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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1

161화 내리는 눈꽃, 내딛는 걸음

161화 내리는 눈꽃, 내딛는 걸음

달빛의 공주다!

루나를 발견한 남학생 하나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많은 이들이 나와 루나를 돌아봤고, 길이 열렸다.

“데미안. 약속 꼭 지켜야 해?”

내게 속삭인 루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우아하게 웃으며, 단상을 향해 걸었다.

“아아, 달빛의 공주······!”

“아름다워······!”

루나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학생들이 감탄했다.

남녀 구분할 것 없이, 그들 모두는 루나에게 빠져 있었다.

“이제야 듀얼의 두 주인공이 모였군요.”

응? 뭐야.

에스틸리아 교수가 왜 저기에 있지?

‘저 인간. 세실은 어쩌고······!’

에스틸리아 교수가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밤하늘 위로 화려한 마법 불꽃을 터뜨리며 무도회의 시작을 선언했다.

“우와아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달빛의 공주는 누구를 지명할까?”

“나였으면 좋겠다······!”

“멍청아! 당연히 카인 시니야카겠지!”

“그건 아닐걸? 카인 시니야카는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와 연인 관계라고!”

루나가 누구를 지명할지에 대해 남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학생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카인이었다.

“아아······! 카인은 정말로 아리엘라 플랑브아즈의 연인인 걸까?”

“그냥 소문 아니었니?”

“두 사람이 정말 잘 어울리기는 해.”

“카인은 루나 크라소타와도 가깝게 지내던걸?”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충 한 귀로 흘렸다.

혼자 있을 세실이 걱정되어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루나와의 약속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데미안. 내가 상대를 지명할 때까지만 광장에 있어 줘.’

궁금하긴 하다.

루나와 카인이 누구를 지명할지.

아니, 루나의 선택은 분명 카인일 거다.

‘하지만 카인은 알 수 없어.’

내 생각에 카인은 아리엘을 지명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쩌면 루나도 그것을 느껴 도망쳤던 것일 수도 있다. 오늘 카인이 아리엘을 선택하면, 둘은 공식적으로 연인 관계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루나가 내게 광장에 남아달라고 부탁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루나는 카인에게 거절당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답답했다. 루나를 카인에게 빼앗기기 싫지만, 루나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카인 녀석아. 루나를 선택해. 소설 속에서의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지 말란 말이다.

“카인 시니야카. 루나 크라소타. 무도회를 함께하고 싶은 상대를 지명하시길.”

그 순간, 나는 카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이어 그의 몸에서 부연 안개가 발산하는 듯한 환각이 일었고, 그것이 내 눈앞을 채웠다.

‘나, 네가 좋아.’

환각은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 안에서 들렸던 흐릿한 목소리는 분명 루나의 것이었다.

내 머릿속이 만들어낸 착각인가?

아니면 카인의 기억?

그렇다면 루나는.

‘데미안 시니야카.’

부드러운 속삭임이 귀를 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게 벌어진 상황을 알지 못했다. 주위 학생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카인 녀석은 왜 저런 얼빠진 표정으로 서있는 거지?

카인의 눈이 바라보는 대상은 루나였다. 나는 루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지었고, 환각처럼 입술을 열었다.

“저는 데미안을 지명하겠어요.”

***

아리엘은 루나가 광장에 등장한 순간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루나가 아름답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단상에 오른 루나의 자태는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달빛의 공주.’

그 이름 그대로 루나는 달빛의 공주였다.

아리엘은 불안하게 가슴이 뛰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그녀 자신도 몰랐다. 아리엘은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여인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꼈다.

“저는 데미안을 지명하겠어요.”

그 생소한 감정은 카인의 표정을 보자마자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아리엘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카인의 마음속에 무겁고 단단한 철문이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리 열려고 노력해도 열리지 않던 그것이 지금, 열렸다.

아리엘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그것은 마치 운명과도 같은 직감이었다. 아리엘은 카인의 저런 표정을 처음 보았다. 열린 철문의 틈으로 그의 감정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찾아든 깨달음. 카인은 루나를 사랑하고 있다.

움켜쥔 아리엘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해일처럼 밀려드는 감정의 폭풍에 휘말렸다. 그것은 분노였다.

‘······용서 못 해.’

아리엘은 상처 입은 자신의 마음이 어떤 형태로 자라날지 알 수 없었다. 그 불분명한 미래가 두려워진 그녀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분노의 대상을 찾았다.

루나 크라소타.

너 때문이야.

***

밤하늘에는 달과 별이 반짝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모양이 눈송이들이 공기의 저항을 이겨내며 아주 천천히 내려앉았다. 음악이 연주되자 짝을 찾은 학생들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서로에게 인사했다.

나는 루나와 함께 광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당황했다.

나는 춤을 춰본 적이 없다.

“떨고 있니? 데미안.”

루나의 웃음소리는 구슬처럼 맑았다.

“아니거든.”

“그런데 왜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니?”

“춤을 춰본 적이 없어서.”

루나가 다시 웃었다.

그러고는 우아한 동작으로 왼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줘.”

