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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15. 약혼관계 – 두 아버지

– 캬아-욱! 캉! 캬-아!

집에 들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커다랗고, 바닥에 쌓인 눈보다 더 새하얀 여우.

노구화호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가볍게 눈을 밟으며 근사한 먹잇감에 다가갔다가 덫에 걸렸다.

그 거대한 여우는 덫에서 빠져나가려고 몸을 흔들었다. 그때, 데호르만의 목소리가 계곡을 쩌렁 울렸다.

“쏴! 던질 것 있으면 빨리 던지고!”

고함과 함께 그가 이끄는 사냥팀이 몸을 드러냈다.

레나는 첫 사냥을 나와서 어김없이 노구화호의 발자국을 발견했고, 레오는 지체하지 않고 사냥팀에 보고했다. 발자국을 본 데호르만은 모든 사냥을 중지시키고 사냥팀 전원을 불러모았다.

사냥팀은 데호르만의 지휘 아래 덫을 계곡에 빽빽하게 설치했다. 두툼한 고깃덩어리로 녀석을 유인했다.

노구화호는 어떤 경계도 하지 않고 다가왔다가 덫에 걸렸고, 계곡 위쪽에 자리를 잡은 일흔 명에 달하는 전사들이 놈를 향해 활을 쏘거나 손도끼를 투척했다.

전에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저 녀석을 사냥했었는데, 당시 레오는 데호르만이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저 괴물은 이 정도의 준비로도 부족한 감이 있었고, 데호르만이 없다면 절대 잡을 수 없었다.

– 갸아아아아아아!

노구화호가 몸을 크게 털었다.

그녀의 하얀 털이 나풀거리면서 화살과 손도끼를 쳐냈다. 일부는 몸에 박혔지만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여우는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눈앞에 놓인 먹잇감은 미끼이고 다리에 걸린 것들은 덫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 다리를 긁으며 우리의 숫자를 살폈다.

이윽고 놈은 ‘캥캥캥’ 웃음소리 같은 짖음으로 계곡을 울리더니 펄쩍 뛰어올랐다.

다리에 걸려있던 덫들이 모조리 끊어지며 노구화호는 계곡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수직으로 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목표가 된 전사들은 황급히 몸을 던졌다. 제법 가파른 계곡이라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개해! 저놈 하는 짓 보니까 딱 여우 그 자체다! 흩어져서 투창이든 도끼든 계속 던져! 저놈은 내가 맡는다!”

데호르만이 거대한 도끼를 꺼내 들고 외쳤다.

레오는 아직까지도 그보다 힘이 센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양날도끼는 어지간한 가정집의 문짝만큼 컸다. 데호르만이 거구의 사내인 것은 맞지만 분명 비상식적인 힘이었다.

– 우와아아악!!

데호르만은 쩌렁쩌렁 고함을 질러 노구화호의 눈길을 끌었다. 여우는 즉시 호기심을 드러내며 다가왔고 둘은 필사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노구화호는 커다란 앞다리와 주둥이를 민첩하게 놀렸다. 데호르만은 그때마다 거대한 도끼를 풍차처럼 휘둘러 물러 세웠다. 여우도 저 도끼에 맞으면 성치 못하리라 직감했는지 조심스러웠다.

사냥팀은 주변으로 넓게 흩어져 둘을 에워싸고 화살과 투창을 날렸다. 점점 늘어나는 몸의 상처 탓에 여우가 화가 나서 다른 곳을 향하려 할 때마다 데호르만이 도끼를 찍으며 돌격해서 주의를 끌었다.

그녀의 하얀 몸은 점차 피로 범벅이 되어 갔다.

– 캉! 캉! 캉! 캉! 캉!

위기를 느낀 여우의 울부짖음이 급해졌다. 좀 전에 달아나려고 몸을 돌렸다가 뚱뚱한 원숭이에게 뒷다리를 크게 베였고, 주위에는 작은 원숭이들이 우글거렸다.

이 영장류들을 너무 만만히 봤다.

보통은 한 번 덮칠 때마다 한 마리씩 집어삼킬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노구화호의 눈이 파랗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와라! 크하하하하하! 넌 이제 죽었다!”

데호르만의 눈에는 끝이 보였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이런 마수들을 여럿 사냥해봤다. 그리고 놈들의 마지막 행동은 거의 동일했다.

최후의 순간, 녀석들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행동을 전력으로 펼치며 달려들곤 했다.

