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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16화 비겁한 원거리 무기

레온의 세계에서 원거리 무기는 천한 것들이나 사용하는 비겁한 무기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기사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무기였고, 이런 걸 쓰는 건 농노병이나 명예가 필요 없는 자유민 병사들뿐이다.

물론 그는 타고난 사령관이며 불패의 상승장군이다.

궁병은 물론이고 투석기나 대포도 얼마든지 사용해왔다.

하지만 원거리 무기는 한계가 있다. 장력이라는 것이 있고, 이는 총기류도 마찬가지다.

장약의 한계, 화력의 한계… 결국 최댓값이 정해진 무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검과 창은 다르다.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던지면 던지는 대로 순전히 개인의 역량에 달린 일이다.

칼질로 바위를 쪼개지 못한다? 그건 기사의 역량이 딸린 것이다.

기마돌격으로 적의 방진을 날려버리지 못한다? 파이크병을 상대로도 기사가 훌륭하다면 얼마든지 관통할 수 있다.

결국 명예와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선 활 따위의 무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제힘으로만 이뤄내야 한다.

그렇기에 퀘스트를 완료하고 성배의 선택을 받은 성배기사들에게 원거리 무기 따윈 제 용력의 부족함을 시인하는 불명예스러운 무기인 셈이다.

“아니, 댁 진짜 뭔가 문젭니까!”

물론 현대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껄껄걸, 재밌는 친구구먼.”

오강혁은 웃음으로 넘겼지만, 다른 파티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저마다 뭐라 한마디 하려 했지만, 다급해진 헌터 직원이 외쳤다.

“슬슬 출발하셔야 합니다!”

“끄응…….”

아직 레온의 포지션이 정해지지도 않았건만. 구대성은 이번 테스트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협회 직원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랐다.

“이번 테스트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구대성의 질문에 협회 직원이 친절히 대답했다.

“기본적으로는 코볼트 50마리를 사냥하시면 됩니다. 필드에는 놀이 나오기도 하지만, 정 위험하면 제가 나설 겁니다.”

직원은 코볼트만 사냥해도 된다고 했지만, 구대성은 좀 더 높은 점수를 벌고 싶었다.

당연하지만 놀이나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더 높은 점수를 받고, 그들이 출몰하는 구역은 정해져 있다.

“여러분. 제가 아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서 사냥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보다 경험이 많으시니…….”

“늙은이는 괜찮다네.”

“…….”

세 사람이 찬성했고 레온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구대성은 파티를 이끌고 초원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려 했다.

초짜인 태훈과 나연은 그가 이끄는 방향을 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대성 씨, 저기 초원 끝자락에도 취락이 보이는데요? 저기에 많을 거 같은데.”

“취락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됩니다. 저희는 인원수가 적고 다수가 움직이는 코볼트나 놀들에게 둘러싸일 수 있어요.”

구대성은 이 서울역 게이트를 열 번째 도전하는 베테랑이다.

비록 테스트 용도로만 정해져 자주 올 수는 없지만, 다른 게이트에서도 코볼트나 놀은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저희는 동굴에 사는 코볼트들을 공략할 겁니다.”

구대성은 동굴에서 싸울 경우의 이점을 설명했다.

먼저 자리가 비좁고 통로가 일방적인 탓에 포위될 염려가 없다는 점. 그리고 지나가다 발견한 풀 한 포기를 뜯어내며 말했다.

“이곳에 있는 풀로 불을 질러 연기를 주입할 겁니다. 그럼 동굴 코볼트들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습니다.”

“아아~”

“역시 경험자는 다르네요.”

파티원들의 찬사를 받으면서도 구대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테스트 게이트 열 번 온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등급이 올라갔다면 당연히 테스트할 게이트도 달라졌을 것이다. C급이라면 삼전역 게이트. B급이라면 63빌딩 게이트.

그는 언젠가 상위 게이트들에 입장할 날을 상상하며 모든 공략법을 공부하고 연구했지만, 언제나 이곳 서울역 게이트만 볼 수 있었다.

‘이번엔 승급해야 해. 언제까지 만년 D급일 거냐.’

그는 강해지고 싶었다. 만년 D급 소리도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앞에 코볼트들이에요!”

그때, 탱커로서 선두에 섰던 신태훈이 멈춰 섰다. 하지만 워낙 소리가 컸던 탓에 코볼트들도 그들을 발견했다.

“그르르…!”

코볼트들은 개의 머리를 한 휴머노이드 몬스터다. 초등학생 정도의 신장에 고블린과 쌍벽을 이루는 최하급 몬스터.

“태훈 씨 앞에서 방패로 막아요!”

“옙!”

코볼트들의 돌격은 단순했다. 직관적이고 심플하다. 순수한 힘과 힘의 대결로 나아가는 경향이 짙었다.

그럴 경우 쪽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아니고서야 헌터 쪽이 압승이다.

“키아아악!”

우직하게 달려오던 코볼트가 나연이 쏜 화살에 고꾸라졌다.

