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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9

159화 선택 (1)

159화 선택 (1)

“경기 종료. 세실리아 크라소타의 기권으로, 블레이드 듀얼의 우승자는 루나 크라소타입니다.”

에스틸리아 교수의 선언에 경기장이 환호와 함성으로 뒤덮였다.

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루나의 우승을 축하했다.

“대단하다! 루나 크라소타!”

“내가 뭐랬어! 루나 크라소타가 이길 거라고 했잖아!”

“루나 크라소타! 달빛의 공주!”

“달빛의 공주!”

관중이 달빛의 공주를 연호했다.

그러나 일부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세실리아 크라소타는 왜 기권한 거지?”

“무기를 잃어버려서?”

“바보야! 맨손으로 루나 크라소타를 날려 버렸잖아! 그사이 충분히 주우러 갈 시간이 있었다고!”

“어? 그러네?”

누군가 ‘아아! 나의 왕자님!’ 하며 탄식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세실의 이름을 외치는 이들이 많아졌다.

“어이 자크! 봤어?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봤느냐는 말이야!”

“내 제자가 다 이긴 시합이었어! 막판에 무리하지만 않았어도······!”

“그게 다 실력이라는 거다! 이 뇌까지 근육으로 꽉 들어찬 멍청아! 아하하하하!”

“빌어먹을! 샬리!”

샤를로트 교수와 자크 교수가 서로의 멱살을 잡으며 으르렁댔다.

그러나 세실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세실은 저만치에서 멍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루나를 보고 있었다.

‘졌어. 루나에게.’

승패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나는 세실이 가장 아끼는 친구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처음으로 루나에게 패배한 뒤에야 세실은 자신의 무의식 안에 감춰진 승부욕을 발견했다. 세실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바보였어. 오만했어. 늘 이겨왔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그동안 루나가 느껴온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세실은 눈동자를 굴려 관객석을 바라봤다. 루나의 이름을 부르짖는 관중. 그런데 세실의 이름도 섞여 있다. 왜일까. 나는 패배자일 뿐인데.

“세실리아!”

그들의 외침 속에서 데미안의 목소리를 구분한 세실은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세실은 이기고 싶었다. 무도회에서 데미안과 함께 춤추고 싶었다.

지난밤부터 세실의 머릿속을 괴롭히던 고민이었다. 그러나 세실은 경기장에 오르기 전까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루나는 역시······ 데미안을 좋아하는 거지?’

미아의 목소리가 귀를 스친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어.

나는 졌으니까.

‘내게는 선택권이 없어.’

세실은 아랫입술을 떨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애썼다.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데미안에게도. 루나에게도.

만약 루나를 이겼다면, 그래서 블레이드 듀얼에서 우승했다면 데미안을 지명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답할 수 없는 물음이고, 또한 무의미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대답의 선택권마저 잃어버린 지금의 상황을 세실은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금 마음속 어둠이 꿈틀거리며 자라난다.

무서워.

달아나고 싶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괜찮니? 세실리아.”

에스틸리아 교수의 말에 세실은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세실의 부상을 알아본 듯, 에스틸리아 교수는 들것을 가져오게 했다.

세실이 다쳤다는 것을 눈치챈 루나가 비틀거리며 달려오다가 철퍼덕, 경기장에 넘어졌다. 결국 루나도 들것에 실렸다.

“세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세실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데미안이다. 오랜만에 ‘세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어 데미안의 얼굴이 눈앞으로 들이닥쳤다. 그 와중에도 세실은 데미안이 루나보다 자신에게 먼저 다가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래서 그만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실은 데미안의 팔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바. 발목. 흑······. 너무. 흐흑······. 아파······.”

***

세실의 발목 부상은 심각했다.

단순 골절이 아닌, 복합 골절.

“한동안은 침대에 누워있어야겠구나. 너무 걱정하지는 말렴. 푹 쉬면 뼈는 제대로 붙을 거야.”

치유실 침대에 누운 세실의 머리맡에는 목발이 세워져 있었다.

비비안 교수가 세실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아쉽게도 무도회에는 참가할 수 없겠구나. 세실리아.”

나는 세실의 얼굴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그러나 아주 잠시였고, 세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는 비비안 교수의 치유 마법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루나는 세실과 달리 뼈를 다치지는 않았다.

“저기 세실리아······.”

루나는 아까부터 세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세실에게 이겨서 기쁠 법도 한데, 그것보다는 세실의 부상을 더욱 염려하는 모습.

루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카인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세실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곧 무도회가 시작될 거란다. 듀얼의 두 우승자가 계속 여기에 있을 셈이니?”

비비안 교수의 말에 아리엘이 슬쩍 카인을 돌아봤다. 아리엘의 애타는 눈빛에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리엘은 카인이 자신을 지명해 줄 것을 갈망하고 있다.

