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62

162화 여행

“크크큭······.”

“어음, 폐하. 기뻐 보이시네요?”

하리는 꽤나 기쁜 감정을 드러내는 레온에게 고개를 기웃거렸다.

“옛 친구가 생각나서 말이다.”

“폐하의 옛 친구면··· 안토크 경이라던가?”

“네 녀석도 그놈을 만났더냐.”

“예, 뭐··· 다들 존경스러운 분들이라.”

말하는 게 기특하긴 했지만, 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네 녀석도 만난 이다.”

레온은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또한 그리 멀지 않은 날을 떠올렸다.

끝내 승천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과거를 재현한 장소에서 억지로 승천의식을 치러낸, 그의 오랜 친구.

조르딕 베르툼의 차남. 리오나 석양 기사단의 단원. 꿈과 죽음을 섬기는 자.

우둔한 제레아.

또한 황혼의 제레아라 불린 사내를.

“의외로 꽤, 닯은 꼴이긴 하구나.”

[제 도전에 당신의 평가는 필요치 않습니다.]

구대성과의 대화는 그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 무능도, 우직함도··· 우둔함까지도.

“허나, 아느냐? 본디 세상을 뒤흔드는 자는 우둔한 자들이지.”

“그렇군요?”

하리는 레온이 하는 말이니 그러려니 했다. 원체 괴팍한 사람이긴 해도 틀린 말을 하는 이는 아니었으니.

“폐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뭐··· 그렇다면 그렇겠지요.”

“네 녀석이 입안의 혀처럼 구는구나. 신하로서의 도리를 배운 모양이다.”

“제가 충신이지요?”

“그래도 안 된다.”

“······.”

“······.”

“그 잠깐만이라도.”

“안 된다.”

“······.”

하리는 말없이 레온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하리를 레온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고.

“폐에하아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라뇨 너무하옵나이다아아!”

또 저를 선수상에 매다시다니요오···!

하리는 위에 있었고, 레온은 아래에 있었다.

역전된 상하관계였으나 그런 상징적인 의미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 위, 거대한 페리선의 선수상에 매달린 하리가 구슬피 운다.

바다와 파도의 신녀 한하리. 그녀는 현재, 배에 여자가 타면 부정 탄다는 풍습의 액땜을 위해 몸소 희생하고 있었다.

“어머, 이게 말로만 듣던 포마님에 대한 공양인가요?”

“비체인가.”

베아트리체는 선수상에 매달린 하리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정말 이런 걸로 액땜이 되는 건가요?”

“허허, 비체 그대까지.”

레온은 이 거대 호화여객선에 탑승한 적지 않은 여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디 배에 여인이 타면 부정이 타는 법일세. 허나, 포마 신께서는 자비롭게도 한 여인의 희생으로 부정을 면하여 주시는 것이지.”

“그런데 그 강령. 여인 말고도 여인상으로도 대신할 수 있지 않나요?”

“······.”

베아트리체의 말에 레온은 말문이 막혔다. 실제로 그런 강령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배에는 여인상을 선수상으로 만들어 산 공양을 하지 않도록 하는 강령이 있었다.

“배에 탄 여인이 많지 않은가. 어중간한 것으로는 약빨이······.”

“뭐, 모처럼 여행인데, 저리 매달아두는 것도 안타깝잖아요. 제가 마술로 선수상을 대신할 여인상을 세울까 하는데요.”

비체가 거듭 말하자 레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를 허락했다. 덕분에 하리는 배에서 출발한 뒤, 세 시간여 만에 선수상에서 내려올 수 있었고.

“와! 해방이다!”

하리는 이 모진 대우에 대한 슬픔보다 목적지까지 일주일 동안 선수상에 매달려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기쁜 모양이다.

“수영복 갈아입고 올게요!”

레온은 신나서 탈의실로 향하는 하리. 레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베아트리체와 여객선 안으로 향했다.