나는 물끄러미 루나를 바라봤다.

“어서.”

루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재촉했다.

나는 루나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루나도 떨고 있다.

그녀의 입술이 미소를 머금었다.

“응. 그렇게.”

속삭임과 함께, 루나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루나의 웃음소리가 음악처럼 귀를 울린다. 밤하늘에서는 별이 빛나고, 눈이 내리고, 마법의 불꽃이 피어났다.

우리 주위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카인과 아리엘도 있었는데, 서로의 손을 잡고 조화롭게 춤추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나는 내 앞의 루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미아도 짝을 찾았네?”

내 눈에도 보였다. 저만치에서 데르맛이 마치 동화 속의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미아에게 구애하고 있었다. 이상한 노래까지 부른다. 뭐야 저 녀석. 미아에게 마음이 있었어?

미아는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히끅! 딸꾹질했다. 새빨개진 얼굴로 주저하던 미아는 결국 울 것 같은 얼굴로 데르맛의 손을 잡았다. 감격한 데르맛의 세레나데가 더욱 커졌고, 미아가 빽 소리친 뒤에야 조용해졌다.

“데미안. 나를 봐주지 않을 거야?”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마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중력에 이끌리듯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고, 행복하게 웃었다.

루나의 발끝이 부드럽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달콤한 향기가 콧속을 채우며 포근한 감촉이 나를 감쌌다.

“나, 아직도 어린애 같아?”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루나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며 웃음을 머금는다.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달빛을 흡수하며 본래의 색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것을 느낀 순간, 그녀의 머리칼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귓가를 울리는 숨결이 따스하다. 루나의 가슴이 내게 맞닿으며 심장 소리가 들렸다. 나의 눈앞은 내리는 눈꽃으로 가득했다. 그때, 다시 한번 마법 불꽃이 터졌다.

퍼퍼퍼펑!

탐스럽게 내리던 눈송이가 화려한 빛으로 물들었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빛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불꽃과 별빛의 우주였다. 드넓고 황홀한 바다였다. 바다 한가운데로 두둥실 떠오른 동그란 달빛의 섬이 보였다.

아름다운 은빛. 루나의 빛.

뒤이은 그녀의 속삭임은 나를 깨우는 빛이 되었다.

***

치유실의 어둠 속에서 세실은 눈을 떴다.

주위는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다.

창문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과 별들의 빛이 방 안을 비췄다. 알록달록한 마법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고, 달은 평소보다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

세실은 목발을 짚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으로 펼쳐진 환상적인 풍경을 향해 손을 내밀다가, 가로막혔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산산이 깨어져 버릴 듯한 투명한 벽. 하지만 왜일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대로 깨어질 것 같지 않아.

마법 불꽃이 하늘에 뿌려질 때마다 세실의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았다. 고요한 심연처럼. 세실은 새어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외로움을 느꼈다.

사라락.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바람? 밀폐된 방 안에서 어떻게.

세실은 의구심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어났어? 세실.”

창틀 위에는 데미안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열린 창 사이로 밀려드는 바람이 데미안의 금발을 부드럽게 흐트러뜨렸다.

“미안해 세실. 자리를 비워서.”

데미안이 치유실 안으로 들어왔다.

세실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데미안을 바라봤다.

“귀를 기울여 봐.”

세실은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게 들린다.

무도회장을 울리는 음악 소리.

그 사이로 내밀어지는 데미안의 하얀 손.

“······!”

데미안의 의도를 깨달은 세실은 화들짝 놀라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부러진 발목은 주인의 의지를 배신했고, 바닥에 넘어지려는 세실의 손목과 허리를 데미안이 붙잡았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달아나지 마.”

두 사람의 주위로 새하얀 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푸르게 빛나는 데미안의 눈동자를 보며, 세실은 깨달았다. 세계수의 혼돈을 발현한 그가 이곳을 순백의 숲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아. 아으······.”

세실은 계속 달아나려 했다. 너무도 가슴이 뛰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데미안이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두 팔에 힘을 주며 세실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세실. 싫은 거야?”

아니야. 세실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 반동으로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흩어져 날아갔다. 힘겹게 쥐고 있던 목발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데미안의 손길이 세실을 이끌었다.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세실은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커다래졌다. 주위를 가득 메운 나무 위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아름다운 하얀 숲.

데미안과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

‘아······!’

세실은 용기를 내어 데미안을 바라봤다.

빙글빙글 풍경이 돌아간다.

내리는 눈송이도 부연 잔상을 그리며 흩어진다.

사르륵. 사륵.

발밑에서 자라난 나무줄기가 세실의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가, 풀어주었다. 그래서일까. 세실은 언젠가부터 발목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데미안이 세실을 보며 웃는다. 세실도 웃었다. 그녀의 발놀림이 점점 또렷해진다.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급변한 그녀의 움직임에 데미안은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러나 세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술에 취한 듯.

데미안과 함께했던 성년의 밤의 어느 비밀스러운 꿈처럼.

“······내가.”

미소 짓는 그녀의 입술에서 그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데미안.”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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