔 가면이나 망토 따위가 걸려 있기도 했다.

헤에에-

극이 한창 진행 중인 홀에 도착했다. 순진한 방문객, 레나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어떤 곳은 밝고 어떤 곳은 아주 어둡다. 작은 속삭임이 웅성거림이 될 정도로 많은 관객이 있었지만, 어두운 객석에 자리한 그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반면 홀 중앙까지 돌출된 무대는 매우 밝고, 넓었다. 2층을 틔웠는지 저 높은 천장까지 등불이 주렁주렁 매달려 아래에 있는 연기자들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여왕이시여! 현명한 통치자이자 위대한 영웅의 여동생이시여!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바눈 라오노’ 역을 맡은 배우가 외쳤다. 평민을 벌하고 통치할 권한을 얻은 최초의 귀족이 비통하게 고백했다. 이에 옥좌에 앉은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죄를 지었습니까? 그대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말해보세요. 그대의 죄가 죄인지 판명해드리겠어요.”

“그는 게을렀습니다. 자기 일에는 태만하면서 남들의 호의를 구걸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땀 흘려 수확한 곡물을 공평하게 나누자 주장하였습니다.”

“그것에 어떤 문제라도 있나요?”

바눈 라오노가 단호히 말했다. 죄를 지었을망정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렇습니다. 그는 왕국에 해악을 끼쳤습니다. 스스로 짊어져야 할 삶의 책임을 외면하며 다른 이들의 노고와 성취를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죽였습니다. 오직 죽음만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공평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레나. 조심-”

아이코!

무대를 바라보며 걷던 레나가 한 소년과 부닥쳤다. 코당! 균형을 잃은 그녀는 넘어졌고, 부딪친 소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내밀었다.

“괘, 괜찮아? 미안해.”

“아야야야… 나, 난 괜찮아.”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레나의 고운 입술로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리자 소년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녀석! 어딜 돌아다니는 게야? 얌전히 앉아있지 않고.”

“으악! 오베르 아저씨.”

오베르가 사고를 친 소년을 잡아 들어 올렸다. 어두운 객석, 무대에서 비친 불빛에 소년의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갈색 곱슬머리. 코끝이 둥그렇고 이마가 넓은 소년이었다.

“쉿!”

관객들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모두가 라우노 패밀리의 사람들이었지만, 바눈 라오노에게 내려질 레이시아의 판결을 기다리는 그들은 검지를 치켜세웠다.

“…일단 가자. 넌 가.”

오베르가 소년을 내려놓곤 등을 탁! 쳐주었지만, 소년은 돌아가지 않았다. 레나에게 미안했는지 극장 샤워장을 향하는 그들을 따라왔다.

어두운 객석을 지나고, 무대 옆을 지났다.

무대 뒤편에는 분장실이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분장실은 탁 트인 공간이 아니라 다닥다닥 이어진 각방이었다.

어떤 곳은 넓게 트여 있긴 했지만, 그곳도 여러 개의 방이었던 걸 하나로 틔운 공간임이 분명했다. 바닥에 난 자국을 봐서는.

샤워장도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보통 샤워장이라 하면 우물과 양동이가 있고, 대충 격벽을 쳐서 씻을 공간을 마련해 두면 충분한 것이었는데, 여긴 씻는 곳 하나하나에 나무로 된 욕조가 놓여 있었다.

또 욕조 옆에 의자가 하나씩 있고, 물이 빠지는 배수구까지 각각 붙어있는 게… 특이하다. 극장 샤워장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가 있나 싶다.

레오는 동생이 옷을 훌러덩 벗어버리기 전에 얼른 안으로 들여보냈다. 물을 길어 건네주고는, 잠시 문가를 지켰다.

사실 지킬 이유는 없지만… 레오의 행동을 이상하게 지켜보던 오베르와 소년은 이윽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빠, 나 다 씻었어.”

레나가 나오자 소년이 헛바람을 켰다. 촉촉이 젖은 금발 머리가 컴컴한 조명에 빛났다. 턱은 야위어 날이 섰음에도 동그랗게 품위를 잃지 않았고, 번쩍이는 황금빛 눈동자가 사정없이 소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지런한 눈썹과 산딸기처럼 풍성한 입술이 애처롭다.

방금 코피를 흘리며 들어갔던 꼬질꼬질한 여자애의 변신에 소년은 넋을 놓았다.

충격받은 두 사람과 여상히 머리를 말리는 레나를 두고 레오도 안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진 않았다. 저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에게 쫓겼을 때 아이셀 왕국까지 레나를 지키며 달아났던 사람이 바로 저 두 사람이었다.

“아, 안녕. 나는… 산티안 라우노라고 해. 코는 괜찮아?”

“응. 괜찮아. 멎었어.”

움찔움찔, 예쁜 소녀에게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는 소년의 어리숙함이 흘렀다. “내 이름을 알려줬으니까 너도 알려줘야지.” 물었으나 레나가 “난 레나야.” 냉큼 답하자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 너는 어디에 살아? 나는…”

주저리주저리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레나가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동안 몸을 씻은 레오가 밖으로 나왔다. 뒷짐을 지고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오베르가 말했다.

“…동생 때문에 고생이 많았겠구나. 이리 와라.”

그는 다시 남매를 분장실로 데려갔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소품과 의상들을 뒤적이더니 소년 소녀가 입어도 좋을(하지만 연극에 쓰이는 것이라 옷매가 조금 과장된) 옷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잘 입을… 레나!”

새 옷을 받고 신이 난 레나가 지저분한 원피스를 홀라당 벗어 던졌다. 산티안 라우노는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돌리곤 전전긍긍했다.

영문을 모르는 동생의 머리를 콩! 쥐어박아 주곤, 레오는 서둘러 레나에게 옷을 입혔다. 어린 사제를 위한 복장인지 뽀송뽀송한 하얀색 원피스를 입자 레나는 마치 천사같이 웃었다.

레오도 소매가 넓은 상의와 통이 큰 바지로 갈아입는데… 우레같은 박수가 터졌다. 그새 공연이 끝났는지 인사를 마친 연기자들이 무대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무대 위로 커다란 커튼이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커튼을 따라 내려가던 레오의 눈동자는 무대 계단을 내려오던 한 여자의 눈과 맞닥뜨렸다.

빙긋.

레이시아 여왕 역을 맡았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레오를 내려다보며 미소지었다.

“어떻게 절 찾으셨군요?”

물결치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뽀얀 연극 분장, 비록 좁지만 꼿꼿이 펴진 어깨, 아담한 체형과 무대로 내리꽂히는 스포트라이트…

레오의 심장이 쿵쾅쿵쾅, 주체할 수 없이 뛰는 가운데 민서의 정신이 번쩍, 빛을 발했다.

– 채하?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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