“폐하, 이쪽이옵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을 안내하는 건 한빛궁주 박용신. 그는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저희 한빛호에 탑승하신 걸 환영합니다. 어떠신지요?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뭐, 나쁘진 않구나. 다만 도락에 치우친 나머지 장식이 과하다. 벼락부자의 허영이군.”

“아아··· 고귀하신 폐하의 심미안을 더럽히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박용신은 아부가 아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한빛궁 신도들을 손짓하며 두 사람의 안내를 지시했다.

“로열 스위트룸을 대기시켰습니다. ‘대만 공화국’까지 가는 길,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 * * *

레온이 갑작스레 대만 공화국으로 출항을 결정지은 것은 베아트리체가 한 추측 때문이었다.

“악마대공이 도사린 곳이라고?”

“네, 쾌락과 타락의 악마대공 퀘이. 그자가 지구에 있습니다.”

그 근거는 지구의 신문이었다. 대만 공화국에서 벌어진 스캔들. 그리고 작금의 대만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과거 스페로 왕국과 비슷하다는 것과 악마대공 퀘이의 문장이 발견되었다는 것. 무엇보다──

“놈의 이름을 발음하자 녀석이 저에게 반응했어요. 곧장 채널을 닫았지만요.”

“악마의 이름에는 마법적인 의미가 있다고들 하지.”

베아트리체의 추측은 단순히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없이 악마들을 사냥해온 스폐셜리스트의 말이니 가능성이 꽤 높다.

“좋네. 그럼 곧장 병력을 이끌고 대만 공화국으로 향하지.”

문제는 대만이 섬이라는 것과 느닷없이 병력을 이끌고 갈 명분이 없다는 것.

하여 묘수를 낸 것이 이것이다.

“금일부로 만신전은 가을 휴가를 보내도록 하겠다.”

휴가를 명목으로 한 대만 여행으로 위장한 것이다.

그렇게 결정된 대만 휴가를 위해 박용신의 호화 여객선을 대여하고 출항한 지 네 시간.

레온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호화 여객선의 스위트룸 전용 수영장 라운지로 나섰다.

“흠.”

라운지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있었다.

“오, 폐하!”

“안녕하심까!”

수호와 재혁. 현대 만신전의 대표 기사들과 그 기사단장인 천소연.

“오셨어요?”

단련된 건강한 몸을 부끄러운 듯 감추는 기사단장. 그 풋풋함은 귀엽게 넘겨짚을 수 있었다.

-끼룩!

야피도 휴가를 만끽하는 건지 동체에 전용으로 짠 줄무늬 수영복을 입은 채 물 위를 떠다닌다.

스스로 원해서 입었다기보단 기분을 내기 위해 누군가가 억지로 입힌 모양새였다.

“다들 편히 휴식하도록.”

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선선한 가을 날씨인 탓인지 수영장은 온천욕에 가까운 온수로 가득 채워져 있다.

“수호양~ 재혁이하고 소연이도 먼저 즐기고 있었구나!”

그때, 소란스럽게 등장하는 붉은 댕기머리 소녀. 하리는 정열적인 붉은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을 향해 뜀박질했다.

“워워! 누나, 잠깐만!”

“야호~!”

선수상에 매달려 찬 바람에 벌벌 떨던 하리는 망설임 없이 수영장을 향해 몸을 던졌다.

풍덩! 하고 물보라가 치며 그 여파가 온 사방에 튀겼다.

“꺄하~!”

다리 끝부터 정수리까지 깊숙이 수영장 바닥까지 잠수한 뒤 튕기듯 솟아오르는 하리. 따뜻하게 온몸을 감싸는 온수가 기분 좋은지 첨벙거리는 하리가 세 사람에게 외쳤다.

“너희들도 들어와! 여기 되게 따뜻해!”

“어음··· 누나.”

“응?”

수호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눈짓으로 특정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헙! 폐하!”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레온이 지긋이 하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 어으··· 폐, 폐하아아······.”