동료가 당하자 곧장 궁수에게 튀는 어그로. 그녀에게 선회한 코볼트는 태훈이 가로막은 방패에 정면으로 부딪치곤 코피를 흘리며 자빠진다.

“멍청한 놈들이네.”

태훈은 자빠진 코볼트에게 검을 쑤셔 박았다. 그때, 태훈에게 몸을 던진 코볼트가 있었고, 그는 화들짝 놀라 자빠졌다.

“으악…!”

“태훈 씨!”

자빠진 그에게 아가리를 들이밀려는 순간, 대성이 찌른 검이 코볼트의 목을 관통한다. 뜨뜻한 혈액이 태훈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방심하지 마세요! 약한 놈들이긴 해도 행동이 재빠릅니다!”

남은 코볼트는 다섯 마리. 하지만 곧장 활시위를 당긴 나연의 화살이 두 번째 코볼트를 꿰뚫는다.

“흐음.”

오강태 노인은 무너진 전열을 대신해 권갑을 낀 주먹으로 코볼트들의 안면을 후려쳤다. 재빠른 잽이다.

“컹!”

“커컹!?”

안면이 짜부라지는 코볼트들. 곧장 대성이 태훈을 일으키고 합류하자 코볼트들은 차례로 무너졌다.

“후우….”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해서.”

놀라 자빠진 탓에 전열을 무너뜨린 태훈이 사과해오자 대성은 손사래를 치며 그를 격려했다.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지요.”

그도 코볼트 상대로 실수한 적이 여럿이다. 그가 초짜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태훈의 실수는 실수 측에도 들지 못했다.

“나연 씨도 둘이나 처리해줬고, 영감님 덕분에 누구 하나 다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들 잘하셨어요.”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이 정도면 나쁜 파티가 아니다. 한 명만 제외하고.

“이봐요, 외국인 양반. 당신… 우리가 싸우는데 아무것도 안 했죠?”

“맞아요. 뒤에서 뒷짐만 지면서 구경만 하고! 직원 아저씨, 이래도 되는 거예요?”

묵묵부답인 레온을 대신해 화살이 돌려졌다. 레온을 퇴출하고 다른 파티원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하… 이 부분도 충분히 반영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레온은 최하점을 받을 거고, 다른 이들은 가산점이 붙을 거란 소리였다. 대성은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마당이었지만, 가산점이 붙는다니 오히려 괜찮다 생각했다.

“그렇다면야… 더 안으로 들어가죠. 곧 동굴이 나올 겁니다.”

그의 말대로 숲을 더 걸어가자 동굴이 하나 나왔다.

“정말 동굴이 나오네요.”

“으음… 설마 들어가서 싸워야 하나요? 저 어두운 곳은 질색인데.”

나연의 불평에 그럼 앞으로 헌터 일은 못할 텐데…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으며 웃는 낯으로 말하는 대성.

“아닙니다. 저희는 동굴을 ‘공략’할 겁니다.”

“공략이요”

“헌터의 기본은 게이트를 공략하는 거니까요. 다들 주변의 나뭇잎들을 모아주시죠. 이것들에 불을 질러 연기를 동굴로 보낼 겁니다.”

“아아! 연기로 질식사를 시키려고 하는 거군요?”

“와~ 대박. 그럼 우린 튀어나온 놈들만 잡으면 되겠네요.”

바로 그것이었다. 구대성의 경험상 이 동굴에 서식하는 코볼트만 스무 마리가 넘는다.

체력 안배가 중요한 게이트 공략에서 체력손실이 거의 없이 스물 이상의 코볼트를 잡을 수 있으니 그는 6회차 때부터 이 방법을 애용했다.

그렇게 작전을 짜고 주변의 낙엽이나 풀떼기들을 모으는데, 그의 눈에 팔짱을 끼며 눈을 감은 레온이 보였다.

“이봐요, 놀지만 말고 좀 도우시죠?”

감은 눈을 뜨는 레온. 그의 푸른 눈이 대성을 꿰뚫는다.

“네놈 눈에는 짐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으로 보이더냐.”

그게 아니면 뭔데… 하지만 직접 말할 수가 없었다.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여기서 말을 더했다간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직감.

“으음… 아, 아무튼! 댁은 최하점일 테니 그리 아쇼!”

애써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 모았어요!”

“불은 라이터로 필까요?”

“이 늙은이에게 라이터가 있다네. 아, 담배는 끊은 지 오래이니 오해는 말고.”

불쏘시개에 라이터를 키려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느냐?”

레온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

“아니, 여태 돕지도 않다가 뭡니까?”

“짐은 그것이 최선이냐고 물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저는 이 방법을 세 번이나 써봤습니다. 세 번 모두 성공했고요.”

“경험에 기반한 근거인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경험이 얄팍한데 어찌 경험에만 의존하느냐.”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진짜…….”

순간 제가 잘못했나 싶었지만, 그는 이것보다 좋은 방법을 몰랐다.

“아, 됐수다. 새파랗게 젊은 게 경험은 무슨…….”