카인은 누구를 선택할까. 나는 여전히 카인이 루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인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본능을 억누를 수 있는 인물이다.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카인은 밤마다 아리엘과 밀회를 가졌다. 물론 그의 목적은 비밀 서재 안에 숨겨진 책이었을 테지만, 아리엘의 마음을 빼앗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거다. 이후 카인은 아리엘과 더욱 가까워졌다. 아르카넘 홀에는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조,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루나가 두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애걸했고,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비비안 교수가 웃었다.

역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루나.

‘루나는 카인을 지명할 테지.’

루나가 카인과 춤추는 모습을 상상하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카인이 아리엘을 선택해, 루나가 실의에 빠진 모습을 떠올리자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심하구나 데미안 라플라스. 이런 순간에도 너는 루나와 세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거냐. 도대체 왜. 너만을 바라보는 세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내가 루나와 한날한시에 같은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루나와 운명의 실 같은 것으로 이어진 관계일 거로 기대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어이없이 끊기고 말았던 그 실이, 이 세계에서는 더욱 강한 반동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루나프레나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데미안, 너를 만났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다시금 심장이 뛰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나는 지구에서 온 김우진이다. 이제는 이름 석 자 말고는 거의 떠오르는 것이 없지만, 그 기억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진실일까. 나는 정말로 김우진일까. 만약 아니라면? 김우진이었다는 기억이 한낱 꿈의 한 조각일 뿐이라면? 지금의 나는 그것을 구분할 수 있나?

혹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현실)쪽 끝까지 기운 탓에 김우진의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천칭을 다시 왼쪽으로 기울인다면 나는 김우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원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언제까지 치유실에 모여있을 셈이죠? 곧 프로스트 갈라가 시작됩니다.”

치유실 문이 열리며 등장한 이는 에스틸리아 교수였다.

“비비안 교수. 루나 크라소타의 상태는?”

“무도회에 참가하는 것 정도는 문제없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에스틸리아 교수가 다시 이쪽을 돌아봤다.

“카인 시니야카와 루나 크라소타는 저를 따라오시길.”

루나가 아쉬운 얼굴로 잠든 세실을 돌아봤다.

“내가 치유실에 남을 테니 안심하고 가.”

내 말에 루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 그, 그럼 데미안은 무도회에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야?”

“세실리아 혼자 여기 남겨둘 수는 없잖아. 마침 나도 환자이기도 하고.”

나는 목발을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어느새 드레스로 갈아입은 비비안 교수는 거울을 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종종 소녀처럼 순수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지금이 가장 그랬다. 내가 이곳에 남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비비안 교수가 치유실을 떠나면 세실은 정말로 혼자가 되니까.

“그, 그렇기는 한데······ 그, 그 말이 맞기는 한데······.”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루나. 세실은 내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

루나는 입술을 옴지락대며 나와 세실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카인.”

나는 치유실을 벗어나려는 카인을 붙잡았다.

카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봤고, 에스틸리아 교수에게 양해를 구한 나는 카인을 데리고 복도 구석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야? 데미안.”

나는 잠시 카인의 눈을 물끄러미 봤다.

쉬이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억지로 말했다.

“너, 무도회의 상대로 누구를 지명할 거야?”

카인이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

“왜 그런 걸 물어?”

“대답이나 해.”

묵묵히 나를 보던 카인이 말했다.

“혹시 네가 루나와 춤추기를 원하는 거라면.”

“그런 뜻이 아니잖아. 묻는 말에 대답하기나 해.”

“만약 내 선택이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셈이지?”

카인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녀석이 내게 저런 표정을 보이는 것은 오랜만이다.

“내게 선택을 강요하기라도 할 셈이야? 데미안.”

“그럴 생각은 없어. 다만.”

“다만?”

나는 어금니를 악다물며 말했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해. 적어도 오늘만큼은.”

빌어먹을.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

턱시도를 입은 카인은 정말로 멋질 거야.

아리엘은 황홀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에스틸리아 교수를 따라간 카인과 루나는 우승자에 걸맞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앙투안. 카인이 나를 지명해 줄까?”

“응. 그럴 거야 아리엘.”

앙투안의 대답에 아리엘은 행복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기숙사를 향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아리엘의 생일이었고, 그래서 앙투안은 두 팔 가득 선물상자를 들고 있었다.

여자 기숙사 건물에 도착한 앙투안은 미리 선별해 둔 선물을 아리엘에게 건넸다. 루나와 미아를 포함한, 아리엘과 가까운 친구들의 것이다.

“고마워 앙투안.”

아리엘은 기숙사 방에 올라가 테이블에 선물을 올려놓은 뒤, 전신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살폈다.

사실은 아르카넘 듀얼에서 우승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 그것을 입고, 턱시도를 입은 카인과 함께 춤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카인이 자신을 선택해 주기만 한다면 옷차림 같은 것은 상관없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아리엘은 웃었다.

그 순간,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루나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달빛의 공주.’

경기장을 들썩이던 외침.

아리엘은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이것이 불안감에서 기인한 떨림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리엘.”

아리엘은 거울 속의 자신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너는 아름다워. 아르카넘 홀의 누구보다도.”

그녀의 입술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그렸다.

“네가 카인의 선택을 받게 될 거야.”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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