어쩔 줄 몰라하는 하리. 레온이 손을 들자 눈을 꼭 감고 울찔거렸으나 호된 호통이 아닌 큼직한 손바닥이 정수리에 얹어졌다.

“폐, 폐하?”

찔끔 감았던 눈을 뜨는 하리. 그 시야에는 피식 웃고 있는 레온이 보였다.

“휴가를 즐기는 건 좋으나 네 녀석도 명색이 레이디이니 몸가짐을 조심하거라.”

“아··· 저, 저 귀족이었죠?”

만신전 기준으로 기사는 귀족 취급이지만, 하리는 그중에서도 두 신의 선택을 받은 신녀이자 봉토를 하사받은 귀족이었다.

“힝··· 폐하.”

한때는 비켜라, 우먼··· 어딜 평민이 왕과 겸상하려 드느냐며 질타 받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만신전의 기사이자 신들의 총애를 받는 신녀! 거기에 봉토를 받은 귀족!

명백한 귀족 레이디인 것이다!

‘나란 여자! 클라스가 있는 여자?’

하하호호 웃으며 왕이 직접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상황이 더욱 그녀를 우쭐거리게 했다.

“히히, 그렇군요. 레이디 퍼스트의 그 레이디인 거군요? 우먼이 아니지요?”

“하하하, 네 녀석이 어찌 평민과 같을 수 있단 말이냐. 하하하, 이 녀석.”

“우히히히···! 들었느냐! 사자심왕 폐하께서 공인하신 이 귀족 레이디를···!”

“”······.””

-재수없음.

자신이 귀족이라는 걸 깨닫고 금세 우쭐거리는 모양새라니. 저게 국가 공무원인가.

-꾸국!

“아얏! 폐, 폐하··· 쓰다듬이 아프옵니다?”

하리는 어느 순간 제 머리통을 우악스럽게 꽉 붙잡는 레온에게 애써 웃는 낯으로 말했다. 물론 레온도 여전히 웃는 낯이다. 하지만······.

“그럼 네 녀석도 레이디로서 기본 소양에 대해 배워야겠지. 내 직접 궁중예법과 귀족의 몸가짐에 대해 교육할 것이야.”

“하, 하하···?”

“시험을 봐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그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것이야. 알겠느냐?”

“······예에.”

축 늘어지는 하리. 레온은 이 천방지축인 신입 귀족에게 친히 라이온하트 궁중예법을 가르치리라 포마와 페토스에게 선언했다.

“히잉······.”

“누나 괜찮아?”

“안 괜찮아··· 바비큐 구워줘······.”

누나의 말에 얼른 바비큐 기계로 다가가는 수호. 그때, 하리를 찰싹 후려치는 와이어.

“아얏···!”

따끔거리는 등짝에 뒤를 돌아보니 야피가 수영장 발코니에 매달려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하리의 다이빙에 휩쓸려 떨어질 뻔했던 야피가 간신히 발코니를 붙잡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와라, 유기체.

“야, 야피 경!”

야피를 구조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가는 하리. 그녀는 간신히 야피를 붙잡았다.

“괘, 괜찮으세요?”

-안 괜찮음.

야피는 기계다리로 하리의 뺨을 찰싹 때렸다. 은근히 매서운 게 아프다.

“힝, 아파요.”

-멍청한 유기체. 섭취한 영양분은 다 어디로 간 것임?

“히잉··· 아, 아파요!”

하리는 야피에게 연신 냥냥 펀치를 맞아가다 제 볼이 남아나질 않겠다 싶었다.

“아프다니깐요?!”

-끼룩!?

견디다 못해 야피를 아예 콱 끌어 안아버리는 하리. 부풀어 오른 찰떡같은 품 안에 갇힌 야피가 버둥거렸지만, 하리의 악력에 벗어나질 못했다.

-이거 놔라!

“놓으면 계속 때릴 거잖아요!”

하리는 S급 헌터다. 육체능력만 봐도 어지간한 기사단장급의 헌터. 야피의 총 전투력은 물론 하리를 능가하지만, 그건 전력전투모드.