그러니까 이 여우는 ─ 뛰어오를 것이다.

그는 성난 여우를 눈앞에 두고도 도끼를 뒤로 끌었다. 저놈은 반드시 뛰어오른다. 그러니 앞을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데호르만은 하늘을 쳐올리기 쉬운 자세를 잡고 기다렸다.

그리고, 노구화호가 뛰어올랐다.

하늘 높이 뛰어오른 거대한 여우는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고, 데호르만은 하늘을 가르듯이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 쩌억!

바위가 절벽에서 떨어져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피가 솟구쳤다.

전사들은 일순 숨을 죽였으나,

“크핫핫핫핫핫핫!”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환호성을 터뜨렸다. 레나도 우리 아빠가 최고라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아이나르 부족의 대전사, 데호르만은 이번에도 길이 회자될 업적을 남겼고, 사냥팀은 기꺼이 그 증인이 될 것이었다.

그날 저녁, 계곡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술을 나누며 푸짐한 여우 고기로 잔치가 벌어졌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동안에 우울한 사람은 레오밖에 없었다.

* * *

겨울이 끝날 무렵 전쟁은 어김없이 터졌다. 데호르만의 푸념도, 사냥을 다녀와 전사가 된 레나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그대로였다.

“저도 참전하고 싶어요.”

“…그래라.”

노엘 덱스터가 레오의 참전을 허락한 것만 달랐다.

흔들의자에 앉아있던 노엘은 착잡하게 책장을 넘기며 아들을 옆에 앉히고 몇 가지 조언을 해줬다.

그는 아들이 약혼녀를 따라 전장에 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준비했던 이야기를 풀어놨다.

병력이 어떤 식으로 운용되고 각 병과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지 알려주었다. 비상시의 대책과 상급자들에게 어떤 요청을 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일러줬다.

그는 레나와 레오가 어떻게 하면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던 모양이었다.

노엘의 조언은 하루 종일 이어졌고, 레나가 왜 아무도 밥을 먹으러 오지 않느냐고 물어보러 와서야 끝이 났다.

다음 날, 레오는 아버지와 함께 내성에 들려 지원서를 작성했다.

내성에서 근무 중이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노엘에게 깍듯한 경례를 올렸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기사들이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했다.

그들은 현역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은퇴한 아버지를 대하기 어려워했다. 그들의 조심스러운 말투에는 경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노엘 덱스터는 조금 씁쓸하게 입맛을 다실 뿐, 별다른 반응 없이 전장에 나가는 기사들에게 건투를 빌어주었다.

레오는 돌아오는 길에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하고 싶지 않으세요?”

기사라면 누구나 전장에 나가 명예를 쟁취하고 싶어 했는데, 아버지는 심드렁하셨다.

레오가 보기에 그는 엄청나게 강했다.

아직 기사 일을 그만둘 만큼 나이를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은퇴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노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람 죽이는 건 신물이 난다. 우리가 침략당한다면 기꺼이 나가 싸우겠지만, 침략전쟁을 거들어주고 싶지는 않구나.”

노엘 덱스터는 치열한 전쟁을 경험해봤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아스틴 왕국과 아스터 왕국은 하나의 왕국이었다.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의 둘째 아들이었던 노엘은 수도에서 태어나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젊은 나이에 기사가 되었다.

당시로써는 최연소 기사였다고 하니 그의 재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왕위를 물려받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왕이 의문사했다. 그것도 한밤중에 전당에 나와 쓰러져 죽었는데, 그의 몸에는 어떤 상처도 없었고 독살당한 것도 아니었다.

왕국이 발칵 뒤집혔다. 온갖 음모론이 제기되었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문초를 당했지만, 흉수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어린 왕에겐 후계자가 없었다. 공식적으로 후계를 지정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식이 없었다.

다행히 선왕에게는 형제가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두 명이었다.

다시 한번 왕위 계승권자로 등극한 두 숙부는 또다시 격돌했다.

젊었을 적에는 맏형에게 왕위를 빼앗겼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권좌를 차지해야만 했다.

이번 왕위 쟁탈전은 어린 왕자들의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독자적인 힘과 세력을 갖춘 권력자들이었으므로 누구도 중재에 나설 수 없었다.

한 명은 자신이 더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다른 한 명은 자신이 더 젊다는 이유를 들며 양보하지 않았다.

