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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0

159화.

임진용 회장이 미국에 온다는 사실은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그룹경영으로 바쁜 사람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을까?

지분교환 문제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얘기해도 된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나타나 얘기를 꺼내는 건, 양산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이 가장 적기…… 다시 말해, 서성전자 입장에서 카로스 지분을 가장 싸게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양산에 대한 문제점을 먼저 지적한 다음 양보하는 척하며 지분교환 얘기를 꺼낸 거겠지.

만약 갑자기 제안을 받았다면, 당황해서 협상하는 내내 끌려 다녔을지 모르겠지만, 예지를 본 덕분에 어느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회사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것도 문제는 있다. 똑같은 자율주행기술을 탑재한 차가 출시되면, 누가 우리 차를 사겠는가?

역시나 임진용 회장은 그 점을 지적했다.

“그렇게 하면 카로스 차의 차별성이 사라질 텐데요.”

“대신 자율주행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수는 있겠죠.”

“자체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완성차업체들의 경우 자신들의 기술을 포기하면서까지 카로스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 기술력이 있는 업체들이야 그렇겠지만, 이미 경쟁에서 뒤쳐진 업체들은 사정이 다르겠지요.”

소프트웨어는 한 번 종속되기 시작하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때문에 벤츠나 BMW, 니콜라 등은 우리가 공짜로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준다고 해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규모와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소업체들은 기꺼이 우리가 내민 손을 잡을 것이다.

임진용 회장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카로스가 가진 기술력과 성장성이 높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걸 감안해 산정한 비율이 1대4입니다. 150조는 말도 안 됩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카로스 가치가 얼마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서성전자에게 카로스가 얼마의 가치가 있느냐다.

M&A에 있어서 시장가격 이상의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서성전자는 허먼 인수 당시 주가에 30퍼센트의 프리미엄을 얹어주었다.

허먼이 독립적으로 운영할 때의 가치는 6조지만, 서성전자 계열사로 편입된 이후에는 9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차가 알아서 움직이는 동안 운전자가 뭘 하겠는가?

그 시간에 다른 여가 활동을 즐기게 될 것이다. 뉴스 검색, 영화 시청, 음악 감상, 휴식 등등.

자율주행차는 GPS와 각종 통신장비가 탑재된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인 만큼, 서성전자는 카인포테인먼트와 외부 컨트롤에 있어서 당연히 자사 스마트폰과의 연동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서성전자는 스마트폰 판매량 세계 1위의 기업. 전 세계에 매년 3억 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판매한다. 하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엔플과 혈투를 벌이고 있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서성전자가 계속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업체들과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데, 여기에 자율주행차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서성SB 때도 그렇고 먼저 손을 내민 건 임진용 회장이었다. 그만큼 우리와의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다.

결국 아쉬운 건 저쪽이랄까?

“양사의 지속적인 협력을 위해서라면, 카로스 역시 서성전자 지분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물량도 팍팍 밀어주지.

“그렇다 해도 1대2는 불가능합니다. 주주들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1대4라면 경영자의 재량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1대2면 배임으로 고소당해도 할 말 없는 수준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방법을 생각해 놨다.

“미래가치에 대해서는 미래에 결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1년 후, 지분을 교환할 수 있는 매수청구권을 드리는 건 어떨까요?”

“…….”

임진용 회장은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협상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지분교환 비율로 시작된 설전은 사업전반에 걸친 각종 조건들로 확대되었다. 경영전반에 걸친 능력이라면 밀릴지 몰라도 지분협상에 한해서는 나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며, 직접 협상하거나 현주 누나가 협상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몇 시간 동안 대화가 오간 끝에 우리는 의견을 조율했다.

먼저 서성전자 지분 3퍼센트와 카로스 지분 10.5퍼센트를 교환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리고 1년 후, 추가로 서성전자 지분 7퍼센트와 카로스 지분 14퍼센트를 교환하기로 했다.

단, 이에 대해서는 서성전자가 매수청구권을 갖기로 했다. 1년 후에 서성전자의 주가흐름과 카로스의 가치를 산정한 다음 비율이 불리하다는 판단이 들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일부만 행사해도 된다. 일종의 콜옵션인 셈이다.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이 더해졌다.

파트너십 강화가 목적인만큼 10년 동안 상대 지분 매각금지, 서성전자에 생산물량 우선 배정, 자율주행은 물론 텔레매틱스(Telematics)와 카인포테인먼트 등 차량 종합솔루션에 대한 우선적이고 지속적인 협력, 향후 카로스 지분매각시 서성전자에 우선매수청구권 부여 등등.

계약사항에 대한 협의가 끝나자, 대기하고 있던 서성전자 법무팀 변호사가 기존 양식에 맞춰서 계약서를 만들어왔다.

OTK컴퍼니가 미국법인인 만큼, 계약서는 한국어와 영어 두 버전으로 작성되었다.

우리 쪽에서는 나를 대신해 엘리가 계약서를 검토했다.

엘리는 골든게이트 아시아지사에서 현주 누나와 함께 M&A 관련 업무를 주로 맡은 만큼 이쪽 일에 전문가다. 그러나 글자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계약서는 단어 하나, 콤마 하나에도 내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투자계약서의 ‘원금보장’은 원금을 100퍼센트 보장해준다는 뜻이지만, ‘원금보존’은 원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 손해를 보더라도 책임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엘리는 몇 가지 문구와 단어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고, 서성전자 측 변호사는 받아들였다.

양쪽 변호사의 계약서 검토가 완전히 끝난 후, 나와 임진용 회장은 각자 전자서명을 했다.

자사주 처리 문제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나 역시 지분교환 외에 다른 조건에 대해서는 카로스 경영진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따라서 계약이 발효되는 시점은 그 이후다.