즉, 전쟁 플랫폼을 장비했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의 야피는 전성기의 100분의 1 미니멀 사이즈. 기체의 크기에 따른 동력한계는 S급 헌터의 악력을 벗어나기엔 크게 모자랐다.

-안 놓냐? 본기는 경고했음.

“이익······.”

힘으로 벗어나질 못하자 무서운 경고를 하는 야피. 그런 야피의 경고에 기운을 잃어가면서도 결코 놓아주지 않는 하리.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재혁이 무심코 본심을 흘렸다.

“야피 경이 부러운걸.”

“내 누나야.”

뻑!

가차 없는 응징이 가해졌다.

결국 고단한 협상 끝에 야피를 튜브에 올려놓는 하리.

하리는 잽싸게 화제를 바꾸고자 제 수영복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이 수영복, 야피 경이 구입해둔 거죠? 뭔가 방에 택배로 와 있더라고요.”

-본기의 연산능력과 빅데이터에 의한 완벽한 도출임.

“그래요? 사이즈는 언제 알아두셨대?”

-해킹함.

“???”

-쉬웠음.

“???”

뭔가 굉장히 범죄적인 무언가를 자백했는데, 누구도 태클 걸기가 두려웠다.

이 기계, 뒤에서 얼마나 많은 범법행위를 하고 있을지 파고들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진배없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 이전에 본기의 관측능력과 계산에 의하면 오차 없는 사이즈와 적절한 취사선택은 쉬운 문제.

“아아~”

-한하리. 평소 복부와 겨드랑이를 노출하는 짧은 기장을 선호. 관측상 활발한 땀샘이 원인으로 추정.

“자, 잠깐······.

-출근복 제외, 핫팬츠, 스키니진, 시스루 등을 선호. 잠옷조차 비슷한 경향을 보임. 노출에 별다른 생각이 없는 유인원.

“유인원이라뇨! 말이 심하시네! 시원하거든요!?

-김재혁. 이해를 할 수 없는 찢어진 바지를 선호. 가난한 어린 시절의 왜곡된 경험이 낳은 산물로 추정. 트라우마적인 기억에 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아니, 이거 패션임다!”

-한수호. 카드 결제 패턴을 볼 때, 대부분의 옷을 동대문 도때기 시장에서 구입. 유복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고아 시절의 거지근성을 버리지 못함.

“너, 너무해···!”

이 기계로봇. 쓸데없는 것까지 죄 아는 주제에 이상하게 해석이 악의적이다!

-천소연.

“······.”

야피의 시선이 천소연에게로 향했다. 가슴에 프릴이 달린 투피스 수영복 차림인 그녀의 상의부분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군함조과의 수컷 경향이 있음.

“???”

“”???””

그것은 천소연도, 기사 삼인방도··· 레온조차도 고개를 기웃거리게 하는 분석이었다.

“군함조? 새 종류인가?”

-군함조과 수컷 특유의 가슴을 과장되게 부풀려 암컷을 유혹하는 경향. 덕분에 왜곡된 정보로 수영복을 구입할 뻔 했음.

“”············.””

·········

······

···

“너···!”

드물게 천소연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무언가를 찾았다. 제 가슴을 가린 그녀는 방금 전까지 수호가 고기를 굽던 꼬챙이를 들더니 분노를 담아 검처럼 겨눈다.

“그 입 다물지 못해, 이 또라이 로봇아!”

-정정을 요구함. 본기는 적확, 정확한 팩트를──

“이이익···!”

한바탕 난리가 나는 수영장. 시뻘건 꼬챙이를 들고 달려드는 천소연과 강철 와이어를 모 히어로 영화의 거미맨처럼 사용하며 도주하는 야피.

그 난장판 속에서 하리는 현명하게 빠져나와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찾았다.

“여왕님은 어디 계시지?”

같은 플로어를 공유할 터인 베아트리체가 보이지 않았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