그는 불을 지폈고 주변의 커다란 잎으로 만든 연기를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캬아아아!

동굴 안에서 괴성과 함께 쿵쾅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오, 옵니다!”

방패를 치켜세운 태훈의 외침과 함께 모두가 전투를 준비한다. 그리고 첫 번째 코볼트 무리가 동굴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그들은 입구를 틀어막은 불길을 보고 멈춰 섰다.

“지금이에요!”

나연이 당긴 화살이 날아가고, 오 노인과 대성이 던진 돌이 코볼트의 안면을 짜부라뜨렸다.

-크켁!

-크하학!

연달아 쓰러지는 코볼트 무리. 순식간에 다섯 마리를 해치우자 대성은 쾌재를 불렀다.

‘역시! 내 방법은 틀리지 않았어!’

다음 코볼트 무리가 뛰쳐나왔다. 연기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숨이 차도록 허겁지겁 튀어나온 탓에 현기증 증세도 보인다.

“좋아, 계속해서 처리합시다!”

일곱 마리째 코볼트를 쓰러뜨린 순간이었다.

“크르르…!”

비슷하지만 다른 하울링. 순간, 구대성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놀?”

측면에서 들린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갑옷과 방패… 한손 도끼로 무장한 놀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잔악한 하이에나 머리에 보통 놀보다 1.5배는 큰 거구…….

“놀 캡틴?!”

놀 캡틴. 이곳 서울역 게이트에서 보스 노릇을 하는 터줏대감이다. 몬스터 랭크는 족히 C급. 그들에게는 충분히 강적이다.

“아, 안 돼. 왜 하필 지금?”

순간, 대성의 머릿속에 10분 전 레온이 한 말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느냐?’

마치 이것을 예상한 모양새가 아닌가? 하지만 어떻게?

“대, 대성 씨! 어떻게 하죠?”

다급하게 외치는 나연에 대성은 마음이 급해졌다.

“영감님하고 나연 씨는 동굴의 코볼트들을 막으세요! 저하고 태훈 씨가 놀 캡틴을 상대하겠습니다!”

양쪽에 숙련자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D급이 놀 캡틴을 상대로 전위 없이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다.

초짜이긴 해도 엄연히 방패를 든 태훈이 조금이라도 버티길 바랄 수밖에.

“크라아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놀. 태훈이 앞장 서 방패를 들었지만, 놈이 내지르는 괴성이 떨리는 다리가 보였다.

저런 자세로는 막을 공격도 못 막는다!

“태훈 씨! 정신 차려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휘두른 도끼가 태훈의 방패를 후려쳤다. 태훈은 일격도 버티지 못하고 방패를 놓치며 자빠졌다.

‘이런 젠장!’

곧장 태훈을 내리찍으려는 놀 캡틴. 대성은 태훈을 구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 기세에 맡겼다.

“크르…!”

하지만 그 기세에 맡긴 돌격을 가볍게 막아내는 놀 캡틴. 롱소드는 정면에서 방패를 뚫지 못했고 멈춰선 그를 박차는 다리.

“크헉…!”

허리가 앞으로 꺾이며 숨이 토해졌다. 휘두른 도끼가 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꼴사납게 구른다. 갑옷이 채 흡수하지 못한 충격에 내장이 터질 듯이 아프다.

“으, 으아아아…….”

그때, 겁에 질린 태훈이 보였다. 그의 낯빛을 가리는 커다란 도끼의 그림자.

아군 파티는 아직 코볼트들을 정리 못 했나? 협회의 직원은 왜 안 나서지?

생각은 길어지지 못했다. 검을 쥐는 것조차 잊고 방패를 드는 대성.

“태훈 씨! 물러나요!”

태훈의 방패를 든 그가 내리치는 도끼를 막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감이 도끼에 실리며 무릎이 꺾였다.

“크윽!”

하지만 그는 버텨냈다. 그 찰나에 본능적으로 방패의 각도를 조절해 도끼를 비스듬하게 흘린다.

“크르…?”

제 무기가 미끄러지자 놀 캡틴이 짜증스러운 하울링을 흘리며 다시 도끼를 들었다.

두 번째 일격, 막을 수 있을까? 태훈 씨라도 정신을 차려서 반격을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텐데.

곧장 도끼가 내리치고 대성이 이를 악무는 순간.

-……!

예상했던 쇳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끝까지 눈을 감지 않고 놀 캡틴의 도끼를 응시했던 구대성의 동공이 확대됐다.

“뭐, 그럭저럭 합격점이구나.”

놀 캡틴이 내리친 도끼가 레온의 손가락에 붙잡힌 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구, 구해준…….”

“다시 해봐라.”

“뭐… 라고요?”

반응이 둔하다. 생각도 느리고. 나 때는 이런 친절한 도움 없이 목숨을 걸며 수행길에 나섰건만…….

“방패를 들어라. 다시 한번 맞서보라 이 말이다. 한번 해본 걸 왜 두 번 못하느냐.”

“???”

놀의 도끼를 놔버린 레온이 재촉하자 구대성도, 놀 캡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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