우리 쪽이야 당연히 별 문제 없을 테고, 서성전자 역시 임진용 회장의 지배력이 확고한 만큼 이사회는 별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다.

일단 지분교환이 실행되면, 서성전자는 바로 카로스 지분 10.5퍼센트를 가진 2대 주주가 된다. 나중에 매수청구권을 행사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이것만으로도 예지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만약 1년 후 서성전자가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서성전자는 카로스 지분 24.5퍼센트를, 카로스는 서성전자 지분 10퍼센트를 보유하게 된다.

카로스가 국민연금을 제치고 서성전자 1대 주주로 올라서는 것이다!

임진용 회장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이제 주주들을 설득하는 게 일이겠군요.”

이사회야 거수기나 다름없지만, 주주들은 그렇지 않다.

임진용 회장의 서성전자 지분은 3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지배력을 가진 계열사 지분을 전부 합해도 20퍼센트 안팎이다.

반면 한국 국민연금은 9퍼센트를 넘게 가지고 있고, 외국계 연기금과 펀드가 53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주요주주들은 직접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해야할 것이다.

어차피 당장 교환하는 자사주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1대3.5라는 교환비율에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계약에 따라붙은 여러 조건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해줄 것이다.

1대2 비율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그때 가서 결정할 일이다.

그 시점에서 카로스 가치가 서성전자 가치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난 서성전자의 최대주주를 떠올렸다.

“국민연금은 반대하겠죠?”

은성차와 박시형은 당연히 카로스와 서성전자의 결합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레임덕이 시작되었으니, 이전처럼 국민연금공단에 강하게 힘을 행사하기는 힘들 겁니다. 야당의 정치공세를 막느라 정신없기도 할 테구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경유착은 오래된 관행이고, 정치인이든 관료든 서성그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 국민연금공단 쪽에도 서성그룹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강력하게 지시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고.

“다른 주주들의 찬성을 이끌어내기만 한다면, 국민연금 쪽에서 반대할 만한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향후 진행상황까지 다 생각해놓았구나.

“역시 자신 있으시네요.”

임진용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찾아가서 아쉬운 소리는 해야겠지요. 이럴 때는 주주들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후배님이 부럽습니다.”

“…….”

엄살 부리기는.

“즉시 양산을 위한 설비투자에 들어갈 겁니다. AP와 반도체는 오스틴공장과 화성공장에 이미 물량을 배정해 놓았습니다.”

난 웃음을 터트렸다.

“다 준비해 놓으셨네요.”

우리는 편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눴다.

임진용 회장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시다시피 현재 서성전자의 양대 축은 스마트폰과 반도체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성장세는 슬슬 꺾이고 있고, 지금의 반도체 호황 역시 언젠가는 끝날 겁니다. 양쪽 다 중국의 도전이 만만치 않으니까요.”

중국 스마트폰은 뛰어난 가성비와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굴기를 선언하고,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기술력 격차가 큰 만큼 당장은 별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기업들의 기술력이 이 정도로 성장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반도체는 할아버지가 처음 시작하셨고, 스마트폰 사업은 아버지가 키워내셨습니다. 그 다음을 준비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전장사업을 택하신 거군요.”

임진용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규모가 크고 빠르게 발전하는 산업이니까요.”

자율주행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자동차업체뿐 아니라 전자업체, IT업체, 승차공유업체 등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다.

BMW, 아우디, 벤츠, 토요타, 은성차, 엔비디아, 니콜라, 엔플, 구블, 아이버 등등.

레벨3는 이미 상용화 되었고, 몇몇 회사들은 레벨4 완성에 근접했다. 선두주자로 꼽히는 구블이나 아이버의 경우 수천 킬로미터를 자율주행만으로 주행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근접한 것과 완성한 것은 다른 얘기다. 기술을 완성한 것과 양산화하는 건 또 다른 얘기고.

“웬만한 기업들은 전부 기술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이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몇 년 안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두세 개 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겠지요. 스마트폰 OS시장이 몇 년 만에 엔플의 NOS와 구블의 안드로메다로 정리된 것처럼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안에는 다른 기업들도 카로스의 기술력을 따라잡을 겁니다. 하지만 먼저 양산차를 출시하면 기술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겠죠.”

양은 질을 담보한다.

중국이 고속철도 사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비웃었다. 실제로 중국은 운영에 미숙함을 드러내며 수많은 사고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캘리포니아 고속철 사업을 수주하는데 성공하며,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그게 바로 중국 내수시장이 가진 힘이다.

다른 나라가 10개 노선을 10년 동안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중국은 100개 노선을 1년 동안 운영하는 방식으로 따라잡은 것이다.

“계약이 끝났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 두세 개 업체가 아니라 카로스가 독점체제를 구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양산차를 출시하면, 다른 업체들이 수십, 수백 대의 실험차로 데이터를 수집할 때, 수백만 대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더 나은 제품을 출시하게 되겠지.

“차가 잘 팔릴까요?”

사실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신차가 실패하면, 카로스만이 아니라 OTK컴퍼니까지 큰 타격을 받게 될 테니.

내 물음에 임진용 회장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얼마가 팔리느냐 보다는 얼마를 생산할 수 있느냐를 걱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난 소리내서 웃었다.

얘기가 끝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발표 때 뵙겠습니다.”

“예.”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건너뛰었다. 갑자기 배고픔이 밀려오는 듯했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하려는데, 엘리는 이미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너무 멋있어서요.”

“예?”

엘리는 눈을 찡긋했다.

“서성그룹 회장과의 협상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원하는 걸 얻어내다니. 진후 오늘 너무 멋있는 거 아니에요?”

난 겸손하게 말했다.

“항상 이런 건 아니니, 오늘 많이 봐둬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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