이 탐욕이 어린 갈등은, 우습게도 어린 조카에 대한 복수라는 명분으로 불거졌다. 양측의 참모들이 그럴싸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저쪽 휘하에 있는 무슨 무슨 백작의 딸이 후궁으로 들어가 있는데, 그녀가 주술사를 불러… 어쩌고저쩌고.

그게 아니라 반대쪽 휘하에 있는 근위기사가 규정을 어기고 한밤중에 왕성에서… 이러쿵저러쿵.

서로가 서로를 조카를 죽인 파렴치한으로 규정하며 세력을 결집했다.

세력이 양분된 것은 귀족들만이 아니었다.

왕실의 안위와 관련이 있던 사항이었기 때문에 중립을 지켜야 했을 기사단도 그 세력다툼에 휩쓸려 쪼개졌다.

제1 기사단의 기사로 있었던 노엘 덱스터도 선택해야만 했다. 신빙성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들은 이야기에 추리를 섞어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론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겼다.

끝없이 고조되던 갈등과 편 가르기는 결국 내전이라는 형태로 파국을 맞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구일 전쟁’이다.

양 측 모두 수도에 미련을 가지고 본격적인 전쟁이 터지기 전, 아흐레 동안 처절한 암투를 벌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 암투는 놀랍게도 승자가 없었다.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구일 전쟁은 대륙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기록됐다.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전쟁.

다른 왕국과의 전쟁과 달리 뚜렷한 경계가 없었고, 온갖 정치적인 회유와 협박이 바탕에 깔려 혼선을 더했다.

왕국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던 기사단은 분열되어, 진화에 나서기는커녕 불씨를 더욱 크게 키웠다. 북부 왕국에 있던 마법사들은 대부분 마탑으로 도망쳤으나, 일부가 남아서 마술을 부렸다.

그 당시 북부 왕국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귀족들은 협력하면서도 상대를 경계했고, 기사들은 자신의 몸과 신념을 숨기고 살육을 벌였다. 야만인 부족들은 꽁꽁 단결해 수상한 외지인을 모두 죽였다.

이 치열한 내전은 3년이 넘게 이어졌다.

얼어붙은 땅에 어렵게 일군 농토가 불탔고, 가난한 사람은 무슨 짓을 했길래 돈이 없냐는 질문으로, 부자인 사람은 무슨 짓을 했길래 돈이 많냐는 질문으로 죽었다.

그리고, 전쟁은 허무하게 끝났다.

전쟁을 일으킨 두 숙부가 제 아들들에게 암살당하면서 양측 모두 명분을 잃어버렸다.

각 진영의 수장으로 떠오른 아들들은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협정을 맺었다.

그렇게 클라우스 왕가는 쪼개지고 북부에는 아스틴 & 아스터 왕국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스틴 왕국의 편을 들었던 노엘은 살아남았다.

그는 수백의 목숨을 거둔 전공으로 ‘덱스터’라는 성(姓)과 두둑한 포상을 받았다. 넉넉한 연금도 보장되었다.

노엘은 그가 활약했던 자신의 고향, 수도를 떠나서 아내의 고향인 에이브릴 성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늦게나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진실을 알지 못했다. 단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고 죽였을 뿐이었고, 당시에는 그게 옳다고 믿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는 전쟁에 환멸을 느꼈다.

레오는 침울해진 아버지를 조용히 뒤따랐다.

노엘은 다시 서재로 들어갔고, 레오는 후다닥 공터로 뛰쳐나왔다.

레나는 쭉쭉 몸을 풀고 있었다.

“레나, 나도 간다.”

“그냥 여기 있지 왜 따라오냐.”

“그래서 싫어?”

“어. 완전 싫으네.”

그녀는 말과 다르게 씨익 웃었다.

“네가 괜히 따라와서 죽으면 나만 과부 되는 거잖아.”

레오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가 던져주는 목검을 받았다.

“그런 것보다는 내가 홀아비 안 되게 조심해줘.”

“어? 너, 나 죽으면 평생 결혼 안 할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둘은 킬킬 웃으며 서로에게 검을 겨누었다.

레오는 마음이 편안했다.

전쟁 이벤트는 피할 수 없으니, 일단은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지난번처럼 레나가 홀로 전사하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이것으로 족했다.

언젠가는 이 레나를 공주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그녀와 파혼하기 위해서 애써야 할 거라는 생각은 치워버렸다.

그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레나는 검을 까딱이며 도발했고 레오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늘에서는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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